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일본 출장 (1)
(82)
강시혁이 여유를 부리는 것은 일종의 불안 때문이었다.
일부러 여유를 부리는 척 해야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 명의 양아치들은 이영남에게 뭔가 집요하게 설득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놈들이 주먹을 들었다 올렸다 할 때마다 이영남이 흠칫, 흠칫, 하는 태도를 보였다. 과거에 이놈들에게 많이 맞아봤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이놈들도 막상 이영남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강시혁의 존재 때문이었다.
체격도 좋고 가슴까지 벌어진 건장한 사내가 선 그라스를 끼고 이쪽을 향해 미소를 짓는 것이 꺼림직 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강시혁대로 생각이 있었다.
[저놈들이 이영남을 폭행하면 내가 같이 싸울 필요는 없겠지. 바로 112신고하고 나는 옆에서 증인 노릇이나 해주면 되겠지. 또 쌍방고소까지 번진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소송까지 간다면 서초동 박 변호사가 자문을 해주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하니 정말로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영남은 막강한 삼방그룹의 아들이다, 삼방그룹에는 법무팀도 있고 사내변호사도 있고 경찰간부 출신들도 있다.
이런 양아치들이 이영남을 건들기만 하면 바로 잡아넣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영남은 회사에 알릴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렇게 되면 또 이건용 회장이 역정을 내고 이영남에게 이상한 놈들하고 어울려 다닌다고 혼만 낼 것 같아서였다.
이건용 회장은 아들이 맞았다고 흥분하여 야구방망이를 들고 때린 놈을 잡으러 다닐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영남은 혼자 고민하다가 마음씨 좋은 형 강시혁을 생각해 낸 것 같았다.
강시혁은 돈가스를 먹고 나서 스마트 폰만 보았다.
이영남과 양아치들은 이직 끝낼 기색이 없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심심한 것 같아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이 토요일이지? 그렇다면 변상철이 이놈은 서울에 올라와 있겠는데?]
강시혁이 후배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너, 서울에 올라와 있지?”
“어, 올라왔어. 나 지금 친구 클럽에 왔어. 신용카드 찾으러 왔어.”
“신용카드를 찾아? 신용카드를 은행에 가서 찾아야지 왜 친구 클럽에 가서 찾아?”
“지난번에 신용카드를 잊어버렸었어. 그래서 재발급 받았는데 친구가 내 신용카드를 주웠다고 해서.... 지난번 클럽에 왔을 때 술값 계산하고 빠트렸던 것 같아.”
“점심 안 먹었으면 이리 와라. 클럽 근처에 있는 경양식집에 있다.”
“그래? 갈게. 그럼.”
얼마 후 변상철이 왔다.
이영남의 친구들은 스파케티를 다 먹고 이번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변상철이 나타나자 이쪽을 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다.
변상철이 물었다.
“형, 왜 여기 혼자 앉아있어?”
“앉아라. 돈가스 하나 시켜라.”
“밥은 됐고 음료수나 할까? 그런데 여기서 누구 기다리는 건가?”
“아니야. 저쪽을 봐라. 리틀 브라운이 웬 양아치 같은 놈들하고 같이 있는 게 보이지?”
“음? 정말 그렇군.”
“저놈들이 지금 자꾸 리틀 브라운에게 뭔가 요구를 하는 것 같아. 그래서 혹시 불상사라도 있을까 해서 여기 앉아있는 거야.”
“한눈에 봐도 생긴 꼬락서니가 양아치 같은 놈들이네.”
이영남의 친구들이 또 강시혁을 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고 한 사람이 더 늘어 조심을 하는 것 같았다. 이영남의 머리를 톡톡 때리는 것도 멈추었다.
친구들이 말하는 소리가 또 들렸다.
“야, 니가 우리 못 믿으면 현금 보관증 써줄게!”
이 소리를 들은 변상철이 웃으며 말했다.
“저 자식들이 지금 리틀 브라운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것 같네.”
“이제 그만 가자고 할까? 우리가 온지가 꽤 됐거든.”
“형은 여기 가만히 있어. 무게만 잡고 있어. 내가 가서 가자고 할 테니까.”
“그냥 가자고 하지 말고 오늘 가기로 한 서울 지방경찰청 박 총경 상가 댁에 빨리 가야한다고 해.”
“낄낄. 형도 이태원 바닥에서 놀더니 사기꾼이 다 되었네.”
변상철이 일어나 이영남이 앉아있는 자리로 왔다.
변상철이도 경찰관을 지망하고 있는 사람이라 체격이 좋았다.
변상철이 오자 양아치들도 다소 긴장하는 것 같았다.
변상철이 양아치들을 쳐다보며 거수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말씀들 나누는데 미안합니다.”
“예, 무슨 일입니까?”
변상철은 양아치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이영남에게 말했다.
“리틀 브라운! 저기 앉아계신 큰 형님이 찾네. 이제 상가 집에 가시자고 하네. 오늘 서울 지방경찰청 박 총경 부친 장례식장에 가기로 하지 않았나?”
이영남도 얼른 말귀를 알아들었다.
“아, 예. 가야지요.”
양아치들은 변상철을 경찰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처음 올 때 거수경례를 붙인 것도 그렇고 지금 하는 말도 경찰청 운운했기 때문이었다.
이영남이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짓자 가운데 앉은 양아치가 말했다. 팔뚝 굵고 암팡지게 생긴 놈이었다.
“그럼 가봐라. 우리가 한 말은 잘 생각해 봐라.”
“투자는 못해. 나갈 때 오늘 여기 식대는 내가 계산하고 갈게.”
양아치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주먹을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시혁은 이때까지도 선 그라스를 낀 채 이쪽을 바라보며 간간히 미소만 날려주었다.
너희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강시혁과 변상철이 이영남을 데리고 경양식집을 나왔다.
변상철이 이영남에게 물었다.
“리틀 브라운! 방금 양아치 같은 놈들이 리틀 브라운에게 뭘 투자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클럽을 인수하는데 나보고 투자하랍니다. 그래서 못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저놈들이 투자를 강요하거나 공갈을 치면 공갈 협박으로 잡아넣을 수가 있어. 앞으로 또 그러면 바로 112 신고해.“
“그러면 이 이태원 바닥에서 보복 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괜히 밤에 가는데 뒤통수나 봐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정말 빨리 경찰관 하고 싶네. 저런 놈들 잡아넣게!”
이날은 세 명이 영빈관 지하에 가서 놀았다.
이곳으로 저녁까지 시켜먹으며 놀았다.
이영남은 드럼을 치고 강시혁은 기타를 쳤고 변상철은 춤을 추었다.
일요일은 강시혁이 전기기능사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강시혁은 아침에 실습시험을 보러갈 공구들을 챙겼다.
전동 드릴과 와이어 스트리퍼, 수평자, 파이프커터, 같은 것들을 챙겼다.
시험장에서 긴장한 강시혁의 모습을 보고 같은 학원생이 말을 붙였다.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다는 아저씨였다.
“강시혁 씨! 무얼 그렇게 긴장해요? 강시혁 씨가 떨어지면 노량진 학원은 문 닫아야지요.”
“아저씨도 꼭 합격하세요.”
“난 아무래도 한번 시험을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을요. 이번에 합격하시고 빨리 재취업 하셔야죠.”
강시혁은 최선을 다 해서 시험을 보았다.
이제 합격여부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끝내니 마음은 홀가분하였다. 짐을 하나 덜어낸 기분이었다.
강시혁은 시험장에서 돌아오다가 양복점엘 들렸다.
오늘이 양복을 찾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양복을 찾아서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새로 맞춘 양복을 입고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역시 전에 입었던 싸구려 기성복과는 달랐다.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넥타이도 메고 선 그라스도 껴보았다.
“히히. 머리만 짧게 깎으면 완전히 북한 김정은 경호원 같겠는데?”
강시혁은 머리가 긴 것 같아서 머리를 깎으러 헤어숍으로 갔다.
“짧게 쳐주세요.”
헤어숍 미용사는 강시혁의 벌어진 어깨와 문신을 보고 조폭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짧게 깎아달라는 소리에 깍두기머리 비슷하게 깎아 놓았다.
강시혁이 영빈관에 돌아와 달력을 보았다. 추석이 며칠 안 남았다.
이번 추석 때는 부모님이 계신 대전에 한번 내려가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동안 신불자가 되어 몇 년간 대전엘 가지 않았었다. 이제는 선물이라도 들고 내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간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시혁이구나!”
엄마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추석에 내려갈게요.”
“그래 와라. 네가 없어서 그동안 아버지 혼자 차례를 지내셨다.”
“아버지는 건강하시죠?”
“건강은 한데 일이 없어 생병 나게 생겼다.”
“공공근로 나가신다면서요?”
“거기도 끝났어. 거기는 오래 일할 수가 없나봐. 그래서 추석 지나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하더라.”
강시혁은 부모님께 미안했다.
부모님 용돈이라도 부쳐드려야 하는데 자기는 현재 그러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물이라도 많이 사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다시 한주가 시작되었다.
문화재단 사무국 설운동 대리가 전화를 했다.
[업무일지 트집인가?]
“강 반장이요? 설운동 대리입니다.”
“넵 강시혁입니다.“
“문화재단 전 직원에게 나누어주는 추석선물이 오늘 발송될 겁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잡급직도 나오는군요. 감사합니다.”
이번엔 비서실 임창영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회사에서 나누어주는 추석 선물이 강 반장에게 갈 겁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강 반장은 비서실 소속은 아니지만 내가 특별히 배정해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오후에 추석 선물이 도착하였다.
문화재단에서 보내준 것은 참기름과 햄 같은 것이 들어있는 선물세트였다. 비서실에서 보내준 것은 정관장 인삼세트였다.
“이거 대전에 가져가면 엄마가 좋아하시겠는데?”
강시혁은 부모님께 가져갈 선물은 이것으로 하고 용돈을 좀 드리고 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영진 상무가 전화를 했다.
강시혁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강시혁입니다.”
“이영진 상무입니다.“
“지난번엔 너무 많은 돈을 주셔서 양복은 잘 맞춰 입었습니다. 앞으로 영빈관에서 개최되는 행사에는 꼭 정장을 하고 손님들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맞추셨군요.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넵. 말씀하십시오.”
“여권을 만들어놓은 것이 있으시죠?”
“여권요? 아직 없는데요.”
“그럼 우선 여권용 사진부터 찍어 놓으세요.”
“여권용 사진을요?”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왜 자기 같은 잡급직 경비 반장에게 여권용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가슴이 뛰었다. 해외여행이라도 시켜주려고 그러는가 하였다.
그러나 건방지게 그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예. 여권용 사진은 새로 양복을 맞추었다니 그걸 입고 찍으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권을 만드는 자세한 안내는 비서실 직원의 전화가 갈 겁니다.“
“옙, 알겠습니다. 상무님!”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괜히 기분이 좋았다.
우수 종업원 포상 차원에서 3박 4일 중국 여행이라도 시켜주려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중소기업 다닐 때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비서실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강시혁 반장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디시죠?”
“저는 삼방그룹 비서실 유길준 대리라고 합니다. 상무님께서 여권발급 안내와 비자를 내 주라고 하셔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예. 고맙습니다.”
“지금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어디로 되어있습니까?”
“지금 용산....”
강시혁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영빈관이 있는 용산이 아니라 아직도 원룸이 있었던 강북구 수유동으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새로 취업이 되었다는 것에 들떠 그동안 전입신고를 안했었다. 또 영빈관을 자기 주소로 하기가 괜히 망설여졌었다.
“용산구에 거주하시면 여권용 사진을 들고 용산 구청 여권과에 가시면 됩니다. 발급 수수료는 저희가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저, 실은 사는 곳은 용산구고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강북구인데요.”
“그럼 강북구청에 가서 해야 되지만 요즘은 거주지가 아니어도 다 됩니다. 가까운 구청에 가셔서 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안내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권이 나오면 저희에게 보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권은 추석이 끼어서 금방 안 나오겠네요. 길면 2주까지도 걸립니다.”
“알겠습니다. 여권 나오면 바로 유 대리님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여권은 비서실에서 보관하는가요?”
“아닙니다. 일본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일본 비자요?”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중국 여행이 아닌 일본 여행이라도 보내주는 줄 알았다.
해외여행을 못해본 자기로서는 중국도 좋고 일본도 좋고 다 좋았다.
직원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저희가 상무님께 지시받기로는 강 반장님이 일본 오사카 출장을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오사카요?“
“예. 오사카 남부에 있는 다다오카조(忠岡町) 마사키(正木) 미술관의 건물관리와 경비 현황을 견학하러 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 다다오 뭐요?”
“다다오카조 마사키 미술관입니다.”
강시혁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