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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74화 (74/199)

74화 돌아온 그녀 (3)

(74)

이영남이 강시혁에게 물었다.

“여기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섭긴요. 경비 반장이 무서워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할머님이 살아계실 때도 여자들만 살았던 것 같던데.”

“그때는 할머니도 계시고 가정부도 계시고 또 찾아오는 친척들도 많았습니다. 또 커다란 진돗개도 두 마리나 있었어요. 저도 이 집에서 많이 있었고요.”

“하하, 그랬나요?”

“개를 한 마리 기르시죠?”

“개는 안 됩니다. 문화재단에서도 기르지 못하게 할 겁니다. 개가 아무데나 똥을 싸고 잘못하여 줄이라도 풀어져 미술품을 이빨로 물어뜯으면 큰 사고가 납니다.”

“그, 그런가요?”

“또 털도 날아다니잖아요. 그래서 이 영빈관은 개나 고양이는 기르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누나가 왜 부른 거예요?”

“서류발급을 받을 일이 있어서요.”

“그러면 누나 얼굴을 봤겠네요.”

“봤습니다. 약간 부기가 있는 것 같았지만 괜찮던데요?”

“저도 이틀 전 누나 집에 가서 누나 얼굴을 보았습니다. 누나 얼굴의 상처는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닙니다. 맞아서 그런 겁니다.”

“맞다니요? 그럴 리가요? 설마 매형 되시는 홍 사장님이?”

“그 인간은 매형도 아니에요!”

“홍 사장님은 사회적 지위도 있고 또 미국에서 공부도 많이 하신분입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약쟁이들은 중독이 되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폭력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그런가요?”

“나도 그 세계는 압니다. 채팅앱에서 아직도 홍 사장은 차가운 술을 찾아다닙니다. 내가 그 인간의 아이디를 압니다.”

“차가운 술요?”

“약의 은어입니다. 채팅방에 ‘차가운 술 찾아요. 서울 사는 여성 32세’. 그러면 어김없이 약쟁이들이에요.”

“그, 그런가요?”

“그런데 부기가 많이 가라앉았다니 다행입니다.”

“내일 출근한다고 했습니다.”

“눈가의 멍도 다 나았던가요?”

“글쎄, 잘 모르겠던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누나도 어느 정도 나았다고 판단해서 내일 출근하겠다고 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출근하면 뭐하나. 인수한 장명건설이 아직도 장기파업중인데!”

“장명건설과 이영진 상무님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모르셨어요? 신문사 회장 아들인 홍가가 자기 매형 회사인 장명건설을 비싸게 삼방에 팔아 처먹은 사건인데요.”

“그래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홍 사장은 주가로 재미 좀 봤을 거예요.”

“그렇다면 약의 중독이 심하진 않은 것 같네요. 그런 머리라도 쓰니 말입니다.”

“홍가의 매형이라는 김장명이라는 인물이 보통이 아닙니다. 주식 시세조정과 부정거래 혐의로 한번 구속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자본시장법 위반혐의죠.”

“그렇습니까?”

“그럴 때 마다 보수 언론의 빽으로 금방 풀려나오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이번에 장명건설을 삼방에 팔고 먹튀 했으니 돈 많이 벌었 을거예요.”

“그럼 이영진 상무님도 많이 난처하겠네요.”

“영진이 누나는 미국서 MBA까지 나왔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첫 경영수업치고는 혹독한 대가를 치룬 거죠.”

“그런 것 같네요.”

“거기다가 장면건설 노조는 급여수준을 당장에 삼방건설과 맞추어 달라고 장기 농성중입니다.”

“급여가 올라가는 것은 회사가 돈을 잘 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나쁜 놈들이죠.”

“그렇다면 리틀 브라운이 회사에 들어가 누님을 도와주면 안 되겠습니까?”

“누나는 그래도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나는 음악만 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들어가면 회사의 임직원들이 나를 얼마나 깔보겠어요."

"설마요."

"나이도 새파랗게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딴따라 같은 놈이 들어와 탱자탱자 한다고 할 것 아네요? 그래서 저는 경영 참여를 하더라도 마흔 살 이전엔 안 들어갑니다. 그 안에 죽을지도 모르고요.”

“예엣? 죽다니요! 젊은 분이 그런 말씀 하시는 것 아닙니다.”

“음악을 하다보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우습지요. 많은 사람들이 높이 올라가고 많이 갖길 원하지만 그 끝은 항상 허무지요.”

[아니, 재벌 아들놈이 뭐가 아쉬워 이런 도통한 스님 같은 말을 하나? 가진 걸 다 가져봐서 그런가?]]

“며칠 전에 내가 형에게 말한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는 27세에 죽었습니다. 미국 4인조밴드 도어스의 리더인 짐 모리슨도 프랑스 파리에서 27세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사이키델릭 록의 여제인 제니스 조플린도 27세에 죽었고요.”

“제니스 조플린? 섬머타임을 부른 가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형은 역시 음악 애호가입니다. 혹시 너바나(Nirvana)를 아십니까?”

“알죠. 강다니엘이 부른 노래가 아닙니까?”

“그 너바나 말고요. 내가 말하는 너바나는 미국의 전설적 록 밴드죠. 그 리더인 커트 코베인도 27세에 엽총 자살을 했습니다. 저도 내년이면 27살입니다.”

“아이고, 27세면 인생 중 가장 왕성할 나이인데 왜 죽습니까? 다 약쟁이라 그런 거지요. 약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거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재활원으로 보내야 합니다.”

강시혁은 하마터면 홍 사장까지도 말입니다 라고 하는 말이 목에서 튀어 나올 뻔하였다.

“형은 잘 몰라서 그래요. 그거 하는 사람들은 모두 말 못할 괴로움이 있어 의지처를 찾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아휴, 정말 철없는 예술가들이네요. 정말 괴로움이 뭔지 아세요? 조금 전에 말한 예술가들이 지독한 채무에 시달려 봤는지요? 또 신불자가 되어봤는지요?”

“신불자가 뭐예요?”

“신용불량자를 말하죠.”

“그럼 돈을 갚으면 될 것 아닙니까?”

“돈을 갚으면 될 것 아니냐고요? 하, 이런.”

강시혁은 하마터면 이런 철딱서니 없는 놈아 라고 말을 할 뻔하였다.

강시혁은 철없는 이 재벌의 막내아들과 계속 입씨름을 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있자 이영남도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를 작게 틀어놓고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강시혁은 목례를 하고 드럼 치는 방을 조용히 나왔다.

그리고 관리실 문을 닫아놓고 자기 혼자 기타를 쳤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이영남의 드럼 소리가 그쳤다.

화장실이라도 가는지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강시혁은 얼른 과일을 깎아 쟁반에 담았다. 그리고 음료수를 유리컵에 따라 쟁반에 받쳐 들고 드럼 치는 방으로 갔다.

이영남은 화장실을 다녀온 후 악보집을 보고 있었다.

“과일이라도 들고 하세요. 그리고 음료수도!”

“고마워요. 같이 먹어요. 형.”

그래서 둘이 마주보고 웃으며 과일을 먹었다.

“과일이 맛있네요.”

“햇과일입니다.”

강시혁은 이 과일이 금산 아줌마가 준거라고 말을 안했다.

괜히 말했다가 금산 아줌마가 이영진 상무집에 들어온 과일을 마구 빼돌린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과일을 먹으면서 이영남이 느닷없는 말을 했다.

“형! 나는 누나와 홍 사장이 이혼했으면 좋겠어요.”

“예? 그, 그런 소리 하시는 게 아닙니다. 두 분 사이에 잘 살길 바라야죠.”

“언젠가 내가 말했듯이 내가 약을 한건 음악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연주를 앞두고 친구들끼리 공공연히 마리화나를 피우기도 합니다. 연주에 집중할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그것은 안 됩니다. 중독성이 강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물론 요즘은 피우는 것이 심심하다고 더 자극이 강한 화학성분이 든 것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러다 몸이 망가지는 것은 맞습니다.”

“거봐요.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부모님 보기도 미안해서 한국에 와서는 조용히 약을 끊으려고 클린타임 기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아주 잘하신 겁니다.”

“그런데 홍 사장은 그게 아닙니다. 너무 중독이 심하고 예술 목적도 아니고 오로지 자기의 잠자리만을 위한 것입니다. 재활의 의지도 없는 사람입니다.”

“매형을 직접 만나 설득을 해보시죠.”

“그 인간은 매형도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매형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시혁이 형은 처음부터 형이라고 불렀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매형은 매형이 아닙니까?“

“매형이라니요? 양아치일 뿐입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합니다. 언젠가 기자들의 대담에 보수언론의 사명을 다하고 저널리즘의 정도를 걷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저널리즘의 충성 대상은 바로 민중이라고 했습니다.”

“훌륭하신 분이네요.“

“그런데 말만 그럴듯합니다. 충성 대상이 민중이라고요? 개뿔! 민중은 무슨 민중! 권력과 금력에 아부하죠. 그리고 밤에는 야한 짓만 골라 하는 놈입니다.”

“그래요?”

“이미 그는 중독이 강해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을 겁니다. 더 심하게 되면 부모를 폭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 정말 그거 큰일이네요.”

“형! 기타 가지고 이 방으로 오실래요?”

“같이 연주하자고요? 난 리틀 브라운 하고 연주할 실력이 안 됩니다.”

“우선 코드 잡는 법과 간단히 반주 하는 것을 알려드리죠.”

강시혁이 기타를 드럼이 있는 방으로 가져왔다.

이영남이 코드잡는 법과 간단한 반주를 알려주었다.

강시혁은 이영남이 알려준 대로 반주를 해보았다. 서투르지만 몇 번 해보았다. 그러자 그 반주에 맞추어 이영남이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드럼 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영남은 신이 나는지 드럼 채를 마구 두드려 댔다.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며 만족한 듯 웃으며 쳤다.

강시혁도 계속 반주를 쳐주었다.

이영남은 알 수 없는 영어가사의 노래까지 부르며 드럼을 쳤다. 그런데 드럼 치는 솜씨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저 녀석이 오늘 약을 먹고 나온 건 아니겠지?]

그러면서 강시혁도 이영남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은 채 기타 반주를 열심히 했다.

곡이 끝났다.

이영남은 힘이 드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얼굴엔 만족감에 젖은 미소가 가득했다.

강시혁이 물었다.

“지금 친 곡이 무슨 곡이죠?”

“더 벤처스의 Wipe out 이란 곡이에요.”

“그렇군요.”

“형! 나 여기 자주와도 되죠?”

“저는 여기 고용인일 뿐입니다. 리틀 브라운은 삼방 문화재단 이사장님의 아드님이고요. 오시는데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영남은 드럼을 치고 나서 더운지 자기 후드티를 벗었다.

강시혁도 입고 있는 회사 잠바를 벗었다. 강시혁의 몸이 드러났다.

“와, 형 몸 좋네요.”

“좋긴요.”

“무슨 운동 했죠?”

“고등학교 때 태권도 조금하다 말았고 지금은 바벨 운동 많이 합니다.”

이영남은 부러운 듯이 강시혁의 몸을 쳐다보았다.

강시혁은 운동이 아니더라도 이영남보다는 덩치가 컸다. 또 혼자 살아왔기에 몸을 많이 움직인 사람이다.

대리 운전하면서 항상 핸들을 잡았고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약간 먼 거리를 뛰어다녔고 집에서도 빨래니 청소 같은 것을 모두 다했다. 몸이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그래서 특별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가슴도 나오고 팔뚝도 제법 굵었다. 경비 반장으로는 어울리는 체격이었다.

아마 이런 체격으로 약골인 홍 사장에게 맞았다면 이영남은 곧이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강시혁은 홍 사장에게 다섯 대나 맞았다. 성질 같았으면 한방에 날려버렸겠지만 다섯 대나 맞았다. 그리고 700만원을 벌었었다.

이영남도 혹시 강시혁을 때린다면 강시혁은 맞아줄 것이다. 힘으로 하면 상대도 안 되겠지만 맞아줄 것이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맞지는 않는다.

그만큼 강시혁은 감정을 콘트롤 할 줄 알고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형은 사람들을 많이 때려봤죠?”

“아닙니다. 한 번도 때려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맞았나요?“

“아닙니다. 한 번도 맞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홍 사장에게 맞은 적이 있어서 얼굴이 좀 화끈거렸다.

이영남은 강시혁이 홍 사장에게 맞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형 팔뚝에 문신하면 어울리겠는데요?”

“하하, 그래요?”

“저도 오른팔에 문신했어요.”

그러면서 오른팔에 영문 필기체의 문신을 보여주었다.

“형, 내가 타투 잘 하는 사람 소개할까요?”

“아유, 저는 돈 없어 못합니다. 한번 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대줄테니 하세요. 지난번 클럽에서 만났던 상철이 형하고 같이 하세요.”

"글쎄요.“

“상철이 형도 체격이 좋아 어울릴 거예요. 두 분이 정말 문신도 하고 머리도 깍두기처럼 깎고 다니면 이 이태원 거리에선 누가 감히 시비를 못 걸 거예요.”

“하하. 나하고 상철이를 조폭으로 만들려고 그러는군요. 그러다가 진짜 조폭을 만나면 어쩌려고요.”

“누가 건들지 않는 것도 좋지요. 저도 이 거리에서 가끔 양아치 같은 놈들에게 맞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상철이는 안됩니다. 걔는 경찰간부 시험 준비를 하거든요. 문신 있으면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됩니다. 조폭 잡으러 다닐 사람이 몸에 문신하면 되나요?

“안 보이는데 하면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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