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비밀 경호원 (1)
(79)
강시혁은 심은혜와 이렇다 할 러브 스토리는 없었다.
헤어진 와이프 심은혜는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만났는데 당시 숙소의 방향이 같았다.
처음엔 사무적으로 만나다가 나중엔 호프집에도 가고 노래방에도 가게 되었다.
심은혜는 2년제 대학을 나왔으므로 4년제 대학을 나온 강시혁을 좋아했다.
더구나 그녀는 강시혁이 인서울 대학 출신이라 회사에서 잘 올라갈 줄 알았다.
강시혁이 볼 때 심은혜가 밉상은 아니었고 자기에게 잘 대해주어 호감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강시혁은 만취한 심은혜를 숙소까지 부축하고 갔다가 둘은 넘지 못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래서 급하게 결혼까지 이어진 것이다.
서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진한 밀당 같은 것은 해보지 못했다.
플라토닉 러브스토리 같은 것은 더욱 없었다.
그래도 자식 낳고 둘이 벌어 저축도 하고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면 되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고 월급이 밀리자 부부싸움이 잦았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것은 빚을 얻어 건대 앞에 분식집을 차린 것 때문이었다.
분식집을 해서 떼돈 벌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고 가게를 내놨지만 팔리지가 않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었다,
결국 심은혜와 대판 싸우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나빠 위기를 맞았었다.
분식집을 하면서 집에 자주 들어가질 못하자 심은혜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그래도 강시혁은 결혼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심은혜는 냉담했다.
또 장모도 이혼을 부추겼다. 자식도 없고 혼인신고도 안했으니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새 출발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강시혁은 직장 잃고 여자 잃고 신불자가 되어 대리 운전기사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삼방그룹 영빈관 지킴이로 들어왔다. 이제 조금 안정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감히 그룹 총수의 딸만 보면 가슴이 설레고 마음이 움직인다니 말이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머슴 주제에 분수를 모르는 놈이 아닌가!
그렇지만 강시혁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운 30대 초반의 여자이고 나는 아주 건강한 3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신분이 하늘과 땅 사이지만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를 태우고 다시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이영진 상무가 말을 걸었다.
“어제 삼방전자 사장님이 상서원을 이용했지요?”
“예, 중국인 손님들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럼 또 강 반장님이 서빙을 했겠군요.”
“그렇습니다.”
“영어로 접대를 하셨겠네요.”
“아닙니다. 삼방전자에서 중국어를 잘하는 차장님 한분이 나오셔서 통역을 했습니다. 저는 찻잔만 날랐습니다.”
“가시다가 휴게소 잠깐 들렸으면 합니다. 화장실도 들리고 음료수도 하나 마시고 가죠.”
강시혁은 고속도로 죽전 휴게소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주차 후 강시혁이 얼른 뒷문을 열어주었다.
벤츠차에서 내리는 아름다운 여성을 건장하게 생긴 운전기사가 문까지 열어주자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이영진 상무가 화장실로 갔다.
강시혁은 사람 많은 곳에서 이영진 상무를 보호하기위해 두어 발자국 뒤에서 밀착 경호를 해주었다.
휴게실 안엔 사람이 많았다.
화장실에서 나온 이영진 상무를 보고 강시혁이 말했다.
“안엔 사람이 많네요. 밖에 의자가 비어 있으니 여기 앉아계시면 제가 음료수 두병을 사오겠습니다.“
“그럼 캔에 든 포도 쥬스를 부탁할까요?”
이영진 상무가 의자에 앉자 강시혁은 그 옆의 빈 의자에 자기 웃옷을 벗어 올려놓았다.
“제 옷을 벗어서 의자위에 올려 놓았으니 다른 사람이 앉지 않을 겁니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웃옷을 벗은 강시혁의 가슴을 보았다.
원래 좋은 체격에 바벨 운동까지 하여 가슴이 많이 나온 상태였다. 그리고 왼쪽 팔에 살짝 비쳐진 문신도 보았다.
강시혁이 휴게소에 안에 들어가 캔 음료와 캔 커피 등을 샀다.
사람이 많아서 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음료수를 사가지고 오자 이영진 상무가 앉은 테이블에 웬 양아치 같은 두 놈이 앉아서 닭 꼬치와 오뎅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벌써 휴지조각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었다.
강시혁이 음료수를 이영진 상무에 주고 나서 앞에 남자에게 말했다.
“여기는 우리 일행이 맡아 논 자리요.”
그러면서 어깨에 힘을 주고 팔을 걷어 문신을 보여주었다.
남자 둘이 약간 쪼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바로 반발했다.
“의자가 남아서 앉았는데 어딜 가란 말이요?”
“지금 코로나가 아직도 유행인데 떨어져 앉읍시다. 옆 테이블도 비어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양손을 허리에 얹고 가슴을 편 채 눈을 부라리며 인상을 팍팍 썼다.
수틀리면 발길로 걷어버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에 양아치 같은 두 놈은 강시혁의 위세에 눌린 듯하였다.
더구나 그의 문신과 팔뚝의 근육은 상대를 겁주기에 딱 맞았다.
“에이, 씨!“
두 사람은 옆의 빈 테이블로 갔다.
옆에 빈 테이블이 있는데 굳이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은 자기들도 잘못이 있기 때문에 옮겨주었다. 아마 이영진 상무가 너무 아름답게 생겨서 그런 것 같았다.
강시혁이 얼른 테이블 위에 있는 휴지를 전부 주워 휴지통에 넣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음료수를 먹는 동안 의자에 앉지 않았다.
주종(主從) 간에 같이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 불경스러운 듯 앉지 않았다. 서서 음료수를 마셨다.
그리고 옆에서 보디가드처럼 서 있었다.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의자에 앉으세요.”
“저는 서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영진 상무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이 전에 보안회사에서 파견 나왔던 경호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호원은 스포츠머리에 아주 단단하게 생긴 유도 유단자지만 얼굴이 너무 무서웠다.
말도 아주 거칠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자주했다. 비리도 있었다.
결국 해외 출장을 가면서 경호원 파견을 중단시키고 지금은 경호원이 없는 상태였다.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의 벗은 몸매를 보았다.
저 정도면 경호원으로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았다. 더구나 그는 영어를 할 줄 알며 행정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계속 옆에 두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아프지 않으세요?”
“어제 영빈관, 아니 상서원 회의에서도 두시간 동안 꼬박 서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이 전에 있었던 경호원처럼 선 그라스라도 끼면 더 멋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지금 강시혁은 햇볕 때문에 가끔 얼굴을 찡그리기 때문이었다.
음료수를 다 마시고 이영진 상무가 일어섰다.
“이제 가시죠.“
“알겠습니다.”
강시혁이 플라스틱 의자 위에 걸어놓은 웃옷을 입었다.
그런데 검은 양복이 좀 낡아보였다.
이영진 상무가 웃으며 말했다.
“옷을 한 벌 맞춰야겠네요.”
“죄송합니다. 현재 옷을 맞추려고 돈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월급타면 쓸 곳이 많은 모양이네요.”
“부채가 좀 있어서.....”
이영진 상무는 전에 회장이 강시혁에 대한 신원조회를 했던 서류를 본 기억이 났다.
건대 앞에서 분식집을 하다가 망해 신용보증위원회 조정을 받고 부채를 상환중이라는 기록을 보았었다.
부채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강시혁 같이 낮은 직급의 사람들은 5년은 충실히 갚아야 할 돈으로 기억했다.
차가 이태원의 이영진 상무 집 앞에 도착했다.
이영진 상무가 자기 명품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오늘 수고했어요. 그리고 이거는 얼마 안 되지만 양복이라도 하나 사서 입으세요. 오늘 휴게소에서 보니 양복이 많이 낡았더군요.”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반장님은 상서원에서 손님 서빙도 하잖아요. 옷이 남루하면 삼방그룹의 이미지에도 안 좋아요. 한 벌 사 입으세요. 그리고 선 그라스도 하나 사시고.”
“너, 너무 고맙습니다.”
강시혁은 너무 고마워 운전석에 앉은 채로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이영진 상무가 준 봉투를 열어보니 100만원이나 들어있었다.
“헉! 100만원!”
강시혁은 어제 삼방전자 사장에게 20만원을 팁으로 받았었다. 오늘은 이영진 상무에게서 100만원을 받았다.
월급도 조금 올라가서 빚을 갚으면서도 약간의 저축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공돈이 생기니 기분이 째졌다.
[히히. 그렇지 않아도 돈 생기면 양복도 한 벌 맞추고 벨트도 사고 싶었는데! 사람은 역시 큰 나무 밑에서 있어야 해.]
강시혁은 삼방전자 사장 말대로 지금처럼 그대로 하면 뭔가 희망이 보일 것만 같았다.
강시혁이 시계를 보았다. 아직 노량진 학원에 갈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밥도 먹지 않고 옷만 갈아입은 채 공구를 챙겨 노량진 학원으로 달려갔다.
[다음 주에 실기시험이 있으니 자격증은 따 놔야지.]
강시혁은 학원에서 열심히 회로 만들기 실습을 했다.
강사가 실기시험 준비물을 적은 프린트를 나눠주며 말했다.
“내일 오후2시에 실기시험 온라인 사전 예약이 있습니다. 오픈하자마자 바로 예약하세요. 그래야 집에서 가까운 장소에서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날 강시혁은 양복을 맞추러 갔다.
이번엔 기성복이 아닌 맞춤 양복이었다. 맞춤 양복이라 중간에 가봉을 하기 때문에 일주일 걸린다고 하였다.
강시혁은 벨트도 사고 선 그라스도 하나 샀다.
영빈관에 와서 선 그라스를 끼어보고 혼자 낄낄거리며 웃기도 했다.
몸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바벨을 50번이나 또 들었다.
같은 시각 삼방그룹 회장실
이건용 회장은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이영진 상무를 불렀다.
이영진 상무가 회장실로 왔다.
“이혼서류는 변호사에게 보냈냐?”
“보냈습니다.”
“신문사 홍 회장도 아들의 이혼에 동의했다. 일본에 있는 홍 사장 그놈에게는 협의이혼 의사 확인신청서와 진술서 날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처음에 결혼할 때 홍 사장에게 주기로 한 삼방전기 10만주 증여는 없던 것으로 하기로 했으니 그놈이 순순히 날인해 줄까?”
“절 폭행했으니 해주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 사람은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 무언가 작은 선물을 해야 그놈이 날인을 해줄 것 같다.”
“죄송합니다.”
“어차피 지금 삼방전기 반기결산 성적이 좋지 않아 무상증자 후 증여는 어렵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하겠구나. 어디서 뽕쟁이에다 간통에다 폭력성까지 있는 놈을 만나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 다 운이다. 요즘 영남이는 무얼 하고 지내냐?”
“음악활동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좋아진 것 같던데요?”
“얼굴이 좋아져?”
“그 원인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확실히 요즘 얼굴도 좋아지고 목소리도 명랑해진 것 같습니다.”
“약을 끊는다고 하더니 맞는 것 같군.”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네 차 기사인 김 기사를 차장 대우 발령을 내고 내차 기사로 할 예정이다. 이사 대우를 받는 내차 기사가 촉탁 2년차인데 이제는 내 보내야 할 것 같구나. 기사들도 순환보직을 시켜야 조직이 활성화가 되겠지.”
“김 기사가 성실했습니다.”
“그놈이 성실하기는 하지. 그런데 김 기사 후임으로는 계열사 사장 차 기사를 보내지 말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네 의향은 어떠냐?”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영빈관 반장 그놈이 어떠냐? 조금 전에 전자 사장이 왔다 갔는데 그놈을 눈여겨보라고 하더라.”
“그 사람은 안 돼요!”
“안되다니? 그놈이 너에게 무슨 실수라도 했냐?”
“그 사람은 비선조직에 놔둬야 해요. 그래야 제가 개인적으로 필요할 때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흠, 그래?“
“제 기사로 들어오면 정식 회사 조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회사 총무과 지시를 받게 되고 다른 운전기사들과 어울리게 되죠. 사적으로 은밀히 진행되는 일에 쓰기가 어려워집니다.”
“지난번 삼성동 오피스텔에 갔었을 때 너를 수행한 것처럼 말이냐?”
“맞아요. 그리고 그 사람은 운전만 할 줄 아는 게 아닙니다. 영어회화가 가능하고 컴퓨터도 다루며 행정능력도 있어요. 영빈관에 혼자 있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과 접촉도 없습니다.“
“비밀스런 일을 시키기엔 적임자란 말이구나.”
“그렇죠.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신원조회도 이미 하시지 않았습니까?”
“흠. 알았다. 그러면 내 차 기사를 촉탁 1년 연장해주고 기사들 이동은 당분간 없던 것으로 하겠다.”
“고마워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