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69화 (69/199)

69화 젊은 음악인 (2)

(69)

놀란 것은 이영남도 마찬가지였다.

이영남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기타리스트 윤진형이 이영남을 소개했다.

“내가 잘 아는 후배 리틀 브라운입니다.”

[리틀 브라운? 아닌데! 이영남인데!]

강시혁이 이영남에게 여긴 웬일이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후배 변상철이 먼저 말했다.

“리틀 브라운! 반갑습니다. 윤진형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춤을 잘 춘다고요?”

강시혁은 이영남이 드럼을 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빈관 리모델링 할 때 지하에서 그가 쓰던 낡은 드럼세트를 버린 사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춤을 춘다는 것은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영남이 변상철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도 상철이 형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K대 영문과를 나오시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영문과 출신이니까 외무고시를 준비하겠군요.”

옆에서 윤진형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얘 인상을 봐라. 어디 외교관 할 사람으로 보이냐? 도둑놈 때려잡는 경찰관 타입이지. 얘 경찰 간부후보생 시험 준비하고 있어.”

“뭐, 경찰 들어가셔서 외사과 같은데 근무해도 좋겠죠.”

이번엔 윤진형이 강시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은 우리 선배님이셔. 변상철이 같은 과 선배님이셔. 우리가 형님으로 모시는 분이야.”

이영남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과 선배님이시라고요? 그럼 영문과세요?”

“그, 그렇습니다.”

이영남은 강시혁이 영문과 출신이라고 하니까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이영남이 영빈관 관리실을 방문했을 때 강시혁의 책상에 꽂힌 책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본 책 중에서는 전기 기능사 문제집 같은 책들도 있었지만 영미희곡론이나 미국문학사, 영문강독 같은 책들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이영남이 공손히 손을 앞으로 하고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리틀 브라운입니다.”

강시혁은 당황했다.

[우린 구면이잖아?]

“왜, 왜 이러십니까? 허리 굽혀 인사 안 해도 되는데!”

“말씀 놓으세요. 그리고 저의 선배님의 선배님이시니까 큰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겠네요.”

“예? 아, 그, 그.”

강시혁은 말까지 더듬었다.

강시혁과 이영남의 사연을 모르는 변상철이 말했다.

“리틀 브라운 씨! 우린 지금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까 맥주 한잔 하실까요?. 국산 맥주인데 두병만 더 시킬게요.”

“저는 아이리쉬 카밤이나 한잔 하겠습니다.”

기타리스트 윤진형도 아이리쉬 카밤을 주문했다.

술이 나오자 술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한 모금씩하고 말린 과일 안주를 먹었다.

안주를 먹으며 강시혁이 말했다.

“리틀 브라운 씨는 본명이 이....”

이영남 씨 아니냐고 말하는 순간 이영남이 검지손가락을 자기의 입에 대었다.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말을 못하게 하는군.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네.]

강시혁이 눈치 채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이영남은 이태원 바닥에서 리틀 브라운이란 예명으로 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만 했다.

변상철이 맥주를 한모금하고 이영남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춤추는 것을 반대해서 집을 나왔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원룸생활 합니다.”

강시혁이 고개를 들고 이영남을 쳐다보았다.

[원룸이라니? 이 사람은 현재 90억짜리 나인원 한남아파트에 사는데!]

기타리스트 윤진형이 말했다.

“얘 아버지도 너의 아버지처럼 완고하셔. 중소기업을 하시는데 음악 계속하면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린다고 하시나봐.”

강시혁이 또 고개를 들고 이영남을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하신다고? 아버지가 삼방그룹 회장이라는 걸 그동안 감추고 살았었나? 하긴 아버지가 삼방그룹 회장이라면 불편한 것이 많겠지. 쓸데없이 양아치 같은 놈들이 주변에 달라붙어 피곤하게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 전에 내가 본명을 대려고 하니까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었군.]

강시혁이 더 이상 이영남의 정체에 대하여 말하지 않기로 하였다.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름이 리틀 브라운이네요. 혹시 브라운 씨의 동생이신가요? 미국 교포이신 것 같네요.”

기타리스트 윤진형이 입에 대려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이 친구 원래 이름은 아닙니다. 춤 잘 추는 바비 브라운을 닮았다고 해서 여기선 리틀 브라운이라고 부릅니다.”

변상철이 말했다.

“아, 바비 브라운! 바비 브라운은 빠른 박자의 랩송에 맞추어 현란한 춤을 추는 미국 흑인 가수 아닌가?”

이영남을 대신해 윤진형이 말했다.

“맞아. 바비 브라운은 두명의 백댄서와 함께 요란한 춤을 추지. 그래서 내가 리틀 브라운에게 우리 업소의 손님들을 위해 한번 출연해 달라고 했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기 앞에 앉아 술 마시는 여자들은 꺅꺅 소리 지르며 박수를 쳐줄걸?”

기타리스트 윤진형은 시간이 되어 라이브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4인조 밴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좀 빠른 템포의 음악이었다.

이영남이 눈을 감고 율동에 맞추어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흔들었다. 변상철도 흔들었다.

강시혁은 망설였다.

영빈관 반장이란 놈이 이런데 와서 몸이나 흔드는 것이 어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너의 아들인 이영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강시혁이 가만히 있자 이영남이 말했다.

“큰 형님께서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예, 조, 좋아합니다.”

“그런데 말씀 놓으시라니까요. 선배님의 선배님이니까 말씀 놓으세요.”

말씀을 놓으라니! 강시혁은 이렇게 황송할 데가 있나 하였다.

삼방그룹 오너의 아들이 경비 반장인 자기에게 큰 형님이라고 부르라니! 만일 자기가 삼방그룹 회장 앞에서 이영남에게 반말을 찍찍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자기를 가만 두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저 싸가지 없는 놈의 모가지를 당장 잘라라 할 것 같았다.

변상철이 말했다.

“리틀 브라운! 친구 후배라니까 나도 반말해도 되겠지?“

“그럼요. 말씀 놓으세요.”

“옆에 계신 이 형은 대학 다닐 때 아마추어 밴드 활동도 했어. 프로는 아니고 그냥 취미활동을 하다가 그만두었지만 음악은 무척 좋아하는 선배님이야.”

“그렇습니까?”

“이 선배님은 운이 잘 안 풀려 직업이 좀 거시기 해. 요 아래에 있는 삼방그룹 영빈관에서 경비 반장을 하는데 지금도 밤이면 기타를 치는 사람이야.“

“그으래요?”

이영남은 지난번 영빈관에 갔을 때 관리실 책상 옆에 있는 기타를 보긴 했었다.

싸구려 통기타라 크게 관심은 두지 않았었다.

이영남이 정색을 하고 강시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큰 형님! 음악을 좋아하신다니 반갑습니다.”

그러면서 이영남은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강시혁도 같이 악수를 했다.

강시혁은 이영남이 정말 음악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밤에 기타를 친다니까 바로 손을 내미네.]

강시혁은 언젠가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다니는 벤츠차 기사가 한 말이 기억났다.

당시 벤츠차 기사인 김 과장은 이영남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태원 클럽을 드나들었다는 말을 했었다.

또 이영남은 음악대학을 가겠다고 하여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영남은 시카고에 있는 유명 음악대학에 입학을 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맞아. 그 때 벤츠차 기사가 이런 말을 했었지. 이영남이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에 경영대학원인 MBA과정에 들어간다는 조건으로 회장이 미국 유학을 허락했다는 이야기를 말이야. 그리고 이영남은 미국 생활 중 약물에 손을 댔었다고 했지?]

강시혁은 이영남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언젠가 오피스텔에서 보았던 홍 사장보다는 덜 풀린 것 같아서 안심이었다.

[도대체 상류층의 자식들은 왜 뽕을 할까? 미국 유학을 간다면 선택 받은 행운아들인데 왜 그런 짓을 할까? 유명 신문사 아들, 국회의원 딸, 우유회사 손녀, 심지어는 전직 대통령 손자까지도 손을 댔었다는 기사가 나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무대 위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비 브라운의 ‘Get away'였다.

변상철의 친구가 일하는 이 클럽은 춤만 추러오는 클럽은 아니다.

조용히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며 무대 위의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직장인들도 있었다.

그런데 바비 브라운의 겟어웨이가 나오자 앞좌석의 20대 손님들이 앉은 채로 손을 들고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앉은 채로 눈을 감고 몸을 흔들던 이영남이 겟어웨이가 나오자 무대 앞으로 나갔다.

얼굴색만 틀리지 후드티를 입고 몸을 흔드는 이영남의 모습은 정말 바비 브라운과 비슷했다. 앞좌석의 손님들도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I need a piece of mind,

I'm stressed out today“

이영남은 노래도 잘 불렀다.

이영남은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며 몸을 흔들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어버리는 듯한 몸동작이었다.

변상철도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말았다.

“잘하는데? 형이 보기엔 어때?”

“잘 하는군.”

“그런데 혼자 지랄하니까 재미가 없는데? 옆에 백댄서가 없어서 말이야.”

“백댄서가 있으면 더 좋겠지.”

“우리가 대신 해줄까?”

“우리가?”

강시혁은 잠시 망설였다.

영빈관 경비 반장이란 놈이 감히 오너의 아들과 춤을 추다니 말이 안 되었다.

혹시 나중에 이영남에게 찍히면 어떻게 하나 하였다.

“형! 나가자!”

변상철이 잡아끌었다.

후배 앞에서 쪼다처럼 굴기도 싫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가자! 설마 이영남이가 나를 자르겠어?]

변상철과 강시혁이 이영남의 좌우로 서서 같이 요란한 춤을 추었다.

프로 백댄서처럼 동작이 착착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박자는 맞추며 몸을 흔들었다.

이 모습을 보고 이영남은 더 신이 나는지 다리까지 죽죽 올리며 춤을 추었다.

“Get away! Get away!"

마침내 앞좌석의 몇 명 젊은이들도 나와 춤을 추었다.

이렇게 이태원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곡이 끝나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강시혁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이영남에게 말했다.

“어휴, 정말 춤을 잘 추시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이때 여자들이 앉아있는 왼쪽 테이블에서 먹다 남은 사과가 이영남에게 날아왔다.

그쪽 테이블에만 앉아있지 말고 자기들한테도 좀 와달라는 신호 같았다.

그러나 이영남은 가지 않았다.

이영남은 시계를 보았다.

갈 데가 있다면서 먼저 일어나겠다고 하였다.

강시혁이 조르르 클럽 밖으로 따라 나왔다.

“오늘 제가 실수한건 없습니까?”

“형님이 실수하다니요? 그런 것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습니다.”

“제 신분에 대하여 일체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랑 식사라도 할까요? 물어볼 말도 있습니다.”

“물어볼 말이라면......?”

“내일 말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영빈관으로 오실 겁니까?”

“내일 오후 1시에 질할 브로스에서 만날까요?”

“예? 지랄 브로스요?”

“여기서 저쪽으로 쭉 내려가면 질할 브로스라는 뉴욕 스트릿 푸드점이 있습니다. 거기서 식사하시죠.”

“넵, 알겠습니다.”

이영남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 보세요. 그리고 말씀 놓기로 했잖아요.”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저는 엄연히 삼방그룹의 영빈관 경비 반장입니다.”

“저는 그런 직급 같은 건 안봅니다. 사람을 볼뿐입니다.”

“그래도 남들이 보면.....”

“우리끼리 만나지 않을 때는 반장님이라고 부르죠. 그게 편하시다면.”

“고맙습니다.”

강시혁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사라지는 이영남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일 물어보겠다는 것이 뭐지? 회사 돌아가는 걸 물으려고 하는 건가? 그런 건 비서실이나 경영기획실 직원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말단 경비 반장이 뭐 아는 게 있어야 답변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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