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일본에서의 경호활동 (1)
(94)
금요일 오전에 비서실 임창영 과장이 전화를 했다.
강시혁은 스마트폰에 입력된 임창영 과장의 이름이 뜨자 먼저 큰소리로 말했다.
“강시혁입니다!”
“잘 계셨어요?”
“과장님 덕분에 언제나 잘 있습니다.”
“출장 준비는 잘 되어있죠?”
“어제 문화재단 사무국에 들어가 출장여비 업무가불은 했습니다.”
“일본에 가시면 상무님 수행 잘 하시기 바랍니다.”
“빈틈없이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천 공항엔 10시까지 가면 됩니다. 김 기사 차를 함께 타고 가시면 됩니다. 아마 김 기사가 공항에 갈 때 영빈관에 들렸다 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항엔 출발하는 날 비서실 여직원이 나와 안내를 해줄 겁니다. 가시는 분 세분 모두 일등석인 퍼스트클래스를 예약했습니다. 그래서 세분 모두 일등석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이크! 나도 일등석인 모양이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부터는 박 변호사 지인이 안내를 해준다니 우리 비서실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호텔은 인터컨티넨탈 오사카로 예약을 했고 이영진 상무님만 스위트룸이고 박 변호사님과 강 반장은 디럭스룸입니다.”
“알겠습니다.”
“회사에서는 간부가 아니면 스탠다드 룸을 이용하지만 편의상 디럭스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잘 다녀오기 바랍니다.”
“귀국하면 즉시 과장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임창영 과장의 전화를 끊고 얼마 안 되어 박 변호사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는 강 반장 혼자만 따라가는 거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오사카 호텔 예약도 세 사람만 한 것을 보니까 추가 인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강 반장은 이영진 상무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오겠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도 같이 타고 가십니까?”
“아니오.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없지. 난 그냥 여기서 공항버스를 타고 갈 거요. 음악이나 들으며 갈 거요.”
역시 박 변호사는 여유가 만만한 사람으로 보였다.
“변호사님은 역시 멋쟁이십니다.”
“멋쟁이는 강 반장이 멋쟁이지. 지난번에 보니까 강 반장은 체격이 좋고 운동을 한 사람이라 멋져 보이던데? 나는 서류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라 지금 거북목이 되어 볼품이 없소.”
“아닙니다. 변호사님은 항상 멋지십니다.”
“강 반장도 삼방그룹에 들어가 몇 달 일하더니 이제는 달라졌네? 아부성 발언까지도 하는 것을 보니 말이요. 조직의 물이 팍 들은 것 같아요!”
“아닙니다. 진심으로 한 말입니다.”
“하하, 그래요? 어쨌든 좋소. 그건 그렇고 이번에 우리가 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상대가 마약 중증환자라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릅니다. 강 반장은 이영진 상무 보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겁니다.”
“빈틈없이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간사이 공항에서는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에 객원교수로 가 있는 내 후배가 나오기로 했습니다. 그놈은 반 일본인이므로 통역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그렇습니까?”
“차를 후배가 가지고 나온다고 했으니까 렌트카 문제도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는데 홍 사장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먼저 주먹을 날리거나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우리가 굉장히 불리해집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차라리 맞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맞으면 안 되겠지. 제압은 해야 되겠지.”
“하하, 잘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 인천공항에서 봅시다.”
“알겠습니다. 인천공항에는 삼방그룹 비서실 여직원이 나와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안내도 필요 없는데! 항공권은 우리가 그냥 자동 발권기에서 뽑아내면 되는데!”
“그래도 VIP가 가시니까 안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통역이 필요하면 겸임교수로 있는 내 후배를 활용하면 됩니다. 3박 4일 동안 우릴 도와주기로 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통역은 이영진 상무가 삼방그룹 일본 지사장을 부르면 되는데 사생활이 알려지는 걸 싫어해서 일본 지사원들을 안 부르는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월요일 봅시다.”
‘예, 변호사님!“
강시혁은 일본에 가면 자기를 좀 강하게 보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헤어샵에 가서 머리도 깍두기처럼 잘랐다.
다시 영빈관으로 돌아와 깍두기 머리를 거울에 비추어보고 선그라스를 껴보니 영락없는 조폭 같았다.
[아주 이 기회에 영빈관 경비 그만두고 조폭이나 되어볼까?]
그러다가 이런 사특한 생각을 하면 안 되지 하면서 자기 뺨을 때렸다.
강시혁은 생각 같아서는 호신용으로 전기기능사 실기시험을 볼 때 사용했던 드라이버라도 하나 가지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공항 검색대에서 걸릴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작은 호루라기 하나와 뾰족한 볼펜과 가죽장갑만 가지고 가기로 했다.
홍 사장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홍 사장도 경호원을 고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이영남이 왔다.
“어? 형! 머리 스타일이 달라졌네.”
“일본 가는데 머리는 깎고 가야지.”
“이제는 방범위원이 아니라 완전히 조폭 같이 보이는데? 일본 야꾸자들이 보면 형님 하겠는데요?”
“야꾸자한테 형님 소리 들으면 영광이겠지.”
이날도 이영남은 열심히 드럼을 쳤다.
강시혁은 기타 반주라도 치며 같이 어울리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일본에 간다니 마음이 들떠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을 이영남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형! 오늘은 기타 안쳐요?”
“출장 준비해야 돼. 오늘은 리틀 브라운 혼자 쳐.”
강시혁은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옆방에서 치는 드럼소리를 감상했다.
그러다가 이영남은 정말 그룹 경영에 뜻이 없고 저렇게 드럼이나 치다 말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남도 꿈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일본에 다녀오면 조용히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이영남의 속뜻을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가 넘어 이영남이 간다고 하였다.
강시혁은 너무 늦은 시각에 이영남을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괜히 또 건달 같은 놈들이 부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로 이영남을 한남동 나인원 아파트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리틀 브라운! 밤도 깊었으니 내가 집에까지 차를 태워주지.”
“에고, 고맙네요.”
강시혁은 카니발을 끌고 갈까 하다가 벤츠 마이바흐를 끌고 가기로 했다.
이영남은 일종의 주인집 도련님이고 자기는 머슴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벤츠 차 정도로는 모셔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이영남을 태우고 나인원 아파트로 갔다.
이태원 바로 옆에 있는 한남동 나인원 아파트는 고층이 아니다. 그래서 답답하지 않고 아주 쾌적해 보였다.
“좋은 단지네. 여기는 비싸지?”
“글쎄요.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은 월세로 들어왔는데 보증금 40억에 월세 2천만 원이라고 하네요.”
“2천만 원?”
강시혁은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월세 2천만원 이면 월급 적은 사람들은 거의 연봉 수준이었다. 누가 사는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었다. 이영남 같은 사람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영남이 차에서 내리면서 봉투 하나를 주었다.
“형, 이건 내가 작년에 미국 갔다가올 때 남았던 돈이야. 500달러밖에 안되지만 오사카에 가서 맛있는 거 하나 사먹어요.”
“어어, 이러면 안 돼! 나 출장비 받은 것 있어!“
이영남은 벌써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강시혁이 영빈관으로 돌아오자 골목에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정복을 입은 경찰관이었다.
이곳은 대사관 지역이라 가끔 경찰관들이 순찰을 돌았다.
강시혁이 차를 주차시키고 말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이 지역 방범위원입니다.“
“아, 반장님이시군요. 삼방그룹 영빈관 반장님이 방범위원이란 말은 들었습니다. 어디 다녀오시는 모양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밤늦게 수고 많으십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은 경찰관과 악수를 하고 영빈관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일본 출장을 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 9시경에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다니는 김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 반장? 나네. 내가 10시에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영빈관으로 갈게.”
“영빈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강시혁은 그동안 아껴두었던 맞춤양복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눈부신 하얀 와이셔츠에 실크넥타이를 메고 번쩍거리는 구두도 신었다.
구두는 임창영 과장이 보내준 티켓으로 산 것이었다.
강시혁이 거울을 보았다.
[흠. 나도 연예인 같은데?]
그리고 강시혁은 옷에 은은한 향수도 뿌렸다.
이영진 상무를 근접 거리에서 모시니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강시혁은 영빈관의 모든 전기를 소등하고 문을 모두 잠갔다.
그리고 대문 앞에 나가 김 기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10시가 조금 넘어 벤츠 신형 한대가 미끄러질 듯이 들어왔다.
강시혁이 조수석 문을 열고 이영진 상무에게 인사했다.
이영진 상무는 아이보리 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뒷좌석의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 해주었다.
김 기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와, 강 반장 멋있는데? 나는 웬 연예인이 서 있었나 했네.”
“하하, 감사합니다. 과장님.”
차가 올림픽 도로로 들어서자 김 기사가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이봐, 강 반장!”
“예, 과장님!”
“상무님 잘 모셔야 하네.”
“알겠습니다. 안전하게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한 찌라시 기자들이나 유튜버들 모여들면 잘 막아내야 하네.”
“알겠습니다. 과장님!”
김 기사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계속 떠들었다.
강시혁보다는 자기가 윗사람이라는 것을 은근히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해야 자기의 권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룸미러가 김 기사를 향해 있기 때문에 뒷좌석의 이영진 상무를 볼 수가 없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강시혁이 얼른 차에서 먼저 내려 이영진 상무가 탄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영진 상무가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이영진 상무도 짐은 별로 없었다. 그 흔한 여행용 가방도 메지 않고 작은 가방만 들었다. 혹시 여행용 가방이라도 들었으면 강시혁이 대신 끌고 가려고 했지만 바퀴달린 여행용 가방은 없었다.
이영진 상무는 자기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봐 선그라스를 끼고 버킷 햇을 썼다. 그리고 마스크까지 했다.
김 기사가 또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상무님 잘 모셔.”
“알겠습니다. 과장님.”
“돌아오시는 날은 자네가 나한테 전화 해주게.”
“알겠습니다. 오사카 공항에서 출발할 때 전화 드리겠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앞에서 걸어갔다. 그 뒤를 마스크한 강시혁이 뒤를 따랐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다가 이영진 상무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체격 좋은 강시혁이 마스크와 선그라스를 낀 채 따라오자 안심이라도 되는지 미소를 지었다.
강시혁이 뒤에 따라가지 않고 옆에서 걸어갔다면 틀림없이 부부로 보였을 것이다.
체격은 강시혁이 홍 사장보다는 월등히 좋았다.
홍 사장은 좁은 어깨에 키는 보통이었지만 강시혁은 약간 큰 키였기 때문이었다.
대합실에 박 변호사와 비서실 여직원이 나와 있었다.
박 변호사가 이영진 상무에게 인사를 하자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일찍 오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막 왔습니다.”
박 변호사가 이번엔 강시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강 반장 그렇게 차려입으니까 멋있는데?”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머리도 그렇게 깍두기 식으로 깎고 선그라스를 끼니까 완전히 명동 조폭 같은데?”
“하하, 별말씀 다 하십니다.”
“아니야. 정말 멋있어. 난 강 반장이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줄 몰랐네.”
비서실 여직원도 두 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뜬 채 강시혁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몸에 돈을 발라놓으니 사람이 다르게 보이긴 한 것 같았다.
대리 운전기사를 할 때는 흐트러진 머리와 피부색도 안 좋았고 후줄근한 잠바를 입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고급 맞춤 양복에 눈부신 하얀 와이셔츠에 피부도 달라져있었다. 환골탈태란 이럴 때 하는 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