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자율 방범위원 (1)
(91)
변상철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무튼 돈이 생겼다니 가지. 내 친구 녀석 가게 매상 올려 주겠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지.”
“그날 리틀 브라운도 오라고 했어.”
“재능 있는 아이니까 와도 좋지. 그런데 걔는 유별나게 형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그놈 집에 나 같은 형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걔 아버지가 뭐하는 분이야? 형이 이상하게 걔한테는 꼬박 꼬박 말을 올리는 것도 수상해.”
“처음이라 존중해줘서 그랬지. 지금은 말 놔.”
“그럼 우리가 간다고 클럽에 있는 친구 녀석한테 이야기 해줘도 되지?”
“해도 돼. 오후 7시에 간다고 해줘라.”
“그럼 클럽에서 만나.”
강시혁은 이영남에게 카톡을 보냈다.
토요일 오후 7시에 클럽에서 변상철과 만나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보냈다.
다음날은 금요일이었다.
강시혁이 책상용 캘린더를 보다가 오늘이 전기 기능사 발표날인 것을 알았다.
한국 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하는 큐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합격자 발표조회를 확인하려는데 몸이 떨려왔다.
학원에서 실기는 웬만하면 다 붙는다고 했지만 떨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합격이었다.
“으악! 합격이다!”
강시혁은 어깨춤이 절로 났다.
기능사 시험 합격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행정고시나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번 실기시험은 7,200명이 응시해서 5,300명이 합격했다고 하였다.
노량진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실기시험 합격했습니다.”
“강시혁 씨 축하합니다. 우리도 강시혁 씨는 합격할 줄 알았습니다.”
“학원에서 잘 지도해주신 덕택입니다.”
“이제 기능사 합격하셨으니 실무 경력을 좀 쌓고 전기 기사 시험에도 한번 도전해 보세요. 아무래도 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몸값을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 학원에서는 기사 시험 준비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시혁은 문화재단의 설운동 대리에게 전화를 걸까 하였다.
[전기 기능사 자격증 땄다고 하면 자격증 수당을 얼마나 줄까? 한번 물어볼까? 급여에 5만원이나 10만 원 정도 더 불어나오는 정도 될 거야. 자격증 딴 놈들이 어디 한두 명이어야 말이지.]
그러다가 산업인력 공단의 자격증 수첩이 나오면 연락하기로 했다.
기왕이면 국기원의 태권도 3단 단증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였다.
그래도 일단은 자기가 레벨업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이상한 전화 한통을 받았다.
목소리 굵은 웬 중년 남성의 전화였다.
“강시혁 선생님이십니까?”
어째 점잖게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게 수상했다.
“예, 제가 강시혁입니다만 어디시죠?”
“저는 이태원지구 자율 방범대장입니다.”
[자율 방범대? 그런 것이 있었나?]
“아, 예. 그러십니까?”
“파출소 소장한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우리 구에 있는 삼방그룹 영빈관의 경비 반장님이시라고요?”
“그, 그렇습니다.”
“그럼 거주지도 이태원동에 등록이 되셨겠군요.”
“물론이죠.”
“우리가 이번에 자율 방범위원 결원이 생겨 두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시간이 있으시다면 한번 뵙고 싶습니다.”
“아, 그거야..... 뭐, 괜찮습니다.”
“내 사무실은 이슬람 거리에 있습니다. 가깝게 있으니 오늘이라도 같이 차나 한잔 같이 하고 싶습니다. 강 선생께서 여기 오셔도 좋고 내가 삼방그룹 영빈관에 가도 좋습니다.”
강시혁은 외부인이 영빈관에 오는 것은 싫었다.
“제가 마침 그쪽으로 나갈 일이 있으니 잠깐 들리죠. 이슬람거리면 여기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립니다.”
“내 사무실은 태국 음식점 4층에 있습니다.”
강시혁이 전화를 끊고 자율 방범위원이면 무슨 일을 하는 건가 하였다.
파출소 소장이 추천했다면 사기꾼 집단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가끔 가슴에 띠를 두르고 거리에 순찰 다니는 일을 하는 건 아닐까 하였다.
언젠가 그런 사람을 본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이태원 이슬람거리로 갔다.
자율 방범대장 사무실은 성냥갑처럼 작은 허름한 4층 빌딩 4층에 있었다. 사무실입구에 자율방범대 라는 큰 글씨로 된 나무 간판이 있었다.
강시혁이 들어서자 50대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소파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스포츠 머리를 한 좀 뚱뚱한 남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강 반장님이시죠?”
이 사람은 강시혁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안녕하십니까? 강시혁입니다.”
“자율 방범대장입니다.”
그러면서 방범대장이 자기 명함을 주었다.
그런데 명함에 직함이 많았다. 상가 번영회 회장에다가 이태원지구 해병전우회 회장, 이태원 초등학교 동창회장 등 많은 직함이 있었다.
강시혁은 이 사람이 이곳 토박이인 유지인 것으로 보았다. 자기도 명함을 주며 말했다.
“여기에 이런 사무실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강 반장님도 체격을 보니 운동을 좀 하신 분 같네요.”
“조금 했을 뿐입니다.”
“강 반장 같은 분을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자율 방범대가 주로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말 그대로 주민 자치 방범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태원은 관광특구다보니 크고 작은 사건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계몽도 하고 방범 활동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봉사 단체죠.”
“그렇군요.”
“자율방범위원은 유지들이 많이 하지만 강 반장처럼 체격 좋고 젊은 분이 하면 더욱 좋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오후3시에 이곳 주민 센터에서 새로운 방범위원 위촉식이 있습니다. 꼭 맡아주시고 위촉식 때 나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영업자가 아니라서......”
“그건 상관없습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잘하실 분이면 됩니다.”
강시혁은 영빈관으로 다시 왔다.
지역 방범위원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문화재단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자기는 자영업자가 아니고 문화재단의 잡급직 경비반장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설운동 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강시혁입니다. 지금 전화 받을 수 있습니까?”
“예, 말 하세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태원동에서 저를 자율 방범위원으로 추천했는데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자율 방범위원입니다. 파출소 소장이 저를 추천했답니다.”
“그, 그것은 원장님께 물어봐야 되겠는데요? 그런데 왜 강 반장을 추천한 거죠?”
“운동을 한 사람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조금전에 방범대장도 만났습니다. 이 지역 유지인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관광특구라 크고 작은 사건이 많답니다. 그래서 가끔 순찰도 하고 계도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관장님 나가시기전에 의논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강시혁은 요즘 들어 설운동 대리가 자기에게 좀 친절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자기가 운동을 한 사람이란 소문이 나고서부터인 것 같았다.
설운동 대리가 관장에게 보고를 하였다.
“관장님. 영빈관 강 반장이 이태원동 자율 방범위원으로 위촉이 되었답니다.”
“자율 방범위원? 그것이 뭐하는 것인데요?”
“지역에서 말 그대로 자율 방범 활동을 하는 거죠. 각 지역마다 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역 내 유지들이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강 반장이 이태원동 유지란 말이에욧?”
“아마 강 반장이 운동을 한 사람이라 추천을 받은 모양입니다. 파출소 소장이 추천을 했답니다.”
“그래요? 그럼 이걸 오또케 해야 하나? 승인해 주는 것이 좋겠어요? 아니면 말아야 할까요? 설 대리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 결정을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관장님께 여쭈어보려고 온 겁니다.”
“과거에도 이런 전례가 있었던가요?”
“처음입니다.”
“승인하면 강 반장이 회사 일은 안하고 봉사활동을 나갈 것이고 안 해주면 동네에서 찍힐 것 아닌가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그럼 오또케 해야 하나. 그룹 비서실장에게 물어볼까?”
“아마 비서실장이 싫어할 겁니다. 그런 건 자체적으로 처리하지 비서실에까지 물어본다고 할 겁니다.”
“오또케 해야 할까!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그냥 강 반장이 알아서 하라고 할까요?”
“그, 그게 좋겠네요. 현지 사정은 강 반장이 잘 알 테니까! 설 대리가 강 반장한테 전화해줘요. 알아서 하라고.”
“알겠습니다.”
“나는 협회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먼저 나가요. 그럼 일 봐요. 흠, 흠.”
그러면서 관장은 자기가 자랑하는 루비똥 크로스백을 들고 나갔다.
설운동 대리는 사무국장에게도 알렸다.
강시혁이 방범위원 위촉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
사무국장은 봉사활동이 잦아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면 위촉을 사양하라고 했다. 하지만 월 한두 번 봉사활동이야 지역의 유대를 위해서 해도 좋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강시혁이 설운동 대리의 전화를 받았다.
“나요. 방범위원 위촉은 관장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현지 사정은 강 반장이 잘 아니까 강 반장이 알아서 하랍니다. 하지만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봉사활동이 많다면 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면 사양하겠습니다.”
“하지만 월 한두 번이라면 지역 유대를 위해서 위촉을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방범위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이런 것 했다가 나중에 괜히 귀찮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강시혁은 이영남이 마음에 걸렸다.
이영남도 이태원 토박이지만 남자가 너무 여성스럽고 부잣집 아들로 알려져 나쁜 놈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영남이 혹시 이태원 거리에서 건달들에게 맞기라도 한다면 자기가 달려가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패거리로 덤빈다면 자기 혼자 감당도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지역 방범위원들의 협조도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영남이 때문에 방범위원 위촉을 승인할까? 건달들도 내가 방범위원이면 경찰들과 잘 아는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닌가!]
그래서 강시혁은 방범위원을 조금만 해보기로 했다.
화요일에 주민 센터에서 열리는 방범위원 위촉식에 가보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
강시혁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기타리스트 윤진형이 일하는 클럽으로 갔다.
변상철은 먼저 와서 윤진형과 함께 땅콩을 먹고 있었다.
“일찍 왔네?”
“하늘같은 선배님이 부르는데 빨리 와야지!”
윤진형이 웃으며 말했다.
“형, 한건 하셨다면서요? 용돈 좀 들어왔다면서요?”
“상철이가 또 나발 부른 모양이군.”
“자주 오세요. 형님. 요즘 장사도 안 되어 죽겠습니다.”
“내가 월급을 많이 받아야 이런데 자주오지. 그런데 마침 조지 메키스 회장에게 용돈을 받아서.......”
“하하. 형님이 하는 농담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내 말을 못 믿는 것 같네. 내가 회사의 지시로 하얏트 호텔에 묵고 있던 조지 메키스 회장을 인천공항까지 모셨다니까!”
“정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네요.”
“내가 메키스 회장하고 옷까지 바꾸어 입고 공항엘 갔다니까! 기자들하고 유튜버들 따돌리느라고 그렇게 했다니까.”
변상철이 웃으며 말했다.
“형이 정말 메키스 회장 옷을 바꾸어 입고 갔다면 그 운을 좀 받겠는데?”
“그래서 내가 오늘 술 사기로 했잖아.”
“리틀 브라운도 불렀다며? 걔도 여기에 올 거지?”
“올 때가 되었는데!”
말하는 순간 이영남이 헤헤거리며 나타났다.
“어째 홀에 형들만 있는 것 같네.”
“장사 안 되어 죽겠다. 앉아라.”
이때 갑자기 단체로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말이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쏼라거리는 걸 보니 중국인 단체 관광객인 것 같았다.
금방 홀이 꽉 찼다.
기타리스트 윤진형이 후다닥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잔잔한 밴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중국 관광객들은 술이 나오자 어찌나 떠드는지 말소리가 안 들릴 정도였다.
변상철이 투덜거렸다.
“제기랄, 시끄러워서 술 못 마시겠네.”
“놔둬. 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돈 좀 뿌리고 가면 고맙지.”
30분 정도 지나자 중국인들은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고 어깨를 들썩이며 춤추는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국인중 한명이 쪽지를 적어 무대 위의 윤진형에게 주었다. 아마 신청곡을 적어서 준 것 같았다.
윤진형이 쪽지에 있는 글씨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쪽지를 밴드중 나이가 많은 색소폰을 부는 악사에게 주었다.
악사가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영남이 외쳤다.
“나 저 노래 알아! 왕지엔롱(王建榮)이란 가수가 부른 뉴런메이요추어(女人沒有錯)란 노래야!”
그러면서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가 드럼을 치는 사람과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이영남이 경쾌한 리듬의 드럼을 치자 중국인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그리고 박수를 치며 모두 기어 나와 춤을 추었다.
강시혁이 들어보니 상당히 경쾌한 곡이었다.
변상철도 맥주를 마시며 한마디 했다.
“곡이 좋은데? 춤추기 딱 좋은 곡이네. 형! 우리도 나가지!”
그래서 강시혁과 변상철이 홀 중앙으로 나갔다.
중국인들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이태원의 밤은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