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71화 (71/199)

71화 젊은 음악인 (4)

(71)

강시혁이 이영남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뽀얀 피부에 귀여운 외모, 그리고 긴 속눈썹은 재벌집 막내아들다웠다.

재벌 집안의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숨 막히게 살았겠지만 물질적 걱정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강시혁은 어려서부터 항상 돈이 모자랐다.

부모님도 늘 돈 걱정이었고 자기도 서울 올라와서는 돈 걱정이 떠나질 않았었다.

결국은 돈, 돈, 하다가 그놈의 돈 때문에 이혼도 했었다.

강시혁은 돈이면 모든 행복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영남은 돈을 가지고 행복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자연스레 이런 모습으로 이들은 성장한 것이다.

강시혁이 보기에 이영남은 너무 여리게 보였다. 거대한 삼방그룹을 이끌어 가기엔 적임자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이건용 회장처럼 조폭 두목같이 생기지는 않아도 괜찮다. 변상철이 정도로만 생겼어도 좋았을 뻔했다.

지금이야 세상이 변하여 마초같은 인상이 아니어도 큰 조직을 꾸려가는 데 이상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었다. 삼방그룹의 수만 명의 수장이 되려면 지휘관 같은 인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 점에서는 이영진 상무도 여자의 몸이고 뽕쟁이 홍 사장도 위태해 보였다,

이들은 앞으로 참모를 잘 두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리틀 브라운! 그러면 리틀 브라운도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겠네요.”

“주식은 아직 없습니다. 영진 누나만 경영에 참여하기 때문에 소량이 있지만 아직은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습니다.”

“그런가요?”

“영진 누나 말로는 주식 증여는 세금문제가 많아 법률전문가들과 의논을 한다고 했답니다. 현재 사내 변호사들이 연구하고 있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리틀 브라운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요?”

“제가 클럽에 가서 리틀 브라운과 함께 춤을 추었다는 소리를 회사 관계자들에게 이야기 하지 마세요. 잘못하면 잘릴 염려도 있습니다. 저는 정규직도 아니라 신분보호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하하. 그건 내가 할 소리인데요? 내가 회사의 경비 반장을 불러내 춤을 추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정말 우리 아버지는 나를 내쫓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내가 약을 한 사실로 아버지와 말을 안 한지 반년이 넘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강시혁이 일어섰다.

“저는 가봐야 합니다. 삼방 문화재단에서 나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질할 브로스의 할랄 푸드 잘 먹었고 커피도 잘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자 이영남이 입을 쑥 내밀었다.

“그렇게 인사하는 것 싫어요. 이 세상에 그렇게 인사하는 형은 없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그러면서 강시혁은 주먹을 쥐고 이영남의 주먹과 부딪쳤다.

이영남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드럼을 친다고 집안에 천덕꾸러기였는데 동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강시혁이 영빈관에 돌아와 미술품이 보관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주었다.

“이렇게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가 들어오게 하면 그림들도 좋아하겠지.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도 통풍 잘되는 건물에 있어 천년을 보관했다고 하지 않던가.”

전화가 왔다. 변상철이었다.

“형, 어제 잘 들어갔어?”

“너도 잘 들어갔지? 지금 포천이냐?”

“아니야. 집이야. 이문동 집이야. 포천은 내일 내려갈 거야.”

“가면 아버지 공장에 짱 박혀 있어라.”

“일감 없으면 올라와야지. 아버지랑 서로 얼굴 쳐다보며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뭐 있어?”

“아버지랑 같이 있는데 무슨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러니?”

“말 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잔소리가 심한 분이 우리 아버지니까.”

“하하. 그러냐?”

“밥 먹는 것 까지도 잔소리 하는 분이야.”

“하하. 그래?“

“그런데 내 친구 윤진형이 후배란 놈 말이야.”

“리틀 브라운이라는 친구 말인가?”

“생긴 것도 귀엽게 생겼지만 정말 춤 잘 추데. 정말 바비 브라운하고 똑같아. 그런 놈이 왜 엔터테인먼트사에 가서 오디션을 안 보는지 모르겠어.”

“음악 자체를 좋아하는 친구가 아닐까?”

“집이 좀 잘 사는 것 같아. 밥은 먹는 집안의 아들 같던데?”

[밥을 먹는 집안의 아들 같다고? 이 자식아! 리틀 브라운이 누군지 모르지? 바로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의 아들이다!]

“응, 나도 그런 느낌은 받았어.”

강시혁은 오늘 리틀 브라운과 함께 질할 보로스에 가서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포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형한테 연락할게.”

“어제 술값 많이 나왔지? 잘 먹었다. 다음번엔 내가 살게.”

관리실에 내려가 앉았는데 문화재단 설운동 대리의 전화가 왔다.

“설운동입니다.”

“넵! 대리님! 강시혁입니다.”

“내일 전시회가 끝나는 날인 것 알죠?”

“아, 내일인가요?”

“내일은 벤츠 가지고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손님이 오시나요?”

“이번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중일 유명 갤러리 소장품전에 참여한 일본과 중국의 인사들을 모시는 겁니다.”

“아, 그런가요?“

“내일 오전 10시까지 콘래드 호텔 로비로 가시면 됩니다. 거기에 큐레이터 신종화가 나가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신종화 씨도 같이 태우고 오면 되겠군요.”

“어딜 감히 신종화가 벤츠 차를 타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일본과 중국 손님만 모시면 됩니다. 각각 한분씩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좀 바쁘실 것 같습니다. 저녁엔 또 카니발 가지고 그림 반출을 해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내일 저녁 노량진 학원에 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전기 기능사 시험 실습교육은 하루 빠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저녁에 가서 많이 배우기로 하였다.

강시혁은 이영남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일은 예술의 전당 전시회가 끝나는 날입니다. 그래서 저녁에 출품작을 반출해야 합니다. 영빈관 문이 잠겨있을 수가 있으니 드럼세트 가져오는 것은 모레가 어떨까요?]

즉각 답신이 왔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형.]

미안하게 이영남은 꼭 강시혁에게 형이라는 소리를 했다.

집안에 형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회사의 정규 직원들은 상대하기가 부담이 되지만 자기는 경비나 다름없는 경비 반장이라 대하기가 편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날 저녁엔 노량진 학원엘 갔다.

요즘 하는 교육은 전기 설비작업이었다. 강시혁은 회로도를 보고 회로를 만드는 실습을 해보았다. 여러 번 해보면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다녀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TV를 좀 보다가 바벨 연습을 했다.

샤워를 하고 거울에 자기 몸매를 비추어보았다.

[제기랄! 운동 살은 붙지 않고 대리 기사 할 때의 노동 살만 튀어나오네!]

강시혁은 운동 후 영어회화를 위하여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 그리고 기타를 쳤다.

이렇게 강시혁은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10시에 강시혁은 벤츠 마이바흐를 끌고 여의도 콘래드 호텔로 갔다.

로비에서 큐레이터 신종화를 만났다.

강시혁은 신종화에게 정중히 인사를 해주었다.

언젠가 문화재단 사무국에 들렸을 때 문화재단 조직도를 그려 논걸 보았었다.

거기에 영빈관 경비는 잡급직으로 분류되어 설운동 대리와 신종화의 선보다 한창 아래에 그려진걸 보았었다.

그래서 강시혁은 설운동 대리와 신종화를 만나면 항상 상사 대우를 해주었다. 아니꼽지만 조직은 조직이니까 순리대로 살기로 했다.

“일찍 나오셨습니까?”

“어머, 강 반장님! 강 반장님은 항상 정확하시네요.”

“시간을 맞춰야 상사님들에게 야단을 안 맞죠.”

“벤츠차 가지고 오셨죠?”

“그럼요. 세차까지 싹 해놓았습니다.”

“벤츠차가 있으니 손님 모시긴 참 좋아요. 저기 두 분 내려오시네요.”

신종화가 영어로 일본인과 중국인에게 강시혁을 소개했다. 당신들을 모시러온 운전기사라고 소개 했다.

신종화가 강시혁을 영빈관 경비반장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운전기사라고 하였다.

강시혁이 일본인과 중국인에게 간단한 목례를 해주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일본인은 일본인처럼 생기고 중국인은 중국인처럼 생겼다.

강시혁은 두 사람을 주차장으로 모셨다. 그리고 정중히 뒷문을 열어주었다.

일본인이 말했다.

“구르마 요이 (차 좋은데).”

중국인도 한마디 했다.

“오우, 번츠(奔馳: 벤츠)!”

강시혁이 빙긋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벤츠 차는 다 좋아하는 것 같네!]

차가 여의도를 벗어나 강변도로를 달렸다.

뒤에 룸미러를 보니 신종화가 운전하는 기아 K7이 따라오고 있었다.

한참 가는데 일본인이 강시혁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약간 안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자 뒤에 탄 일본인과 중국인이 번갈아 질문을 했다.

질문은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물어보는 내용은 서울 인구가 몇 명이냐. GDP가 얼마냐, 한 달 생활비는 얼마를 쓰느냐, 당신 월급은 얼마냐 하는 것들이었다. 강시혁이 친절히 대답을 해주었다.

이번엔 강시혁이 룸미러를 보며 일본인에게 영어로 질문했다.

“어제 신문에 보니 일본에서는 다코야끼에 마약을 넣어서 팔았다면서요?”

“하하, 나도 기사를 보긴 했는데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은 마약사범에 대한 단속이 심하지 않나요?”

“일본은 후생성에서 고시한 향정신성의약품들이 있습니다. 소지하면 걸리죠.”

“어느 나라나 다 그렇군요.”

“그런데 언젠가 신문에 보니까 일본에 들어온 한국인 범죄 중 가장 많은 것이 마약사범이라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오, 그래요?”

“그리고 법무성 발표도 나왔는데 일본은 인구비례로 한 마약사범이 한국보다는 적다고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와서 약을 한다면 한국 이미지에도 안 좋겠지요."

[개자식들! 일본까지 가서 그 짓을 하는 놈들은 대체 어떤 놈들이야?]

중국인 손님이 웃으며 말했다.

“중국은 마약사범에 대하여는 가차 없습니다. 사형까지 시킵니다.”

이 말에 일본인이 웃으며 말했다.

“중국은 아편전쟁까지 한 나라라 그런 모양이요.”

일본인이 다시 말했다.

“일본은 야쿠자들이 약에 손을 댑니다. 약을 팔기도 하고 본인이 사용하기도 하죠.”

강시혁은 홍 사장이 혹시 일본 야쿠자 조직과 연계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A일보 자회사와 엔터테인먼트 협약을 위해 일본에 갔다는 사람이 장기 체류를 하고 있어 의심이 가기도 했다.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전시장엔 관장과 사무국장, 그리고 설운동 대리와 인턴들도 나와 있었다.

관장이 일본인과 중국인에게 악수를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번 전시회는 아주 성공적이에요!”

일본인과 중국인도 좋아했다.

그런데 일본인과 중국인에 대한 대화는 관장과 신종화가 했다. 사무국장과 설운동 대리는 영어를 못하는지 옆에서 서 있기만 했다.

강시혁이 보기에 신종화의 영어실력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관장은 의외로 잘했다. 역시 대학 학장 출신 값은 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한쪽 편에 서서 공손히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대화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경비 반장 따위가 낄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관장이 강시혁을 불렀다.

“강 반장! 우리 합동 사진 좀 찍어줘요.”

그러면서 케이스가 빨간 자기의 스마트 폰을 불쑥 내밀었다.

전시 그림 앞에 전부 모였다. 인턴들 까지 다모였다.

강시혁이 외쳤다.

“자, 찍어요! 스마일!”

사진은 잘 나왔다고 떠들었다.

잡급직 강시혁만 빠진 문화재단 전 직원의 모습이 나온 사진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사를 하러간다고 하였다.

사무국장이 말했다.

“요 앞에 있는 선궁이라는 중국집에 모두 가기로 했습니다. 코스 요리를 예약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중국집으로 갔다.

일반 자장면 집은 아니고 회식 손님을 많이 받는 집 같았다.

모두들 룸으로 들어갔다.

강시혁은 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홀에 앉았다. 관장이 금테 안경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강 반장은 여기 홀에서 먹고 가요. 볶음밥이나 자장면이나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 먹어요.”

“고맙습니다. 저는 먹고 차에 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서 관장은 턱을 쳐들고 룸으로 들어갔다.

강시혁이 속으로 불평을 했다.

[자기들은 코스요리를 먹고 나는 뭐? 자장면이나 볶음밥을 먹어? 관장이란 저 여자는 선민의식이 참 대단해. 없는 사람이나 직급이 낮은 사람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어. 그러나 아직은 내가 참아야지 별수 있나? 그 밑에서 따까리 중인데!]

그러면서 강시혁은 씩 웃고 중국집 종업원에게 잡탕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어차피 자기는 룸에 들어가 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참새들 노는데 봉황이 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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