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재벌 따님의 일본 출장 (3)
(67)
강시혁이 오오사카 경찰에 검거된 한국 연예인 K양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람들은 이 K양이 홍 사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현재는 오직 강시혁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삼방그룹에서 이영진 상무를 직접 모시는 벤츠차 기사도 모르고 비서실 임창영 과장도 모른다.
강시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홍 사장은 왜 그 여자와 같이 일본 체류 중에 이영진 상무를 불렀을까? 별거 상태를 화해하겠다는 사람이 K양을 옆에 끼고 있으면 되나?]
이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에효, 이영진 상무 개인 일이니 나하곤 상관이 없지. 신경 끄자.“
강시혁은 신경 끄고 자기 일만 충실하기로 했다.
다음날부터 강시혁은 아침에 일어나면 바벨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운동은 땀이 흐르도록 했다.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물 값은 내가 내는 것이 아니고 문화재단 사무국에서 내는 거니까 실컷 쓰자. 물 값 많이 나왔다고 설운동 대리가 잔소리하면 화단에 물을 뿌리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되겠지.”
강시혁은 운동량에 따라 차츰 바벨 원판 무게를 늘려 나가기로 했다.
현재는 작은 무게만 들었다 내렸다 하였다. 그래도 한 20번 하면 힘이 들었다.
그리고 낮에는 말 그대로 학교 소사 같은 일을 했다.
요즘은 이영진 상무 댁이나 회장님 댁 가정부들이 자주 강시혁을 불렀다.
자기들이 할수 있는 일도 좀 힘이 들어가는 일은 강시혁을 불러 시켰다.
일과가 끝난 밤에는 영어회화 공부도 열심히 했다.
미국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코리아 헤럴드의 기사나 논설 같은 것도 보았다.
그리고 기타연습도 빠지지 않고 했다. 하루에 꼭 한 곡씩은 연습을 했다.
강시혁은 날마다 자기가 성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삼방그룸 영빈관 지킴이 직업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강시혁은 오랫동안 잡급직 반장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곳을 발판으로 더 높은 자리로 가고 싶었다.
큐레이터 신종화처럼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는 오너 가족의 신임을 얻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나 같은 흙수저는 삼방그룹 오너 가문의 집사가 되어도 크게 출세하는 것이다!]
오늘도 회장 사모님 댁의 가정부가 강시혁을 찾았다.
“강 반장님? 회장님 댁에 와 봐요. 우리 집에 전기가 나간 것 같아요.”
“그럼 전기기사를 불러야지요?.”
“그 사람들 부르면 금방 안 와요. 어느 때는 금방이지만 다른 곳에 일하러 가면 늦어요. 그러니 강 반장님이 후딱 와 봐요.“
그러면 강시혁은 드라이버를 들고 회장댁을 간다.
갈 때는 벤츠차를 이용하지 않고 잡급직 반장답게 카니발을 끌고 갔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은 휴즈 박스 차단기만 올려도 들어오는 수가 많았다.
그렇지만 가정부 아줌마는 전기라면 질색을 하였다.
고치고 나면 가정부 아줌마는 배시시 웃으면서 떡이나 과일 같은 것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헤헤. 역시 집안에는 남자가 있어야 돼. 그런데 강 반장은 장가 안가?”
아줌마는 하루 종일 말을 안 하고 살아서 그런지 강시혁만 가면 고주알 메주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다 했다.
사모님도 이제는 강시혁을 알아보고 오면 반가워했다.
“왔어? 아줌마! 강 반장 왔으니 뭐, 시원한 음료수라도 내 와요.”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비서실 임창영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전화 받을 수 있죠?”
강시혁은 자기 몸값을 좀 올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튕겼다.
“조금 후에 제가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회장님 댁에 와 있습니다.”
“예? 회장님 댁에요?”
“전기 고쳐주고 있습니다. 전기가 다 나갔네요. 사모님이 많이 불편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 그러세요? 그럼 얼른 일 보세요!”
회장님 댁 일을 본다는데 누가 감히 시비를 걸겠나!
이번에는 문화재단 설운동 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업무일지에 주행키로만 나오고 행선지가 빠졌네요. 지금 다시 보내주세요.”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제가 오후에 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왜요? 지금 관장님께 결재 올려야 합니다!”
설운동 대리는 감히 경비 반장 따위가 대리 말을 안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지금 회장님 댁에 와서 전기를 고치고 있는 중입니다. 빨리 끝내고 갈게요.”
“그, 그래요? 그럼 일 보세요. 업무일지 보내는 것은 천천히 하세요.”
역시 회장님 댁에 왔다니까 누가 토를 달지 않는다.
그거 하나는 편했다.
사실 강시혁은 설운동 대리보다 잘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운전 실력은 강시혁이 월등했다. 강시혁은 대리 운전기사 출신이고 군대도 수송병과 출신이었다.
그리고 설운동 대리는 2종 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강시혁은 대형 1종 면허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전기 같은 것도 강시혁이 더 잘 만진다.
그리고 설운동 대리보다 영어회화 실력도 더 좋았다.
그러나 강시혁이 설운동 대리보다 못하는 것도 있다.
아무래도 관리 사무직 경험이 적어 행정능력은 떨어질 수 있었다. 서류를 작성하는 일은 짬밥이 있는 설운동이 더 나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설운동 대리보다 직급도 차이가 나고 연봉도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강시혁은 이걸 인정했다. 그래서 그런지 설운동 대리를 제치고 자기가 앞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큐레이터 신종화는 달랐다.
설운동 대리보다 늦게 입사했지만 앞서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늘 마찰음이 있는 것이었다.
강시혁이 회장님 댁에 갔다가 돌아왔다.
사모님이 외출해서 그런지 가정부 아줌마가 더 있다 가라고 했지만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영빈관에서 설운동 대리에게 보낼 업무일지를 다시 쓰고 있는데 비서실 임창영 과장에게 전화왔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주었다.
“영빈관 강시혁입니다.”
“바쁜데 내가 전화했던 것 아닙니까?”
“지금은 괜찮습니다. 전기 다 고쳐드리고 왔습니다.”
“저, 다른 게 아니고...... 이영진 상무님이 회사에 돌아오기로 한날이 이틀이나 지났습니다. 혹시 뭐 들은 것 없습니까?”
“없는데요? 방금 회장님 댁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사모님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던데요?”
“그래요?”
“이영진 상무님 댁에 제가 한번 가볼까요?”
“우리야 강 반장님과 달라서 회장님 댁이나 이영진 상무님 댁에 이유 없이 불쑥 갈수가 없겠죠. 그런 일은 강 반장님이 적임자입니다. 수고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강시혁은 임창영 과장이 참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날아다니는 새도 부지런한 놈이 먼저 먹이를 구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 비서실 내에서 임창영 과장의 위치는 절대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이나 비서실 임원이나 비서실장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입지가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님 댁의 금산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님! 접니다.”
“오마, 이게 누구야? 삼촌 아닌가?”
“방금 회장님 댁에 있다가 왔습니다. 전기가 나가서요.”
“흥, 그런 건 휴즈박스를 먼저 열어보고 조치해도 되는데 바쁜 사람을 부른 것 같네.”
“아닙니다. 복잡하게 고장이 나면 여자 혼자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집 와요. 나 혼자 있으니.”
“아, 참. 상무님은 일본에 가셨죠?”
“누가 아부하느라고 햇과일을 보내왔는데 삼촌한테도 나누어 줄게.”
“상무님 댁에 들어온 과일을 제가 갖다 먹으면 되나요?“
“어차피 우리가 다 못 먹어. 잘못하면 반은 버리니까 빨리 와요.”
“알겠습니다. 그럼 총알같이 가죠.”
강시혁은 그냥 갈수가 없어서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 사들고 갔다.
“애들같이 웬 아이스크림은?”
“속 탈 때 하나씩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속 탈 때가 많지. 과일은 저기 봉지에 담았으니 가져가요.”
“아휴, 이렇게 많이요? 들고 가기도 힘들겠네.”
“이영진 상무는 아침에 밥 대신 과일을 갈아먹고 간다오.”
“그런데 이영진 상무님은 출장 갔다 돌아오실 날자가 넘었잖아요?”
“아프다고 연락이 왔어. 그래서 사모님도 걱정을 했는데 별거 아니라니 그런가보다 해야지 뭐.”
“그럼 지금 병원에 계신가요?”
“아니, 일본 오사카에 있는 인터 무슨 호텔에 있다는 것 같던데.”
“아, 인터컨티넨탈 호텔이군요.”
“맞아! 인터컨티넨탈 호텔! 거기서 묵고 있다고 하는데 한 사흘 더 있다가 몸이 괜찮아지면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어.”
강시혁은 혹시 이영진 상무가 홍 사장하고 싸워서 그런가 하였다.
아니면 홍 사장의 약물투여 사실과 연예인 K양의 존재에 대하여 충격을 먹고 그런가 하였다.
K양의 존재에 대하여는 이 금산 아줌마도 모를 거란 생각을 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상상만 할 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무님이 영어는 잘 하셔도 일본어는 잘 못하실 것 아닙니까? 삼방그룹의 일본 지사장을 대동하고 병원에 가는 것이 좋을 텐데.”
“사모님이 국제전화로 영진 상무와 통화를 했다고 하더군. 몸살기가 있어서 그러니까 며칠 쉬었다 간다고 했다는군. 그래서 사모님이 일본 지사장을 대동해 병원에 가보라고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펄쩍 뛴다니 어떻게 하겠어. 그대로 놔둘 수밖에.”
“일본 병원에 가면 영어가 통할 텐데......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이 일본 원정 경기에 나갔다가 부상 입으면 얼마든지 치료도 받고 그러거든요.”
“참, 소문엔 강 반장도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소문이 있던데?”
“잘 못해요. 예스, 노, 그런 것 밖에 못해요.”
“호호호. 그런 건 나도 할 줄 알지. 오케이, 탱큐 베리마치 정도는 나도 할 줄 알지.”
“발음 좋으시네요. 미국 가서 혼자 살아도 얼마든지 살겠습니다.”
“호호호. 역시 인재는 인재를 알아본다니까!”
“그럼 상무님이 일본에서 못 오시니까 김 기사님은 쉬시겠네요.”
“김 기사? 그 인간 이야기 하나 해줄까?”
“뭔데요??”
“삼방전자 아산공장 구내 식당하는 아줌마가 전화가 왔는데 아, 글쎄 별일이 다 있었네.”
“별일이라니요?”
“아줌마가보니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구내식당에서 똥배 나오고 곰처럼 생긴 인간이 밥을 먹고 있는데 김 기사인걸 알고 기절초풍을 했다지 뭔가.”
“하하. 그래요?”
“이 인간이 거기까지 내려왔다가 주방에 남편이 있는걸 보고 접근을 못한 거야. 남편하고 같이 일한다는 정보를 모르고 간 것이 틀림없어.”
“정말 그 아줌마를 좋아했나요?”
“그렇다니까? 그 아줌마가 할머님 댁에서 일할 땐 남편이 지방에 있어서 혼자 사는 줄 알았던 것 같아.”
“하하. 그런 일이 다 있군요.”
“그런데 약수동에 사는 김 기사 마누라 본적이 있나?”
“없는데요?”
“말 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가 그 여자야. 김 기사하고 딱 맞는 여자가 그 여자야. 들창코에 턱은 사각형이고 또 눈은 왜 그렇게 작은지. 완전히 대추씨 같은 눈이더군.”
“그래요?”
“그 나물에 그 나물이지 뭔가! 분수를 알아야지! 어딜 감히 아산에 내려간 아줌마를 넘봐?”
“결혼한 사람이 그러면 안 되겠죠.”
“그렇지? 역시 삼촌은 상식적인 사람이야. 그래서 내가 삼촌을 좋아하지.”
강시혁은 20리터 위생봉투 2개에 가득히 과일을 담아가지고 영빈관으로 왔다,
관리실 자기 책상에 앉아 과일 하나를 꺼내 먹으면서 임창영 과장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과장님? 강시혁입니다.”
“임창영입니다.”
“이영진 상무님 댁 가정부는 만나보았습니다.”
“뭐라고 그럽니까?”
“몸살이 나서 오오사카 호텔에 체류 중이랍니다.”
“그래요? 어디 많이 아프신 모양이지요?”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말 들으니 이삼일 쉬었다가 오신다고 했답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오오사카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묵고 있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호텔 이름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임 과장도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이틀 전 이영진 상무님이 우리 실장님에겐 비지니스 일이 있어 며칠 더 있다가 들어오신다고 했는데 몸이 아프시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나중에라도 혹시 변동사항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과장님!”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다시 한 번 이영진 상무가 빨리 귀국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정말 단순히 몸살기가 있어서 그런가? 혹시 코로나는 아닌가?]
하지만 코로나 소리는 없었다.
후배 변상철의 전화가 왔다.
“바빠?”
“아니, 괜찮아.”
“전기기능사 시험 봤다며? 합격했어? 대학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사람이니 그거야 못 붙겠어?”
“내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게 아니지. 우스운 성적으로 나왔지. 우리가 말은 똑바로 하자.”
“그런데 발표일이 왜 이렇게 길어? 합격했다면 술 한 잔 뺏어 먹으려고 했는데.”
“어? 그러고 보니 오늘이네. 알았다. 확인해보고 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