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메키스 펀드 회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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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혁이 김 기사에게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런데 과장님. 회장님을 모시는 이사님이 촉탁 3년차인 것은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똥차가 앞에 가로막혀 기사들 조직이 동맥경화증에 걸렸는데!”
“과장님이 그 자리로 가셨을 때 촉탁을 3년이나 해준다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흠, 그, 그게 그렇게 되나?”
“선례가 있다면 과장님도 정년 퇴직에 걸렸을 때 촉탁을 해달라는 명분이 있게 되잖아요. 결국 과장님도 혜택을 입게 되는 겁니다.”
“흠.”
“그리고 저는 과장님 자리를 추천하지 마세요.”
“그건 왜?”
“저는 지금 이 자리가 좋습니다. 기사들한테 괜히 욕먹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네는 참 마음이 넓어서 좋네. 혼자 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 자네도 나처럼 여우같은 마누라하고 토끼 같은 자식이 있어봐. 월급 한 푼이라도 더 받는 자리에 가려고 안달을 할 거야.”
“하하, 글쎄요. 그런 입장이라면 저도 달라지긴 하겠지요.”
“좋은 자리에 안달하는 게 아니라 아예 동료를 모함을 하고 그 자리에 가려고 하는 인간들이 많네. 그런 놈들이 차고 넘치는 게 이놈의 세상이네.”
“에효, 술이나 더 드세요. 오늘 일 끝났으니 더 드세요.”
“그런데 자네가 태권도 3단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야? 체격이 좋아서 운동은 좀 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태권도 3단이니 대단하네.”
“태권도 3단 짜리도 차고 넘치는 게 이놈의 세상입니다.”
“소문이 맞는 것 같군. 몸에 문신까지 있다며? 자네도 건달 물을 먹긴 먹은 사람 같네.”
“아닙니다. 저는 공부만 했던 사람입니다.”
“하하. 공부만 한사람들은 내가 봐도 다 알아. 자네는 가슴도 벌어지고 팔뚝도 굵어 사람깨나 팬 스타일이야. 일진 출신이 맞지?”
“전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 눈은 못 속인다니까!”
[김 기사 이 양반의 눈은 확실히 동태눈이네. 내가 왜 일진이야? 가슴 벌어지면 무조건 일진 출신인가? 나같이 선량하고 착실한 사람을 이상한데 갖다 붙이네!]
강시혁은 웃음도 났지만 그냥 술만 마셨다.
김 기사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래서 자네가 이영진 상무의 보디가드로 이번에 일본에 간다며?”
“예? 처음 듣는 말인데요?“
“정말 아니야?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돌지?”
“여권을 만들어 놓으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거야 연말에 혹시 모범사원으로 선발되면 3박4일 정도 일본이나 중국 정도는 보내줄 수 있지 않아요? 그런 건 어느 기업이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니야. 소문엔 이영진 상무가 일본에 출장 가는데 자네가 보디가드로 간다는 소문이 파다해. 전에도 이영진 상무가 보디가드가 있었어.”
“그래요?”
“보안회사에서 파견 나온 경호원이 있었는데 잡음이 있어서 계약 해지한 사실이 있기는 해.”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파견 나온 그 자식은 젊은 놈이 아주 싸가지가 없었어. 운동 좀 했다고 건들거리면서 삼방그룹 본사 건물 수위를 때려 말썽이 있었지.”
“그래요?“
“건물 수위도 젊은 놈이었어. 얼굴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본사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자 수위가 막았더니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지 뭔가!”
“그러면 되나요? 법치국가에서.“
“수위가 화가 나서 덤볐는데 상대가 안 되었어. 보안회사 경호원이 운동을 했던 놈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수위의 팔을 꺾어버리데.”
“저런!”
“덩치 큰 수위가 바로 깨갱거리더군. 어찌나 크게 깨갱거리는지 지하1층에 있는 우리 기사 대기실까지 다 들렸었네.”
“그래서 계약 해지가 되었나요?“
“그 사건은 쉬쉬했는데 그놈이 자기 주변에 있는 건달들에게 취업을 미끼로 돈을 받았어. 계열사 사장님 차 기사로 채용해주겠다고 하면서 돈을 받은 거지.”
“나쁜 짓은 도맡아 한 놈이군요.”
“그런데 돈 준 놈이 취업이 안 되니까 회장님에게 투서를 했지.”
“하하. 그래서 잘렸군요.”
“회장님이 노발대발해서 바로 잘라버렸지. 그 이후론 이영진 상무도 보디가드를 붙여주는걸 거절했어. 그런데 이번에 일본에 가는 건 아무래도 보디가드가 필요한가봐.”
“그래서 저를 데려간다 이 말씀이군요.”
“그렇지. 자네는 태권도 3단에다가 운전도 잘하고 또 영어도 잘 나불거리는 사람이 아닌가!”
“일본 간다고 아직은 정식으로 이야기 들은 건 없습니다.”
“그런가?“
“정식으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과장님께 보고 드리죠.”
“보고는 무슨!”
“과장님은 삼방그룹의 정식 과장이고 저는 잡급직 경비 겸 운전기사 아닙니까? 당연히 보고해야죠.”
“그래도 보고라니 내가 쑥스럽네.”
“쑥스럽다니요? 저는 문화재단 사무국의 설운동 대리나 큐레이터 신종화 한테도 보고하고 사는 사람인데요?”
“그건 너무했다. 그런 찌질이들한테도 보고를 해야 하니 말이야.”
“찌질이는 제가 찌질이지요. 나이가 동갑인 설운동 대리나 나보다 나이가 한참어린 신종화한테도 보고하고 사는 제가 찌질이지요. 그래도 조직이니 어쩝니까? 지킬 건 지켜야 되겠죠.”
“에효, 그게 그렇게 되나?”
김 기사도 가끔 자기보다 나이어린 총무과장이나 총무부장한테 보고를 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술만 마셨다.
강시혁이 마지막으로 김 기사에게 위로를 해주었다.
“과장님! 일 년만 더 기다리세요. 제가 보기에 이사님을 촉탁 4년차까지는 해주지 않을 겁니다. 일 년 기다리시면 과장님은 차장 승진과 동시에 회장님을 모시게 될 겁니다.”
“알겠네.”
“또 회장님도 과장님을 편하게 여기실겁니다.”
그때서야 김 기사의 마음이 좀 풀어지는 것 같았다.
김 기사는 아무래도 나이어린 여자 상무보다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회장을 모시길 원하는 것 같았다.
김 기사 역시 자존심이 있는 남자가 아닌가?
조카뻘 되는 여자 상전에게 문이나 열어주는 것은 아무리 월급 많은 대기업의 기사라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으리라.
그런데 김 기사나 강시혁은 회장 차 기사가 촉탁 1년이 연장된 이유는 전혀 몰랐다.
그것은 회장이 강시혁을 이영진 상무 차 기사로 하자고 했을 때 이영진 상무가 반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장은 기사들 전체 이동을 보류하고 자기 기사의 촉탁을 1년 연장해 준 것이다.
이영남의 카톡이 왔다.
[형! 나 지금 영빈관에 가려고 하는데 괜찮죠?]
[지금 이영진 상무님을 모시고 있는 김 기사가 와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일 들릴게요.]
이날 술 취한 김 기사는 밤늦게까지 횡설수설했다.
나중엔 군대이야기를 했다. 군대에 있을 때 자기에게 맞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떠벌렸다.
그때마다 강시혁은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사람들은 그래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김 기사는 전철이 끊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갔다.
[제기랄, 김 기사 오는 바람에 오늘은 운동도 못하고 미국 드라마도 못보고 기타도 못 쳤네!]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었다.
강시혁이 밥을 먹고 있는데 이영진 상무의 카톡이 왔다.
[빌리 휴즈 교수님이 내일 귀국하십니다. 내일 오전 11시까지 호텔에서 픽업하여 인천공항까지 모셔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상무님!]
저녁에 업무일지 쓸 때 강시혁은 내일 공항에 가는 사실을 기록했다.
[내일 VIP의 지시로 외국인 1명 수송예정임. 운행 목적지는 하얏트 호텔에서 인천 공항임.]
이렇게 보고를 해줘야 다음날 함부로 강시혁을 불러 잡일을 시키지 않는다.
다음날 오전에 강시혁은 정장에 선그라스를 꼈다.
정장은 새로 맞춤 양복을 입지 않고 전에 있던 양복을 입었다.
새로 맞춘 양복은 나중에 이영진 상무를 모실 때나 입기로 했다.
하얏트 호텔에 갔는데 휴즈 교수는 로비에 내려오지 않았다.
로비에는 오늘따라 카메라를 둘러맨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강시혁이 프런트에서 휴즈 교수가 묵고 있는 룸으로 전화를 했다.
“삼방 문화재단의 미스터 강입니다. 지금 로비에 와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묵고 있는 룸으로 올라와 주시겠소?”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강시혁은 휴즈 교수가 쇼핑을 많이 한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물건이 무거우니까 들어달라고 자기를 룸까지 부른 것으로 알았다.
강시혁이 휴즈 교수가 묵고 있는 9층으로 가서 문을 노크했다.
“Come in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약간 뚱뚱하게 생긴 역시 연배 지긋한 서양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기도 했다.
휴즈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미스터 강, 이 분 알지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투자를 안 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군. 이번에 경제신문사 초청으로 내한한 조지 메키스 씨요!”
강시혁은 그제야 생각났다.
인터넷에서 본 미국 전설의 투자자 조지 메키스 씨였다.
“혹시.... 메키스 펀드의 조지 메키스 회장님이 아니십니까?”
“맞소.”
조지 메키스가 벙긋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의외로 솥뚜껑처럼 큰 손이었다.
[전설의 큰손이라더니 정말 손이 크네!]
“이분은 오늘 2시 비행기로 귀국하는데 나하고 같이 미리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기자들이나 유튜버들이 몰려들면 귀찮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마 밖에 이 사람을 만나려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마스크를 쓰고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스크는 있고 모자도 있는데...... 당신 선그라스를 빌려주지 않겠소?”
“이거요? 그런데 좋은 선그라스가 아니라서.......”
조지 메키스는 선그라스를 보자 빙긋 웃었다.
조지 메키스 같은 백만장자가 노점에서 산 선그라스를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양복도 바꾸어 입읍시다.”
그래서 양복저고리를 벗어주었다.
오래된 낡은 싸구려 양복이라 그런지 조지 메키스가 또 빙긋 웃었다.
휴즈 교수가 조지 메키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경호원 겸 운전기사요. 영어를 할 줄 아니 메키스 회장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 젊은이에게 말하시오.”
이 소리를 듣고 조지 메키스가 또 손을 내밀었다.
강시혁은 그의 악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강시혁은 메키스 회장의 헐렁한 체크무늬의 양복을 입었다.
양복에서 향수 냄새가 많이 났다.
메키스 씨가 호텔 룸에 있는 전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경제신문사 회장님이요? 나 지금 호텔을 떠나니 배웅 나오지 말아요.”
“아니, 오후 2시에 공항으로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로비에 우리 직원들도 나가 있는 중입니다. 또 은행장님과 정부의 인사도 나오시기로 했습니다.”
“다른 신문사 기자들과 유튜버들이 와 있소. 그러니 나오지 마시오. 마침 서울대 초청 세미나에 오신 휴즈 교수를 만났소. 휴즈 교수를 모시러 나온 차가 있어 이 차로 공항으로 이동할 것이요. 한국에서의 환대에 고맙소.”
메키스 회장은 강시혁의 양복을 입고 마스크와 선그라스를 낀 채 로비로 내려왔다.
그 양옆에 휴즈 교수와 강시혁이 보호하고 내려왔다.
기자들이 흘깃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일단은 기자들과 유튜버들을 따돌리는데 성공한 것 같았다.
강시혁이 두 분을 벤츠차 뒷좌석에 태웠다.
그리고 옷을 벗으려고 하자 메키스씨가 손을 저었다.
“그대로 공항까지 갑시다!”
강시혁은 메키스 회장의 옷을 입고 운전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고이접어 조수석 옆에 놔두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운전을 했다.
차가 강변도로로 접어들었다.
유명한 사람이 되면 사생활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키스 회장이 선그라스를 벗어 강시혁에게 돌려주었다.
강시혁이 선그라스를 끼자 메키스 회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선그라스가 아주 잘 어울리는 젊은이군!”
강시혁은 운전하고 가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다.
메키스 회장이 투자의 귀재인 것은 알겠지만 왜 그렇게 기자들이 몰려드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결국 궁금해서 룸미러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기자들이 왜 그렇게 몰려온 겁니까?”
메키스 회장 대신에 휴즈 교수가 말했다.
“어디에 투자하면 좋은지를 물으러 왔겠지. 메키스 회장이 이런 곳에 투자하라고 했다더라하면 그 주식은 당장 올라가겠지.”
“그, 그런가요?”
“올라가지 않을 주식도 메키스 회장이 이야기하면 너도나도 사니까 진짜 그 주식은 올라가겠지. 메키스 회장! 안 그런가?”
이 말에 메키스 회장도 빙그레 웃었다.
강시혁은 정말 메키스 회장을 만난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고 싶었다.
어떤 주식이 올라갈 것 같으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만 두었다. 자기는 주식에 투자할 종자돈도 없기 때문이었다.
휴즈 교수가 또 말했다.
“미스터 강. 이 메키스 회장과 점심을 같이 하려면 1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소. 그만큼 메키스 회장의 말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지.”
“에효, 저는 100만 달러는커녕 천 달러도 없어 같이 식사 못하겠네요.”
이 말에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