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일본에서의 경호활동 (3)
(96)
최 교수가 안경 너머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상무님! 여기서 멀지않은 히가시우메다 지역에 유명한 초밥집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는 제가 거기로 모실까요?”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냥 호텔에서 식사하시죠.”
“히가시우메다 지역에 있는 그 초밥집은 50년 전통의 맛집입니다.”
강시혁은 이 최 교수란 놈을 발길로 걷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은 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지?]
박 변호사가 말했다.
“그래. 식사는 오늘 여기서 하지. 여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내일 전략도 짜야하니까.”
최 교수는 역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럼 저는 내일 상무님을 모시러 오겠습니다.”
“내일은 한국인들끼리 만나 협의를 하기 때문에 일본어 잘하시는 교수님은 안 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일 협의 결과가 좋으면 모레 아침 다다오카조로 가겠습니다. 그때나 안내를 부탁하겠습니다.”
“아, 다다오카조에 있는 마사키 미술관을 간다고 하셨죠?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미니밴을 아침 9시까지 호텔 주차장에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영진 상무는 짤막한 감사의 말을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자기 룸을 가기위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강시혁이 경호요원으로 따라왔지만 숙소까지 따라가기가 난처해 우물쭈물 하였다.
박 변호사가 말했다.
“강 반장! 뭐해요? 경호요원으로 왔으면 상무님 따라가서 방 위치라도 알아놔야지.”
강시혁이 얼른 따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자 강시혁이 먼저 앞으로 뛰어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세 사람의 일본인이 타고 있었다.
“고멘나사이 (미안합니다.)”
강시혁은 일본에 올 때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말은 익혀왔다. 그래서 고멘나사이란 말을 써먹었다.
강시혁이 뒤따라오는 이영진 상무를 향해 재빨리 말했다.
“타시죠.”
이영진 상무가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이영진 상무는 12층에서 내렸다.
강시혁이 호실을 알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의 룸은 11층입니다. 언제든지 심부름 시킬 일이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알겠어요.”
이영진 상무가 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강시혁은 다시 로비로 내려왔다.
박 변호사는 그때까지 로비에 있으면서 누군가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박 변호사가 전화를 끝내고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마누라가 귀국길에 뭘 좀 사오라고 하는 게 있어서.... 우리도 방에 가서 쉬었다가 6시에 만납시다.”
“교수님은 가셨나요?”
“아, 최 교수는 갔어요. 모레 아침에 오기로 했어요.”
“한국인이 일본대학 교수라니 대단하시네요. 일본학생을 가르치시니 실력이 장난이 아니겠어요.”
“대단하긴! 전임 교수도 아닌 객원 교수인데! 삼방그룹 대졸 신입사원만큼도 돈 못 벌고 있어요.”
“그래요?”
“한국에서 교수자리가 없으니 여기에 온 거지. 일본말은 좀 할 줄 아니까 이곳에서 한국 유학생이나 관리하는지 모르겠네.”
“그래요?”
“최 교수가 삼방그룹 법무팀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어려워요. 삼방그룹 법무팀엔 사법고시 출신 변호사도 있고 미국 로스쿨 나온 인재들도 있는데.”
강시혁은 그래서 최 교수라는 사람이 이영진 상무에게 잘 보이려고 오버 액션을 하는구나 하였다.
[그렇겠지. 일생에 한번 만나기 힘든 재벌의 딸을 만났으니 잘 보이도록 해야지. 그런데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 좀 서툴러. 단수가 좀 높아야 하는데 공부만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게 안보여.]
강시혁은 자기 룸으로 갔다.
럭셔리한 룸이 펼쳐졌다. 강시혁이 처음 자보는 5성급 호텔의 방이었다.
“와, 좋네! 이런데서 잠을 자다니! 강시혁이 출세했네!”
그러면서 침대에 뒹굴어보았다.
“영빈관 지하의 방도 이렇게 꾸미면 얼마나 좋을까? 침대보와 이불도 깨끗해 새로 빨아 가져다 놓은 것 같네. 냉장고 한번 열어볼까? 이크! 맥주도 있네.”
강시혁은 양복 저고리를 벗어 옷장에 넣었다.
옷장에는 일본식 잠옷이 있었다.
“에게 유카타란 잠옷인가? 이건 뭐야? 차와 커피도 있네.”
그러면서 강시혁은 커튼을 젖혔다. 오사카 시내가 다 보였다.
이번에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서 뒹굴어보았다.
“빌어먹을! 돈이 좋긴 좋네!”
강시혁은 TV를 켜봤다.
조금 보다가 일본말만 나와서 꺼버리고 가져온 여행안내 책자를 펼쳤다. 간단한 일본어 회화 페이지가 뒷면에 있었다.
침대에서 뒹굴며 몇 마디를 외워보았다.
“오하요 고자이마스! (안녕하십니까)”
“고멘나사이 (미안합니다)”
“이구라데스까? (얼마입니까)”
6시 10분전이 되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룸이 있는 12층으로 갔다. 룸 앞에서 기다리면 이상할 것 같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로봇 처럼 서있었다.
6시 5분전에 이영진 상무가 방문을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오다가 엘리베이터 문 옆에 보초병처럼 서있는 강시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여기 계셨어요?”
“모시고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올라가시죠.”
“예? 로비로 내려가지 않고 올라갑니까?”
“20층에 올라가면 노카로스트 그릴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박 변호사님이 로비에 계실 텐데요. 20층으로 올라 오라고 제가 전화할까요?”
“이미 올라와 있을 거예요. 제가 전화했어요.”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20층으로 갔다.
오사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이었다. 멀리 요도가와(淀川) 강까지 보였다.
박 변호사가 벌써 와서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박 변호사가 이영진 상무에게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정말 멋있는 레스토랑인데요. 종업원한테 물어보니 저 앞에 있는 강이 요도가와 강이라고 합니다.”
이영진 상무가 의자에 앉았다.
강시혁은 감히 이영진 상무 옆에 앉을 수가 없었다. 빈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이영진 상무가 종업원을 불러 유창한 영어로 음식을 주문했다. 이곳의 종업원들은 호텔 종업원이라 그런지 이영진 상무의 영어를 잘 알아들었다.
“하잇! 와까리마시다(알겠습니다).“
흰 와이셔츠를 입은 종업원은 고개를 까닥거리며 이영진 상무가 말을 할 때마다 알겠습니다를 외쳤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역시 아이비리그의 모범생답게 고급영어를 구사했다.
이영진 상무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영문과를 나온 강시혁보다도 영어를 더 잘했다,
강시혁은 자기가 영어를 하면 쪽이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접시에 담아 나왔다.
구운 소고기나 구운 생선 등은 정말 맛이 있었다. 딸기나 메론이나 야채 같은 것도 나왔는데 시각적 표현을 살리려고 그랬는지 예쁜 그릇에 앙증맞은 모습으로 나왔다.
음식을 가져오는 종업원에게 박 변호사가 물었다.
“여기 레스토랑 이름인 노카로스트가 무슨 말이요?”
강시혁이 보기에 박 변호사도 영어 발음이 그런대로 좋았다.
이번 출장에는 이상하게 클라이언트의 이혼 소송 때문에 왔지만 원래 국제 상거래를 다루는 변호사라 그런 것 같았다.
삼방그룹은 법무팀에 사내 변호사들이 있다. 하지만 보다 전문적인 소송이나 계약 같은 것은 대형 로펌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삼방그룹은 박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었다.
박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은 현재 변호사의 숫자만 해도 1천명이 넘었다.
종업원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카(NOKA)는 북쪽 간사이 지방을 말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신선한 식재를 우리 레스토랑에서 취급하므로 노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오픈 라이브 키친에서 다이나믹하게 구워내는 음식의 맛을 멋진 밖의 풍경과 함께 즐기시기 바랍니다.”
“정말 오늘은 오감이 즐겁네요.”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강시혁은 이런 고급 음식을 먹으면서 또 궁상스런 생각이 들었다.
수유리의 허름한 원룸에서 라면이나 끓여먹던 때를 생각한 것이다. 주인을 잘 만나 이렇게 입이 호강하는구나 하였다.
박 변호사는 와인까지 마셔가며 음식을 즐겼다.
이영진 상무도 와인을 한잔 마셨다. 박 변호사처럼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음식에 기름이 있어 딱 한잔만 마시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경호원 자격으로 따라온 사람이라 일체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이때 저쪽 자리에서 은밀하게 이쪽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자 두 명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사진 찍는 사람을 가리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 채지를 못하였다.
모두 음식을 다 먹고 커피를 마셨다.
이 자리에서 박 변호사가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내일 협의할 내용에 대해서 정리를 한번 해보죠. 홍 사장 측에서 협의이혼 의사 확인신청서에 날인하는 조건으로 무엇을 주장할 것 같습니까?”
“저도 예측이.......”
“아이가 없으니 양육권에 대한 협의는 없을 것 같고 일종의 위자료를 주장하지 않을까요?”
“위자료는 내가 받는 것이 아닌가요?”
“물론 그렇습니다. 결혼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것은 홍 사장이니까요. 그런데 적반하장격으로 위자료를 주장하며 날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상무님은 재벌이니까요.”
“내가 거부하면 어떻게 하죠?”
“재판이혼으로 가야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좀 시끄러워질 염려가 있습니다. 홍 사장 측에서 그걸 노릴 수도 있습니다.”
이영진 상무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역력했다.
강시혁은 자기가 들을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일어섰다.
“저는 화장실을 다녀오겠습니다.”
강시혁이 약간 고개숙여 반절 인사만하고 자리를 물러나왔다.
이영진 상무가 고개를 든 채 말했다.
“멀리 가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자기에게 멀리가지 말라고 한 것은 불안심리 때문이 아닐까 했다,
자기가 이혼 협의에 끼어들 자격은 없다.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어도 위안이 되어준다면 얼른 화장실에 갔다가 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강시혁이 화장실을 들렸다가 나왔다.
멀리 앉아있는 이영진 상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식당 입구 쪽에 서 있었다.
식당 종업원이 이런 강시혁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손님! 누구 오실 분 계십니까?”
“아, 아닙니다.”
강시혁은 종업원들 보기도 민망했다. 다시 이영진 상무와 박 변호사가 대화하는 좌석으로 갔다.
박 변호사는 작은 수첩에 메모를 해가며 이영진 상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방금 홍 사장 측의 요구사항이 두 가지 일 것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요구사항으로 추측되는 삼방전기 10만주 주식 건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혼전에 상무님 아버님이신 회장님이 홍 사장에게 주기로 한 삼방전기 주식 10만주는 그냥 구두상으로 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문서로 작성해 준 것은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는 봅니다.”
강시혁은 홍 사장이 멍청이 바보라고 생각했다.
약물 복용하는 것을 줄이고 회장님께 잘 보였으면 삼방전기 10만주 주식이 그냥 들어오는 것인데 아깝다고 생각했다.
현재 삼방전기 주식이 주당 10만원이 가는데 10만주면 100억이란 소리인데 이게 날아다다니 얼마나 아까울까 하였다.
박 변호사가 다시 말했다.
“이것은 장인 될 분이 사위에게 결혼 생활 잘 하라는 뜻으로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이 중지되어 주지 않게 된 것 뿐이라 더 이상 주장도 힘듭니다. 각서로 써 준 것도 아니라 아무 법률적 효력도 없습니다.”
“홍 사장의 법률대리인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물론입니다. 대리인이 법률을 공부한 변호사라면 충분히 납득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요구가 문제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이 요구는 약정서가 있고 결혼과 관계없는 사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강시혁은 두 번째 요구사항이란 게 뭔가 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자기는 두 사람의 대화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이때 저쪽 의자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이쪽으로 왔다.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는 척하다가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유심히 쳐다보고 가버렸다.
아마 얼굴을 확실히 익히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자식은 뭔데 사람을 유심히 쳐다봐? 건방지게! 한국말로 대화하니까 싫어서 그런가?]
그러면서 세 사람은 방금 지나간 사람에 대하여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