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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86화 (86/199)

86화 예일대 교수 (3)

(86)

강시혁은 두 분 어르신을 태우고 송추로 향했다.

길은 좋았지만 산세는 험했다. 2차선 도로인 산길을 계속 달렸다.

휴즈 교수는 창밖을 내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 근방에 이런 계곡이 있다니!”

마침내 갈비집에 도착했다.

휴즈 교수는 갈비집 규모에 놀랐다. 강시혁도 놀랐다. 식당이 아니라 무슨 회사 건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람이 많았다.

“호, 이런 곳에서 이렇게 장사가 되는 것 같군요.”

이 갈비집은 장사가 잘되는지 본관과 신관이 있었다.

일행은 박 변호사 아버지의 안내로 신관으로 갔다.

손님이 많은 것을 보고 강시혁은 용산에 있는 삼방그룹 영빈관도 이런 갈비집을 하면 장사가 잘될 것으로 보았다.

[삼방그룹 영빈관을 갈비집으로 하면 돈 쓸어 담겠는데? 나를 지배인 시켜주고 하면 잘되겠는데? 아니면 거기는 마당도 넓고 잔디도 깔려있어 펫카페도 잘될 거야. 그렇게 되면 아마 서울에 사는 펫팸족은 다 몰려올걸? ]

이런 생각을 하다가 속으로 픽 웃었다.

[재벌기업이 뭐가 아쉬워 갈비집이나 팻카페를 하겠어. 그런 소리했다가는 회장이 너 어디 아프냐고 하겠지. 그리고는 영빈관에서 당장 나가라고 하겠지. ]

강시혁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두 분 식사하십쇼. 저는 홀에서 따로 갈비탕이나 한 그릇 먹겠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같이 먹세!“

그러면서 박 변호사 아버지는 강시혁의 손을 잡아끌었다.

갈비가 나왔다.

고기 굽는 것은 강시혁이 하려고 했지만 종업원이 와서 해주었다.

종업원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고기를 뒤집어가며 잘도 구웠다

고기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지글지글 익어갔다.

강시혁은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두 분 어르신이 계신데 먼저 고기를 집을 수는 없었다.

휴즈 교수가 말했다.

“이보게 닥터 박! 이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를 맡다보니 일본인 교수 와다나베가 생각나는군.”

“아, 마케팅 강의를 하던 키 작은 친구 말이지?”

“언젠가 내가 이 친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자네는 교수이지만 젊은 교수들 강의 청강도 자주했지. 자네야 말로 학문을 탐구하는 진정한 학자네.”

“그 친구가 마케팅 강의를 할 때 이런 소리를 하더군. 음식이라는 상품을 팔 때는 맛도 중요하지만 풍기는 냄새와 지글거리는 소리도 함께 팔아야 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때 내가 무릎을 쳤지. 바로 그거라고.”

강시혁도 옆에서 듣고 있다가 무릎을 쳤다.

[뭐? 음식을 팔려면 맛도 중요하지만 지글거리는 소리와 냄새도 팔라고? 마케팅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네. 맞아 훌륭한 경영자가 되려면 경영학을 배워야 해.]

이번엔 박 변호사 아버지가 말했다.

“와다나베가 재미있는 친구야. 그 친구가 쓴 마케팅 전략이란 책을 읽어보았는데 아주 훌륭하더군. 그런데 퇴직하고 이제 일본으로 돌아갔나?”

“시카고에 있는 아들 집으로 간다고 했는데 그 이후는 내가 잘 모르겠어. 마케팅을 강의하지만 정작 자기는 사회성이 좀 떨어지든 친구였지.”

“그 친구가 한국을 비판한 책도 출판해 내가 싫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맞는 것 같더군.”

“뭐라고 한국을 비판했는데?“

“한국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가 이제 끝났다고 책에 썼어.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빈부 격차가 심해 하끼다메(쓰레기 더미) 위에 앉은 쓰루(鶴: 학)가 나올 수가 없다고 했네.“

이 말을 듣고 휴즈 교수가 강시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휴즈 교수를 태우고 올 때 한국은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도 일본인이 그런 소리를 한건 기분이 나빴다.

우리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상관이 없지만 이웃나라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놀리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었다.

[쪽발이 새끼들! 자기들이나 잘 하지!]

휴즈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 해야겠군. 자, 고기들이나 먹읍시다.”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 아버지는 인삼주를 시켰지만 강시혁에게는 따라주지 않았다.

“강 반장은 운전하기 때문에 내가 술잔을 안 주는 거요.”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운전대 잡으면 음료수도 제대로 안마십니다.”

“음료수? 그럼 쥬스나 콜라같은 것도 안 마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술은 사고와 직결되어 그렇지만 음료수를 왜 안마시나? 거 참 이상한 친구군!”

“음료수를 마시면 운전 중 오줌이 마렵기 때문입니다.”

휴즈 교수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훌륭하네. 역시 미스터 강은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이야.”

박 변호사 아버지도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젊은이만 보면 좋다오. 생기가 발랄해 막 에너지가 솟아나오는 친구 같아. 앞으로 삼방그룹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을 사람이 될 것이요. 두고 보라고!”

휴즈 교수도 웃으며 말했다.

“운은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쪽으로 기울게 되지. 젊은이! 희망을 가지시게.”

“가, 감사합니다.”

고기를 굽는 종업원은 세 사람이 영어로만 말을 하자 자꾸 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중 강시혁의 얼굴을 더 많이 쳐다보았다.

종업원이 구워진 고기를 강시혁의 접시에 많이 올려주었다.

고기는 정말 맛이 있었다.

강시혁은 마음 같아서는 고기를 막 먹겠는데 두 어르신 앞에서 조심이 갔다. 운전사에 불과한 자기를 합석시켜준 것도 고마운데 고기를 먼저 날름거리며 먹으면 속으로 욕을 하지 않겠는가.

한참 먹다가 두 분이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했다.

“맛은 있는데 더 이상은 못 먹겠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라 먹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박 변호사 아버지가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이 고기를 다 먹겠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부담이 되는군. 강 반장! 자네나 실컷 먹고 가시게.”

강시혁이 신나게 입을 놀리며 그 많은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게 아니라 흡입에 가까웠다.

강시혁은 자기도 언젠가 대전에 계신 부모님을 이곳에 한번 모시리라 마음먹었다.

후식까지 먹고 나서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유원지 부근이라 그런지 커피숍도 대형이었다. 휴즈 교수가 카페의 규모를 보고 놀라는 것 같았다.

“여기는 갈비집도 대형이고 커피숍도 대형이네. 한국은 다 이런가?”

“땅값 비싼 시내는 아니네.”

두 분은 커피를 마시며 미국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강시혁은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카페 앞에 있는 냇가를 거닐어보았다.

두 분이 가신다고 하였다.

강시혁은 얼른 또 벤츠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강시혁은 박 변호사 아버지의 전원주택으로 왔다.

두 분은 서로 얼싸안고 이별을 서러워했다. 강시혁은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휴즈 교수가 차에 올랐다. 강시혁이 시동을 걸고 서서히 차를 움직였다.

박 변호사 아버지는 등 굽은 자세로 서서 손을 흔들었다. 휴즈 교수도 손을 흔들었다.

차가 골목을 빠져나오자 휴즈 교수가 혼자 말을 했다.

“닥터 박이 혼자서도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군.”

차는 서울을 향해 달렸다,

차가 동부 간선도로로 접어들자 강시혁은 속도를 냈다.

휴즈 교수는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차가 장안교 부근쯤에 이르자 휴즈 교수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 중랑천을 바라보았다.

강시혁이 룸미러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저, 교수님.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질문? 말해 보시게.”

“예일대 MBA과정은 학부에서 꼭 경영학을 전공 안했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맞아요. 시험점수와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실무경력이 있으면 더 좋고.”

“경쟁율이 세죠?”

“아이비 리그니까 경쟁률이야 높겠지. 왜요? 미스터 강도 유학 오려고?”

“에효, 뜻은 있어도 저는 못합니다. 유학을 가려면 저같이 가난한 사람은 어렵습니다. 학비도 만만치 않고 생활비도 많이 들어 우리는 감당이 안 됩니다. 금수저나 가능하겠죠.”

“흠. 한국은 빈부차이가 심하다더니 그런 그늘이 있었군.”

“하지만 경영대학원의 MBA과정은 참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갈비집에서 말한 마케팅 이야기도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MBA과정이 본래 일반적인 대학원 과정과는 달라요. 실제상황에 적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수업이라 흥미가 많이 있어요.”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면 회사의 대리나 과장 같은 중간관리자들도 많이 들어오겠네요.”

“당연하지. 전문 경영인을 목표로 하는 곳이니까 업무능력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요.”

“아무튼 마케팅은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케팅뿐인가? 인사관리나 조직관리, 재무관리, 회계등도 다 재미 있어요. 실무에 바로 접하는 내용들을 교육 하니까. 그런데 장학금을 못받으면 학비는 좀 들어요.”

“그렇군요.”

[예일대 MBA과정에 입학하려면 집안에 돈도 돈이지만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가 들어갈 수 있겠군. 에효, 하지만 금생에서는 나는 틀렸네. 다음 생에나 혹시 기회가 닿는다면 몰라도!]

강시혁은 휴즈 교수를 하얏트 호텔에 내려주고 바로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갈비를 많이 먹고 와서 그런지 저녁 생각도 없었다.

넷플릭스에서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시 며칠이 흘렀다.

아직 여권은 나오지 않았다. 여권이 언제 나오냐고 구청에 물어볼까하다가 그만두었다.

문화재단에서 나오는 잡지 발송업무를 도와주고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영빈관 관리실에 앉아서 인터넷을 보고 있는데 김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다니는 김 기사는 오래간만에 전화를 한 것 같았다.

“강 반장! 나요.”

“옙! 과장님!”

“저녁에 상무님 모셔드리고 영빈관 놀러갈게.”

“예, 언제든지 오십쇼.”

그런데 오후 7시가 되도록 김기 사가 오지 않았다.

“온다고 하고 안 오네? 나하고 약속한 걸 잊었나?”

김 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못 가겠는 걸? 지금 이영진 상무가 음악회에 참석하셔서 대기 중이야.”

“그렇군요. 늦게라도 오세요.”

“여기 음악회가 8시에 끝난다고 하니까 그럼 내가 9시까지 가지. 저녁은 먼저 먹도록 하게.”

“같이 먹어야죠. 과장님은 지금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릴 것이 아닙니까?”

“햄버거 하나 사먹지 뭐.”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만나시죠. 맥주 한 병 사다놓겠습니다.”

“내가 막걸리 한 병을 사가지고 갈게.”

전화를 끊고 보니 김 기사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 과장 대우를 받는 기사이지만 모시고 다니는 분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니 어째 자기의 인생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 기사도 좋은 인생은 아니군. 남 음악회 구경하는 동안 자기는 주차장에서 대기를 해야 하니 말이야. 회사 차 기사도 적성에 맞아야지 아무나 못하겠어.]

그런데 김 기사가 밤 9시라도 오겠다니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강시혁이 저녁까지 먹고 기타를 치고 있는데 김 기사가 왔다.

손에 검은 봉지가 들린걸 보니 막걸리를 사온 것 같았다.

“오늘 피곤하셨죠? 이리 앉으세요.”

그러면서 강시혁이 의자를 내어주었다.

김 기사가 막걸리가 든 비닐봉지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이 막걸리 한잔하면 싹 풀리지.”

강시혁은 유난히 튀어나온 김 기사의 뱃살을 보았다. 전보다 더 볼록 올라온 것 같았다.

막걸리로 스트레스를 풀어 그런 것 아닌가 했다.

운전만하다가 기사 대기실에서 낮잠만 자고 막걸리나 마셔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강시혁이 김 기사가 들고 온 봉지를 열어보았다.

막걸리 두병과 오징어포, 땅콩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준비를 철저하게 하시고 오셨네요. 안주까지 가지고 오시고요.”

“내가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자네하고 한잔하려고 왔네.”

“기분 나쁘다니요? 누구하고 싸웠습니까?”

그러면서 강시혁이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막걸리를 단숨에 비운 김 기사가 손 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회장님을 모시고 다니는 이사님이 그만두면 내가 그 자리로 가게 되어있네.”

“순서로 따지면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이 영감탱이가 촉탁이 1년 연장이 되었다니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나?”

“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그 영감탱이기 그러면 벌써 촉탁 3년차네. 혜택 받을 건 다 혜택 받고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하려는 생각이 분명하네. 지금 기사들 불만이 팽팽하네.”

강시혁은 김 기사가 회장 차를 맡게 되면 이영진 상무 차를 자기가 한번 맡아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계열사 사장 차 기사들이 또 난리일 것 같았다. 어디서 이상한 놈이 낙하산으로 들어오려고 하냐고 아우성 댈 것이 뻔했다.

이영진 상무 차 기사를 맡게 되면 한 계급 올라가는 건 물론 기사들 세계에서도 목에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회장님차 운전을 하게 되면 내 자리는 자네를 추천하려고 했었네.”

“아이고 저는 안 되겠지요. 다른 사장님 차 기사들도 많을 것 아닙니까? 저는 짬밥이 아직 애벌레 수준입니다.”

“듣자니 자네는 영어실력도 있다면서? 내가 밀어붙이면 되겠지 뭐.”

“아이고 무리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기사들 데모나 하면 어쩌시려고.“

사실 요즘은 이영진 상무 차 기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접었다. 지금 생활에 만족했다.

자기 개발을 하기엔 이 자리가 좋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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