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돌아온 영웅 (4)
(109)
회장이 웃으며 이영진 사장에게 말했다.
“팩스 서류 그만 봐라. 종이 뚫어지겠다.”
“아빠, 이건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언론 플레이용으로 써먹을 가치는 충분히 있어요.”
“언론 플레이용이라고? 허, 너도 이제 제법이구나. 거기까지 생각할 줄 알고.”
“실은 일본 경호회사 사장 이이다 유키 씨라는 분한테 들었어요. 아빠도 이이다 유키 씨를 아세요? 아빠랑 비슷한 연배인 것 같은데요?”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른다. 전자 사장이 잘 아는 사람이야. 전자 사장이 젊었을 때 도쿄 지사장을 했었지. 그때 그 사람은 도쿄 경시청의 간부였었다고 들었어.”
“그분 말씀이 일본 야쿠자가 저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이 가와라 흥업이 홍 사장 채무를 받기위해서 였답니다. 여기에 있는 팩스 내용하고 일치합니다. 가와라 흥업은 홍 사장이 자기들에게 돈을 빌려가며 아빠가 주기로 한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와라 흥업과 홍 사장이 작성한 차용증은 가짜겠지. 이 일을 꾸미기위해 급조해 만든 거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가와라 흥업은 페이퍼 컴퍼니가 틀림없을 거다. 그거야 내가 잘 알고 있는 일본 재계 인사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그래도 어쨌든 언론 플레이를 한다면 우리 그룹은 타격을 입을 거예요. 가짜 뉴스라고 해도 사람들 뇌리에는 믿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정말 언론플레이를 한다면 타격은 입겠지.”
“법원에서 가압류 신청을 받아주지 않아도 장난은 하겠죠. 삼방그룹 사위가 장인을 상대로 혼전에 주기로 한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주지 않아 가와라 흥업을 통해 가압류 예정이란 기사만 나와도 타격이겠죠.”
“그렇겠지. 예정이라는 소문만 나와도 국민들의 여론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겠지."
“그러면 그룹 계열사들 주가가 떨어지고 전환사채 발행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겠죠.”
“그렇겠지. 이 모든 것들이 네가 배워야 할 것들이다.”
“결국은 저 때문에..... 죄송해요. 아빠.”
“세상을 배운다고 생각해라. 언론플레이도 문제는 틀림없으나 야쿠자들이 너를 납치하려고 한것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야쿠자들은 가와라 흥업의 채권 회수를 위해 저를 인질로 잡아두었다고 했겠지요.”
“아마 너도 가끔 보이스 피싱 뉴스를 보았을 것이다. 자녀를 납치했으니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뉴스 말이다.”
“그거 하고는 틀리지 않나요?”
“아니다. 같다. 너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해서 이해가 잘 안가겠지만 그런 일을 당하면 부모들은 대게 판단력을 잃고 당황하게 된다. 아마 나도 네 안위가 걱정이 되어 다급한 마음에 홍 사장에게 주기로 한 삼방전기 10만주 주식을 주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나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에 너의 납치를 막아준 강 반장은 아주 큰일을 한 셈이다. 돌아오면 큰 상을 주어야 하겠지.”
“고마워요. 아빠.”
이영진 상무는 강 반장이 한 말을 회장에게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손가락 10개가 잘려나간다고 해도 자기를 지켜주겠다고 했었다. 이영진 상무는 강 반장이 혹시 부상을 당해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한 말이었더라도 자기는 이 말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울림이 있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이었다.
이건용 회장이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말했다.
“홍 사장의 언론 플레이는 막아야 하니까 일단 이렇게 접근을 해보려고 한다.”
“어떻게요?”
“홍 사장의 아버지인 홍 회장을 만나 아들을 설득해 달라고 하겠다.”
“들어줄까요?”
“점잖은 사람이니까 들어줄 수도 있겠지. 또, 홍 사장이 가와라 흥업에게서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는 것도 알 테지. 그거야 홍 사장의 통장 확인을 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거니까”
“돈을 빌렸다면 통장에 돈이 들어왔을 텐데 없다면 차용증은 가짜가 되겠군요.”
“그렇지.”
“그런데 통장을 보여줄까요?”
“안 보여 주겠지. 그렇지만 정말 소송이라도 한다면 법원에는 제출하겠지. 그러니까 홍 사장은 소송까지 가지 않고 언론플레이만 하겠다는 거니까 홍 회장에게 막아달라고 해야겠다. 단지 홍 회장이 점잖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이혼을 했으니 마음이 변하여 딴소리를 할까봐 그게 걱정이다.”
이영진 상무는 회장에게 너무 미안한지 고개만 숙이고 말이 없었다.
마침내 눈물을 글썽거리자 이것을 본 회장은 마음이 아팠다.
“일본에서 여러 가지 사건을 겪느라 네가 많이 놀랐겠다. 오늘은 회사에 머물지 말고 일찍 집에 들어가 쉬어라.”
임창영 과장이 문화재단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비서실 임창영 과장입니다.”
“어머, 과장님!”
“강시혁씨 사건에 대해선 알고 계시죠?”
“알죠. 이영진 상무님 경호원으로 일본 따라갔다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알죠.”
“실종되었다가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야쿠자들하고 싸우느라 손가락이 잘려나갔습니다.”
“어머나! 저를 어째!”
“야쿠자들 일곱 명을 혼자 맨손으로 막아내다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어머? 그래요? 강 반장 참 멋지다!”
“그래서 지금 일본 오사카 병원에서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는다고 합니다. 며칠간 회사 출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출근보다 치료가 먼저겠지요. 이곳은 걱정하지 말고 치료 잘 받으라고 하세요.”
사무국장이 관장에게 보고하러 갔다.
관장은 해외에서 부쳐온 전람회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다.
“관장님! 강 반장은 실종되었다가 돌아왔답니다.”
“그건 내가 짐작한 대로예요. 강 반장이 어디 갔겠어요? 길을 잠시 잃어 헤맨 거라고 내가 말했잖아요?”
“이영진 상무를 지키기 위해 일본 야쿠자 일곱 명과 싸우다가 손을 다쳤답니다.“
“어머, 그래요?“
“손가락이 절단되어.....”
“절단?”
사무국장이 끝까지 말하기도 전에 관장은 비명을 지르며 자기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어머! 끔직해! 됐어요. 그만 말하고 나가보세요!”
“그래서 수술 받느라 며칠 있다가 출근한답니다.”
“알았어요. 됐어요. 이만 나가보세요. 그 사람 며칠 결근해도 지장 받는 건 없죠?”
“당분간 미술품 반출은 없을듯합니다.”
“잡급직도 산재 처리되죠?”
“됩니다.”
“알았어요. 나가봐요.”
사무국장이 설운동 대리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안 받았다.
[갤러리에 내려가서 일을 하나?]
사무국장이 갤러리에 내려갔다.
갤러리에선 설운동 대리와 큐레이터 신종화가 포장 문제로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있었군요. 강 반장이 실종되었다가 돌아왔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당분간 며칠 출근하지 못한답니다.”
“왜요? 포장 일 밀려 바빠 죽겠는데.”
“야쿠자 일곱 명과 싸워 손가락이 부러졌답니다.”
“예? 야쿠자하고 싸워요?“
“이영진 상무를 지키려고 하다가 그렇게 됐답니다. 그래서 손가락이 절단되어 접합 수술을 받는답니다.”
신종화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강 반장 멋쟁이다!”
설운동 대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이 많이 밀려있는데.....”
신종화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밀리긴 뭐가 밀려요? 본인은 일을 안 하고 강 반장을 부려먹으려고 하니까 그런 거겠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럼 신종화씨가 다 하세요!”
그러면서 설운동 대리는 화난 표정으로 사무실로 올라갔다.
신종화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남자가 쪼잔하기는!”
강시혁이 마취에서 깨어났다.
손가락은 이미 수술을 완료했는지 두툼한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는지 손가락엔 딱딱한 골무 같은 것을 끼우고 그 위에 붕대를 감은 것 같았다.
희미하게 이이다 유키 씨의 얼굴이 보였다.
“아직 안 가셨군요.”
“가긴. 내가 어딜 가나? 이영진 상무가 강 반장을 특별히 보살펴 주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미안합니다.”
“이제 걱정 말아요. 수술도 다 끝났고 의사도 수술이 잘되었다고 했어요.”
“정말 손가락이 이제 붙는 겁니까?”
“붙으라고 수술을 한 것 아니오? 의사 말로는 이제 실밥 뽑고 물리치료만 잘 하면 된다고 했어요. 잘리기 전 같이 회복은 어렵겠지만 80% 회복은 가능하다고 했어요. 물론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도 가능하고 글씨 같은 것 쓰는 것도 문제없다고 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고맙네요.”
“의사도 고생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장장 몇 시간을 달라붙어 수술을 했으니 확실히 손가락 접합 수술은 난이도가 높은 모양이요. 허긴 뼈와 신경세포를 일일이 붙이는 작업이니 어려웠겠지.”
“수술 끝났으니 내일 귀국하면 안 될까요?”
“무슨 소리! 회복과정을 살펴봐야 하니까 적어도 며칠은 여기서 있어야 할 거요.”
“며칠이나요?”
“그러니까 빨리 회복하라고 이제 밥 잘 먹고 TV나 보면서 지내면 되요. 회사 일은 싹 잊어버려요.”
강시혁이 음료수라도 마시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사타구니 쪽이 아픈 것 같았다.
얼른 팬티를 내리고 살펴보니 사타구니에 지렁이가 지나간 자국 같은 흠집이 생겼다.
살을 떼어내긴 한 것 같았다.
이이다 유키 씨가 이영진 상무의 전화를 받았다.
이이다 유키 씨가 명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수술 막 끝나고 강 반장도 마취에서 깨어났습니다.”
“수술 결과는 어떻다고 합니까?”
“수술은 잘되었답니다. 잘리기 전 같이 회복은 어렵지만 80% 회복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또, 손 모양도 접합 후 작아질 것 같아 허벅지 살을 조금 떼어 수술했습니다. 미용적인 문제도 괜찮을 겁니다.”
“어머나, 허벅지 살을요?”
“아, 살짝만 떼어냈습니다. 안 보이는 부분이니 괜찮습니다.”
이이다 유키 씨는 사타구니 살이라고 하지 않고 허벅지 살이라고 하였다.
여자 앞에서 사타구니 살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강 반장 바꿔드릴까요?”
“예, 그렇게 하세요.”
이이다 유키 씨가 자기 전화를 강시혁에게 바꾸어주었다.
“상무님! 강시혁입니다.”
“수술 받느라 고생 많았죠? 수술이 잘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상무님께서 염려해주신 덕택입니다.”
“문화재단 쪽엔 강 반장님이 수술 받느라 며칠 출근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병원에서 치료 잘 받고 오시면 됩니다.”
“내일이라도 퇴원할까 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수술 상태를 지켜봐야 하니까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회사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요! 제가 죄송하죠. 강 반장님 고마워요.”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이렇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재벌의 딸이 하찮은 잡급직 경비에게 이렇게 말해주니 너무도 고마웠다.
이이다 유키 씨도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강 반장은 이영진 상무의 신임이 각별한 모양이요. 하긴 목숨으로 이영진 상무를 지켜주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누가 맨손으로 각목 든 야쿠자 일곱 명을 혼자서 상대하겠소?”
“그때 얼떨결에 그렇게 된 겁니다. 결국 제대로 막지 못하고 끌려갔잖습니까?”
“그놈들이 이영진 상무를 왜 납치하려고 했는지 모르죠?”
“그거야 재벌 딸이니까 납치하고 금품을 요구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요?”
“야마구찌구미가 그 정도로 무데뽀로 하지는 않아요. 자세한 것은 내가 내일 들려주죠.”
“이유가 있었던 것 같네요.”
“내일은 내가 오전에 일이 있으니 못 오고 오후에 올게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하면 돼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럼 수술 결과도 확인했으니 나는 오늘 이만 들어가겠소.”
“고맙습니다. 사장님.”
강시혁은 이이다 유키 씨가 가버리자 손가락의 통증을 느꼈다.
남들과 대화를 할 때는 몰랐는데 혼자 있으니까 통증을 느꼈다.
“제기랄, 오지게 아프네!”
강시혁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수술 직후라 그런지 주사 바늘은 링겔 외에 두 개나 더 팔뚝에 꼽혀 있었다.
[그런데 야쿠자들이 이영진 상무를 노린 게 금품 목적이 아니라고? 야마구찌구미가 그 정도로 무데뽀로 하지는 않는다고?]
강시혁은 아직 가와라 흥업이 삼방그룹 회장에게 팩스를 보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홍 사장이 가와라 흥업에 채무가 있고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받아내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또. 야쿠자들은 납치가 무작정 금품 요구가 아니고 가와라 흥업의 요구에 따라 채권 추심업무를 촉진하기 위해 그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