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삼방전기 주식 10만주 (1)
(110)
강시혁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영남이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삼방전기 10만주가 어떻게 되냐고? 그런 건 회장이나 이영진 상무한테 물어보지 왜 나한테 물어? 내가 회사 임원인가? 잡급직 경비원인데.]
[회장이나 이영진 상무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한 모양이지? 회장은 무서워서 그렇다고 쳐도 이영진 상무한테는 물어볼 수 있잖아! 자식이 남자답지 못해서 탈이야.]
잠이 들려고 하는데 후배 변상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정말 다친 거야? 벌써 귀국한다는 날이 이틀이나 지났는데 안 들어오는 걸 보니 수상한데?”
“오늘 손가락 접합수술을 했어.”
“손가락이 날아간 게 맞긴 맞는 모양이네. 그거 잘하면 다시 붙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의사가 뼈 조직하고 신경세포 모두 연결해서 붙여는 놓았어. 수술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렸어. 전신마취하고 했어.”
“이영진 상무를 지키려다 영광의 상처만 얻었군.”
“갑자기 야쿠자 놈들이 나타날 줄 어떻게 알았겠냐? 그놈들이 돈 많은 집 딸이란 정보를 어디서 듣고 나타난 거겠지.”
“일본 야쿠자들도 갈 데 까지 다 갔네. 이권사업 같은 걸 하지 않고 부녀자 납치 계획만 세우고 있으니.”
“일곱 놈이나 나타나 정신없이 싸웠어.”
“또 뻥 치네. 두세 명 이겠지.”
“이 자식은 아직도 내 말을 못 믿네.”
“야쿠자들한테 다구리를 당해 죽었는지 알았더니 입은 여전히 살아있네.”
“야, 내가 손가락을 다쳤지 언제 주둥아리를 다쳤냐?”
“접합수술을 했으면 미용적인 문제는 괜찮아? 형은 원래 미용적인 것에 관심이 많잖아?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평소에 눈썹도 그리고 그러잖아?”
“그렇지 않아도 잘려진 손가락이 세균감염으로 일부 괴사해서 사타구니 살을 떼다 붙였어.”
“뭐? 사타구니 살?”
“의사 말로는 사타구니 살이 제일 거부 반응이 없다더라.”
“형, 앞으로 아침마다 면도할 때 바쁘겠는데? 턱수염 면도하랴, 손가락 면도하랴 바쁘겠는데?”
“손가락 면도라니?”
“사타구니 살을 손가락에 붙였다며?”
“그랬지.”
“그럼 손가락에 털이 나지. 원래 사타구니에 털 없었어? 사타구니 살은 털이 자라는 살이니까 털이 나겠지. 손가락에 머리카락을 심으면 비듬이 나오고 사타구니 살을 붙이면 털이 자라는 게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가!”
“뭐라고?“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너 지금 어디서 전화 하냐? 책상 컴퓨터 앞에서 전화하면 헛소리 말고 삼방전자 주식이 얼마나 가는가나 봐라. 대형 우량주라 주가가 꽤 비쌀 거다.”
“왜? 삼방그룹의 따님 모시고 다니니까 무슨 정보라도 얻었어? 왜 갑자기 주가를 알아보려고 하지?
“여기에 있는 일본 사람이 알아봐 달라고 해서 그래.”
“일본인도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모양이네. 오늘 종가 기준 100,600원으로 나와 있는데?”
[현재 주가가 100,600원이면 10만원씩만 잡고 10만주면 얼마야? 100억이네! 이영남이 조금 전에 나보고 삼방전기 주식 10만주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는데 그럼 100억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역시 재벌의 아들이라 노는 단위도 우리 같은 억조창생 하고는 다르네.]
“알려줘서 고마워.“
“무슨 정보 있으면 나한테도 알려 줘봐. 나는 돈이 없어도 우리 엄마한테 한번 사보라고 할 테니까.”
“정보 없어. 정보 있으면 네가 이야기 안 해도 내가 알려주지.”
“그럼 손가락 다쳐서 당분간 기타는 못 치겠네.”
“의사 말로는 꾸준히 재활 연습을 하면 된다는데 모르겠어. 어차피 나는 기타 치는 게 직업이 아니고 취미로 하는 거니까 큰 상관이야 있겠어?”
“알았어. 그럼 일 봐. 나도 요즘 형이 없어 포천에서 서울에 와도 재미가 없어.”
“형의 자리가 큰 줄 이제 알았지?”
다음날 강시혁은 아침에 일어나서 병원에서 준 밥을 다 먹었다. 많이 먹고 빨리 낫자라는 생각에 매점에 가서 빵까지 사먹었다.
다른 환자들은 죽을 먹는 사람도 있지만 강시혁은 내과 질환으로 입원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마구 먹었다.
너무 먹었는지 배가 슬슬 아팠다. 항문의 봉인이 풀리려고 하였다. 그래서 링겔 거치대를 끌고 화장실을 갔다.
이놈의 주사바늘만 뽑아도 살 것 같은데 간호사는 주사바늘을 세 개나 꽂아 화장실 갈 때가 제일 불편했다.
강시혁은 화장실에 갔다가 오래간만에 면도도 하였다.
다친 손가락이 오른손이 아니고 왼손이라 면도는 할 만하였다.
면도와 세수까지 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병동으로 들어가니 이이다 유키 씨가 벌써 와서 보호자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얼굴이 환해보이네.”
“오래간만에 면도 좀 했습니다.”
“과일 좀 사가지고 왔소.”
“고맙습니다.”
강시혁은 이이다 유키 씨와 서로 마주 앉아 귤을 까먹었다.
귤을 까먹으면서 강시혁이 말했다.
“어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야마구찌구미가 무대뽀로 일하지는 않는다는 말 말입니다.”
“귤이나 먹고 이야기 합시다.”
“참, 사장님은 경시(警視) 출신이라고 하셨죠? 경시면 한국 같으면 어느 정도의 계급에 속하죠? 저는 일본의 경찰 직제에 대해서는 잘 몰라 물어봅니다.”
“글쎄.... 경시면 아마 한국의 총경 정도가 되지 않을까? 우리 오사카 부(府)는 22개의 구(區)가 있어요. 서울은 아마 25개나 되나?”
“서울은 25개구 맞습니다.”
“오사카 부 산하에는 각 구마다 경찰서가 있는데 서장을 경시가 해요.”
“그러면 총경 정도가 되는 것 같네요. 고급 간부입니다. 참 저는 서울의 용산구에 있는 용산경찰서 방범위원이기도 합니다.“
“방범위원?”
“민간 자율 방범 조직입니다.”
“그럼 우리 오사카 부의 빠트롤(Patrol) 대원 같은 거겠군.”
“빠트롤요?”
“빠트롤 몰라요?”
하면서 자기 핸드폰에 영어를 치고 보여주었다.
“아, 페트롤!”
“내가 20여 년 전 도쿄 경시청에 근무할 때 삼방그룹 도쿄 지사장으로 나와 있던 삼방전자 사장하고 알게 되었어요. 그때 아마 직원 하나가 회사 기밀을 빼돌려 수사의뢰하면서 알게 되었을 거요.”
“그랬군요.“
“그런데 서로 의기도 통하고 또 나이도 같아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어요. 지금도 가끔 통화하며 지냅니다.”
강시혁은 그래서 이 사람이 이번 사건이 돌아가는 걸 잘 알고 있구나 하였다. 삼방전자 사장과 친구처럼 지내고 수시로 통화하는 사이라면 그럴 만도 하였다.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호걸형이라 서로 어깨동무하고 술집도 많이 다녔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 반장이 모시고 온 이영진 상무는 이번에 이혼 협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었던 홍승필 사장은 오사카 경찰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것까지 아시는군요.”
“그런데 홍 사장은 가와라 흥업이란 회사에서 100억을 빌렸답니다. 사업자금 명목으로 말입니다.”
“그런가요?”
강시혁은 별 감흥도 없었다.
100억이란 숫자는 자기와 같은 서민들에게는 천문학적 숫자지만 돈 많은 재벌들 간에는 쉽게 빌리고 꿔주고 하는 금액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차용증은 서로 작성한 것 같은데 실제로 돈을 빌렸는지는 여부는 통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통장 확인은 소송이라도 번지면 모를까 다른 사람은 함부로 확인할 길이 없죠.”
“그렇겠지요.“
“돈을 빌릴 때는 담보가 있어야 하겠죠?”
“그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홍 사장은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담보로 주겠다고 했답니다.”
“예? 삼방전기 10만주를요?”
강시혁은 갑자기 닭살이 돋았다.
이영남이 삼방전기 10만주의 행방에 대하여 물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홍 사장은 지금 삼방전기 10만주가 없습니다. 단지 결혼 전 삼방그룹 회장이 삼방전기 10만주를 주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강시혁은 이제 기억이 났다.
이영진 상무가 박 변호사를 대동하고 이혼 협의를 할 때 삼방전기 10만주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때 강시혁은 크게 귀담아 듣지도 않았었다, 경호원인 자기가 알아야할 이유도 없었고 또 솔직히 말해 경영에 관련된 사항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맞았어. 그때 이혼 협의 때도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박 변호사는 구두 약속이라 법률적 효력이 없다고 했어. 그런데 이영남은 왜 이 주식의 행방을 묻지? 혹시 회장이 자기 주기로 해서 그런가?]
그런데 강시혁은 자기도 모르는 것을 이이다 유키 씨가 너무도 잘 알아 한번 물어보았다.
“이이다 사장님은 삼방그룹에 근무하는 저보다도 삼방의 돌아가는 일을 더 잘 아십니다.”
“아, 그건 삼방전자 사장하고 통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가와라 흥업에서 홍 사장이 돈을 빌려가고 담보로 주기로 한 삼방전기 10만주에 대하여 가압류를 하겠다는 통지문을 팩스로 보냈다고 해서 알았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그 10만주는 회장님이 구두약속이라 법률적으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저는 잘 몰라서요.”
“법률적으로 어렵죠. 그래서 가와라 흥업은 야쿠자들에게 채권추심(債權推尋) 업무를 의뢰한 겁니다.”
“채권 추심요?”
“신용정보법에 따라 채권회수 전문회사가 채권자의 위임을 받아 채권자 대신 채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죠.”
“그런데 야쿠자들이 채권회수 전문회사는 아니잖습니까? 그냥 야쿠자지.”
이이다 유키 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본 야쿠자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 같네요. 더구나 야마구찌구미를 모르는 것 같군요. 그들은 이미 채권회수 전문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XX신용정보 라는 상호로 채권추심을 대행하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강시혁은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건대 앞에서 분식집을 할 때였다. 대부업체 돈을 못 갚자 무슨 신용정보 회사라는 곳에서 통장을 압류하겠다는 우편물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니, 그럼 채권 추심을 하면 했지 사람을 왜 납치합니까?”
이이다 유키 씨가 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납치가 아니라 모시려고 했겠지요. 이영진 상무를 모처에 모셔놓고 회장과 흥정을 하려고 했겠지요.”
“말도 안 돼.”
“회장에게 당신 딸을 보호하고 있으니까 홍 사장에게 주기로 한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언제 줄 것인가? 거기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 라고 했겠죠.”
“그게 납치나 마찬가지죠.”
“납치로 보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야쿠자들은 채무자를 모셔놓고 채무변제 촉구를 하기위해 그렇게 했다고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
“저는 법을 잘 모르지만 그게 공갈 협박이 아니고 뭡니까?”
“야쿠자들에게 연락을 받은 회장은 불안 하겠소 안 하겠소? 딸이 잡혀있으니 벌벌 떨며 삼방전기 10만주를 약속대로 홍 사장에게 증여하겠다고 약속을 하겠지요.”
“제가 보기엔 공갈 협박입니다.”
“물론 법 앞에 가면 그렇게 될 수 있지만 우선 딸이 잡혀있는데 법을 가지고 따닐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열에 아홉의 부모들은 야쿠자들의 요구에 응할 거요. 더구나 10만주를 주겠다고 말을 했던 건 사실이니까요.”
[회장님이 입을 잘 못 놀려 설화(舌禍)를 입는구나!]
“그런데 야쿠자들은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이번 일은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네요.”
“그 말은 맞소. 당신을 풀어준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요.”
“세 가지요? 그게 뭡니까?”
“첫째는 당신의 방해로 이영진 상무를 그들 말대로 모셔가지 못한 것이요. 협상의 무기로 사용할게 없어진 거죠.”
“두 번째는요?”
“경시청에서 이번 사건을 포착했기 때문이죠. 상대가 한국의 대재벌이라 외교적 문제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세 번째는 뭔지 알아요?”
“모르겠는데요?”
“바로 당신에 대한 매력 때문이요.”
‘예? 제가 무슨 매력입니까? 하찮은 삼방 문화재단의 잡급직 경비인데요.“
“우리 일본의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소. ‘슈진노 다메니 이노치오 수데루샹아 신노 사무라이데스’ 라는 말이 있소.”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가 진정한 사무라이라는 말이요. 당신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칠대일로 격투를 했으니 야마구찌구미의 구미쵸가 반할 만도 하지.”
“헤헤. 그건 방금 사장님이 지어낸 말이죠?”
“아니오. 야마구찌구미의 오야붕인 구미쵸와 직접 통화를 하고 들은 말이요.”
“예? 그럼 사장님은 야쿠자들 하고 통한다는 말인가요?”
“젊었을 때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경찰 간부와 야쿠자 오야붕은 알고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당신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자기들 조직 결속을 위해 당신을 풀어주었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야마구찌구미는 수만 명의 조직원이 있습니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풀어줌으로서 자기 부하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려는 목적도 있었겠지요. 이제 아셨습니까? 강시혁 선생?"
그러면서 이이다 유키 사장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