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돌아온 영웅 (2)
(107)
이영진 상무를 비롯한 일행들이 병실을 나왔다.
이영진 상무는 시립병원 본관 건물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강시혁을 혼자 놔두고 귀국하기가 망설여졌다.
강시혁이 병실에서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경호가 서툴렀지만 앞으론 이 열 손가락이 다 잘려나간다고 해도.... 상무님을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실 삼방그룹은 계열사 공장들이 많아 자주 산재사고가 발생한다.
안전을 강화하고 교육도 시키곤 하지만 산재 사고는 아차하면 발생한다. 이런 산재 사고가 나면 보험료 지출도 늘어나기 때문에 회의 때 산재 사고에 각별히 주의를 하라고 하기도 한다.
산재 사고는 사무관리직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주로 현장의 공장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한다.
평소에 이영진 상무는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강시혁의 사고는 같이 겪은 일이라 자기가 당한 것 같은 아픔이 있었다.
더구나 그는 병실에 입원해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기의 경호를 제대로 못했다고 오히려 사과 했다. 그리고 열 손가락이 잘려나간다고 해도 자기를 지켜주겠다고 했다. 이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삼방의 모든 직원들이 자기 앞에서 겉으로만 충성인척 했지만 강시혁은 달라보였다.
그의 진정어린 말은 주종관계를 떠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까지 했었다.
[강시혁이라는 사람은 내가 위급할 때 목숨까지 던져줄 사람이다!]
이영진 상무는 주차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가 않았다.
뒤를 따라오던 경호 회사 사장 이이다 유키 씨가 이영진 상무에게 물었다.
“나에게 준 명함을 보니까 직함이 삼방그룹의 상무이사로 되어있네요.”
이 말에 박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영진 상무님은 삼방그룹의 부회장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젊으신 분이라 편의상 상무이사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병실에 누워있는 사람은 삼방 문화재단의 경비반장이라고 하는데 정규 직원입니까?”
“사무직 공채는 아니고 영빈관을 관리하는 경비원입니다.”
“그럼 잡급직이겠네요. 반장은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이 말에 뒤에 있던 최 교수가 말했다.
“그래요? 경비원에요? 난 또 과장이라도 되는 줄 알았지.”
다시 뒷짐을 쥐고 가던 이이다 유키 씨가 말했다.
“그렇군요. 정규직이 아니라서 봉합수술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군요.”
이 말에 이영진 상무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봉합수술이라고요? 봉합수술이 가능한 겁니까? 절단된 마디를 이어 붙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상처에 따라 가능하기는 한데 저도 의학지식은 많지 않아서......”
“의사는 불가능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어제 당직 의사였던 젊은 의사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아닙니다. 또 봉합 수술은 일반치료와 달라 돈이 더 들어갑니다. 외국인의 경우 산재 처리도 여기서는 힘들고..... 또 야쿠자들끼리 싸운 사람들에 대하여는 의사들도 복원에 정성을 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야쿠자는 어디까지나 사회악이니까요.”
“사장님! 지금 병실에 있는 강 반장은 잡급직이라 우리가 치료에 미온적인 것은 아닙니다. 강 반장은 저의 개인 경호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의사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을 뿐입니다.”
“그런가요?“
“강 반장은 경비원이지만 회사에서 비중 있는 사람입니다. 봉합이 가능하다면 한국에 데려가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게 하겠습니다. 산재처리가 안된다면 제 사비라도 지불해서 수술하겠습니다.”
옆에서 최 교수가 안경을 올리며 감탄했다는 듯이 아부성 발언을 했다.
“아, 상무님은 잡급직까지 이렇게 배려하시는군요.”
이영진 상무는 최 교수의 말에는 반응하지 않고 이이다 유키 씨를 붙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 반장을 오늘 퇴원시키고 같이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한국의 대형 병원에서 수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이다 유키 씨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봉합수술은 시간을 다투는 일입니다. 지금 수술에 들어가도 늦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데려간다면 늦어 안 됩니다.”
이번엔 박 변호사가 말했다.
“그렇겠네요. 한국에 데려가려면 공항에서의 대기시간, 비행시간, 또 인천공항에서 대학병원 까지 가는 시간이 있어 안 됩니다. 길거리에서 시간 다 소비할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잘라 논 손가락은 다 괴사할 것입니다.”
최 교수가 또 오른 손으로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원래 잘린 손가락은 알코올 소독액 같은데 담아가지고 와야 봉합수술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야쿠자들이 무지해서 그냥 수건에 싸서 가져왔으니 세균감영이 다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의사가 못한다고 했겠지요.”
이이다 유키 씨가 최 교수 말에 냉소적인 표정을 하고 말했다.
“잘린 손가락은 알코올 소독액에 담지 않습니다. 그러면 조직이 손상되죠. 야쿠자들도 이걸 알기 때문에 수건에 싸서 피해자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아마 수건 속에는 식염수 적신 거즈로 잘린 손가락을 쌌을 겁니다.”
다시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사장님! 그럼 봉합수술을 받게 해 주세요. 비용은 얼마가 들어가도 좋아요. 제가 책임지죠. 여기 일본서도 통용 가능한 법인카드를 드릴 테니 수술비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법인 카드는 날 주지 말고 그 반장이라는 사람을 주세요. 그런데 정말 반장이라는 사람 수술을 시킬 겁니까?”
“예, 꼭 해주세요.”
“잡급직 경비에게도 그렇게 배려를 해주시니 훌륭한 경영자군요, 그런데 수술을 하려면 제 생각엔 병원을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옮겨요? 어디 봉합수술 잘하는 병원이 있습니까?”
“전문으로 하는 데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수술은 하지만 마침 정형외과 의사가 도쿄 세미나에 갔답니다. 수술은 간사이 전력(電力) 병원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박 변호사가 말했다.
“전력 병원이요? 그런 병원이 있습니까?”
“간사이 전력 주식회사에서 세운 병원입니다. 전력 회사는 크고 작은 산재 사고가 많습니다. 협력업체도 많고요. 긴키 지역 전력 공급회사라 종업원만 해도 2만 3천명이 넘습니다. 협력업체 숫자까지 하면 훨씬 더 많지요.”
“거기가 그렇게 수술을 잘합니까?”
“아무래도 수지 절단 수술을 많이 한 곳이라 잘한다는 평판이 있습니다. 봉합 수술은 뼈와 부서진 살을 이어주는 복잡한 수술입니다.”
이영진 상무가 애원조로 말했다.
“사장님. 그럼 거기에 가서 수술을 받게 해주세요.”
“글쎄요. 거기 간다고 해서 수술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해보죠. 그 병원은 혈관을 수십 배 확대하는 미세 현미경을 갖춘 병원이라고 하니까 해보죠. 손가락 절단은 미세한 혈관을 이어주는 수술이니까요.”
“그런데 여기 병원에서 퇴원을 시켜줄까요?”
“환자를 빼간다고 좋아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경찰 수사상 필요에 의해서 옮긴다고 하면 들어줄 겁니다.”
“그렇다면 저희들 귀국은 며칠 연기하겠습니다. 강 반장 수술하는 것 보고 귀국하겠습니다.”
“아니요. 안전을 위해서 귀국하는 게 좋습니다. 강 반장이라는 사람 수술하는 것은 나한테 맡기고 출국하세요. 상무님이 여기 계신다고 해서 수술이 더 잘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아닙니다. 같은 일행이었는데 어떻게.”
“지금 상무님은 위험에 노출된 걸 모르시나요? 야마구찌구미가 왜 상무님을 납치하려고 했는지 모르시나요?”
“그거야 저를 잡아놓고 금품을 요구하려고 했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정확한 것은 가와라 흥업의 홍 사장 부채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홍 사장 부채라니요?”
“어제 밤에 삼방전자 사장하고 길게 통화를 했습니다. 가와라 흥업에서 홍 사장에게 100억원을 빌려주고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답니다.”
“예? 뭐라고요?”
“가와라 흥업에서 회장님 앞으로 팩스가 왔답니다. 회장님이 홍 사장에게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를 주기로 했다니까 가압류 하겠다는 팩스가 왔답니다. 그 흥정이 유리하게끔 하려고 상무님 납치 계획을 세운 거죠.”
이영진 상무가 갑자기 어지러움 증을 느꼈는지 비틀하였다.
박 변호사가 얼른 이영진 상무의 팔을 잡았다.
“상무님!”
“아니, 괜찮습니다.”
박 변호사가 이이다 유키 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구두 약속가지고 그렇게 가압류 못합니다. 그냥 엄포용 팩스입니다.”
“물론 엄포용 팩스입니다. 전자 사장님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와라 흥업은 가압류가 목적이 아니라 언론플레이를 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삼방전자 사장은 말했습니다.”
“언론플레이라니요?”
이영진 상무가 독기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가능하겠네요. 가압류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해도 가압류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 일반 국민들은 왜 주기로 한 주식을 안주느냐 하고선 비판을 하겠죠. 주식시장에서 삼방그룹주식의 시가총액이 1조원은 일시적으로 날아가게 생겼네요.”
“역시 삼방그룹의 후계자답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삼방전자 사장도 그게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홍승필! 야비한 인간!”
박 변호사가 무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되나요?”
최 교수는 이이다 유키씨와 이영진 상무의 대화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여 먼 산만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침대에 들어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이이다 유키 씨가 들어왔다.
이이다 유키 씨는 들오자마자 강시혁에게 신용카드 한 장을 획 던져주었다.
“이게 뭡니까?”
“삼방그룹 법인카드요.”
“아, 이영진 상무님이 잃어버린 것 같네요. 아직 귀국 안하셨으면 빨리 돌려주어야겠네요.”
“이영진 상무가 당신 주라고 했소.”
“예? 왜 이걸 날 줍니까?”
“수술비 쓰라고 했어요.”
“예? 수술비요? 수술 끝나고 박 변호사님이 중간 정산 안했나요?”
“”아니요. 진짜 봉합수술비로 쓰라고 했소.“
“봉합이요?”
“잘린 손가락을 붙이는 수술 말이요.”
“예?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한지 안하는지는 수술을 해봐야 알겠지. 이제부터 병원을 옮길 거니까 옷 갈아입어요. 병원 측엔 다 말해 놨어요.”
“병원을 왜 옮깁니까?”
“수술 잘하는 병원으로 옮겨야지. 이제부터 간사이 전력병원이라는 곳으로 옮길 거요. 그 전에 잘린 손가락 한번 봅시다.”
강시혁이 잘린 손가락을 서랍에서 꺼냈다.
사실 강시혁은 이 손가락을 한국에 가져가 영빈관 화단에 묻으려고 하였다. 내 몸의 일부를 일본 땅에 버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풀어 보지도 않고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이다 유키 씨가 조심스럽게 수건을 풀었다. 잘린 손가락은 거즈에 싸여 있었다.
아직도 손가락은 살아있는 듯했다. 거즈에 피가 흥건히 적셔있었다.
이이다 유키씨가 거즈를 맡아보았다.
“식염수에 적신 거즈는 맞는 것 같네.”
그러면서 이이다 유키 씨는 다시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수건에 쌌다.
“이봐요. 젊은이! 야쿠자들이 왜 이 손가락을 당신에게 준줄 아시오? 국에 끓여 먹으라고 준건 아니고 다시 손가락을 잇는 봉합수술을 해보라는 뜻이 있는 거요. 그러니 어서 옷 입어요.”
간호사가 생글거리며 들어왔다.
“퇴원하신다고요? 가실 때 간호사실에 들렸다 가세요.”
강시혁이 환자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제야 양복 호주머니에 있는 명함을 꺼내 이이다 유키 씨에게 주었다.
“저는 강시혁이라고 합니다.”
이이다 유키씨가 명함을 보고 말했다.
“오! 강시혁 씨!”
이이다 유키 씨는 강시혁을 일본 발음인 간시효끄 라고 말하지 않았다.
명함에 적인 영문 발음 그대로 강시혁이라고 불렀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소. 강 반장!”
명함엔 반장이란 말이 없는데 이이다 유키 씨는 어디서 들었는지 반장이란 말을 붙여주었다. 그것도 한국식 발음 그대로 불러주었다. 남의 나라 말을 존중해주는 신사다운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강시혁은 간호사실에 들려 진료비 남은 것을 법인카드로 정리했다.
박 변호사가 중간 정산을 하고 가서 진료비는 얼마 나오지 않았다.
강시혁은 이이다 유키 씨와 함께 경호 회사 차를 타고 간사이 전력병원으로 갔다.
차 안에서 강시혁이 물었다.
“가는 병원이 전력병원이라고 했는가요?”
“그렇소.”
“전력병원이라는 데가 다 있군요.”
“전력회사에서 세운 병원이요. 산재사고를 많이 다뤄본 병원이라 봉합수술을 잘 할 거요. 원래 산재환자를 받는 병원은 중심가보다는 변두리에 있지. 아마 한국도 정형외과 수술 잘 하는 데는 변두리에 있지 않나요?“
“그, 글쎄요.”
“언젠가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북한에서 총상을 입고 휴전선을 넘어온 군인 수술을 한국에서는 수원시에 있는 아주대학 병원에서 했다는데 맞소?”
“예, 맞습니다.”
“전력병원에도 그 아주대학 외과 의사처럼 유능한 의사가 있으니 희망을 가져요.”
강시혁은 붕대 감은 자기 손을 만져보며 정말 봉합수술이 가능할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