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마사키(正木) 미술관의 결투 (4)
(105)
오야붕이 주먹을 쥐고 손가락 꺾는 소리를 냈다.
“우두두두둑”
이 소리는 오야붕이 젊었을 때 결투 전에 내던 소리였다.
오야붕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잡아온 놈은 지금 어디에 있나?”
“별실에 누워있습니다.”
“의식은 있나?”
“젊은 놈이라 의식은 돌아왔습니다. 타박상은 많이 입었어도 어디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것은 병원 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애들은 어떠냐?”
“그놈이 렉서스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면서 공격했던 납치조 한 명의 갈비뼈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차금지 표지판에 맞은 공격조 한 명의 얼굴이 찢어져 일곱 바늘 봉합수술을 했습니다.”
“빠가야롯.”
“죄송합니다. 오야붕.”
“한국 놈 중에서 그런 놈이 있다니! 도망가지 않고 혼자서 일곱 명을 상대하다니! 이것은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냐.”
좌우편에 늘어선 야쿠자들은 고개만 빠트리고 대꾸를 못했다.
“오래간만에 진정한 사무라이를 보는 것 같구나. 이것은 너희들도 배워야 할 것이다.”
역시 모두 고개만 빠트리고 아무 말을 못했다.
다시 오야붕의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이번 작전은 실패다. 적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안 그런가? 기무라!”
“핫, 그렇습니다. 오야붕!”
“이번 사건은 이미 경시청에 접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그 계집애는 특별보호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분간 너희들은 이 아시야시 산장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사건이 조용해질 때까지 여기서 대기해야 한다.”
“하잇. 알겠습니다.”
“잡아온 놈도 풀어줘라. 하지만 그놈은 우리 식구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그대로 보내줄 수는 없다. 그놈을 데려와라.”
강시혁이 눈을 떴다.
침대가 아닌 마룻바닥 같은 데였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입술과 혓바닥이 터지고 온몸의 상처와 멍투성이였다. 멍은 각목에 맞은 자리 같았다.
왼쪽 눈도 잘 떠지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눈덩이가 부은 것 같았다.
“내가 죽지는 않은 것 같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이 아파서 힘들었다.
몸살기운도 있는지 머리에 열도 많이 나고 춥고 떨려왔다.
방문이 열리며 스포츠머리를 한 떡대 한 명이 들어왔다. 분명히 자기와 싸웠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반사적으로 강시혁이 일어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여, 여기가 어디냐?”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지 덩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리가이 데기나이(못 알아듣겠다)!”
덩치가 강시혁의 스마트폰을 던져주었다. 아마 뺏어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강시혁이 스마트폰을 눌러보니 아직도 밧테리가 조금 남아있었다.
사진 영상으로 자기 얼굴을 보니 왼쪽 눈덩이는 공만큼 부어올랐고 멍이 들어 시퍼렇게 보였다.
덩치가 한명 더 들어왔다.
덩치 두 명이 각각 강시혁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어딜 가는 거냐?”
덩치들은 한국말을 모르므로 대답을 안했다.
강시혁이 별관을 나와 일본식으로 지어진 어떤 큰 건물로 들어갔다.
문이 두 개가 열리며 다다미방에 많은 덩치들이 좌우로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중앙에 일본식 화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이놈들이 야쿠자들인 것 같네. 영화에서 보던 장면 하고 똑 같아. 그런데 이놈들이 날 죽이면 어쩌지? 사시미 칼로 사람을 푹푹 쑤신다는 놈들인데!]
덩치 두 명이 강시혁을 앞으로 더 끌고 갔다.
덩치 한명이 강시혁의 정강이를 걷어차 다다미 위에 앉혔다.
강시혁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앞을 쳐다보니 싸늘하게 생긴 60대 초반의 콧수염 사내가 입을 다물고 노려보았다.
사내 뒤로 액자가 하나 걸려있는데 사무사(思無邪)라고 쓴 붓글씨였다. 이 글자는 한국의 어디서도 본 기억이 나지만 그 뜻은 알지 못했다.
중앙의 콧수염 사내가 말했다.
“야나기!”
“하잇 오야붕!”
두 번째 줄 뒤에 앉은 50대가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있는 덩치들은 나이들이 좀 많은 편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20대는 없는 것 같았다.
“통역해라! 먼저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해라.”
야나기(柳) 라는 사람이 강시혁을 쳐다보고 말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라.”
놀랍게도 한국말이었다.
그런데 발음은 좀 이상했다.
“나는 이 자세가 편합니다.”
“남의 집에 왔으면 예의는 지켜라. 안 그러면 옆구리에 사시미 칼이 들어올 수 있다.”
강시혁은 이 말에 다소 공포감이 들어 무릎을 꿇었다.
[모두 다 무릎을 꿇고 앉았네. 맞아 일본 놈들은 영화에서 보면 다 무릎을 꿇고 앉았었어.]
그런데 바닥이 다다미라 그런지 무릎을 꿇었어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야나기라는 사람이 말했다.
“앞에 계신 분은 우리 조직의 오야붕이다. 묻는 말에 잘 대답해야 네가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여기서 산채로 매장이 될 수 있다.“
강시혁은 슬슬 공포감이 몰려왔다.
출세 좀 하려고 삼방그룹 문화재단 경비로 들어왔다가 여기서 개죽음 당하는 것 아닌가 했다.
[역시 나는 운이 안 풀려. 흙수저는 출세하려고 발버둥 쳐봐도 숙명적으로 한계가 있나봐.]
오야붕이 뭐라고 말했다.
야나기가 통역을 했다.
“오야붕께서 이름이 뭐냐고 물으신다.“
“강시혁이요.“
야나기 씨가 볼펜을 주며 말했다.
“한자로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강시혁이 한자로 이름을 써주었다.
이것을 보고 야나기 씨가 오야붕에게 보고했다.
“간시효끄 라고 합니다.”
[간시효끄? 이 자식들이 내 이름을 간시효끄라고 하네? 창씨개명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오야붕이 또 뭐라고 하자 좌우에 있던 덩치들이 강시혁에게 달려들어 윗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강시혁이 화들짝 놀랐다.
“왜, 이러십니까?”
야나기 씨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야붕께서 네 몸매를 보자고 하신다.”
강시혁의 불룩한 젓 가슴과 바벨 운동으로 단련된 굵은 팔뚝이 드러났다.
그리고 왼쪽 팔뚝에 있는 꽃무늬의 문신도 선명하게 들어났다.
오야붕이 뭐라고 말하자 야나기 씨가 말했다.
“너는 어느 구미(組)에 있는 사람이냐고 오야붕께서 물으셨다.”
“구미가 뭡니까?”
“어느 파에 속하냐고 물으셨다.”
“어느 파라뇨?”
“한국 조폭의 어느 파에 속하냐는 질문이다. 이를테면 한국 조폭의 김태촌 파냐, 아니면 조양은 파냐 하는 것을 물으셨다.”
“나는 삼방 문화재단의 경비반장입니다. 그런 것 몰라요. 나같이 선량한 사람을 조폭에 비유하다니!”
“그럼 너는 독고다이냐?”
“어쨌든 파는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참 잘하십니다.”
“나는 재일교포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독고다이 맞는다고 해둡시다!”
야나기 씨가 뭐라고 보고하자 콧수염의 사내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오! 독고다이!”
강시혁이 보니까 오야붕이란 사람이 독고다이라는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독고다이라는 말이 원래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인가 했다.
독고다이는 한국에선 혼자 돌아다니며 혼자 결정하고 혼자 행동하는 사람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특공대라는 뜻이 있다. 이를테면 가미가제 같은 특공대 같은 것을 말한다.
오야붕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니기 씨가 이제부터는 오야붕이 하는 말을 동시통역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잘 들었느냐? 저놈은 독고다이라고 한다. 혼자서 들판을 돌아다니며 적을 베는 놈이다. 우리 일곱 명의 조직원이 저놈에게 당한 것은 수치다.”
덩치들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싸움은 유도나 가라데를 잘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니다. 독기로 싸우는 것이다. 저놈을 봐라 독기와 깡다구로 뭉쳐진 놈이 아니냐. 저놈은 보도블록으로 공격하고 심지어 물기까지 하며 온 놈으로 싸웠다, 얼마나 멋진 놈이냐!”
덩치들 중에 옅은 한숨을 쉬는 놈도 있었다.
“저놈의 용기와 오도꼬(남자) 기질을 높이 사주겠다. 풀어는 주겠다. 하지만 우리의 사업을 방해하고 조직원들에게 많은 부상을 입혔다. 우리의 룰대로 선물은 하나 주고 풀어주겠다.”
선물이라는 동시통역 소리를 듣고 강시혁은 소름이 끼쳤다.
[선물이라니!]
“기무라!”
“하잇! 오야붕!“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단지(斷指) 절차의식을 하겠다. 단도를 가져와라!”
“하잇!”
덩치 한명이 작은 상을 가져오고 그 위에 흰 천을 깔았다.
강시혁이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냐!”
양쪽에서 덩치들이 바로 입속에 솜을 집어넣고 수건으로 막았다.
[이 자식들이!]
강시혁이 힘으로는 덩치들을 당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여러 놈이 팔과 다리를 잡으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야붕의 싸늘한 음성과 야나기 씨의 동시통역 소리만 귀에 들려왔다.
“한국의 모 남자 연예인이 우리 일을 방해했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거시기를 잘려나갔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낭설이다. 우리는 그런 야만스런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왼손 중지 하나는 잘라주겠다. 죽이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여겨라.”
“안 돼! 이 개새끼들아!”
강시혁이 부르짖는 소리는 입을 막아 들리지도 않았다.
“단지 후 저놈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와라 . 하지만 이 지역 병원은 안 된다. 오사카 병원으로 보내줘라. 차에 싣고 간자기(神崎) 강 건너편에 있는 오사카 시립병원에 던져놓고 와라. 시행해라!”
덩치들이 강시혁의 왼팔을 흰 천이 깔린 작은 상 위에 올려놓았다.
강시혁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칼날이 번쩍이고 강시혁의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산장을 울렸다.
덩치들이 바로 솜으로 지혈을 시키고 붕대를 감아줬다.
그리고 잘린 손가락을 흰 천에 곱게 싸서 강시혁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강시혁의 신음소리에 좌우로 늘어선 야쿠자들은 눈을 감았다.
덩치들이 강시혁을 렉서스 승용차에 태웠다.
강시혁은 뒷좌석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신음소리만 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고통은 조금 덜한 것 같았다. 통증이 있다 없다 하였다.
차가 한 시간 이상 달렸다.
어떤 강을 지나자 어둠 속에서 많은 네온사인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인 것 같았다.
차는 어떤 병원 앞에 섰다.
덩치들은 강시혁을 내려주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강시혁이 비틀거리며 병원 간판을 쳐다보았다.
십삼 시민병원(十三 市民病院)이라는 네온 간판이 보였다. 시립 병원인 것이다.
강시혁이 무조건 응급실에가서 간호원을 붙들고 영어로 말했다.
“손을 다쳤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죠?”
“한국이요.”
그러면서 강시혁이 여권을 보여주었다.
간호원이 여권의 인적사항을 적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가 왔다. 안경을 낀 젊은 의사였다.
“손가락을 다쳐서 왔습니다.”
의사가 의료용 가위로 야쿠자들이 엉성하게 감아주었던 붕대를 찢었다.
“이런! 마디 하나가 날아갔군요. 공장에서 야근하다가 기계에 그러셨나요? 요즘 산재 사고가 많아서....”
그러다가 의사는 강시혁의 온 몸에 멍이 든 것을 보고 흠칫하였다. 더구나 한쪽 눈이 온통 부어있어 누군가와 싸웠구나 하였다.
그렇다면 저 손가락은 기계에 베인 것이 아니고 칼을 맞은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예, 야쿠자들하고 싸웠어요. 주머니에 잘린 손가락이 있는데 봉합수술이 안될까요?”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처부위로 보아 어렵겠습니다.”
의사가 약을 발라주고 꼼꼼히 붕대를 감아주었다.
병원에 와서 약을 발라주자 통증이 멎은 것 같았다.
그런데 봉합이 안 된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손가락 마디가 잘려나갔으니 얼마나 보기 흉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의사가 말했다.
“온 몸에 상처투성이네요. 옷을 벗어보세요.”
강시혁이 옷을 벗었다.
의사는 강시혁의 문신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야쿠자들끼리 싸웠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봐야겠네요. 어디 골절상이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요. 손가락은 응급처치 했으니까 간호원을 따라 엑스레이실로 가세요.“
강시혁이 간호원을 따라가면서 병원 위치를 물었다.
“여기가 어느 병원이죠?”
“요도가와 구에 있는 시립병원이에요.”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에게 알리려고 스마트 폰을 꺼냈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이제 밧테리가 나가 꺼져 있었다.
야마구치구미의 오야붕은 모여있던 야쿠자들의 해산을 명령했다.
그리고 자기는 사무사 라는 글씨가 써진 족자 앞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야붕에게 전화가 왔다.
교바시 경호회사의 사장 이이다 유키의 전화였다.
“구미쵸인가? 나, 이이다 유키네. 잘 있었는가?”
“형님이 늦은 시각 웬일이십니까?”
“사건의뢰가 하나 들어왔네. 마사키 미술관에서 집단 폭행사건이 있었는데 한국인 한사람이 실종되었네. 혹시 자네들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
“형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냄새 하나만큼은 잘 맡습니다.”
“역시 자네들이었군.”
“그놈은 지금 손가락 하나가 잘려 요도가와 구에 있는 시립병원에 입원해 있을 겁니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 왜 그랬나?”
“그놈은 우리 일을 방해했고 우리 조직원 일곱 명을 떡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뭐라고? 혼자서 그랬단 말인가?”
“독고다이 기질이 있는 대단한 놈입니다. 오래간만에 진정한 사무라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던지고 주인을 경호했으니까요.”
“그으래? 믿어지지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