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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73화 (73/199)

73화 돌아온 그녀 (2)

(73)

다음날 오후엔 이영남이 드럼세트를 가져왔다.

영빈관 리모델링할 때 버린 드럼보다 훨씬 좋은 드럼이었다. 여러 가지 부속품이 딸려온 것을 보니 일렉트릭 드럼이었다.

“우와, 이건 비싸겠는데요?”

“예, 조금 들어갔습니다.”

“몇 백만 원 되겠는데요?”

“천만 원은 안 되어도 500만원은 넘습니다.”

“와, 역시 좋네요.”

“드럼이 들어갈 방은 깨끗이 치워놓았죠?”

“그럼요. 깨끗이 치워놓았습니다. 혼자 연습하시는 데는 아주 좋을 것입니다.”

“고마워요, 형.”

강시혁이 드럼 운반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영남은 역시 재벌 아들이라 그런지 무거운 것은 들지 않았다. 가벼운 것만 날랐다.

이 집은 지하라도 천정이 제법 높았다.

정말 연습실로는 이만한 곳이 없으리라고 여겨졌다.

이영남은 바닥에 드럼매트까지 깔았다.

이영남과 강시혁이 드럼 설치를 끝냈다.

드럼은 사운드 조절 콘솔과 전자드럼 전용 페달도 있었다. 강시혁도 한번 쳐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영남이 날마다 와서 치는 건 아닐 테니까 없을 때 나도 한번 살짝 쳐보자.]

이영남이 동그란 드럼 의자에 앉아 드럼 스틱을 잡았다.

그리고 드럼을 천천히 치기 시작했다, 강시혁도 아는 곡이었다.

강시혁이 아는 체를 했다.

“아이유의 ‘너의 의미’ 네요.”

음악을 매개로 이영남과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아는 체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영남은 대답은 하지 않고 이번엔 맹렬하게 드럼을 쳤다. 완전히 무당 칼춤을 추는 듯한 무아의 표정으로 드럼을 쳤다.

강시혁은 이번엔 무슨 곡인지 몰랐다.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옆에서 몸을 흔들어주었다.

이영남은 계속 드럼을 두드리고 강시혁은 몸을 흔들었다.

이영남은 그동안 제대로 드럼을 치지 못했는지 이제야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행동했다. 역시 드럼을 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한참을 치고 나서 이영남이 드럼 치는 것을 멈추었다.

강시혁이 박수를 크게 쳐주었다.

“오우, 잘 치시네요.”

이 말에 이영남은 대답하지 않고 턱을 높이 들었다.

이럴 때는 꼭 문화재단의 관장 같았다. 내가 치는 걸 너도 봤지? 하는 표정이었다.

강시혁이 눈웃음을 살살치며 다시 물었다.

“방금 치신 곡이 무슨 곡입니까?”

“필콜린스의 곡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드럼주자지요.”

“그렇군요. 오늘 좋은 곡 감상 잘 했습니다.”

“형도 기타 많이 배웠죠?”

“헤헤. 이제 겨우 ‘Dust in the wind’ 같은 곡을 치는 정도입니다.”

“형도 열심히 배우세요. 음악적 소양이 있으신 분 같으니까 열심히 배워서 지미 핸드릭스 같은 사람이 되어보세요.”

“지미 핸드릭스요?”

“미국의 불세출의 기타리스트입니다. 그렇게 노력해 보세요.”

[이 철딱서니 없는 재벌집 도련님아! 기타는 내가 취미로 하는 정도로 하고 돈 벌어야지. 시간 죽이며 기타나 두드리면 되겠나? 그리고 음악은 당신처럼 어려서부터 해야지 안 그런가?]

“음악은 리틀 브라운처럼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죠. 저는 취미로 하는 정도로 끝내렵니다.”

강시혁은 이영남과 현재 단둘이 있는 상태다.

최대한 아부를 해서 잘 보이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나게 드럼을 쳐서 목이 마르겠습니다.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오죠.“

강시혁은 얼른 냉장고에 가서 캔 음료를 가져왔다. 냉장고에 하나 남은 음료수였다.

이영남도 목이 탔었는지 음료수를 꿀꺽대며 마셨다.

“형도 음료수 한잔 하시지 그래요.”

“저는 됐습니다. 헤헤.”

“매일저녁 여기에 오지는 못합니다. 사흘 후에 오겠습니다.”

“혹시 야간에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달 말까지 전기기능사 실습교육이 있습니다. 미리 연락주시면 그때는 학원에 빠지겠습니다.”

“그래요? 구청이나 시청에서 하는 교육입니까?”

“그건 아니고 학원에서 진행합니다. 돌아오게 되면 밤 10시 정도 되니까 그 이후로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 그러면 되었습니다. 나도 어차피 밤 10시가 넘어야 오니까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수업이 없습니다. 그때는 아무 때고 오셔도 됩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드럼이 있는 방은 아예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혹시 문화재단에서 가끔 나와 보나요?”

“관장님이 한번 오셔서 검열을 했습니다. 지금 제 방에 걸려있는 옷들도 모두 보자기로 덮어 놓았는데 그것도 관장님 지시로 그런 것입니다.”

“그걸 왜 보자기로 덮어요?”

“보기 흉하다가 하셨습니다. 방에 너저분하게 걸린 옷들이 보기가 흉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지하실에 남자 혼자 있는 방문을 열어보고 그런 잔소리를 하면 됩니까? 지하실까지 누가 와서 방문을 열어본다고 보기 흉하니 마니 그럽니까? 그게 갑질이지요.”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이라 미적인 면을 강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관장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보자기로 모두 덮었습니다.”

“내가 조직에 들어가면 그런 것들이 꼴 보기 싫어서 안 들어가는 겁니다. 나는 이대로 음악이나 하면서 사는 게 더 편합니다. 아버지가 알면 또 화를 내시겠지만 말입니다.”

“대문의 비밀번호는 카톡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무 때라도 편하게 들어오시면 됩니다.”

“됐습니다. 이 건물의 관리자는 엄연히 형이 하는데 내가 중간에 불쑥불쑥 들어오면 되나요?”

그러면서 이영남은 또 귀엽게 웃었다.

강시혁은 이런 동생이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영남이 가고 나서 강시혁은 지미 핸드릭스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이영남이 지미 핸드릭스 같은 기타리스트가 되어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계의 미국인인 지미 핸드릭스는 천재 기타리스트였다.

하지만 그는 약물과 음주로 27세에 죽은 사람이었다.

[역시 약물은 안 돼. 만약에 이영남이 여기에 와서 약을 한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리고 여길 떠나야지! 내가 아직 젊은 놈이 비록 신불자라도 어디 가서 밥 못 먹겠어?]

[그런데 지미 핸드릭스는 어려서부터 빗자루를 들고 기타 연습을 했다니 확실히 기타에 미친놈이군. 기타 천재가 될 만도 하네.]

이날 밤에 강시혁은 지미 핸드릭스의 음악을 들었다.

‘The wind cries Mary’ 라는 기타 곡을 들으면서 잠을 잤다. 역시 기타 치는 솜씨는 끝내주는 기타리스트였다.

이틀이 지났다.

강시혁은 열심히 그림 수송을 했고 저녁에는 어김없이 학원에 가서 전기설비 회로를 만드는 실습을 하였다.

강사가 말했다.

“실습시험은 감독관이 보는 앞에서 5시간 안에 시퀀스 회로 1개를 완성해야 하는 겁니다. 합격률이 높다고 하지만 그래도 잘못하면 안 됩니다. 재수 없으면 탈락되는 30%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강시혁이 열심히 회로 만드는 것을 보고 강사가 말했다.

“강시혁 씨는 합격하겠네요. 다른 사람들도 강시혁 씨처럼 열심히 해보세요.”

역시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은 잘 못했다.

이 아저씨들은 아무래도 사무직으로 있다가 명예 퇴직한 사람들 같았다. 강시혁은 이 아저씨들을 보면서 어쩌면 나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보고 자격증 같은 것은 젊었을 때 미리 따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학원에서의 실습교육이 끝나고 영빈관으로 가기위해 전철역으로 갔다.

강시혁은 학원에 갈 때는 카니발을 이용하지 않았다. 회사차이기 때문에 공무 이외는 사용하지 않았다.

가는 도중 전철 안에서 이영남의 카톡을 받았다.

[일요일 저녁에 들릴게요. 캔 음로 다섯 박스를 시켰으니 내일 택배로 갈 거예요.]

답신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일요일 문을 열어놓겠습니다. 그런데 웬 음료를 다섯 박스나?]

[하하. 형의 캔 음료수를 내가 먹었으니까요.]

강시혁은 피식 웃었다.

역시 재벌 아들을 상대하니까 캔 음료 한 개가 다섯 박스가 되어 돌아오는구나 하였다.

이러니 내가 어찌 이영남의 바지자락이나 이영진의 치맛자락을 잡지 않을 수 있겠나 하였다.

[잡아야지! 어떻게 해서든지 이영진의 치맛자락이나 이영남의 바지자락을 잡아 문고리 실세라도 되어야지. 그러면 여기서 있다가 삼방화학 화성공장 구내식당을 맡은 아줌마처럼 무언가 하나 얻지 않겠나? 그러려면 그들에게 잘해야겠지. 목숨이라도 줄 것처럼 해야 되겠지.]

그러면서 강시혁은 입술을 앙 물고 스스로 다짐을 하였다.

다음날 정말로 캔 음료가 다섯 박스나 배달되어 왔다.

강시혁은 냉장고 옆에 쌓아두었다.

일요일 저녁에 이영남이 왔다.

저녁을 먹고 올 줄 알았는데 좀 일찍 왔다. 강시혁이 이영남에게 말했다.

“리틀 브라운. 저녁 식사 안했죠? 내가 뜨듯한 밥을 할 테니 같이 먹어요.”

“오늘은 배달음식 시킬까요? 피자 한판 시킬까요?”

강시혁은 초딩 때부터 이태원을 들락거리며 피자를 먹었다는 비서실 임창영 과장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태원의 유명한 피자를 맛보기로 했다.

“좋으면 제가 주문할까요?”

“그러세요. 그럼.”

“그리고 음료수 다섯 박스 들어온 건 잘 받았습니다. 저기 쌓아놓았는데 아직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헤헤. 형 드시라고 주문한 음료수인데!”

“피자 오면 같이 먹고 마시죠.”

피자가 배달되어 왔다.

둘이 영빈관 지하의 관리실에서 피자를 먹었다.

이영남은 즐거운지 자꾸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고 웃었다. 강시혁도 이영남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이제 한 사람은 드럼을 치고 한 사람은 기타를 치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발신자 이름을 보니 뜻밖에도 이영진 상무였다.

“넵! 강시혁입니다!”

“지금 잠깐 우리 집에 올수 있겠어요?”

“지금요? 예,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바로 가겠다는 말을 듣고 이영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어딜 가요?”

“이영진 상무님의 호출이 있네요. 바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에고, 형은 밤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네요. 영빈관 반장이라는 직업이 썩 좋은 직업은 아니네요.”

“하하, 이런 일은 자주 있지 않습니다, 그럼 혼자 드럼 연습하고 계세요.”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의 집으로 갔다.

거실에 이영진 상무가 나와서 앉아있고 그 옆에 금산 아줌마도 앉아있었다.

이영진 상무는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부기가 많이 가라 앉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눈 주위도 멍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희미한 자국만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확실히 몸이 전보다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아팠다.

이영진 상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늦은 저녁에 불러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무슨 지시시항이라도 있으십니까?”

“내일은 내가 출근합니다.”

“넘어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내일 출근하신다니 다행이십니다.”

“주민 센터에 가셔서 서류를 발급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출근해서 비서실 직원을 시켜도 되지만 강 반장님이 조용히 발급받아 놓으세요?”

“어떤 서류입니까?”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 증명서 등입니다. 내가 인터넷 발급받으려니 하니 잘 안되어 그럽니다.”

“제가 혼자가도 될까요? 본인이 아니면 위임장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는 건데 내일 위임장 용지를 가지고와서 금산 아줌마를 주고 가세요. 그럼 내가 위임장에 날인을 해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강시혁이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히 인사한 후 이영진 상무 집을 나왔다.

[그런데 이런 서류를 왜 받아놓으려고 그러지?]

강시혁이 영빈관으로 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하실에서 쿵딱, 쿵딱하는 드럼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강시혁이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영남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왜, 그러십니까?”

“어휴, 난 누가 들어오기에 강도가 들어왔는지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원, 이렇게 심약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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