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이혼 협의 (1)
(97)
박 변호사가 자기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이 서류는 상무님께서 보내주신 복사한 서류입니다. 장명건설을 인수하실 때 작성한 양도양수계약서와 별도 약정서입니다.”
“삼방그룹에서 장명건설을 인수 후 3개월 이내 액면 분할한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3개월 시한이 거의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명건설은 강성노조가 회사를 잡고 있어 인수전이나 인수 후나 계속 농성중입니다.”
“농성과 액분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물론 액분은 경영에 관한 사항입니다. 노조가 왈가왈부할게 못되죠. 그렇지만 농성 중에 액분을 하는 것은 사회적 호응을 받기 어렵습니다. 종업원의 주장은 팽겨 치고 주주 이익만 극대화 한다고 할 것입니다.”
“3개월 약속을 지키지 못한 패널티를 요구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두 번째 요구사항일 것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강시혁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를 팔아먹었으면 되었지 액면분할을 한다면 홍 사장이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 잘 모르겠다.
[한번 물어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박 변호사가 경호원 주제에 어딜 끼어드느냐고 소리치고 이영진 상무도 얼굴을 찌푸릴 것만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박 변호사가 다시 말했다.
“장명건설은 삼방그룹이 대주주이지만 아직도 삼방건설 사장이었던 김장명이 5%의 주식을 가지고 있고 A일보 홍승필 사장도 5%의 주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 사장의 5%주식을 마저 인수하지 않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장명건설을 흑자건설사로 만들고 홍 사장을 장명건설 사장으로 취임시키기 위해서였겠지요.”
“잘 보셨습니다. 아버님이 장명건설을 인수할 때 홍 사장 지분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위와 따님에 대한 배려이겠지요. 현재 장명건설은 삼방그룹의 계열사인 삼방건설이 30%, 김장명 전 사장과 홍사장이 각각 5%, 그리고 상무님이 5%, 금융권 5%, 그리고 나머지는 소액주주입니다.”
“장명건설을 인수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아니, 홍 사장과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람의 앞길이야 어디 알겠습니까? 자본 잠식회사를 무리하게 인수한 회장님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나 때문이겠지요. 그것 때문에.....“
“그룹에서 상무님이 배임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이영진 상무가 한숨을 쉬며 생수를 마셨다.
강시혁은 뭐가 뭔지 모르지만 이영진 상무가 고뇌하는 모습을 보니 자기의 마음도 아팠다.
이영진 상무가 컵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일 협의에 대한 복안은 가지고 계십니까?”
“액면분할을 바로 시행한다는 각서를 써줘야겠지요. 만약 기한 내에 하지 못한다면 패널티를 감수하겠다고 해야겠지요.”
강시혁은 돈을 보고 결혼하는 재벌들끼리의 결혼은 뭔가 복잡하다고 느껴졌다.
자기도 결혼이 깨졌지만 결혼은 정말 애정이 없이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널티라면?”
“그들은 상무님 보유주식의 일부 양도를 요구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홍 사장의 지분이 올라가겠네요.”
“여기 오기 전에 장명건설의 재무제표를 보았습니다. 자산이 3천억인 회사이지만 자본금 300억에 부채가 2천 700억입니다. 내막적으로는 이미 자본잠식이겠죠. 하지만 장명건설은 대기업의 품으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삼방그룹에서 밀어주면 바로 흑자가 가능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삼방그룹 계열사인 삼방건설은 몇 조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입니다. 삼방건설이 수주한 것 몇 개만 흘려줘도 장명건설을 살아납니다.”
“그렇게 되겠죠.“
“저는 역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요?”
“금년 연말까지 노사분규를 해결하고 액분을 하겠다. 그리고 액분하면 주가가 올라가니까 시가대로 홍 사장의 지분을 삼방그룹에서 전량 매수하겠다고 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홍 사장의 흔적은 지워야 합니다.”
“자기 지분을 팔까요?”
“뽕쟁이들은 항상 돈이 필요합니다. 액면분할로 주가가 올라간다면 그것도 자기지분을 몽땅 사들이겠다면 마음이 움직일 겁니다.”
“그럼 나는 인수자금을 또 마련해야겠군요.”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지분을 팔아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상무님께서 가지고 있는 다른 계열사 지분이라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해야겠지요. 그래도 홍 사장을 삼방그룹과 인연이 없게 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매각한 상무님 지분은 언제든지 되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시혁은 자기도 참 많이 배운다고 생각했다,
특히 박 변호사가 똑똑한지 알았지만 이렇게 기업의 생리에 대하여 잘 아는지는 몰랐다,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대형 로펌사의 변호사들이 돈을 잘 버는 이유를 알만했다.
이영진 상무가 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한마디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내일 협의는 저와 홍 사장 법률 대리인과의 대리전이 될 것입니다. 상무님은 마스크를 쓴 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요.”
“제가 물어보는 것만 예, 아니오로 대답해 주시고 발언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 측에서 그 발언한 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협의가 불리하게 돌아갈 때 홍 사장은 중증환자라 자제력을 잃고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강 반장은 상무님을 잘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홍 사장은 상무님과 부부의 정을 맺었던 분입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지만 내일 협의만 잘되면 이후 일은 깨끗해 질 겁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일말의 미련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일하기가 편합니다.”
“역시 이런 협의는 이혼 전문 변호사인 김윤희 변호사보다는 박 변호사님이 오시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펌 대표님이 박 변호사님을 보낸 것 같습니다.”
“내일 협의는 저도 사실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푹 주무시고 모두 내일 회의장에서 뵙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강시혁도 자기 방으로 왔다.
샤워를 한 후 일본 잠옷 비슷한 유카타를 입어 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아사히 맥주를 꺼내 마셨다.
창밖을 내다보며 박 변호사와 이영진 상무의 대화를 곰곰이 분석해 보았다.
[아까 장명건설의 자본금은 300억이라고 했지? 부채는 2천 700억이라고 했고. 부채가 참 많은 회사네. 자본금 300억의 회사에서 홍 사장 지분이 5%라면 15억의 지분이 있다는 건가?“
[아니지. 자본금보다는 이 회사 주가의 시가총액으로 계산해야겠지. 장명건설 주가가 얼마인가 보자. 시가 총액이 720억이네? 그럼 자기 몫은 36억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데 액면 분할을 한다면 주가가 오르는 건가? 노사분규가 마무리되면 회사가 조용해지니까 주가가 올라가는 건 이해가 되는데 액면분할하면 왜 주가가 올라가지?]
강시혁은 앞으로 경영학 관련 공부도 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 공부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사람이 더 크게 되려면 경영학 관련 공부도 해야 돼. 그동안 먹고 살기위해서 건대 앞에서 분식집도 해보고 대리기사 일도 해보았지만 이것들은 다 잃어버린 세월이었어. 먹고 살기위해서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여유를 좀 찾았으니 경영 공부도 해야 되겠어.]
[그런데 이런 경영에 관한 것은 누구한테 배우지? 문화재단에서는 경영에 관해서 날 지도해줄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비서실 임창영 과장? 아니야 비서실은 따까리 일을 많이 하는 곳이라 날 키워줄 수는 없을 거야. 경영기획실의 실장이나 계열사 사장 되면 날 배워줄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 날 지도하겠어?]
[그렇다. 이영진 상무에게 배우면 되겠다. 이 상무는 아이비리그 MBA 출신에다가 삼방그룹 총괄 기획실장이며 실질적으로는 부회장이 아닌가! 그런데 이영진 상무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지?]
이날밤 강시혁은 꿈을 꾸었다.
이영진 상무와 함께 캠핑을 간 꿈이었다. 텐트 안에서 LED 랜턴을 켜놓고 이영진 상무가 자기에게 경영에 대한 지도를 해주는 꿈이었다.
그녀의 살갗 냄새를 맡으며 랜턴 아래서 몸을 밀착하고 배우는 것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강시혁은 자기는 아무 재능이 없어 이영진 상무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어 꿈속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텐트 안에서 이영진 상무와 영원히 있었으면 하는 희망의 꿈도 꾸었다.
아침이 되었다.
강시혁은 머리를 단정히 빗고 정장 차림으로 룸을 나섰다. 그리고 오늘 회의가 열릴 3층에 있는 오닉스(Onyx) 룸으로 가보았다. 적은 인원이 회의하기에는 딱 알맞은 곳이었다.
호텔 종업원에게 영어로 물어보았다.
“오늘 이 회의실을 쓸 사람입니다. 오닉스가 무슨 뜻입니까?”
“보석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 보석이 있었나? 금이나 은, 그리고 다이아몬드 이름은 들어봤어도 오닉스란 보석 이름은 처음 들어보네.]
강시혁은 회의실 점검을 끝내고 이영진 상무가 묵고 있는 1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옆에서 대기했다. 멀리 이영진 상무의 방문이 보이는 곳이었다.
얼마 후 이영진 상무의 방문이 열리며 이영진 상무가 나타났다. 꿈속에서 보았던 그 여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강시혁은 오늘따라 더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었다.
강시혁이 공손히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여기 계셨네요.“
이영진 상무가 눈웃음을 지었다.
마스크를 써서 보이지 않고 있지만 얼굴도 미소를 짓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3층 회의장엘 갔다.
박 변호사와 홍 사장의 법률대리인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이영진 상무를 보고 일어섰다.
박 변호사가 홍 사장 법률대리인으로 온 사람을 소개했다.
“홍 사장님 법률대리인으로 오신 송 변호사입니다.”
송 변호사가 이영진 상무에게 미소 띤 얼굴로 인사했다.
“송 변호사입니다. 홍 사장님은 곧 오실 겁니다. 호텔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잠시 후 홍사장이 나타났다.
홍 사장 역시 마스크를 하였다. 오랜 투약으로 피부 찰색이 안 좋았고 전보다 살도 더 빠져있는 듯하였다.
이영진 상무는 홍 사장을 보자 금방 표정이 굳어졌다.
모두 착석을 하였다.
오늘 설전을 벌일 박 변호사와 송 변호사가 마주 앉았고 강시혁과 홍 사장이 마주 앉았다. 이영진 상무는 좌측 끝에 앉았다.
이영진 상무와 홍사장이 마주보고 앉아야 하겠지만 둘의 관계가 서먹서먹하여 피하고 앉은 것 같았다.
홍 사장이 강시혁을 보고 대뜸 말했다.
“당신은 구면인 것 같군.”
“그렇습니다. 전에 강남 오피스텔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긴 왜 왔소?”
박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경호업무 때문에 왔습니다.”
“흥! 재벌의 따님이라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군.“
이 말에 이영진 상무는 눈을 감은 채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박 변호사가 먼저 모두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부인되시는 이영진 상무님의 법률 대리인인 박일규 변호사입니다.”
“앉아서 이야기 하시오.”
“오늘 저희가 온 것은 협의이혼 의사확인서에 남편되시는 홍승필 사장님의 날인을 받고자 왔습니다. 부인되시는 이영진 상무님의 날인은 이미 되어있습니다.”
“계속 하시오.”
법률 대리인인 송 변호사가 말하기 전에 홍 사장이 먼저 말했다.
박 변호사가 다시 말했다.
“양측은 서로 협의이혼을 하시기로 결정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서명을 부탁합니다.”
“내가 서명을 안 하면 어쩔 것이요.”
“재판이혼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홍 사장님께서 약물중독인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이영진 상무님 역시 크게 이미지가 손상됩니다. 그러면 신문사나 삼방그룹의 경영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끼치게 됩니다. 서로가 좋지 않습니다.”
“남편한테 한두 대 맞았다고 바로 이혼 협의서를 들이미는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변호사 양반! 당신은 부부싸움 안 해봤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