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마사키(正木) 미술관의 결투 (3)
(104)
회장은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딸이 걱정되었다,
전자사장은 상황이 끝나서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은 경호원이 없는 상태였다.
강 반장이 옆에서 있다면 그나마 괜찮았는데 지금 그가 실종되었다니 오사카에 혼자 남은 딸이 걱정되었다.
치안이 비교적 안전한 오성급 호텔에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회장이 전자사장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상황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지금 영진이가 오사카에 혼자 있습니다. 옆에 박 변호사나 또 통역으로 무슨 대학의 교수가 붙어있다는데 그들은 책상물림들이니 불안해요.”
“그게 부모 마음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인맥을 동원하여 일본의 정, 관계를 움직여야 할 것 같소.”
“조용히 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영진상무 장래 문제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곳에서 비서실 직원이나 일본 지사 직원을 동원해야겠소. 아무래도 불안해.”
“비서실 직원들이나 일본지사 직원들은 경호 전문가들이 아닙니다. 경호원을 추가로 붙이고 싶다면 차라리 일본 보안 전문사 세콤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세콤요?”
“세콤은 원래 일본회사라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요."
"저는 젊었을 때 삼방그룹의 도꾜 지사에서 근무할 때 이런 회사가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보안전문 회사라는 말이 생소할 때였습니다.”
“그건 그래요. 나도 일본의 세콤과 한국의 삼성그룹이 공동으로 보안 회사를 만든다고 해서 이게 될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었습니다.”
“세콤과 삼성이 공동으로 만든 에스원은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죠. 앞으로 경비 보안은 개인 보안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수요가 확대될 겁니다.”
“그럼 세콤 회사에 연락을 한번 해봐요. 전자사장은 젊었을 때 도꾜 지점장도 해봤으니 일본통이 아니요?”
“세콤이라는 회사는 본사가 도꾜의 시부야에 있습니다. 세콤은 그룹사니까 오사카 지부도 있겠죠. 오사카 출신 세콤 간부를 알고 있는데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흠, 아는 사람이 있다니 잘되었네요.”
“지금도 근무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회사 전화번호를 모르니 삼방 도꼬 지점장에게 전화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삼방전자 사장이 회장이 보는 앞에서 자기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도꾜 지점장을 불러서 나에게 전화를 넣어달라고 해봐.”
“알겠습니다. 사장님.”
앞에 있는 차를 마시며 잠시 기다리자 즉각 도꾜 지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역시 월급쟁이들은 높은사람 전화는 칼같이 반응을 했다.
“사장님! 도꾜 지점장입니다. 찾으셨습니까?”
“자네 세콤이라는 회사 알지?”
“압니다. 보안회사 아닙니까?”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알던 사람이 있었네. 이이다 유키 씨라고 경시청 게이시(警視: 경시) 출신이네. 그 분이 경찰 옷을 벗고 세콤으로 가있었는데 지금 무슨 자리에 있나 알아보게.”
“핫, 알겠습니다.”
“핫이라니? 자네 일본서 몇 년 있더니 일본사람 닮아가는 것 같네?”
“죄송합니다. 일본인 상대를 많이 하다 보니......”
“현지화가 되어간다는 증표이니 괜찮아. 빨리 그거나 알아봐.”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회장이 물었다.
“경시청 간부보다는 내가 아는 일본 경찰출신 자민당 중진을 동원하는 게 어떻겠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너무 요란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이용할 수는 없지요. 경시 출신이 딱 좋습니다.”
바로 도교 지점장의 전화가 왔다.
“경시청 간부출신인 이이다 유키 씨는 은퇴하였답니다. 지금 시부야 진구마에(神宮前) 거리에 있는 세콤사 본사에는 이이다 유키 씨의 아들이 과장으로 있답니다. 한번 통화해 보시겠습니까?”
“흠, 그래?”
전자 사장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 없어져 다른 인맥을 동원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이 새콤사에 근무한다니 이이다 유키 씨의 안부나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들 전화번호를 불러봐.”
“예, 알겠습니다.”
전자 사장이 이이다 유키 씨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전자사장 입에서 유창한 일본어가 흘러나왔다.
“이이다상노 무스꼬니 나리마스까? (이이다 씨의 아들 되십니까?)”
“하잇! 소오데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이이다 유키 상과 잘 아는 한국친구 삼방전자 사장입니다.”
“하, 그러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이다 유키 상은 지금 됴교에 있습니까? 아니면 고향인 오사카로 가셨습니까? 내가 안부 전한다고 하세요.”
“핫, 알겠습니다. 아버님은 은퇴하셨어도 놀 수 없다고 하시면서 지금 오사카에서 작은 신벤 게이꼬(신변 경호) 회사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신벤 게이꼬란 말에 삼방전자 사장의 귀가 번쩍했다.
“신벤 게이꼬 회사요? VIP경호를 하는 회사입니까?”
“VIP경호도 하지만 주요 고객은 장애자나 학폭에 시달리는 학생이나 길을 잘 모르는 치매 노인 보호 의뢰가 많은 편입니다.”
“오, 그럼 회사가 잘 되겠는데요?”
“하하, 작은 회사입니다. 직원 몇 명 데리고 하는 회사입니다.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들 인건비 빼면 크게 남는 것도 없답니다. 아버님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전자 사장이 이이다 유키 씨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전화를 끊자 회장이 감탄조로 말했다.
“일본어 아직도 잘하네요. 역시 노병은 살아 있었네.”
“아유, 가끔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가끔 일본 드라마도 보곤 하는데 이젠 눈도 침침해서.....”
“그런데 신벤 게이꼬가 무슨 말이요?”
“신변 경호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오사카에서 작은 신변 경호 회사를 한답니다.”
“오, 잘됐네. 거기에 부탁하면 되겠네.”
“전화 한번 해보겠습니다. 저도 이 사람 만난 지가 오래되어 반가워 할 겁니다.”
전자 사장이 이이다 유키 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모시모시, 이이다 유키상 데스까?”
“누구시죠?”
“한국의 삼방전자 사장입니다.”
“와, 자쵸상! 오래간만이요? 목소리 좋네!”
‘반갑습니다. 이이다 상“
“그런데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습니까?”
“세콤에 있는 아드님에게서 알았습니다.”
“그랬구나! 오사카 한번 놀러 와요. 여기에 오면 당신이 좋아하는 게이샤 비밀요정이 있어요. 내가 안내해 주지.”
“아직도 팔팔하십니다.”
“아직도 내가 팔씨름으로는 누구한테 안 진다오!”
“오늘 내가 전화한 것은 오사카에 체류 중인 VIP 따님 한분을 경호하는 일입니다. 몇 일만 부탁하죠.”
“하하. 그런 것 하는 데가 우리 회사입니다.”
“그리고 실종된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마사키 미술관 앞에서 야쿠자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습격당한 한국인이 있습니다.”
“오, 그래요? 알아보죠. 그런데 실종사건은 경찰에 의뢰하는 게 안 좋을까? 여기 오사카 경시청의 경시감(警視監: 일본 지방 경찰청장)이 내 후배인데.”
“의뢰는 했답니다. 그래도 빨리 알아보려고 이이다 상에게 전화 한 겁니다.”
“일단은 나도 알아보죠. 그런데 VIP따님과 실종자 인적사항을 알아야 하는데?”
“VIP따님을 따라온 한국인 변호사가 있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아이다 상 사무실로 찾아가라고 하죠.‘
“우리 회사는 교바시(京橋) 부근에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이름도 교바시 보디가이드입니다. 하하.”
전자 사장은 회사 이름이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이다 유키는 유능한 경찰 간부였고 국가 표창장도 많이 받은 사람이라 신뢰는 갔다.
삼방사장이 전화 내용을 정리해 회장에게 보고했다.
“전에 경시청 경시를 지낸 사람이 오사카에 요인 경호회사를 운영한답니다. 현재 오사카 경시청의 청장도 자기 후배랍니다. 이 사람에게 부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네요.”
“영진 상무와 같이 일본에 간 박 변호사라는 사람에게 찾아가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영진 상무 보호와 아울러 강 반장의 소재도 찾아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영진 상무에게 전화 할까요?”
“그러세요.”
전자사장은 이영진 상무에게 박 변호사와 통역을 시켜 경호 회사에 찾아가보라고 하였다. 경호 회사의 경호원이 파견되기 전까지는 이영진 상무가 호텔 밖을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 아울러 강시혁의 실종 사건도 협조를 요청하라고 하였다.
전자사장은 경호회사 사장에게는 한국의 삼방전자 사장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 잘해 줄 것이란 말도 했다.
이영진 상무는 차분한 음성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또, 전자 사장은 강시혁이 야꾸자들에게 끌려갔다면 죽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경호회사 사장이 경찰간부 출신인데 이 사람 말이 야쿠자들이라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이영진 상무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다.
전자사장이 이영진 상무와 통화를 끝내자 회장은 걱정이 좀 풀린 것 같았다.
얼굴에 미소까지 번졌다.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 경호회사 사장이 경시청 경시 출신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경시면 얼마나 높은 겁니까?”
“일본은 경찰학교를 졸업하면 순사가 됩니다. 다음이 순사부장, 그리고 경부보, 경부, 경시, 이렇게 올라갑니다.”
“흠. 그렇군요.”
“지방 경찰청장이 경시감이고 경찰총장은 경시총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경부만 되어도 독자로 검찰에 영장 청구권이 있어 끗발이 제법 셉니다.”
“그럼 전자사장이 알고 있는 사람은 경시 출신에다가 세콤 간부 출신인 경호회사 사장이란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놀기도 잘하고 아주 유모러스한 사람입니다. 야쿠자 오야붕이나 게이샤 마담들도 잘 아는 친구입니다.”
“하하, 그래요? 그런데 세콤이 무슨 뜻입니까? 무슨 약자 같은데.”
“약자 맞습니다. Security Communication을 가지고 창업 회장이 만든 상호입니다.”
“세콤 회장도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이군요. 우리 그룹의 전자사장에 필적할 인물이군요.”
“하하. 저는 세콤 회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콤 회장인 이이다 마코토(飯田亮)는 저술도 많아 제가 교또에 있을 때 그분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
“경영의 왕도라는 책을 지었는데 나중에 회장님도 한번 읽어보시죠. 한국어 번역판이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본어 원서로 읽었습니다.”
“상대를 나온 사람이 일본어 원서를 읽다니 대단해요. 나는 세콤 회장보다 당신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니요. 정말이요.”
“세콤 회장은 신용대출로 빌린 단돈 400만엔을 가지고 지금은 대그룹을 만들었습니다.”
“호, 그런가요?”
“세콤은 일본에서만 1만개 지점이 있고 경비원 숫자만 해도 59만 명이랍니다. 이런 사람에게 저를 비교하는 것은 봉황과 참새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효고현의 아시야시에 있는 야마구찌구미의 총부는 침묵에 휩싸였다.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큰 넓은 정원엔 새 소리만 들렸다.
안방의 다다미 위에 주름진 얼굴에 콧수염을 한 사내가 화복을 입은 채 앉아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무릎을 꿇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바로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찌구미의 오사카 지역 오야붕(두목)이었다.
오야붕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덩치들이 역시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이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오야붕인 구미쵸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위에 있던 찻잔이 옆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찻잔에서 흘러나온 물이 그대로 흘러나와 다다미 바닥에 스며들고 있었다.
“빠가야롯! 그까짓 한국 계집애 하나 잡아들이지 못하다니!”
“하, 죄송합니다.”
덩치 큰 사내들이 머리를 숙이며 일제히 죄송하다고 외쳤다.
“기무라!”
“하잇 오야붕!”
기무라 라는 사람이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기어 나왔다.
바로 마사키 미술관에서 헌팅캡을 쓰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 사람이었다.
“너는 애들을 7명이나 데리고 가서 일을 그르쳤다. 어쩔 거냐? 할복자살이라도 하겠냐?”
“죄송합니다. 오야붕!”
“한국인 홍 사장에 받은 착수금은 도로 내줘야 할 판이다.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 우리 조직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너는 당분간 근신을 해야 할 것 같다.”
“오야붕! 착수금은 내주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홍 사장에게 약을 공급하고 받지 못한 돈이 꽤 있습니다. 그것으로 공제하면 됩니다.”
“그걸 계산해서 이번 일에 실패했나?”
“하앗. 죄송합니다. 오아붕!”
그러면서 기무라 라는 헌팅캡의 사내는 다다미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기무라는 오늘 헌팅캡을 쓰지 않고 잠바도 입지 않았다.
다른 야쿠자처럼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양복에 붉은 손수건을 꽂고 손가락에는 검은 비취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