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마사키(正木) 미술관의 결투 (1)
(102)
이영진 상무가 마사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최 교수가 이영진 상무 옆에서 침을 튀기며 그림 설명을 했다.
최 교수가 한국말로 요란하게 설명하니까 관람객 일본 아줌마가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이런 최 교수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놔두자. 최 교수도 살려고 저 몸부림치는걸. 이영진 상무에게 잘 보여 삼방그룹에 특채라도 들어간다면 완전히 대박이지. 객원 교수를 지낸 사람이니 나처럼 잡급직 말단은 아니고 정규직 간부자리 하나는 주겠지.]
“상무님! 저 그림은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수백 년이 지난 그림이지만 얼마나 살아있습니까?”
“그렇군요.”
“이 미술관은 이곳 출신인 마사키 타카유키 라는 사람이 세웠습니다. 이 고장 출신으로 영화업으로 돈을 벌어 세웠답니다.”
“돈도 돈이지만 이 많은 그림을 모았다니 대단하네요.”
“여기에 소장된 미술품은 총 1,300점이랍니다. 그 중에 국보급이 3점, 중요문화재가 13점이나 있답니다.”
강시혁이 보기에도 그림은 고미술품이 많았다.
일본 아줌마는 딸인지 5살쯤 되는 여자 어린아이를 데려왔다,
어린 아이는 그림 보는 것이 재미없는지 그림은 안보고 관람하러온 사람들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림보다는 사람 얼굴이 더 재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박 변호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안녕! 꼬마 아가씨!”
강시혁이 영어로 말하고 윙크를 하자 아이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이번엔 최 교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어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보더니 그 다음부터는 이영진 상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어린 아이라도 아름다운 것은 더 쳐다보고 아름답지 않은 것 더 쳐다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는 사람이 또 있었다.
몇 발자국 뒤에서 그림을 관람하던 50대 남자였다. 이 남자는 헌팅캡을 머리에 쓰고 잠바를 입은 50대였다.
강시혁은 이 남자를 보고 조금 불쾌했다.
[나이도 먹을 만치 먹은 사람이 왜 자꾸 젊은 여자 얼굴을 쳐다봐? 혹시 이상한 놈은 아니겠지?]
이 남자는 일반 관람객이 아니었다. 관람객을 가장한 야마구찌구미의 야쿠자였다.
이 남자는 강시혁도 가끔 쳐다보았다.
[이 남자는 내가 이영진 상무 일행인줄 알고 내 눈치를 보는구나. 눈치까지 보며 남의 여자 얼굴을 자꾸 쳐다보면 되나? 이 아저씨 좀 불량하네.]
관람이 끝났다.
최 교수가 또 눈웃음을 치며 이영진 상무에게 접근했다.
“상무님. 바로 초밥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찻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이곳 다다오가쵸 지역은 물이 좋아 일찍부터 차 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박 변호사가 말했다.
“차는 뭘, 밥이나 먹으러 가지. 내가 서초동 사무실 근방의 초밥집은 자주 다녀봤지만 진짜 일본 전통 집은 못 가봤거든. 다가라 마루야마 스시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선배님.”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미술관이지만 작은 개인 미술관이라 관람객이 적었다. 강시혁 일행 이외 관람객은 여자 어린아이를 데려온 일본인 아줌마와 헌팅캡의 남자뿐이었다.
아줌마는 아이가 자꾸 칭얼대자 자기가 타고 온 경차를 몰고 가버렸다.
그런데 헌팅캡을 쓴 50대 남자는 가지 않고 이영진 상무 주위를 맴돌았다.
수상해보였다.
[이영진 상무의 스토커가 많다더니 이제 일본 놈 스토커도 나오는 것 같군.]
최 교수가 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가기 전에 여기 다녀갔다는 증표로 기념사진을 하나 찍지요. 이 미술관을 건립한 마사키 타카유키 고택을 배경으로 찍으면 기념이 될 겁니다.”
이영진 상무가 고택을 배경으로 섰다.
최 교수가 말했다.
“박 변호사님은 좌측에 서시고 제가 오른쪽에 서겠습니다. 사진은.... 미안하지만 강 반장이 찍어주시겠어요?”
박 변호사가 말렸다.
“그러면 되나. 같이 찍어야지. 저분에게 부탁을 해볼까?”
그런데 헌팅캡의 남자가 먼저 와서 말을 걸었다.
일본말이라 최 교수만 알아들었다.
“제가 사진을 찍어드리죠.”
“아, 감사합니다.”
그래서 강시혁은 박 변호사 옆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재벌 2세를 모시고 양옆에서 변호사와 교수가 사진을 찍으면 격이 맞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경호원이 옆에 껴 마땅치가 않은 눈치였다. 선민의식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주차장으로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헌팅캡이 다시 접근했다.
“사진은 지금 현관 앞보다 저쪽에서 찍으면 더 좋습니다. 마사키 타카유키 선생의 고택은 물론 선생의 선조들이 이용하던 다실(茶室) 건물까지 다 나옵니다.”
이영진 상무가 잠시 망설였다.
최 교수가 또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다녀간 인증샷은 남기셔야죠.”
그래서 건물 밖 왼쪽으로 돌았다.
거기에 납치조 야쿠자가 탄 렉서스가 있었다.
헌팅캡 남자가 강시혁 앞으로 왔다. 놀랍게도 영어로 말을 했다.
“아까 보니까 선생님은 영어를 쓰시던 것 같은데 어느 나라에서 오셨습니까?”
“한국입니다.“
“오, 한국! 그런데 저기 천엥짜리 지폐는 선생이 흘리신 건가요?”
강시혁은 환전하여 바꾼 일본 돈이 있었다.
정말 자기가 흘린 돈인가 하여 집어 드는 순간 헌팅캡 남자의 두 손이 올라가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이영진 상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렉서스의 남자 둘이 나와 이영진 상무를 잡아끌며 차에 태우려고 하였다.
이것을 본 강시혁이 뛰어가려했으나 어느 틈에 헌팅캡 남자가 다리를 걸어 넘어졌다.
일어나보니 벌써 건장한 떡대 네 명이 나타나 강시혁을 에워쌌다.
이영진 상무의 비명소리는 계속 들렸다.
강시혁은 정신이 없었다. 각목 하나가 날아드는 것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앞에 놈의 가슴을 옆차기로 걷어버렸다. 그리고 넥서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강시혁은 단숨에 차 보닛 위에 올라갔다가 뛰어내리며 한 놈의 얼굴을 걷어찼다.
“윽!”
한 놈이 나둥글었다.
이어 나머지 한 놈의 옷을 잡는 순간 놈의 주먹이 먼저 날아왔다.
“윽!”
강시혁의 입술이 금방 터져버렸다.
강시혁은 급한 김에 입술을 가격한 놈의 팔을 물어버렸다.
동시에 둘이 넘어졌다. 강시혁이 보도블록으로 엉겨 붙은 놈의 머리를 가격했다.
“아윽!”
이번엔 떡대들의 각목이 날아와 강시혁의 머리를 쳤다.
강시혁의 이마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시혁이 싸우면서도 이영진 상무에게 소리쳤다.
“우리 차 있는 곳으로 뛰어욧!”
벌써 강시혁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 담 밑에 있던 박 변호사와 최 교수는 몸이 얼어붙었는지 벌벌 떨며 움직이질 않았다.
“박 변호사님! 미내밴으로 빨리 뛰어욧!”
그때야 정신을 차린 박 변호사가 이영진 상무의 팔을 잡고 뛰었다.
떡대들이 달려와 각목으로 박 변호사를 치려고 하였다. 강시혁이 길가에 세워둔 주차금지 입간판으로 황급히 막았다.
재크 나이프를 든 놈이 달려들었으나 놈은 주차금지 표지판을 맞고 칼을 놓쳐버렸다.
강시혁은 야쿠자들의 숫자가 많아 이길 수가 없었다. 시간만 끌면 자기가 불리했다.
그래서 입간판을 휘두르며 가져온 호루라기를 불었다.
호루라기를 불자 야쿠자들은 경찰이라도 온줄 알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 순간 강시혁도 미니밴 쪽으로 튀었다.
“소꼬니 닷츠나사이 (거기 서라)!”
이영진 상무의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강시혁이 소리쳤다.
“그대로 뛰세요.”
미니밴 운전기사가 갑자기 들리는 고함소리에 머리를 내밀었다. 이영진 상무 일행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시동을 걸었다.
이영진 상무가 차에 타려는 순간 각목을 든 덩치가 달려들었다.
강시혁이 덩치의 허리를 잡고 같이 넘어졌다. 이 순간 이영진 상무와 박 변호사와 최 교수가 차에 탔다.
또 한 놈이 문을 열려고 하자 강시혁이 그대로 덮쳤다.
이때 다른 놈이 각목으로 강시혁의 등짝을 내리쳤다.
강시혁이 차를 타지 않아 차가 아직도 출발을 안했다.
차에 탄 최 교수가 얼굴을 내밀었다. 강시혁이 미니밴 문짝을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빨리 가란 말이야! 야, 최 교수! 이 씹새야! 빨리 안가?”
박 변호사도 얼굴을 내밀었다.
“여긴 내가 막는단 말이에욧. 이러다 다죽어욧!”
각목이 또 날아왔다.
이번엔 강시혁이 각목을 잡았다. 각목을 잡아 다니며 딸려온 야쿠자의 배를 걷어찼다.
“아욱!”
강시혁이 각목으로 미니밴의 보디를 쳤다.
“빨리 가란 말이야!”
미니밴이 주춤주춤하더니 그대로 출발했다.
덩치들이 또 차를 잡으려고 하자 강시혁이 괴성을 지르며 각목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이 쪽발이 새끼들아!”
강시혁이 두어 번 각목을 휘둘렀지만 뒤에서 날아온 떡대들의 각목을 맞고 휘청거렸다.
그러자 여러 명이 달려들어 강시혁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수없는 각목도 날아왔다. 강시혁은 드디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미니밴은 무사히 다다오카쵸를 빠져나왔다.
차 안에서 최 교수가 전화로 오사카 경시청에 신고를 했다.
“마시키 미술관 앞에서의 폭력사건요? 이미 접수했습니다.”
아마 누가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싸우는 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미술관 관계자나 관람객이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이제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엄청 놀랐던지 차 안에서도 오들오들 떨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 안정을 찾았는지 떨지는 않았다. 돋았던 닭살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소리쳤다.
“강 반장이 안 왔어요! 강 반장이!”
옆에 있던 박 변호사가 진정을 시켰다.
“괜찮을 겁니다. 강 반장은 강한 사람이라 괜찮을 겁니다.”
“죽지는 않겠지요?”
“각목 한두 대 맞아서는 죽지 않습니다. 경찰 신고도 되었으니 곧 돌아올 겁니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미술관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야 긴장이 풀렸는지 이영진 상무는 눈을 감았다.
박 변호사가 앞좌석의 최 교수에게 물었다.
“방금 우리를 습격한 사람들이 누굴까? 최 교수 혹시 집히는 데가 있나?”
“글쎄요. 모두 통일된 검정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야쿠자 조직 같기도 한데......”
“그런데 이영진 상무를 어떻게 알고 납치하려고 했을까?”
“혹시 홍 사장 측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진 않겠지. 잘못하여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홍 사장도 한국사회에서 매장이 되는데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삼방그룹 회장도 정계나 관계의 막강한 인맥이 있는 분이라 그러진 않을 거야.”
“그렇다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그런데 저는 오늘 야쿠자들 싸우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일본에 살면서도 야쿠자 소리는 들어봤지만 싸우는 것은 처음 봅니다.”
“강 반장 참 대단해. 그 여러 사람들의 야쿠자를 상대로 그렇게 싸우다니! 나는 싸우는 장면만 봐도 몸이 떨리는데.”
“그런데 그 사람 나한테 유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빨리 가라고 욕을 퍼붓네요.”
“그거야 빨리 안가니까 그랬겠지. 그러나 저러나 진짜 강 반장이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야쿠자들이 살인은 잘 안합니다. 자기들끼리 싸울 때는 살인을 해도 일반인들 살인은 안합니다. 살인하게 되면 자기들도 복잡해지니까요.”
“그런가?”
“살인자가 나오면 언론에 보도되고 경시청도 중대사고로 다룰 수가 있어 살인 안합니다. 하지만 싸우다보면 우발적 사고는 있을 수가 있겠죠. 그게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
“걱정되네.”
이영진 상무가 다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죠?”
“호텔 거의 다 왔습니다. 그런데 호텔보다는 병원에 먼저 들리는 게 안 좋을까요?”
“나는 놀라서 그렇지 다친 데는 없어요. 그대로 호텔로 가주세요.”
최 교수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보다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으니 운동화라도 사러 가시죠.”
박 변호사가 말했다.
“이영진 상무님 호텔에 모셔드리고 최 교수와 나는 미술관에 다시 가보지. 신발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시죠.”
“그리고 같이 경시청에 들려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하도록 하지. 일단은 강 반장을 찾는 것이 급선무니까.”
“그렇게 하시죠.”
이영진 상무가 눈물을 글썽이며 박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정말 강 반장 괜찮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지금쯤 어디 병원에 있을 겁니다. 호텔에 가계시면 조만간 소식이 들릴 겁니다,
“아, 정말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이영진 상무는 조금 전 강시혁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자기가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태워질 때 강시혁이 달려온 장면이 생생했다.
강시혁은 오자마자 차량 보닛 위에 올라갔다가 뛰어내리며 자기 팔을 잡은 사람을 걷어찼다.
그리고 왼팔을 잡고 있는 사람이 공격하자 팔을 물며 격투하는 것을 보았었다. 덩치가 산만한 사람들이 각목을 휘두르는 것도 보았었다.
이영진 상무는 남자들끼리 싸우는 것은 영화에서 보았지만 실제 그렇게 싸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이영진 상무는 너무 놀라 오줌까지 지렸었다.
이영진 상무는 혹시 시트가 젖지 않았는지 손을 몰래 엉덩이 밑에 넣고 만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