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일본 출장 (2)
(83)
강시혁은 다음날 여권용 사진을 찍었다.
새로 맞춘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단정히 메고 찍었다. 사진은 당일 바로 나왔다.
여권 발급은 온라인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또, 아무 구청이나 발급 신청이 가능하다고 해서 용산 구청을 갈까 하였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주소 이전을 하지 않아 꺼림직 했다.
[수유리 원룸 주소로 나에 대한 우편물이 혹시 오지 않았을까? 예비군 훈련 통보라도 왔다면 주인아줌마가 전화라도 했을 텐데 그런 게 없네.]
그래서 강시혁은 오래간만에 원룸 주인 아줌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원룸에 살던 강시혁입니다.”
대뜸 아줌마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아, 1층에 살았던 총각이군. 왜 퇴거신고 안 해가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전화번호를 몰라 못했구먼!”
“내게 온 우편물이 많죠?”
“몰라요. 많이 왔겠지. 1층 앞에 메달아 놓은 신발주머니에 안 찾아간 우편물이 잔뜩 있으니 와서 보고 찾아가요.”
강시혁은 주소를 영빈관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대로 옮기면 그것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재벌의 창업자가 살던 집에 정직원도 아닌 잡급직 경비반장이 마음대로 주소를 옮겨놓으면 되겠는가?
그래서 이영진 상무에게 카톡이라도 보내어 주소를 영빈관으로 옮겨도 되느냐고 물어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괜히 그런 거 물어보았다가 이제까지 쌓아올린 이미지만 버리는 것 아닌가?]
강시혁은 일단 금산 아줌마와 상의해 보기로 했다.
낮에 직접 이영진 상무 댁을 방문했다. 낮에는 아줌마 혼자 있기 때문이었다.
가는 길에 무얼 사갈까 했는데 적당한 것이 없었다.
재벌 집에 있는 가정부라 집안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보지도 못한 열대과일도 냉장고에 가득한 집이었다.
금산 아줌마가 말만하면 벤츠차 김 기사가 알아서 척척 사왔다.
강시혁은 언젠가 보광동 쪽에서 호떡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
그래서 호떡을 사가지고 이영진 상무 댁으로 갔다.
오늘도 아줌마는 나훈아 노래를 틀어놓고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모!”
“삼촌 마침 잘 왔네. 저 소파 좀 치워줘. 청소 좀 하게.”
“호떡 하나 들고 하실래요? 호떡은 뜨거울 때 먹어야 좋아요.”
“웬 호떡은!“
재벌 집에서는 호떡이나 붕어빵 같은 서민적 음식은 오히려 먹기 힘들었다.
아줌마는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호떡이라 그런지 아주 맛있게 먹었다.
“호호. 호떡도 오래간만에 먹으니 맛있네. 옛날에는 이걸 마음껏 먹는 것이 꿈이었었는데.”
“저는 전에 수유리 원룸에 살 때 이거 많이 먹었어요. 집 입구에 호떡 파는 아저씨가 있었거든요. 어느 때는 밥 대신 먹었어요.”
“그래도 기운 쓰려면 밥을 먹어야겠지.”
“참, 오늘 저녁에 또 수유리 가봐야겠네. 참 귀찮기도 하네.”
“수유리를 왜가? 거기 애인이라도 있나?”
“그게 아니라 주소가 아직도 거기로 되어있어서요. 우편물 온 것 찾으러 가야돼요. 영빈관에 거주하고 있지만 주소를 거기로 할 수는 없잖아요.”
“거기가 왜 안 돼? 거기도 사람 사는 집인데!”
“창업 회장님이 사셨던 집인데 거기로 전입신고를 하면 불경죄에 해당하겠지요.”
“무슨 소리! 전에 거기 지하에 살던 가정부나 운전기사도 거기로 전입신고 했는데! 나는 아들집으로 주소가 되어있어 못했지만 거기 거주하면 거길 주소를 둬도 괜찮아.”
“정말입니까? 이영진 상무님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 영진 상무가 생긴 것은 음전하게 생겼어도 통이 커. 그래서 돌아가신 창업 회장님도 영진 상무를 장래 회장 감이라고 하셨잖아.”
강시혁은 수유리 원룸을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자기에게 온 우편물이라도 있으면 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수유리로 가는 도중에 이영진 상무에게 카톡을 보내보았다.
[강시혁입니다. 저는 상무님의 배려로 영빈관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소가 전 주소인 강북구로 되어있어 우편물 수령이나 예비군 훈련 등은 강북구에서 받아야 합니다. 제가 거주할 동안만이라도 임시 거주지를 영빈관으로 할 수 있는지 말씀 드려봅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강시혁이 수유리 원룸에 도착했다.
그동안 영빈관 같은 대 저택에 살아서 그런지 이 원룸 건물이 자기가 정말 살았던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낙후되어 있고 골목도 좁고 현관도 좁고 다 좁은 것 같았다.
이제는 돈을 줄 테니 와서 살라고 해도 못살 것 같았다.
강시혁이 1층 현관에 붙은 신발주머니를 보았다.
여기는 우편함이 따로 없어서 신발주머니를 활용했었다.
강시혁에게 온 우편물들이 있었다. 예비군 훈련 소집통지서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우편물은 모두 쓸데없는 것 들이었다 광고성 우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자기가 버려야 할 것 같아 우편물을 챙겼다.
주인아줌마를 만나서 인사라도 하고 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우편물을 챙겨가지고 오는 지하철 열차 안에서 카톡이 울렸다.
이영진 상무의 카톡이었다.
[주소 영빈관으로 옮겨도 됩니다. 난 한줄 알았는데.......]
그래서 바로 강시혁이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숙소를 옮기게 되면 즉시 퇴거신고 하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카톡 답장에 활짝 웃는 모습의 이모콘이라도 날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오너의 따님인 이영진 상무에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강시혁은 수유리에서 찾은 우편물을 모두 찢어서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바로 이태원 주민 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였다.
담당 공무원이 전입 주소를 보고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주민등록증 뒷면에 영빈관 주소가 기록되었다.
괜히 기분이 묘하였다. 회장 가족의 일원이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권 신청은 피곤해서 내일 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강시혁은 용산 구청 여권과를 방문했다.
여권용 사진과 주민등록증을 제출하고 여권 발급 신청을 하였다.
담당 공무원이 접수증을 주면서 여권이 나오는 기간은 추석 지나고 10일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그리고 알림 톡이 갈 거라고 했다.
강시혁은 자기 몸이 벌써 일본에 가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동창들이 공항 이야기나 비행기 탄 이야기를 하면 부러웠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강시혁은 문화재단 설운동 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강시혁입니다. 추석 연휴 빨간 날은 우리도 쉬죠?”
“왜, 나와서 일하려고요?”
“그게 아니라 고향 부모님 사시는 곳에 다녀오려고요.”
“참, 고향이 어디라고 그랬죠?”
“대전입니다.”
“빨간 날은 우리 문화재단 전 직원이 다 쉽니다. 그건 모든 회사가 그런데 당연한 걸 물어봅니까?”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절하기는 개뿔!]
추석 전날이 되었다.
강시혁은 새로 맞춘 양복을 입었다. 그리고 선 그라스까지 꼈다.
문화재단과 비서실에서 보내준 추석 선물을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드릴 봉투도 챙겼다.
강시혁은 영빈관의 모든 전기를 껐다.
그리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영빈관을 나섰다. 마침 영빈관 옆에 있는 청화아파트 쪽으로 빈 택시가 들어와 택시를 잡았다.
“서울 역으로 갑시다!”
전에 대학 나닐 때 강시혁은 대전에 가려면 꼭 천안까지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리고 천안에서 대전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그래야 비용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서울역에 가서 KTX를 타기로 했다.
강시혁은 서울역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양주도 한 병 샀다.
시바스리갈 12년산의 가격이 제일 적당해 이것으로 한 병 샀다.
명절 전이라 사람이 많아서 강시혁은 한 시간 이상 기다린 후 KTX를 탈수 있었다.
대전에 도착하였다.
오래간만에 와보는 고향이었다.
강시혁은 부모님이 살고계신 둔산동 샘머리 아파트 단지로 갔다. 자기가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였다.
엄마가 깜짝 놀랐다.
“우리 아들 왔구나!”
그러면서 엄마가 강시혁의 목을 와락 끌어 앉았다.
엄마한테서 금산 아줌마와 같은 냄새가 났다.
“하하. 잘 계셨어요?”
“그런데 얼굴은 좋아졌구나! 양복도 새로 해 입고! 지금 다니는 직장은 괜찮은 모양이지?”
“예, 괜찮아요.”
“걱정 많이 했는데 잘 있다니 다행이다.”
“아버진 어디 가셨어요?"
“회덕 사는 친구한테 놀러갔어. 곧 오실거야.”
엄마는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시혁이가 왔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저녁에 아버지도 오셔서 반가워했다.
“너,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얼굴은 괜찮다. 거기 사장님이 잘해주시는 것 같구나. 무슨 회사라고 했지?”
“삼방 문화재단 소속이에요.”
“삼방 문화재단? 뭐하는 회사인데? 출판산가?”
“아녜요. 삼방그룹 소속 문화재단이에요.”
“뭐라고? 삼방그룹?”
아버지와 엄마는 동시에 놀라며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정규직원은 아니고요. 잡급직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서 하는 일이 뭔데?”
엄마가 아버지에게 핀잔을 주었다.
“식사하면서 이야기해요. 시혁이가 와서 삼겹살 사왔어요.”
“내가 먹다 남은 소주 냉장고 안에 있지?”
“시혁이가 술 사왔어요. 양주 한 병 사왔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받았다는 명절 선물도 잔뜩 가져왔네요. 당신 먹고 기운 내라고 정관장 인삼도 가져왔어요.”
“큰 회사라 그런지 이런 선물도 있구나.”
강시혁이 아버지에게 자기 명함을 한 장 드렸다. 회사이름은 재단법인 삼방 문화재단으로 되어있고 삼방그룹 로고가 들어간 명함이었다.
다행히 경비반장이라는 직함은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는 열심히 명함을 쳐다보았다.
만일 명함에 경비반장이라는 직함이 들어갔었다면 아버지는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대학 공부까지 시켰더니 고작 경비원으로 들어갔나 라고 했을 것이다.
오래간만에 가족 셋이 앉아 삼겹살을 먹었다.
양주병을 땄다. 아버진 기분이 좋아서 벙긋벙긋하였다.
“햐, 아들 덕에 양주를 마셔보네!”
“양주 중에 제일 싼 거예요. 박통이 김재규 총에 맞았을 때 마셨던 술이 이 술이에요.”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잔을 내밀었다.
“어디, 그 귀한 술 나도 맛 좀 보자!”
“여기 사는 이 아파트는 가격이 얼마나 해요?”
“글쎄다. 한 3억 5천 할까?”
강시혁은 자기가 이런 집을 장만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신용보증위원회 빚을 갚는데 5년, 그리고 한 달에 최대한 절약하여 월 200만원씩을 저축한다면 일 년에 2,400만원, 그러면 이 집을 사려면 15년은 모아야 하겠군. 그럼 20년은 지나야 이 집을 사겠네?]
강시혁은 갑자기 우울해졌다.
삼방 문화재단에 들어갔다고 부모님이 좋아하지만 자기는 즐겁지가 않았다.
서울도 아닌 지방도시의 낡은 이집을 사는데도 평생을 바쳐야만 한다는 것이 우울하게 만든 것이었다.
더구나 20년 후면 자기 나이도 50대 중반으로 기업에서 나와야 할 나이였다.
[비서실 임창영 과장은 얼마나 걸릴까?]
임창영 과장이라면 10년도 못가서 이런 집은 장만할 것으로 보았다.
거기다가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니 중산층일 것이다. 부모가 약간 도와준다면 5년이면 장만할 것으로 보았다.
은행 융자라도 받는다면 3년 안에도 장만하리라.
강시혁은 허탈감이 들었다.
삼방그룹 일원이 되었다고 좋아했지만 월급만 받아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인터넷 뉴스에서 삼방그룹 CEO인 삼방전자 사장의 연봉이 35억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삼방전자 사장은 일 년이면 이런 집을 10채는 사겠네?]
강시혁은 자기도 노력해 삼방전자 사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는 공채직원이 아니라서 사장이 되는 코스를 탈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부모님 앞에서 한숨을 쉴 수도 없었다.
술만 마셨다.
아버지도 이런 집을 장만하려고 평생 사료회사에서 일했지만 장만하지 못했다.
지금 전세에서 살고 있었다.
강시혁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집 전세금은 얼마죠?”
“2억이야. 융자를 받는다면 이런 집을 살수가 있겠지. 하지만 나 같은 경우 퇴직을 했으니 이자 감당이 안 되겠지. 또 은행에서도 직업이 없다면 융자는 안 해주겠지.”
그러면서 아버지도 옅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는 전셋집이 아닌 온전한 자기 집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강시혁이 자기가 쓰던 방에 들어갔다.
책상도 그대로 있었고 고장 난 컴퓨터도 그대로 있었다. 보던 책들도 그대로 있었다.
달라진 건 이 방을 안 쓰니까 엄마가 쌀이나 개봉하지 않은 휴지 묶음이나 빈 택배상자를 몇 개 갖다 놓은 것뿐이었다.
강시혁은 오래간만에 자기 방 침대에 누웠다. 잠이 솔솔 왔다.
엄마가 전이라도 부치는지 기름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다음날은 추석날 아침이었다.
오래간만에 아버지와 함께 조상에게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전에는 조상 원망도 많이 했었다. 어째 가난만 물려준 조상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화를 냈었다.
“이놈아! 건강하게 태어난 것도 다 복이여!“
강시혁은 오늘 조상에 절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건강하니까 삼방그룹 영빈관 지킴이라도 하겠지. 그러니까 일본도 가게 생기지 않았나.]
강시혁은 오늘 조상에게 투덜대지 않고 아주 공손히 술잔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