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회장의 방문 (2)
(90)
알림 톡을 확인해보았다.
용산구청의 알림 톡인 줄 알았는데 외교부 여권정보 알림 톡이었다.
[용산구청에서 발급 신청한 강시혁 님의 여권이 발급되었습니다. 강시혁 님의 여권을 용산구청에서 수령하시기 바랍니다.]
이어 본인 수령시 가지고 가야할 구비서류 안내가 있었다.
"히히. 드디어 여권이 나왔네!"
강시혁은 바로 용산구청으로 달려갔다.
용산구청은 영빈관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바로 뛰어갔다.
창구에서 신분증과 접수증을 내밀고 여권을 수령했다.
“이게 내 여권이란 말이지?”
강시혁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여권이었다.
여권을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보고 하였다.
“참, 이걸 비서실 대리 한분이 보내달라고 했지? 맞아. 이름이 유길준이라는 사람이었어. 유길준? 조선왕조 말기 개화 사상가랑 이름이 똑같네!”
강시혁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비서실 유길준 대리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바로 전화를 했다.
“저, 유길준 대리님이시죠?”
“그렇습니다.”
“영빈관 경비반장 강시혁입니다. 여권이 나왔는데 지금 가지고 가면 될까요?”
“아, 나왔습니까? 여권은 직접 가지고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영진 상무님 기사 편에 보내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권 보낼 때 여권용 사진도 한 장 보내주세요. 비자 받는데 필요할지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지금 삼방 문화재단 소속이죠?”
“네, 그렇습니다.”
“삼방 문화재단 명함도 한 장 같이 보내주세요.”
“명함요? 알겠습니다.”
강시혁이 김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과장님이세요?”
“여보세요?”
김 기사는 낮잠이라도 잤는지 졸다 깬 음성이었다.
“저, 영빈관 강시혁입니다.”
“어, 강 반장? 웬일인가?”
“저녁에 상무님 퇴근시켜드리고 가시는 길에 영빈관 잠깐 들려주시겠어요?”
“그건 왜?”
“비서실로 가는 중요 서류가 있어서요.”
“알았어. 저녁때 들릴게.”
강시혁은 저녁때 김 기사가 오면 자기에게 일을 시킨다고 투덜댈 것 같았다.
그래서 제과점에 가서 생크림 롤을 하나 사왔다.
[딸 바보인 것 같으니 이걸 딸에게 주라고 해야겠군.]
삼방그룹 비서실장이 회장을 찾았다.
마침 회장은 삼방전자 사장과 둘이 앉아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빈관 경비 반장의 부채 현황을 조사해봤습니다.”
“부채가 많은가?”
“주 거래 은행 금융거래 확인서에 나타난 부채는 없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 채무변제 현황은 1년 6개월 전서부터 매월 성실히 갚아나간 걸로 되어있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 부채 잔액이 얼마인가?”
“부채 잔액은 8,300만원이 남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흠, 그래?”
“신용카드 발급만 어렵고 현재 입출금 금융거래에는 이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회장이 돋보기를 끼고 변제확인서를 보았다.
옆에 앉아있던 전자 사장이 말했다.
“영빈관 경비 반장이라면 강 모 라는 젊은이 말입니까?”
“맞소. 당신이 눈여겨보라던 놈이요.”
전자 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눈여겨 보라고해서 금융거래 확인까지 하시는군요.”
비서실장이 말했다.
“영빈관은 고가의 미술품이 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혹시라도 부채가 많은 사람이라면 엉뚱한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변제확인서에 나와 있듯이 성실히 갚아나가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청년은 아닐 것이요.”
“저도 그렇게 보긴 합니다만.”
“변제 후 잔액이 8,300만원이 남았군. 이건 뭐 우리나라 청년들의 평균 부채네!”
“예? 평균 부채라니요?”
“신문 보지 못했소? 우리나라 청년 5명중 1명은 연소득의 3배 이상 빚을 지고 있단 보도 말이요.”
“그, 그렇습니까?”
“언젠가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게 있어요. 우리나라 19살부터 39세까지 청년 가구주들의 부채가 얼마인줄 아시오? ”
“잘 모르겠는데요?”
“평균 부채가 8,455만원이랍니다. 그러니 이 친구는 평균인 셈이지.”
회장도 눈을 크게 뜨고 전자사장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 삼방그룹 정규직 사원들이야 부채가 많이 없겠죠. 하지만 영빈관 지킴이로 있는 강 반장 같은 잡급직 청년이라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강 반장은 극히 우리나라 평균 청년입니다.”
“흠.”
“그런데 정말 미술품 때문에 이 친구에 대한 부채현황을 조사한 것입니까?”
“그것 보다는..... 영진이가 이번에 일본을 가는데 경호원이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서.... 부채 많은 청년이라면 아무래도 경호업무에 소홀할 것 같아서 조사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아, 전에 보안업체에서 파견 나온 경호요원이 취업을 미끼로 금품을 챙겨서 그렇군요.”
“그것도 있지만.......”
“하긴 빚이 많다면 영진 상무의 경호업무보다는 돈 생기는 일에만 신경을 쓰겠지요. 조사한 것 자체는 나쁘진 않습니다.“
회장이 서류를 비서실장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비서실장은 나가보시게. 수고했네.”
비서실장이 회장과 삼방전자 사장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비서실장이 나가자 회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에효.”
삼방전기 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자식의 일입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품안의 자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나하고 회장과 사장 사이 이전에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라 말합니다. 영진이가 이혼까지 가는 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소.”
“둘이 금슬은 어떻습니까?”
“금슬도 썩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성격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연애과정을 거치지 않고 혼사를 서두른 것도 원인이 있겠군요.”
“내가 일생일대에 실수한 것이 있다면 딱 그거 하나요. 보수언론 회장의 아들이란 겉모양만 보고 혼사를 벼락치기로 했으니 말이요.”
“하기야 A일보 회장이야 점잖지요. 오랫동안 미국에 가 있었던 아들이 중증환자인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영진이의 결심이 저러니 나도 말리질 못하겠어요. 에효, 행복하게 둘이 잘 살줄 알았는데.”
“약도 약이지만 폭행을 한다면 혼인을 지속하기가 어렵겠지요.”
“그래서 나도 영진이의 결정을 승낙한 겁니다.”
“홍 사장이 중증의 환자라면 이번에 빨리 헤어지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홍 사장이 중증 환자라는 소문이라도 나면 기업 이미지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승낙을 한 겁니다.”
“그러면 이번에 영진 상무가 출국하는데 변호사와 강 반장과 이렇게 셋이 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강 반장이 영어도 할 줄 알고 마침 태권도도 3단이란 소문이 있어 경호원으로는 알맞다고 생각한 거지요.”
“허허, 그놈이 태권도가 3단이었나? 몸이 실팍한 것은 알겠는데.”
“실은 내가 어제 영빈관에 들러 그놈을 테스트해보긴 했습니다.”
“그놈 잘 다듬으면 물건이 될 놈인 것은 맞습니다.”
“그래요?”
“회장님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하셨지요? 우리 그룹에 수만 명의 정규직원이 있지만 가르시아 밀서 같은 것을 전달할 놈이 한 놈도 없다고 그랬죠?”
“그랬지요.”
“강 반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생을 한 놈입니다. 그놈만이 우리 그룹에서 유일하게 가르시아 밀서를 전달할 놈일지도 모릅니다.”
“전자 사장께서 그놈을 잘 본 모양이군요.”
가르시아 밀서는 미국과 스페인이 쿠바를 놓고 전쟁을 벌일 때의 일화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쿠바의 장군 가르시아에게 중요한 밀서를 전달해야만 했다.
하지만 가르시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스페인 군대가 정글에 깔려있어 밀서 전달이 불가능했다.
대통령은 고심 끝에 로완 중위를 불러 밀서 전달을 명령했다.
로완 중위는 가르시아 장군이 어디에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스페인 군대가 깔려있어 못 간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밀서를 받고 말없이 떠나 끝내는 가르시아 장군을 찾아 밀서 전달의 임무를 완성했다는 실화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조직원이라면 경영자가 지시한 것은 어려운 과제라도 이유를 대지 말고 닥치고 수행하라는 말이었다.
수행방법은 자기의 창의적 두뇌를 총 동원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시키란 말이었다.
삼방전자 사장은 강시혁을 그런 인물로 보았었다.
상갓집의 신발을 정리하고 영빈관 정원의 국화꽃을 활짝 피게 하는 능력은 스카이대학을 나온 어떤 정규직 사원보다 낫다고 평가한 것이었다.
전자 사장이 물을 마시며 말했다.
“그놈이 간다면 이영진 상무 수행을 잘 할 겁니다. 신용카드도 없는 놈이라니 함부로 쇼핑이나 하고 다닐 놈도 아닌 것 같군요.”
이 말에 비로써 회장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무수행을 잘 하고 돌아오면 그놈에게 보너스라도 줄 생각입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그놈을..... 앞으로 영빈관 경비 업무보다는 영진 상무의 경호원 업무 비중이 높다면 소속을 옮겨주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소속을 옮겨요?”
“현재 문화재단 소속으로 있는 것 같은데 비서실 소속으로 옮겨도 되겠지요.”
“공채 케이스가 아닌데 특채로 하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작년에 금융공학을 전공한 미국 MBA출신들을 몇 명 대리로 특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놈이 영빈관 경력이 짧지만 경력은 경력이니까 인정을 해줘도 될 것 같습니다. 특채 형식을 취하면 될 겁니다.”
“비서실로 이적을 시키면 그놈의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에는 도움이 되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그놈은 따로 떨어져 혼자 근무하는 놈이라 경쟁자도 없습니다. 그놈 특채한다고 누가 시비 걸 직원도 없을 것입니다.”
“알겠소. 일단 일본을 갔다 온 후에 검토를 해보도록 하지요.”
삼방전자 사장이 나가자 회장이 빙긋 웃었다.
[삼방전자 사장은 확실히 해박해. 청년 가구주의 부채가 8,455만원이라니 암기력 하나는 그룹에서 으뜸일거야. 그것뿐인가? 삼방전자의 5년 전 매출액과 영업이익까지 암기하고 연도별 ROA(총자산 수익률)이나 ROE(자기자본 이익률)를 정확히 기억하니 인간 컴퓨터가 틀림없어. 연봉 35억을 공짜로 받는 것은 아니네.]
[그런데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강 반장이 과연 가르시아 밀서를 전달하는 그만한 인재로 커 나갈 수가 있을까? 삼방전자 사장은 강 반장의 무엇을 보고 재목이 될 놈이라고 했을까? 알 수가 없군. 아무튼 지켜봐야겠어.]
저녁때가 되었다.
이영진 상무를 퇴근시켜주고 김 기사가 영빈관으로 왔다.
“무슨 서류를 전달하라는 거야?”
“이건데요? 제 여권입니다. 비서실 유길준 대리에게 내일 전달해 주면 됩니다.”
“아아, 그 두꺼운 안경 낀 놈 말이지?”
“유 대리의 목소리는 들었어도 얼굴은 못 봤습니다.”
“알겠네. 전달해 주겠네.”
“그리고 이건 롤 케익인데 따님에게 갖다드리세요. 아이들은 좋아할겁니다.”
“하하. 고맙네. 그리고 참, 우리 딸아이에게 자네 이야기를 했네.”
“제 이야기를요?”
“우리 회사에 태권도 3단인 내 후배가 있으니까 일진 애들이 괴롭히면 이야기 하라고 했네.”
강시혁은 걱정이 앞섰다.
[이거 잘못하면 아이들 싸움에 말려들어가는 것 아닐까? 그놈의 태권도 3단이란 소리는 어디서 나와 가지고 나를 입장 곤란하게 하나?]
그렇지만 내색할 수도 없었다.
“가셔서 귀여운 따님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일진 애들이 괴롭히면 언제든지 이 삼촌한테 말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제가 달려가 혼을 내주죠.”
“고맙네. 이 여권은 내가 유길준 대리에게 잘 전달해 주도록 하겠네.”
그러면서 김 기사는 롤 케익을 들고 나갔다.
강시혁은 영빈관 건물 점검을 마치고 나서 변상철이에게 전화를 했다.
“상철이냐? 나다. 하늘같은 선배님이시다.”
“하늘같은 선배님이 웬일이셔?”
“너 토요일 서울오지?”
“가야지. 내 생활권이 거기인데.”
“이태원 클럽 한번 가자.”
“돈 없어. 거기서 기타 치는 내 친구 윤진형도 사장이 아니라서 우리한테 술값 깎아주는 것도 없어.”
“내가 돈이 좀 생겼다.”
“돈이 생겨? 어디서 났는데? 또 누구 모셔주고 팁이라도 받았나?”
“받았지. 그것도 아주 많이.”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팁을 많이 줘?”
“메키스 펀드 회장이신 조지 메키스 회장에게 돈 좀 받았다.”
“메키스 회장에게? 헹. 형도 이제는 유치한 농담까지 하네.”
“받았다니까!”
“전설의 투자가 조지 메키스란 이름을 인터넷에서 한번 본 것은 같군.”
“이 자식이 정말 형 말을 못 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