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92화 (92/199)

92화 자율 방범위원 (2)

(92)

방범위원 위촉식이 있는 날이었다.

주민 센터의 회의실엔 벌써 방범대장이 나와 있었다.

방범대장이 크게 웃으며 환호했다.

“하하. 어서 오시오. 강 반장!”

강시혁이 모인 사람들을 보니 전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같았다.

아재뻘들도 있었다. 이거 잘못 왔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장도 나오고 파출소 소장은 물론 경찰서 지구대장까지 왔다.

강시혁은 일단 안면 있는 파출소 소장에게 인사를 했다.

“방범위원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강 반장 같은 젊은 분들이 들어오면 방범활동이 더욱 활성화가 될 겁니다.”

동장과 지구대장은 모여 있는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다.

위촉식이 진행되었다,

먼저 방범대장이 나와 이번에 신규위원은 젊은 분들로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강시혁은 용산경찰서 방범대장 명의의 방범위원 위촉장을 받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로부터 박수도 받았다.

위촉장에는 경찰마크도 있었다. 위촉장을 앞에 들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참, 별짓 다 해보네.]

마지막으로 동장이 나와 발언을 했다.

“이태원동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방범위원 여러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 서로 합심하여 적극적인 방범활동으로 범죄 없는 우리 동네를 만듭시다.”

강시혁은 모인 사람들과 다시 한 번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방범대장 제의로 전체 갈비탕도 먹으러 같이 갔다.

강시혁은 위촉식에 참석했다는 내용을 업무일지에 작성했다.

다음날 아침에 업무일지를 보냈는데 문화재단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방범위원 위촉식에 가야되느냐 하는 것을 물었을 때는 호들갑을 떨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막상 위촉장을 받았다는 업무일지 보고를 받고나서는 다른 말이 없었다.

강시혁은 위촉장을 받았으니 복사해서 설운동 대리에게 보내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촉장을 컴퓨터 프린트 기기에 올려놓고 복사를 하였다.

위촉장 복사본을 이메일로 보낼까 하다가 전기기능사 자격증도 같이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량진 학원 원장이 기능사 자격증은 큐넷 사이트에서 바로 무료 온라인 발급이 가능하다고 했지?]

수첩형 자격증은 발급 수수료도 들어가고 시간도 걸리지만 상장형은 바로 발급이 가능했다. 강시혁은 한국 산업인력공단의 큐넷 사이트에 들어갔다. 전기 기능사 자격증도 출력을 시켰다.

그리고 방범위원 위촉장과 함께 전기기능사 자격증도 설운동 대리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강시혁이 점심을 먹고 와서 설운동 대리의 이메일 수신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아직 수신하지 않았다.

[업무일지는 빨리 보내라고 성화인 사람이 이런 건 확인도 잘 안하는 것 같네.]

오후 3시가 넘어 설운동 대리가 수신한 것이 확인되었다.

강시혁이 바로 전화를 했다.

“저, 대리님. 제가 방범위원 위촉장과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보냈는데 받았는지요?”

“조금 전에 받았습니다.”

“자격증 수당은 얼마나 나옵니까?”

“업무관련이 있는 자격증 취득시 10만원 나옵니다. 기사 자격증이면 더 나오지만 기능사는 10만원입니다.”

“혹시 자격증을 하나 더 따면 20만원을 줍니까?”

“아뇨. 문화재단에서 인정하는 업무관련이 있는 자격증이어야 합니다. 강시혁 씨가 요리사 자격증을 딴다든지 애견 미용사 자격증을 딴다든지 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기기능사는 업무관련이 인정되겠죠?”

“강 반장 주 업무가 건물관리니까 인정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바로 안 되고 자격증 수당 지급품의서를 내가 작성하고 관장님 승인이 나와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결재가 나더라도 이달부터 승인은 안 되고 다음 달 부터나 승인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다음날은 미술품을 수송하러 카니발을 끌고 인사동 갤러리로 갔다.

인천 송도의 어느 대학엘 미술품을 전달하고 돌아오자 큐레이터 신종화가 불렀다.

“강 반장님! 미술품 설치 작업 좀 도와주고 가세요.”

언젠가 관장이 강 반장은 신종화 지시를 받으란 말을 했었다.

직제 상 신종화가 상급자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강시혁이 아직은 문화재단 잡급직이므로 나이 어린 신종화의 요청을 거절하면 항명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방범위원이고 기능사 자격증이고 다 필요가 없었다.

강시혁은 그래도 불만 하나 없이 작업을 도와주었다.

더구나 이 일이 강시혁이 도와주면 일이 빨리 끝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이 어린 신종화는 입으로 일을 하고 강시혁은 낑낑대며 몸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던 설운동 대리가 인상을 쓰며 나타났다.

“강 반장! 그러지 맙시다.”

“예?”

“일본 간다면서요? 왜 나한테 이야기 안하죠? 다음 주 월요일에 간다면서요?”

“예? 처음 듣는 일인데요?”

“처음 듣다니! 강 반장은 문화재단 사무국 소속인 것 몰라요? 당연히 관리자인 나한테도 보고해줘야 되는 것 아녜요?

“정말 연락 받은 것이 없어서 보고 못했습니다.”

“방금 비서실 임창영 과장의 전화를 받았어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3박4일 강 반장을 출장 보내니 그렇게 알라고 했어요.”

“그래요? 여권을 만들어 비서실로 보내란 이야기는 들었어도 일본을 월요일부터 간다는 말은 처음 들었는데요?“

“비서실 일을 한다고 우리는 이제 무시하는 겁니까? 오사카 남부에 있는 마사키(正木) 미술관의 건물관리와 경비 현황을 견학하러 가신다고 구체적 출장 목적도 나와 있는데요?”

이번엔 옆에 있는 큐레이터 신종화가 놀랐다.

“어머나! 오사카 다다오카조(忠岡町)에 있는 마사키 미술관을 가신다고요? 거긴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인데!”

강시혁이 설운동 대리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비서실에서 출장 날짜가 잡혔다면 제가 왜 제 직속상사인 설 대리님에게 보고를 안 하겠습니까?”

“그 말 믿어도 돼요?”

“저는 미술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합니다. 거기 미술관에 가는 것은 표면상 출장목적이고 실제는 VIP 경호업무겠지요.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전기고치는 일과 운동 좀 하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마침 강시혁의 전화에 벨이 올렸다.

비서실 임창영 과장이었다.

“강 반장은 일본 출장이 다음 주 월요일로 잡혔습니다. VIP모시고 3박4일 가는 겁니다. 일본 비자가 나왔고 그래서 항공권도 예약을 한 상태입니다.”

‘가는 건 좋은데 저한테 먼저 알려주시지 않고 문화재단에 통보해서 제가 아주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재단에서 사전에 보고 안했다고 제가 혼나고 있는 중입니다.“

“아, 그런가요? 강 반장한테 먼저 이야기할걸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문화재단 설 대리에게 오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 두겠습니다.”

통화내용을 들은 설운동 대리의 화가 누그러진 것 같았다.

“통화내용 들으셨죠? 그런 일이 있으면 제가 상사인 설 대리님에게 왜 보고를 안 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보고를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강 반장을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지원? 무슨 지원? 갈구지나 말아야지]

설운동 대리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 과장님이세요? 헤헤 설운동 대리입니다.”

강시혁이 보기에 비서실 임창영 과장이 전화를 한 것 같았다.

“강 반장을 일본 출장보내는 건 설 대리가 먼저 알고 있으라고 해서 통보한 건데 강 반장을 혼내셨다고요?“

“아이고, 아이고. 아닙니다. 저는 강 반장이 알고 있는가해서 물어봤을 뿐입니다. 헤헤.”

“우리는 일이 생기면 항상 설 대리에게 먼저 통보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임 과장님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시혁이 속으로 픽 웃었다.

[이 자식은 그렇게 안 보았는데 형편없는 친구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전형적 월급쟁이네!]

설운동 대리가 통화를 끝내고 뒷짐을 쥐고 말했다.

“강 반장!”

“예, 대리님!”

“비서실 임 과장이 나한테 사과를 하네요. 강 반장에게 미리 통보를 안 해주어 미안하다고 하네요.”

[임 과장이 사과를 해? 하하. 내가 웃고 말지.]

“제가 미리 알고도 보고를 안 한 건 아닙니다. 이제 확실히 아셨죠? 저는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설 대리님에게 보고합니다.”

“알겠어요. 그럼 일봐요. 내가 3박4일 출장비는 계산해서 알려드리죠. 출장여비는 필요하면 사전에 업무가불 후 가져가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설운동 대리가 뒷짐을 쥐고 사무실로 갔다.

신종화가 강시혁이 들으라는 듯이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설운똥 저 인간 확실히 자격지심이 강해!”

“강하다니요?”

“그게 뭐라고 사전에 보고 안하니 뭐니 하면서 반장님에게 따지러 와요? 찌질이 한남충 같으니!”

“윗사람으로 밑에 사람이 보고 안하면 기분은 나쁘겠죠.”

“윗사람 좋아하네! 알량한 대리가 무슨 높은 벼슬이라고!”

“그래도 회사는 조직 질서가 있으니까요.“

“아까 덩치도 더 큰 강 반장님이 찌질이 같은 인간에게 쩔쩔매는 것이 보기 흉했어요.”

“하하, 그래도 설 대리님은 상사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 강 반장님이 설 대리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요? 대학도 더 좋은데 나왔고 실력도 더 좋잖아요.”

“실력이야 제가 뭐가 있겠어요?”

“흥! 설운똥이 강 반장님처럼 영어를 잘해요? 아니면 운동도 더 잘하고 힘이 더 좋아요? 또 전기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요? 며칠 먼저 들어왔다고 폼 잡는 것 보면 정말 웃기지도 않아요.”

“하하, 그래도 선임인데!”

“그렇게 샘이 나면 자기가 VIP경호를 하던지! 나는 저 인간 목소리만 들어도 싫어요!”

강시혁이 생각하기에 설 대리는 아마 목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자기에게 권위를 높여보려고 한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것은 신종화 앞에서 폼을 한번 잡고 싶어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봤지? 내가 강 반장 혼내는걸!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신종화가 다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강 반장님은 정말 좋겠어요. 마사키(正木) 미술관 견학을 하러 가니까요. 큐레이터인 저도 아직 못 가봤거든요.”

“저는 미술관 견학 목적이 아닙니다. 아마 VIP 경호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VIP라면 이영진 부이사장님을 말하는 것인가요?”

“정식으로 통보받은 것은 없지만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긴, 이영진 상무 정도 되면 기자들이나 유튜버들이 많이 달려들겠지요. 경호원이 필요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같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영진 상무님과 신문사 홍 사장님 사이는 어떤가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홍 사장님이 장기간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던데.”

“글쎄요. 그건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출장도 일본 산업계 시찰과 마사키 미술관 견학이지만 홍 사장을 만나러 가는 목적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부부사이라면 그렇겠지요.”

큐레이터 신종화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신종화는 홍 사장이 뽕쟁이란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더구나 강시혁이 홍 사장에게 맞았던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라도 했는지 꼬치꼬치 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다.

비서실 유길준 대리의 전화를 받았다.

“강시혁 씨 일본 비자가 나왔습니다.”

[얘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네? 이미 일본 출장을 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데!]

그렇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위에서 강시혁 씨에 대한 일본출장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VIP경호 업무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3박 4일입니다.

“알겠습니다.”

“항공권은 이미 우리가 예약을 했습니다. 영문이름은 여권에 나와 있는 이름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장 여비는 강시혁 씨가 문화재단 소속이므로 거기서 정산해 주기로 했습니다. 우리 과장님께서 거기에 있는 설운동 대리라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놨다고 합니다. 연락이 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시혁 씨 여권은 이영진 상무님을 모시고 있는 김 기사 편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리님!”

강시혁은 김 기사가 또 여권을 들고 오면 투덜대지 않을까 하였다.

더군다나 자기가 이번에 일본에 가면 짬밥도 얼마 안 된 녀석이 해외여행을 간다고 질투라도 하지 않을까 하였다.

그래서 강시혁은 갤러리에서 일을 끝내고 오다가 막걸리 한 병과 편육 한 근을 사가지고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막걸리는 아랫배가 나온 김 기사가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