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일본에서의 경호활동 (2)
(95)
이영진 상무가 비서실 여직원을 돌려보냈다.
“수고 했어요. 안 나오셔도 되는데....”
여직원이 두 손을 모으고 이영진 상무에게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강시혁이 보기에 비서실 여직원도 나이는 이영진 상무와 비슷해 보였다. 삼방그룹 비서실에 들어올 정도면 틀림없이 스카이 대학출신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재벌의 딸에게는 제아무리 똑똑해도 태생적으로 상대가 안 되었다. 그녀 역시 강시혁과 같은 머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도 비서실 여직원은 오너의 딸을 모신다는 선택받은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 즐거운 일을 한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영진 상무는 해외를 자주 다닌 사람이라 안내가 필요치 않았다.
비서실에서 사람을 배치한건 화물을 부치거나 환전을 도와주거나 혹시 약국 심부름 같은 것을 하기 위해서였다. 체크인 같은 건 일등석 라운지 이용자라 공항 직원이 알아서 다 해준다.
세상은 돈만 있으면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 가나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였다. 중국 귀신은 돈이 있는 사람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모양이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로 올라갔다.
여기는 사람도 없고 한산했다. 음료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식사도 할 수 있었다.
이영진 상무와 박 변호사는 서로 음료수를 앞에 놓고 대화를 했다.
아마 이혼에 관한 협의 내용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내용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다른 자리에 앉았다.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라 안마의자까지 있었지만 안마의자에 앉지도 않았다.
VIP 경호요원으로 온 사람이 한가하게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나 받고 있으면 되겠는가!
이곳은 스테이크 같은 식사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식사주문은 하지 않았다.
강시혁은 한쪽에 앉아서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초콜릿과 음료수나 마시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아래층에 있는 면세점이 훤히 보였다. 탑승 게이트도 보였다.
오늘 세 사람이 타고 갈 게이트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 있었다. 이코노미석 항공권을 끊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일등석 손님들은 여기서 느긋하게 음료수나 마시며 기다렸다가 가면 된다. 직원의 안내로 전용 출국통로로 가게 된다. 이러니 돈이 안 좋겠는가!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강시혁이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박 변호사가 팔을 잡았다.
“어딜 가는 거요?”
“좌석번호를 찾으려고요.”
“안쪽은 이코노미석이요. 일등석은 여기고! 우리는 일등석이요.”
안쪽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그리고 버스 의자처럼 의자 사이의 간격도 좁았다. 그렇지만 지금 서있는 일등석 의자들은 의자 간격이 넓어 발을 뻗고 누워도 상관없을 듯하였다.
이영진 상무는 벌써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경호요원으로 따라온 사람이 이렇게 우왕좌왕해서야.]
강시혁은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뒷머리를 긁었다.
비행기가 드디어 이륙을 하였다. 강시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름 위를 날아보았다.
스튜어디스들도 일등석 손님에게는 서비스가 달랐다.
이코노미석 손님들에게 서비스할 때는 서서 주문을 받았지만 일등석 손님에게는 앉아서 받았다. 앉아있는 손님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의도에서 그런 것 같았다.
이코노미석은 만원이지만 일등석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빈 의자가 많았다.
박 변호사가 스튜어디스에게 와인을 주문했다.
와인을 주문하고 강시혁과 이영진 상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 반장도 와인 한잔해요. 비행기 안에서는 상무님 경호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지요? 상무님?”
이영진 상무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스튜어디스들도 이영진 상무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어느 스튜어디스가 삼방그룹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이영진 상무를 알아본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는 매스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 마스크만 벗으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았다.
스튜어디스들은 일등석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누구일까 하고 궁금했으리라.
그러다가 이영진 상무가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벗자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이들은 또 깍두기 머리에 검은 양복을 입은 강시혁을 자주 쳐다보았다.
조폭 스타일인 것 같은데 조폭보다는 인물이 잘나고 지적으로 생겨 누구일까 하는 것 같았다. 조폭들은 대개 팔뚝도 굵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은데 강시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스튜어디스들은 서로 속삭이며 강시혁과 이영진 상무를 보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 같았다. 아마도 강시혁과 이영진 상무는 부부사이는 아니라는 것 같은 말들을 하는 것 같았다.
부부라면 같이 불어 앉았을 텐데 이들은 떨어져서 앉았기 때문이었다.
스튜어디스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와인을 강시혁에게 서비스 했다.
스튜어디스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님은 골프선수죠?”
“아닌데요.”
스튜어디스들은 강시혁이 체격이 좋은 것을 보고 골프선수로 알았던 것 같았다.
그것도 일등석을 탔으니 돈 잘 버는 골프선수 쯤으로 본 것 같았다.
비행기가 드디어 오사카 간사이 국제 공항에 도착하였다.
간사이 국제 공항에는 박 변호사 후배라는 사람이 나왔다. 안경을 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강시혁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이영진 상무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크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였다.
“삼방그룹 이영진 상무님이시죠? 어서 오십시오. 최운선이라고 합니다.”
최운선이라는 사람은 박 변호사가 소개를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달려왔다.
박 변호사가 최운선이라는 사람을 정식으로 이영진 상무에게 소개했다.
“내가 말씀드렸던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로 있는 제 후배입니다.”
그러자 최 교수는 다시 한 번 또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이영진 상무도 약간 고개를 숙이며 미소로 인사를 해주었다.
박 변호사는 최 교수를 강시혁에게도 인사시켰다.
“상무님을 수행하는 경호요원 강 반장이요.”
“아, 그래요?”
그러면서 최 교수는 꼿꼿하게 선 자세에서 한손을 내밀었다.
강시혁은 최 교수라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또 예우차원에서 두 손을 잡고 악수를 해주었다. 허리를 숙여주었다.
“강시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 교수는 강시혁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이영진 상무를 주시했다.
강시혁은 이 최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일본 대학의 교수가 되었을까 하였다,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은 나빴지만 일본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니 신통해보이기도 하였다.
나이도 자기보다는 물론 많지만 그리 많아보이지도 않았다.
최 교수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까지 네 사람이라 고급 승용차를 렌트하지 않았습니다. 미니밴을 가져왔습니다. 대신 차는 출고한지 얼마 안 된 차라 깨끗합니다.”
이영진 상무가 웃으며 말했다.
“미니밴 좋습니다.”
최 교수가 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하였다.
차는 럭셔리 미니밴으로 새 차라 깨끗했다.
이영진 상무를 태우기 위해 강시혁이 차 문을 열려고 하자 최 교수가 어느 틈에 먼저 와서 열어주었다.
“차가 썩 좋지는 않지만 오르시죠.”
7인승이라 안도 넓어보였다. 이영진 상무가 먼저타고 다음에 박 변호사가 탔다.
박 변호사가 차를 보며 말했다.
“차 좋은데? 이게 무슨 차야?”
“토요타 알파트입니다. 선배님! 곧 한국에도 출시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차 괜찮죠? 헤헤.”
그러면서도 최 교수는 곁눈질로 이영진 상무를 쳐다보았다.
최 교수가 운전기사에게 뭐라고 일본말로 하였다.
운전기사가 하잇, 하잇 하면서 고개를 까닥거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차가 시내로 들어왔다.
강시혁은 밖을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본여행은 처음이니 모든 게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박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강 반장! 경호요원이 경호 안하고 밖에만 정신없이 쳐다보면 어떻게 하나?”
강시혁이 바로 앉으며 멋쩍은 표정을 짓고 뒷머리를 긁었다.
앞에 탄 최 교수가 말했다.
“사실 일본에서는 경호원이 필요가 없습니다. 치안이 잘된 나라이거든요.”
강시혁은 또 기분이 나빴다. 자기가 따라온 것이 불필요하다는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없는데서 이런 발언을 하면 몰라도 있는데서 그러니 기분이 나빴다.
최 교수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개새끼! 교수란 놈이 꼭 말을 그따위로 해야 하나? 정말 일본말로 싸가지가 아리마셍(ありません: 없다는 뜻)인 인간이네!]
다행히 박 변호사가 기분전환을 시켜주었다.
“마약 중증환자를 상대로 협상하는데 무슨 돌발적인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나? 벌써 그 사람은 폭력성을 두 번이나 보여주었는데! 자네가 통역하면서 다 커버해 줄 수 있나?”
최 교수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앞만 쳐다보았다.
박 변호사가 이영진 상무에게 말했다.
“내가 홍 사장님께 우리가 왔다고 알려드릴까요?”
“그렇게 하세요.”
“전화번호는 이 전화번호가 맞죠?”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자기 스마트폰에 내장된 전화번호를 보여주었다.
“예, 맞습니다.”
박 변호사가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것 같았다.
박 변호사가 전화를 끊었다가 조금 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엔 전화를 받았다.
마약에 찌든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초동 법무법인의 박일규 변호사입니다. 이영진 상무님의 법무대리인이기도 합니다.”
“아, 그래요?”
“저희 법무법인의 김윤희 변호사한테 연락 받으셨죠? 내일 협상은 김윤희 변호사 대신에 제가 오기로 한 것을 말씀입니다.”
“이야기 들었소.”
“그럼 내일 몇 시에 만나는 것이 좋을까요?”
“이영진 상무도 같이 왔겠죠?”
“물론입니다.”
“만나는 시간은 우리 변호사하고 상의하세요.”
그러면서 홍 사장은 전화를 탁 끊었다.
앞좌석의 최 교수가 말했다.
“선배님. 홍 사장님 변호인 전화번호 아시나요?“
“알지. 통화도 했는데.”
박 변호사가 홍 사장 변호인에게 전화를 했다.
“송 변호사? 나 지금 오사카에 왔소.”
“정말 김윤희 변호사가 안 오고 선배님이 오셨네요.”
“김윤희는 육아문제로 못 와. 내일 몇 시에 만날까?”
“오전 11시에 만나죠.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묵는다고 해서 거기 소회의실 오닉스(Onyx)에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이 오셔서 제가 좀 껄끄럽겠는데요?”
“껄끄러울 게 뭐가 있어? 도장 하나만 받으면 되는걸.”
“아이고, 선배님. 일반인도 아니고 재벌들 이혼에 관한 협의입니다. 일단 내일 만나서 이야기 하죠.”
“그럽시다.”
“그런데 당사자인 이영진 상무님도 오셨죠?”
“오셨어.”
“그럼 저도 홍 사장님을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강시혁이 들어보니 박 변호사는 홍 사장이 선임한 변호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법조계에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이니 알지 않겠나 하였다. 더군다나 사법연수원 선후배 사이면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내일 각자 사건을 의뢰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최대한 변호를 해야 될 입장이었다.
강시혁은 내일 두 사람이 어떻게 전투를 벌이나 궁금하였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도착하였다.
최 교수가 프런트에 이야기해서 키를 받아왔다.
최 교수가 키를 나누어주며 말했다.
“이영진 상무님이 스위트룸 예약자라 그런지 지배인이 직접 나와서 인사하네요.”
박 변호사가 이영진 상무에게 말했다.
“상무님은 그럼 객실에 가셔서 쉬시죠.“
“알겠습니다. 이따가 저녁 6시에 모여 같이 식사들이나 하시죠. 강 반장님은 처음 일본 출장이신 것 같은데 시내 구경이라도 하세요. 가까운 거리에 우메다 스카이 빌딩이 있습니다.”
강시혁도 출장 오기 전에 일본 여행 안내서를 보았다. 아니, 지금 안내 책자가 가방에 들어있기도 했다. 그래서 우메다 스카이 빌딩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이곳의 공중정원이 볼만하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런데 경호업무를 위해서 왔다는 사람이 경호를 해야 할 사람과 떨어져 관광이나 할 수는 없었다.
“저는 상무님의 신변 안전을 위해 따라온 경호원입니다. 잠시도 상무님 옆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여기 로비에서 6시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겠어요? 시내구경이나 하고 오세요.”
“아닙니다. 상무님 주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겠습니다. 언제든지 부르면 즉각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