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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75화 (75/199)

75화 이혼 서류 (1)

(75)

밤이 깊었다.

하지만 이영남은 집에 가기가 싫은 것 같이 보였다. 자꾸 강시혁에게 말을 걸면서 같이 있고 싶어 했다.

“리틀 브라운! 밤 12시가 넘었네요. 이제 집에 들어가셔야죠.”

“여기서 자고가면 안 돼요?”

“방들이 있지만 침대도 없고 이불도 없습니다. 또 2층 방엔 미술품이 꽉 차있고 접견실엔 추워서 못잡니다. 물론 침대도 없고요.”

“지하실에서 형 방에 같이 자도 되잖아요?”

[아니, 이 도련님은 궁궐 같은 자기 집을 놔두고 왜 이럴까?]

“제 방엔 냄새도 나고 이불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리틀 브라운은 한남 나인원 아파트에 사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벤츠 차로 모셔드리죠. 저도 지금 자야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근무합니다.”

이영남이 할 수 없다는 듯이 일어났다.

강시혁이 주차장에 있는 벤츠차를 끌어냈다. 그리고 이태원 바로 옆 동네에 있는 한남동 나인원 아파트까지 이영남을 태워주었다. 이태원에서 슬슬 걸어가도 될 만한 거리였지만 너무 늦은 밤이라 태워주었다.

태워주고 오면서 걱정이 하나 생겼다.

[이거 자주 영빈관에 와서 드럼치고 갈 때마다 내가 모셔다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귀찮게 생겼네. 하지만 이영진 상무와 이영남은 삼방그룹의 3세들이니까 내가 분신처럼 굴어야 하겠지.]

다음날 강시혁은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리고 출근 전에 비서실 임창영 과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영진 상무님은 오늘부터 출근하신답니다.]

답신이 왔다.

[연락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시혁은 임창영과장이 틀림없이 출근하자마자 자기 상사들에게 보고를 할 것으로 보았다. 먼저 비서실 사장에게 보고를 할 것 같았다.

{임 과장이 위에 있는 부장이나 팀장을 건너뛰고 사장에게 바로 보고를 한다면? 사장은 임 과장만 찾겠지. 부장과 팀장은 그냥 월급 도둑놈으로 알고 비서실에서 일 좀 하는 놈은 임 과장으로만 알고 있겠지?]

그러면서 강시혁은 미소를 지었다.

강시혁도 짧게나마 좃소기업인 아연테크라는 회사에서 근무를 해봤기 때문에 조직의 이러한 생리는 잘 알고 있었다.

강시혁은 아침을 먹고 화단 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이건 근무보다도 꼭 자기를 위해서 했다.

마당이 깨끗하고 화단 정리가 잘되어 있어야 자기도 기분이 좋고 안구 정화가 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이태원 주민 센터로 갔다.

주민 센터는 영빈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태원 엔틱 가구거리 근방에 있었다.

강시혁은 주민 센터에서 민원서류 발급용 위임장을 받아가지고 왔다.

[그런데 정말 이영진 상무는 왜 혼인관계 증명서까지 발급받으려고 하는 걸까?]

강시혁은 이 서류들이 이혼소송을 제기하기위한 서류들인 것을 몰랐다. 강시혁은 이혼을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또, 아이도 없이 헤어졌다.

그래서 강시혁의 전처인 심은혜는 새로 만난 남자와 처녀결혼을 한 셈이 된다.

만약에 심은혜가 새로 만난 남자와 살면서 또 혼인신고를 안 한다면 계속 처녀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다면 출생신고를 위하여 할 수 없이 혼인신고를 하게 될 것이다.

심은혜는 돈 없는 남자 강시혁과 계속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영진 상무나 홍 사장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했으면서도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점잖은 집안끼리의 결혼이라 틀림없이 결혼직후 바로 혼인신고를 했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하지 않고 위임장만 써주고 비서실에서 다 신고를 해 주었을 것이다.

강시혁은 위임장을 대봉투에 넣어 금산 아줌마에 주고 왔다.

금산 아줌마가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회사 일이 바쁘다며 그냥 왔다.

오늘은 보관 미술품 점검이 있는 날이었다.

문화재단의 사무국장과 설운동 대리가 나왔다. 강시혁이 최초에 근무했던 아영테크 같으면 일종의 재고조사 같은 것이었다.

강시혁은 드럼 세트가 있는 방을 아예 잠가버렸다.

점검 나온 사람들은 지하실에 있는 드럼이 있는 방까지는 확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단지 미술품 점검이기 때문이었다.

사무국장과 설운동 대리는 리스트를 들고 나와 미술품을 일일이 확인했다.

점검이 끝나고 강시혁이 과일과 음료수를 대접해 주었다.

“과일과 음료수를 사다 놓으셨군요. 그런데 과일과 음료수 구매 전표는 올라오지 않았던데요?”

“아, 이것은 제가 이영진 상무님 댁과 이영남 씨 댁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분들이 여기에 와서 접견실을 사용했습니까?”

“아닙니다. 접견실을 사용했다면 제가 업무일지에 보고를 했겠지요. 과일과 음료수는 제가 그분들 댁에 전기 고치러 갔다가 뺏어 왔습니다.”

“뺏어 와요?”

“전기 고쳐줬으니 뺏어와야죠. 그래야 문화재단 사무국에서 점검이라도 하러 오시면 이렇게 대접해 드릴 수 있잖아요?”

사무국장이 미안한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 반장님! 과일은 모르지만 음료수 같은 건 구매하고 영수증 넘겨주세요. 아니면 우리가 구매 후 이곳으로 보내드려도 되고요.“

“고맙습니다.”

미술품 점검은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하고 갔다.

두 사람이 돌아간 것을 확인 후 강시혁은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전화통화 가능하지?”

“어, 괜찮아.”

“너 문신 안할래?”

“돈 들어가잖아.”

“지난번에 우리가 클럽에서 만났던 너 친구 기타리스트 후배 있지?”

“아, 그 리틀 브라운이란 친구?”

“걔가 나한테 와서 너하고 나하고 문신을 하면 비용을 대주겠다고 하더라.”

“그놈 돈이 많은 것 같네. 하긴 부잣집 아들 티는 나는 것 같더군, 생긴 것도 귀엽게 생겨서.”

“걔가 너하고 나를 잘 본 모양이야. 이태원에서 양아치들한테 걸리면 형들이 보호해 달라고 하면서 문신 값을 대주겠다고 하는데 할까?”

“글쎄.”

“너는 경찰간부 시험 때문에 그런 거 하면 안 되지?”

“하절기 반팔 입었을 때 삐져나오지 않으면 돼. 아니면 형만 문신하고 나는 문신 스티커나 붙이고 다니면 되지.”

“스티커?“

“문신하고 비슷해. 붙였다 떼는 거니까 지울 때 힘 안 들어가고 좋지 뭐.”

“그럼 할까?”

“해! 클럽 같은데 가면 그거 한 놈들이 더 멋있잖아.“

“너 요즘도 평행봉 운동하냐?”

“날마다 해. 체력시험에 팔굽혀펴기는 60번 이상 해야 만점 받아.”

“너 평행봉 물구나무서기도 잘했잖아?”

“그거야 기본이지.”

“그럼 몸이 제법 나왔겠는데? 그럼 내가 리틀 브라운에게 한다고 전화 할게.“

“알았어. 그럼 토요일 만나. 나 토요일 서울 올라가니까.”

강시혁이 이영남에게 카톡을 보냈다.

[영빈관 강시혁입니다. 후배는 경찰시험 때문에 문신은 스티커로 하고 저만 하겠습니다. 저도 팔뚝에만 하겠습니다. 후배는 지방에 있는데 토요일 서울에 오겠다고 했습니다.]

한참 후 답신이 왔다.

[토요일 좋습니다. 아는 타투이스트에게 말해 놓겠습니다.]

강시혁은 자기 팔뚝을 만져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근육을 더 키울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경에 문자가 왔다.

이영진 상무가 보낸 것이었다.

[위임장 가져오셨죠?]

{넵. 금산 아줌마한테 맡겨 놓았습니다.]

[그럼 저녁 8시경에 우리 집으로 와주세요.]

{알겠습니다. 상무님!]

강시혁은 오늘 노량진 학원은 빠지기로 했다.

이제 회로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안 나가도 잘 할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학원에서 나오라고 하는데 이영진 상무가 부르니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영진은 삼방그룹 미래의 실세인데 학원 간다고 그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강시혁은 저녁을 먹고 바벨 운동까지 했다.

요즘은 바벨의 중량을 늘이고 들어올리기 횟수도 처음보다는 배로 늘렸다. 땀까지 흘렸다.

강시혁은 샤워를 했다.

[이영진 상무 앞에 가면서 샤워는 하고 가야지. 내가 다른 경비원들처럼 땀 냄새나 풍기면 되겠어?]

그리고 강시혁은 양치질까지 했다.

머리도 잘 빗고 몸엔 남성용 향수까지 살짝 뿌렸다,

저녁 8시가 다가오자 강시혁은 카니발을 몰고 이영진 상무 댁에 갔다.

이영진 상무와 금산 아줌마는 거실에 앉아서 포도를 먹고 있었다.

강시혁이 칼같이 각을 잡아서 절도 있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포도 하나 드세요.”

포도는 녹색의 샤인머스켓이었다.

“고맙습니다.”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의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아서 샤인머스켓 한 알을 먹었다.

달콤한 향기가 입안에 퍼졌다.

“아, 맛있네요.”

“좀 더 드세요.”

“고맙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강시혁이 먹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강시혁은 평소에 앞모습보다는 옆모습이 더 멋지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약간 몸을 돌려 틀어 앉았다.

샤인머스켓은 씨도 없었다.

강시혁이 샤인 머스켓 한 알을 더 먹고 나자 이영진 상무가 위임장이 든 대봉투를 강시혁에게 내밀었다.

“위임장 날인은 했습니다. 그리고 위임장만 가지고 가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혹시 모르니 내 주민등록증도 가져가세요.”

“알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자기 주민등록증을 한손으로 주었지만 강시혁은 황송하다는 듯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서류 발급 후 주민등록증은 금산 아주머님께 맡겨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발급받은 서류 역시 금산 아주머님께 맡겨놓겠습니다.”

“아닙니다. 발급받은 서류는 여기로 가져오지 마세요. 박 변호사에게 전달해 주시고 오면 됩니다.”

“박 변호사님요?”

“언젠가 강 반장님이 산정호수에 모시고 온 서초동 법무법인의 박 변호사 말입니다.”

“아, 양주 백석읍 어르신의 아드님 말씀입니까?”

“예, 맞아요.”

“알겠습니다. 이상 없이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시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위임장이 든 대봉투를 집어 들고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엔 내가 영빈관에 있는 차를 좀 써야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수요일 날 제가 벤츠차를 끌고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몇 시까지 오면 되겠습니까?”

“내가 회사 출근했다가 와야 하니까 오후 2시쯤으로 하겠습니다. 그날 문화재단 행사도 따로 없죠?”

“예, 없습니다.”

“그럼 그날 뵙죠.”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시혁이 크게 허리 굽혀 인사하자 이영진 상무가 금산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 포도 한 박스만 강 반장님께 드리세요. 야간 경비하면서 드시면 좋겠죠.”

“헉! 감사합니다.“

그런데 금산 아줌마가 샤인머스켓을 한 박스만 주지 않았다. 두 박스나 슬며시 주었다.

역시 금산 아줌마는 재벌집 가정부라 손이 컸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신임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카니발을 몰고 가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제 자기는 삼방그룹 미래의 실세인 이영진 상무와 그의 남동생 이영남에게 신임을 받고 있으니 어쩌면 공채 직원들보다 승진이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공채로 들어와서 출세하나 문고리 잡고 출세하나 출세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 두고 봐라. 이 강시혁이 꼭 출세한다! 빚도 갚고 다시 좋은 여자도 만나고 부모님도 서울로 모실 테니 두고 봐라.]

강시혁이 영빈관으로 왔다.

샤인 머스켓을 먹으면서 위임장 서류를 다시 보았다.

위임장의 주소 성명은 이영진 상무의 친필로 보였다. 재벌의 딸이라 누구에게 시켜도 되는데 본인이 직접 썼다.

글씨는 역시 여성스러운 글씨체였다.

글씨는 그 사람의 인품을 말해준다, 글씨도 이영진 상무의 얼굴처럼 단아해 보였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주민등록증이 생각났다.

얼른 속주머니에 넣었던 주민등록증을 꺼내보았다. 생년월일도 나오고 사진도 나왔다.

주민등록증 사진은 뽀샵이 어렵고 대부분 생얼이라 예쁘게 안 나온다.

하지만 이영진 상무는 주민등록증 사진도 예뻤다, 정말 단아하고 참하게 생긴 자연 미인이었다, 이 모습에 연예인처럼 화장만 한다면 바로 아이돌 연예인이 틀림없었다.

[정말 예쁘네. 완전히 신의 작품이네.]

이날 저녁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주민등록증을 가슴에 품은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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