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메키스 펀드 회장 (2)
(88)
강시혁이 운전하는 벤츠는 올림픽 대로를 벗어났다.
인천 국제공항 고속도로로 접어들더니 개화터널을 지났다.
휴즈 교수가 말했다.
“한국은 도로를 잘 닦아놓았어. 아시아 국가 중에선 으뜸인 것 같아.”
강시혁이 룸미러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메키스 회장님께 질문하나 드려도 될까요?”
“해 봐요.”
“지금 제가 달리고 있는 이 고속도로처럼 돈을 잘 벌수 있는 고속도로의 길이 있습니까?”
“근로소득으로는 어렵겠지.”
“월급 가지고는 승산이 없겠네요.”
“그렇지만 종자돈이야 월급가지고 만들어야겠지. 그리고는 어디 좋은데 투자를 해서 증식을 시켜야겠지.”
“투자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겠군요.”
“주식이나 부동산, 아니면 코인에 투자를 해서 자기의 부(富)를 늘려가야 하겠지. 미스터 강! 저축 많이 해 놨어요?”
저축은커녕 빚 갚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다.
“많이 못해놓았습니다. 저는 슈퍼바이저나 디렉터가 아니거든요. 낮은 직급의 드라이버일 뿐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모아야 하겠지.”
“그런데 종자돈은 얼마를 가져야 하는가요?”
“종자돈의 기준은 없어요. 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사람도 있고 만 달러를 투자하는 사람도 있고 돈이 없는 사람은 천 달러를 투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형편에 따라 투자하면 됩니다.”
강시혁은 천 달러면 얼마인가 하고 계산해 보았다,
한국 돈으로 계산해보니 얼마 되지도 않았다. 백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말이 그렇지 천 달러 투자면 아이들 과자 값도 안 나올 것으로 보였다.
[천 달러 가지고 뭐해! 부스럼이 커야 고름도 많이 나오는 법인데!]
그러면서 강시혁은 지금 자기의 통장에 돈이 얼마가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최근에 계좌 확인을 안했었다.
[지난번 홍 사장에게 맞아서 번 돈 700만원이 있고 그동안 월급 조금 모아둔 것이 있으니 천만 원 정도가 있겠군.]
강시혁은 어느 주식에 투자하면 좋겠냐고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개별종목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제가 만일 월급이라도 쪼개어 투자한다면 어느 종목이 좋겠습니까?”
“재무구조가 좋은 우량기업에 투자하면 됩니다.”
강시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헹! 그런 말은 나도 하겠네.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전설적의 투자가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별것 아니네.]
메키스가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기업의 본질가치와 주가를 비교해서 주가가 싸다면 긴 안목을 보고 발을 담가도 됩니다.”
“본질가치요?”
이 말엔 메키스가 대답하지 않았다.
본질가치의 뜻은 자꾸 귀찮게 묻지 말고 인터넷 검색이나 해보라는 표정이었다.
휴즈 교수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메키스 회장님 말씀은 가치 투자를 하란 말입니다.”
“아, 네......”
강시혁은 가치투자란 또 무엇인가 하였다.
준비도 안 된 자기가 계속 묻는 것은 벽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차가 어느덧 공항에 도착했다.
메키스는 대합실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에게 따라붙는 사람이 있는 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메키스 회장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아직도 강시혁의 양복저고리를 입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출국장 앞에서야 메키스 회장이 웃옷을 벗었다.
그리고 자기 옷과 강시혁의 옷을 바꾸어 입었다.
“고맙소. 젊은 친구!”
“저도 이영진 상무님 지시를 받고 두 분을 잘 모셔서 기분이 유쾌합니다.”
휴즈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미스터 강 덕분에 이번 한국여행은 유쾌했습니다. 박 교수 말대로 미스터 강은 에너지 넘치는 젊은이입니다. 행운이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강시혁이 선그라스를 벗어 주머니에 넣다가 봉투 하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얼른 봉투를 확인해 보았다. 달러가 들어 있었다.
옷을 바꾸어 입었던 메키스 회장이 잘못 넣어둔 것 같았다.
강시혁이 출국장 자동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메키스를 불렀다.
“메키스 회장님! 이것 빠트리고 가셨네요.”
메키스 회장이 뒤를 돌아보며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it's your money (그것은 당신 돈입니다).”
“아닙니다. 당신 돈입니다.”
이제는 휴즈 교수까지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it's your money.”
그러면서 두 사람은 손을 흔들며 출국장 자동문 안으로 사라졌다.
강시혁은 한참동안 출국장의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강시혁이 벤츠가 있는 주차장으로 왔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봉투의 돈을 확인했다. 백 달러짜리 빳빳한 지폐 열장이 들어있었다.
“헉! 천 달러!”
한국 돈 백만 원이 훨씬 넘는 돈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강시혁은 너무 많은 돈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달러 정도를 주었다면 팁으로 생각하고 웃으면서 받았겠지만 천 달러는 부담이 되었다.
고작 하얏트 호텔에서 인천공항까지 태워줬는데 천 달러라니 말이 안 되었다.
[이영진 상무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나중에라도 이영진 상무가 메키스 회장이나 휴즈 교수를 만났을 때 천 달러를 나에게 준 사실을 안다면?]
보고도 않고 엉큼하게 혼자 꿀꺽했다면 강시혁을 신뢰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일단 보고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문자를 보냈다.
[휴즈 교수님과 메키스 회장님은 인천공항까지 잘 모셨습니다. 방금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시는걸 확인하고 주차장으로 왔습니다.]
짤막한 답신이 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또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메키스 회장님께서 저에게 천 달러를 주셨습니다. 너무 많은 금액이라 회사에 입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서실 임창영 과장님이나 유길준 대리님께 연락 후 입금하겠습니다.]
답신이 왔다.
[ it's your money.]
“헹, 모두 똑같은 표현들을 하네. 그럼 환전해서 내 통장에 입금해야겠네. 아니야. 내가 일본에 간다는 말이 있으니 일본 갈 때 쓰면 되겠네! 요즘은 계속 돈이 들어오니 좋긴 좋네!”
강시혁은 이 돈을 혼자 꼬불쳤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한 20%는 떼어내 소문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남이나 불러내 클럽이나 한번 가줘야겠네. 그래야 나중에라도 천 달러 혼자 씹어버리지 않고 이영남이 술 사줬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어?]
그래서 이영남에게 카톡을 보냈다.
{돈이 좀 생겼습니다. 클럽에 가서 한 턱 내겠습니다.]
답신이 왔다.
[형이 돈이 어디서 나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그렇지 않아도 드럼 치러 갈 거예요. 오늘은 김 기사 안 오죠?]
[예, 안 옵니다.]
[그럼 클럽 가는 건 만나서 이야기 하죠.]
강시혁이 저녁을 먹고 바벨 운동을 하는데 이영남이 왔다.
“형, 뭐해요?”
“운동합니다.”
“정말 형 몸 좋아!”
그러면서 이영남이 또 징그럽게 강시혁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강시혁이 얼른 긴팔 옷을 입었다. 옷을 입어야 이영남이 자기 몸에 손을 안 대기 때문이었다.
“형! 내가 피자 한판 시켰으니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곧 올 때 되었어요.”
바로 배달 오토바이가 왔다.
강시혁은 배달원들이 영빈관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문 앞에 나가서 피자를 받았다. 그리고 대문을 잠갔다. 이제 더 이상 올 사람도 없기 때문이었다.
콜라와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오늘 돈 생긴 이야기를 했다.
“리틀 브라운! 혹시 조지 메키스 회장을 알죠?”
“알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설의 투자가가 아닙니까?“
“그 사람한테 오늘 천 달러를 받았어요.”
“뭐라고요? 그 사람은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인데요? 점심 한번 같이 먹는데 백만 달러를 줘야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참, 그 사람 뉴스에 보니까 한국 방문을 했다고 하던데?”
“만났어요. 제가 공항까지 벤츠로 모셔다 드렸어요.”
“그래요?”
“빌리 휴즈 교수님 알죠?”
“알죠. 예일대의 유명한 석학이신데. 영진 누나가 그분한테 배우기도 했어요.”
“그분도 한국 들어오신걸 알죠?”
“그랬나요? 내가 요즘 뉴스 같은 것을 잘 안 봐서.”
“이영진 상무님이 그분 귀국 때 인천공항까지 가는 걸 저보고 모셔주라고 했습니다.”
“영진 누나는 휴즈 교수를 잘 아니까 그런 말을 했을 것 같네요.”
“휴즈 교수는 서울대 초청세미나 참석하고 어제까지 하얏트 호텔에 묵고 계셨습니다. 마침 휴즈 교수가 하얏트 호텔에 묵고 있는 메키스 회장을 만났죠. 서로 잘 아는 사이라 같이 귀국하게 되었지요.”
“아, 그래서 형이 메키스 회장을 모셨구나.”
“메키스 회장님이 출국장에서 팁을 주었는데 꽤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클럽에 가자고 한 겁니다.”
강시혁은 구체적 돈의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형이 받은 돈을 클럽에 가서 막 쓰면 되나요?”
“만날 제가 리틀 브라운에게 얻어먹기만 했잖습니까? 또 클럽 경기도 안 좋은 것 같으니 매상 올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요. 그럼 이번 토요일 가죠. 저도 그 집 가본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토요일 저도 좋습니다.”
“참, 그날 변상철 형도 같이 가자고 하죠.”
“좋습니다. 변상철은 제가 말하면 쏜살같이 달려올 겁니다.”
“그런데 상철이 형은 나한테 반말하는데 시혁이 형은 꼭 존댓말을 써서 이상해요. 앞으로 말 내리세요.”
“리틀 브라운은 기업에 참여하면 바로 임원이 되실 분입니다. 잡급직 경비가 반말을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사람 없는 데서는 반말하세요.”
“그래도.”
“그래도가 뭡니까? 저도 형이 계속 말을 올리면 나한테 거리감을 두는 것 같아 싫어요. 반말하세요.”
“알겠습니다.”
"또, 존댓말!“
“하하. 알겠어.”
“히히. 좋아요. 피자 식기 전에 먹어요. 피자먹고 나는 드럼을 칠 테니 형은 기타 반주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어.”
이때였다. 갑자기 대문의 벨이 울렸다.
강시혁이 급히 모니터를 보았다.
웬 남자 두 명이 정문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고급 외제 승용차가 서 있었다.
[누굴까? 이 저녁에?]
모니터를 자세히 보고 강시혁은 크게 놀랐다.
{회장이다!]
강시혁은 회장인지 알면서도 얼른 제어판의 문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누구십니까?”
바로 회장 차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반장? 나 회장님을 모시고 다니는 기사네. 회장님 오셨으니 문을 열게.”
강시혁이 제어판 문열림을 눌렀다.
그리고 이영남에게 황급히 말했다.
“회장님이 오셨답니다. 빨리 이 피자 치워주시고 드럼 치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이영남도 아버지는 무서워했다. 피자 남은 것과 콜라병을 들고 드럼 치는 방으로 황급히 도망을 갔다.
강시혁이 총알같이 뛰어나갔다.
회장을 보자 강시혁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했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음. 지나가는 길에 한번 들렸네. 아무 일 없지?”
“예, 아무 일 없습니다.”
강시혁은 회장을 1층 접견실로 안내했다.
회장이 지하실로 내려가 드럼 치는 방문을 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설마 회장님이 지하실까지 내려가지는 않겠지.]
회장이 접견실에 있는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강시혁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차를 한잔 끓여 올리겠습니다. 금산 아줌마가 보내주신 대추차도 있습니다.”
“가져오게.”
강시혁은 얼른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회장 앞이라 그런지 당황해서 물을 약간 엎지르기도 했다.
회장은 물이 끓는 동안 2층을 한번 돌아보기도 했다.
회장이 다시 접견실로 내려왔다.
강시혁이 차 두 잔을 타 하얀 사기로 된 컵에 담아 내왔다.
먼저 회장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나머지 한잔은 회장 차 기사에게 가져갔다.
회장이 자기를 따라온 기사에게 말했다.
“자네도 앉게.”
“예.”
회장 차 기사도 접견실 의자에 앉았다.
회장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강시혁은 회장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서있었다.
회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강시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리위에서 발끝까지 한번 훑어보았다,
대그룹 회장이라 그런지 눈빛에 카리스마가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