111화 삼방전기 주식 10만주 (2)
(111)
강시혁은 이이다 유키 씨의 말을 듣고 납치 사건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납치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이제 이 사건도 그대로 조용해 지는 것이 아닌 가 했다.
강시혁이 이이다 유키 사장에게 물었다.
“저, 이제 납치가 실패했으니 더 이상 가압류 같은 것도 안하게 되는가요?”
“납치는 실패했어도 가와라 흥업은 그대로 가압류는 진행할 겁니다.”
‘법률적으로 가압류가 안 된다면서요?“
“오늘 아침에 삼방전자 사장과 통화를 했어요. 전자 사장은 가와라 흥업이 납치는 실패했어도 가압류는 그대로 진행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전자사장은 가와라 흥업이 법원에 가압류 신청함과 동시에 소송까지도 진행할거라고 했습니다.”
“이해가 안 되네요. 신청해도 안 된다면서요?“
“가압류는 신청에서부터 진행까지는 3주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이 기간 동안 언론플레이를 하는 거죠. 언론재벌인 자기네 파워를 이용해 일본 가와라 흥업이 삼방전기 10만주 가압류를 진행한다고 떠들어 대는 거죠.”
“그룹사 주가가 폭락하겠네요.”
“그렇지. 이제 이해가 가시는군. 그룹의 각 계열사는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겠지.”
“3주 지나면 회복이 되겠네요.”
“아니지. 3주 지나 법원이 가압류 신청을 불허한다는 결정이 나오면 즉각 항고를 하는 거지. 그러면 또 시간을 벌겠지.”
“골치 아프네요. 그런데 가압류 주식은 삼방전기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연구하시는 분은 전자 사장님 같은데 헷갈리네요. 왜 삼방전자 10만주가 아니고 삼방전기 10만주일까요?”
“삼방전자는 삼방그룹의 간판기업이라 회장이 삼방전기나 조금 사위에게 떼어주겠다는 생각을 했었겠지.”
“그랬군요.“
“그런데 전자 사장은 가압류 들어가기 전에 찌라시부터 나돌 거라고 했습니다.”
“찌라시라니요?”
“가압류 며칠 전에 증권시장에 슬슬 찌라시를 통해 소문을 내는 거죠. 일본의 회사에서 삼방그룹에 대형 소송 진행 예정이란 소문 말이요.”
“흠. 그걸 노리는 거군요.”
“홍 사장 입장에서는 삼방전기 10만주를 못 받으니까 고춧가루나 뿌려보자는 심보겠죠.”
“진짜 고약한 심보네요.”
“그건 그렇고 강 반장에게 뭐 하나 물어봅시다.”
“뭔데요?”
“실례지만 지금 삼방그룹에서 월급을 얼마 받고 있소?”
“저는 계열사 공채 직원이 아니라서 얼마 못 받습니다. 삼방 문화재단의 잡급직 경비라 얼마 못 받습니다.”
“그래도 한번 말해 봐요.”
“창피하게 왜 그걸 자꾸 묻습니까?”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요. 한번 말해 봐요.”
“연봉으로 따져 5천만 원이 안됩니다. 월 급여 320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 적은데? 당신 같은 인재가 말이요.”
“저, 인재 아닙니다. 인재는 공채 직원들 중에서 수두룩합니다.”
“회사 그만두고 나하고 같이 일해 볼 의향이 없소?”
“예? 경호회사에서요? 사장님이 운영하는 교바시 보디가이드 회사에서 말입니까?”
“그렇소. 연봉 10만 달러를 맞추어 주겠소. VIP를 경호하는 일이요.”
“예? 시, 십만 달러요?”
“그렇소. 일본에서의 장기 체류 비자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겠소.”
10만 달러면 1억 원이 넘는 돈이다.
강시혁은 구미가 확 당겼다,
[10만 달러면 내 빚을 1년 반 정도면 다 갚는다.]
강시혁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라 눈동자만 깜박거렸다.
VIP경호 일이라면 지금 이영진 상무를 경호하는 일과 비슷하리라고 보았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슨 경호인가? 잘못하면 총이나 칼을 맞는 경호는 아닐까?]
혹시 VIP 경호를 하다가 일본의 악명 높은 야마구찌구미의 야쿠자들을 또 만나는 것이 아닌 가 했다.
그렇지만 야마구찌구미의 오야붕이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니 자기를 너무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번 해볼까? 이 기회에 일본 땅에 와서 일본 말도 배우고 돈도 벌고 또 운 좋으면 일본여자 만나서 재혼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심은혜와 헤어졌어도 혼인신고 안하고 살았으니 난 총각 아닌가? 예쁜 일본여자 만나서 숫총각이라고 속이고 결혼할까? 10만 달러 받으면 빚도 갚고 결혼생활도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VIP의 경호 과정에서 야쿠자들과 맞닥뜨려 본의 아니게 자기가 야쿠자에 상처를 입힌다면?
야쿠자들에게 붙잡혀 이번엔 발가락이 하나 잘려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10년 생활하다보면 손가락 발가락 다 없어지는 게 아닌 가 했다.
[그건 안 되지.]
그러다가 이영진 상무에게 약속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기의 손가락 10개가 모두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영진 상무를 지켜주겠다고 한말 말이다.
자기가 만일 영빈관 경비를 그만두고 교바시 보디가이드 회사로 가버린다면 이영진 상무가 얼마나 실망할까 하였다.
이영진 상무가 ‘역시 강시혁은 그런 인간이었어. 잡급직들의 마인드는 공채 직원들과 달라. 무슨 남자가 말을 그렇게 쉽게 번복해!’ 꼭 이럴 것만 같았다.
강시혁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이다 유키 씨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경호회사로 오는 것은 지금 당장 답을 해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고 오세요. 필요하다면 임대 주택도 제공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결혼 안했죠?”
“예, 아직 미혼입니다.”
“그럼 잘 되었네. 한국의 K팝 문화 좋아하는 일본 여성들도 있으니 사귀면 좋을 것 같네요.”
“위험한 직업을 가진 경호요원을 좋아할 여자가 있나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일본 여자는 의외로 강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아요. 산돼지처럼 배가 불룩한 스모 선수를 가냘프고 예쁘게 생긴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 모르죠?”
강시혁은 웃기만 했다.
이이다 유키 씨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럼 나는 갈게요. 도쿄에 일이 있어 한 이틀 다녀올 테니 그때까지 답을 주면 됩니다.”
그러면서 이이다 유키 씨는 강시혁의 등을 가볍게 쳐주고 병실을 나갔다.
강시혁은 겐사이 전력병원에서 이틀간 더 치료를 받았다.
건강한 젊은 남자라 그런지 상처도 빨리 아물어갔다.
의사가 말했다.
“상처가 빨리 아무니 좋소. 그런데 젊은이는 무슨 운동을 했나요? 팔뚝의 근육도 좋고 가슴도 적당히 벌어져 아주 건강한 체형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요.”
“특별히 한 운동은 없습니다.”
“부모님한테 좋은 체력을 물려받은 것 같군. 듣자니 야쿠자들하고 싸워서 손가락이 잘렸었다는 데 혹시 가라데 같은 운동을 하셨소?”
“아닙니다. 바벨 운동을 조금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몇 달 동안은 힘든 것을 들거나 싸움 같은 것을 하면 안 됩니다. 어렵게 붙여 논 손가락의 기능회복에 치명적 방해가 됩니다.”
“선생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의사는 손가락 붕대를 풀고 약을 바르고 다시 붕대를 새것으로 감아주었다.
간호사들도 젊은 강시혁에게 관심이 많았다.
괜히 와서 서투른 영어로 말을 걸어보곤 하였다. 멋지게 생겼다고 말하고선 까르르 웃기도 하였다.
이럴 땐 강시혁이 정말 일본에서 살까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고개를 까닥거리며 친절하게 구는 간호사를 볼 때는 정말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가 센 심은혜와 비교가 되었다.
더구나 심은혜는 자기 말에 꼭 토를 달고 삐딱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으나 이 일본 간호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간호사는 같이 살아보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현재 시점으로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순종적 아내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짦은 영어로 말을 하니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간호사는 직업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웃음이 헤펐다.
간호사가 이제 팔뚝에 꽂은 주사바늘 두 개를 걷어갔다. 링겔주사 하나만 남았다.
주사바늘에 연결된 치렁치렁한 고무관이 불편했는데 그것만 걷어가도 시원한 감이 들었다.
내일은 이이다 유키 씨가 돌아오는 날이다.
이이다 유키 씨에게 퇴원을 시켜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이제 크게 할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일본도 한국처럼 괜히 환자를 인질로 잡아두고 병원 진료비 수입만 올리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강시혁은 이제 병원 매점에 가서 과일이나 음로수를 자주 사 먹었고 병원 건물 내를 돌아다니며 운동도 많이 했다.
저녁엔 병원에서 나오는 밥도 잘 먹고 TV도 보았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데 젊은 사람 하나가 무슨 상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이 젊은 사람은 상장과 상품과 꽃다발을 손에 들고 방송국 리포터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영남과 너무 닮았다. 불현 듯 이영남 생각이 났다. 이영남이 삼방전기 10만주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던 기억도 났다.
그때는 삼방전기 10만주에 대하여 자기가 아는 바도 없어서 제대로 대답을 못해주었었다.
그렇지만 이이다 유키 씨에게 들은 것도 있어 이 이야기라도 해줄까 하였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이영남에게 전화를 했다.
"리틀 브라운, 잘 있었어?“
“어? 형! 한국에 돌아왔어요?”
“아니. 아직 일본이야. 이제 상처가 거의 아물어 가니 내일이라도 이이다 유키 씨가 돌아오면 퇴원을 하려고 해.”
“이이다 유키 씨요? 그분이 누군데요?”
“여기 경호업체 사장이야. 이번에 우리 일을 좀 도와주기도 했어.”
“그런가요?”
“전에 나한테 삼방전기 주식 10만주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었지?”
“그랬죠.”
“삼방전기 주식 10만주의 실체에 대하여는 여기 경호업체 사장도 잘 알고 있던데? 이분이 경찰 간부 출신인데 젊었을 때 도쿄 지사장으로 나와 있던 삼방전자 사장하고도 친해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그러나봐.”
“그 분이 뭐라고 하는데요?”
“여기 가와라 흥업이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에서 홍승필 사장이 돈을 빌려갔다고 했어. 회장님이 홍 사장에게 주기로 한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담보 제공하고 돈을 빌렸다고 하네.”
“뭐라고요?”
“그래서 가와라 흥업은 돈을 받기위해 회장님이 가지고 있는 주식에 대하여 10만주만 가압류를 한다고 했어. 이미 한국 법원에 신청하겠다고 팩스까지 보냈나봐. 팩스가 갔으니 회장님이나 비서실에 계신 분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겠지.”
“그럼 어떻게 되나요? 삼방전자 10만주를 가와라 흥업이란 회사에 빼앗기게 되는 건가요?”
"법률적으로 쉽지는 않다고 하던데?“
“안돼요! 삼방전기 10만주는 우리 엄마 주기로 했던 거예요!”
“우리 엄마? 이태원에 계신 사모님 말인가?”
“아니, 우리 진짜 엄마요!”
“뭐라고? 진짜 엄마라니?”
“이태원 엄마는 날 키워주신 분이지만 진짜 엄마는 시카고에 있어요. 아버지가 삼방전자 10만주를 우리 엄마한테 주기로 했단 말이에요!”
“뭐라고?”
강시혁은 숨이 막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갑작스런 말이기 때문이었다.
이영남도 더 이상 아무 소리를 안했다.
강시혁이 잠시 후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그럼 회장님이 시카고에 계신 엄마에게 줄 것을 홍 사장에게 주려고 했다는 이야기네. 그렇다면 시카고에 계신 엄마가 화가 단단히 나셨겠네.”
“우리 엄마는 시카고 리지우드 메모리얼 파크에 계세요.”
“메모리얼 파크?”
메모리얼 파크 같으면 한국으로 치면 공원묘지 같은 곳이다.
그렇다면 이영남의 진짜 엄마는 죽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요. 우리 진짜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나는 삼방전자 주식 10만주를 우리 엄마 영전에 바치고 싶단 말이에요. 흑흑.”
강시혁은 또 당황하여 아무 말을 못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분에게 주식 10만주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말했다.
“돌아가신 분에게 주식을 줄 수는 없겠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다가 강시혁은 아차 했다.
죽은 사람에게 주식을 못주면 그의 아들인 이영남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영남은 죽은 엄마의 피를 받아 예술적 재능이 있지만 아버지의 피도 물려받았다. 장사꾼 기질이 있는 아버지의 피를 받았으니 이런 문제는 철저하게 따지고 드는 것이다. 이영남은 의외로 셈법이 밝은 것 같았다.
강시혁은 이 기회에 이영남의 비위나 맞추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흙수저는 금수저의 비위를 맞출 줄 알아야 더 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강시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10만주는 어머님에게 주기로 했지만 돌아가셨으니 리틀 브라운에게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니가? 그런데 그걸 홍 사장에게 주려했다니 나도 듣고 보니 화가 나네!”
“형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럼 당연하지. 회장님이 교통정리를 잘 못하셨네. 그 10만주는 분명히 리틀 브라운에게 돌아가야 해!”
“그런데 이제 어쩌죠? 일본 회사에서 가압류를 한다니?”
“내가 이이다 유키 사장한테 들으니까 그 가압류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어. 회장님이 구두로 주겠다고 한 것뿐이지 문서로 남긴 것은 없잖아? 그래서 법원에서 가압류를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했어.”
“그래요?”
“내가 듣기로는 그 가압류는 회사의 이미지 타격과 주가를 떨어트리기 위한 홍 사장의 음모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저는 진작부터 홍 사장을 매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강시혁은 그래서 이영남이 홍 사장을 이야기 할 때 매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 인간 이라고 말했구나 하였다,
“내가 다친 것도 가와라 흥업이 야쿠자들한테 채무 추심을 의뢰했고 그 과정에서 이영진 상무를 납치하려고 하다가 그랬던 거네. 이제 돌아가는 것을 대강 알겠지?”
“알겠네요.”
“나는 가와라 흥업의 가압류가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고 그 삼방전기 10만주는 리틀 브라운에게 돌아갔으면 좋겠어.”
‘정말이죠?“
“그래야 리틀 브라운이 시카고의 메모리얼 파크에 가서 ‘엄마! 엄마한테 주기로 한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는 나에게로 왔어!’ 이렇게 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형,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