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70화 (70/199)

70화 젊은 음악인 (3)

(70)

다음날 강시혁은 아침에 일어나 바벨을 30번이나 들었다.

어제 클럽에서 이영남의 백댄서 노릇을 하느라 조금 피곤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래서 바벨을 30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하였다.

바벨 운동을 하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종합격투기 선수인 추성훈 같은 우람한 체격은 아니지만 꼭 몸매를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강시혁은 점심 무렵 영빈관을 나왔다. 어제 클럽에서 만난 이영남과 약속 때문이었다.

해밀톤 호텔 뒤편에 있는 이태원 세계 음식거리로 갔다.

강시혁은 영빈관에 온 후로 밤이면 이 거리를 자주 나와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 음식은 입에 잘 안 맞아 한 번도 들러보지 않았다.

외식을 한다면 순대국이나 설렁탕이나 자장면 같은 것들을 사 먹었다.

질할 브로스라는 음식점으로 갔다.

생각보다는 작은 음식점이었다. 테이블도 없고 바처럼 꾸며 논집이었다. 혼식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는 좋은 집 같았다.

아직 이영남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안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기다렸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었다.

후드티를 입은 이영남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오고 있었다.

강시혁은 이름을 부를까 하다가 애칭인 리틀 브라운을 불렀다.

“리틀 브라운!”

“오래 기다리셨어요?”

“금방 왔습니다.”

“형! 안으로 들어가요.”

“형이라니요?“

“그럼 반장님이 제 동생입니까?”

그러면서 이영남은 씩 웃었다.

웃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였다.

둘이 바 자리에 앉았다.

이영남이 음식을 주문했다. 자기는 양고기와 닭고기가 들어간 콤보라이스를 먹겠다고 하였다. 강시혁도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고기와 함께 상추와 토마토가 들어간 비빔밥 같은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그런대로 먹을 만하였다.

그런데 강시혁은 재벌집 아들이 좁은 가게의 바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안 되어 보였다.

“혹시 실례의 말 같지만 회사에서 일하시면 호텔에 가서 식사를 하실 텐데요? 왜 이 고생을 하십니까? 회장님께서 임원 한자리는 주실 것 아닙니까?”

“회사요? 회사는 나하고 체질에 안 맞아요. 자유도 없고 아재뻘 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하하. 워낙 음악을 좋아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이렇게 간편하게 먹는 게 얼마나 좋아요? 저는 미국에 있을 때 질할 브로스나 햄버거 가게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역시 리틀 브라운은 리버럴하고 개성 강한 뮤지션입니다. 저도 사실은 인디비주얼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형도 음악적 감성이 풍부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어제 백댄서를 할 때 음악의 흐름을 잘 아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하. 저는 기타도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입니다.”

“형이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얼마나 다행스러운 가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반장으로 부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회사 내에서라면 몰라도 반장도 이상해요. 그냥 형이라고 부를게요. 어차피 나이도 나보다 많잖아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오늘 질문하실 말씀이 무엇인지..... 혹시 회사 경영에 대한 일이라면 제가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말단의 반장이 알아야 얼마나 알겠습니까?”

“경영에 대한 일은 제가 아니라도 삼방그룹에는 수많은 인재가 있으니까요. 오늘 질문은 딱 두 가지입니다.”

“무슨 질문인지 궁금한데요?”

“밥 다 먹고 커피숍으로 가시죠.”

두 사람은 질할 브로스에서 식사를 마친 후 인근에 있는 커피숍 투썸플레이스로 갔다.

의자에 앉으며 강시혁이 말했다.

“이쪽 거리가 리틀 브라운의 바운더리 같습니다.”

“대로변 보다는 골목에서 자주 놉니다. 저는 원래 사이드 스트리트를 좋아합니다.”

“하하, 그래요?”

“우리가 방금 식사한 질할 브로스 위에 있는 클럽 소울 트레인에도 자주 갑니다.”

“소울트레인요? 저도 한번 가봐야겠네요.”

“토끼 춤으로 유명한 가수 현진영을 알죠?”

“알죠. 현진영의 ‘흐린 기억속의 그대’는 저도 좋아하는 곡입니다.”

“이태원 백댄서였던 그 가수를 발탁한 사람이 바로 소울트레인의 DJ였죠. 그 사람이 바로 SM엔터테인먼트에 가서 오디션을 보게 해 주었죠.”

순간적으로 강시혁도 그놈의 알량한 영빈관 경비반장을 때려치우고 싶었다.

백댄서 노릇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기는 이제 너무 나이가 많은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웬 아재가 나와서 춤을 추냐고 할 것 같았다.

이영남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첫 번째 질문은 영진 누나와 관계된 일입니다. 영진 누나가 일본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데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몸이 아파서 며칠간 쉬고 온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것 말고 진짜 이유 말입니다.”

“진짜 이유라니요? 그 이상은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형은 금산 아줌마는 물론 영진 누나의 벤츠차 기사와 그리고 비서실 직원들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평판도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 분들도 거기까지만 아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 영진 누나가 삼성동 오피스텔에 갔었을 때 형이 누나를 수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홍 사장하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죠?”

“있었습니다. 몇 명 되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도 있었죠?”

“이런 말씀은 드리기가.....”

“괜찮습니다. 저도 이 세상에 형제라고는 영진 누나 밖에 없습니다. 영진 누나는 지금 그룹 속에 들어가 힘든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리틀 브라운은 이영진 상무와 친 남매간입니다. 하지만 친 남매라도 프라이버시는 있습니다.”

“역시 형은 입이 무겁군요. 영빈관 반장으로 알맞은 분을 모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영진 누나를 구하고 싶은 생각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영진 누나는 지금 가정적으로나 회사에서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진 누나를 위한다면 말씀해 주세요. 여자가 있었죠?”

“이영진 상무를 위하는 거라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자가 있었습니다.”

“내 짐작이 맞군요. 그렇다면 그 여자가 배우 겸 가수인 K이겠군요. 이번에 일본의 오오사카 닛폰바시 병원에서 약물투입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여자 말입니다.”

“글쎄요. 그날 정황이 없어서 여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분명히 그날 있었던 여자는 일본 경찰에 체포된 K양 이었다.

그런데 K라고 말해버리면 홍 사장은 천하의 난봉꾼이 되고 이영진 상무 또한 명예에 손상이 간다. 강시혁은 보았지만 못 본 척 해야만 했다,

이영남이 창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K는 몸 파는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태원에도 가끔 나타납니다. 몸으로 배우가 되었고 몸으로 배우 생활을 유지하다가 나이도 들고 인기가 떨어지니까 몸으로 힘 있는 사람들에게 붙어먹는 여자입니다.”

“그렇습니까?”

“내가 알기만 해도 정치인, 고위공무원, 재벌 등 관계를 맺은 사람만 수십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 드리니 품행에 문제가 있는 여자네요. 그런데 이해가 안갑니다. 홍 사장이 그런 여자를 친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영진 상무가 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아닙니까?”

“그 사람은 약쟁이입니다. 영진 상무가 말을 안 들으니 같은 약쟁이인 그 여자와 놀아난 거죠.”

“그으래요?”

“약은 나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음악을 위해서 했지만 홍 사장은 여자와 잠자리를 위해서 약을 합니다. 더구나 나는 지금 클린타임기간(약을 끊은 기간)입니다.”

“그런가요?”

“그래서 홍 사장은 필로폰 계열이고 나는 화학성분이 첨가된 마리화나 계열입니다. 마리화나를 하고 음악을 들으면 악기들의 특성과 미세한 소리까지 들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중독되면 몸을 망치게 합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필로폰은 다릅니다. 필로폰 계열은 90%가 그 짓을 위해서 합니다. 중독되면 환각성이 강해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 악질적 약품입니다.”

“그, 그런가요?”

“그래서 홍 사장은 그 짓을 위해서 자기 부인을 약쟁이로 만들려고 한 거지요.”

“하, 어찌 이런 일이!”

“홍 사장은 그게 안 되니까 대역으로 K를 데리고 다녔던 겁니다. 두고 보세요. K는 일본에서 추방을 당할 것이고 한국에 들어오면 체포되겠지만 검사 후 바로 풀려날 것입니다.”

“중독이 되었다면 체포당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피해가는 방법을 총 동원하겠지요. 그러나 저러나 영진 누나가 빨리 돌아와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일본 쪽에 손을 쓰면 안 될까요?”

“영진 누나는 의외로 자존심이 강합니다. 또 자기 사생활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혼자 해결하려고 할 것입니다. 홍 사장은 미국에서도 유명한 약쟁이라 나도 결혼을 반대했었는데.......”

강시혁은 이영남이 의외로 건전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꼈다.

소문이 난 것처럼 약이나 하는 망나니가 아니었다. 단지 회사 경영보다는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청년이었을 뿐이었다.

강시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일본서 소식이 들리면 즉각 알려드릴게요.”

“영진 누나 같은 사람은 배우자가 건전한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보수 언론 집안이라는 것에 혹해서 결혼을 했으니...... 지금 마시는 커피대신에 술이나 한잔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해가 갑니다.”

“참 전에 내가 영빈관 방문했을 때 형이 준 명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명함을 어디에 둔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내 전화번호 입력해 놓으시겠어요?”

“불러주세요.”

이영남이 자기의 전화번호를 불러주었다.

강시혁이 바로 전화를 하자 이영남의 스마트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로서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와 이영남의 직통 전화가 연결이 된 것이다.

삼방그룹에서는 상무나 전무 같은 임원들도 오너의 자녀인 이영진과 이영남의 핫라인이 연결된 사람은 없으리라고 보았다.

“참, 두 번째 질문도 있다고 하셨죠?”

“두 번째는 영빈관 지하에 드럼세트를 다시 들여놓는 일입니다.”

“예? 그거야 그냥 들여 놓으면 될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영빈관 건물 관리자는 형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문화재단 대주주는 리틀 브라운의 어머니이신 사모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모님의 아드님이 악기 하나 들여놓겠다는데 제가 막을 권리도 없습니다.”

“그래도 밤에 와서 내가 드럼을 두드린다면 많이 시끄러울 텐데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드럼소리 때문에 날마다 내가 야단을 맞았습니다.”

“하하, 노인들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시죠. 영빈관에 드럼 가지고 오세요. 밤에 저 혼자 있으니까 외롭기도 합니다. 적막감이 들기도 하고요. 그럴 때 사람이 있고 음악 소리가 난다면 저도 나쁠 것이 없습니다.”

“역시 형은 이해심이 많은 분이네요.”

“또 드럼 소리가 날 동안에 저도 기타 연습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리틀 브라운이 음악에 대하여 잘 아시니까 제가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화재단의 관장이나 국장이 알면 싫어할 텐데?”

“제가 드럼세트를 갖다놓으면 분명 싫어하겠죠. 아니 당장 치우고 시말서라도 쓰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너 패밀리인 리틀 브라운은 상관이 없습니다.

[관장이나 사무국장은 회장 아들이 갖다 논 것을 치우라고 못할 것입니다. 아마 눈웃음치며 오히려 음악을 좋아하는 멋쟁이라고 할 겁니다. 이게 남의집살이를 하는 머슴들의 근성이지요.]

강시혁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러면 내일이라도 들여놓지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고맙습니다.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그때 그 드럼세트를 버리지 말아야 할 걸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성능이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게 되었으니 나도 좋습니다. 이래 뵈도 나도 월급은 나옵니다.”

“예? 어디 다니십니까?”

“내가 회사에 출근하지는 않아도 삼방그룹 계열사의 다섯 개 회사에 사외이사로는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비상근이지만 등기까지 되어있습니다.”

“그래요?“

“의심나면 법인 등기부등본을 떼어보셔도 됩니다.”

강시혁은 역시 금수저 집안은 좋긴 좋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 들어가 골치 아픈 경영수업을 받으며 출세하는 것보다 돈이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이런 생활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확실히 이영남은 스트레스 없는 삶을 택한 것 같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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