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재벌 따님의 일본 출장 (2)
(66)
임창영 과장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강시혁은 임창영 과장이 왜 이렇게 밥까지 사주며 친절한가하고 탐색을 해보았다.
임 과장은 임 과장대로 어떻게 하면 강시혁에게 많은 말을 끄집어 낼 수 있을까 하고 연구를 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밥을 다 먹었다.
강시혁은 임창영 과장이 자기에게 혹시 섭섭하게 생각하고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였다.
뭔가 선물이라도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괴롭힐 수도 있었다. 회장을 직접 모시는 비서실 과장이라 자기 하나 정도는 쉽게 무너트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회장이 영빈관에 가는 걸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큰 낭패였다.
낮잠이라도 자고 있을 때 회장이 들어온다면 자기가 쌓은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영빈관으로 모셔가기로 했다.
강시혁이 얼굴에 미소를 잔뜩 띠고 말했다.
“과장님. 커피는 영빈관 관리실에 가서 하시죠. 커피숍보다는 거기가 아늑하고 좋습니다. 또 거기 있어야 누가 찾아와도 좋습니다.”
“그럼, 그럴까요? 어차피 내 차도 그 앞에 세워두었으니까.”
둘은 영빈관으로 다시 왔다.
관리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임창영 과장이 다시 물었다.
“이영진 상무님이 공식적으로는 회사일로 일본에 출장을 가셨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남편 일로 갔다는 소문도 있는데 혹시 들은 이야기가 없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부부관계가....... 헤헤, 이 말은 제가 말씀 드리기가 어려운데요?”
여기까지 말한 것도 일종의 선물인 셈이었다.
임창영 과장이 만족한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부부관계가 썩 좋지 않다는 말이군요.”
강시혁은 그 남편인 홍 사장이 뽕쟁이란 말을 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자세한 것은 저 보다도 이영진 상무님을 모시고 다니는 김 과장님께 물어보면 될 겁니다.”
“김 과장?”
“벤츠차 기사 말입니다.”
“아, 그 사람! 그 사람은 문제가 많습니다. 평소에 뚱해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입니다.”
[그럴 테지요. 기사가 입이 가벼우면 그 자리를 그렇게 오래 지켰겠습니까? 아마 같은 과장이라도 임 과장님은 벤츠차 기사를 속으론 기사라고 개 무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벤츠차 기사는 같은 과장이며 나이도 임 과장님보다는 훨씬 많아 짬밥으로 누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언어가 불통일수 밖에요.]
이렇게 생각하며 강시혁은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임 과장을 안심은 시켜줘야 할 것 같았다.
“혹시 이영진 상무님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들어오면 과장님께 제일 먼저 보고 하겠습니다. 저는 임 과장님 직속 부하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오해는 마세요. 우리 비서실은 윗분을 더 잘 모시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까.”
“헤헤. 그건 저도 잘 압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큐레이터 신종화가 왔다.
자기 차에 그림 두 점을 싣고 왔다. 어제 가져간 그림을 대체하고 가져온 그림 같았다.
“어머, 임 과장님이 계셨네요.”
“예, 지나가는 길에 들렸습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예, 전시장에서 인턴들과 함께 했습니다.”
“조금 일찍 오셨더라면 같이 식사를 했을 걸 그랬습니다.”
그런데 항상 당당하던 큐레이터 신종화는 임 과장 앞에서는 아주 얌전해 졌다.
오히려 공손한척 했다. 평소에 설운동 대리나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와는 전혀 달랐다.
이 모습을 보고 강시혁은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일요일 날 비서실 직원들하고 전시회 좀 오시지 그랬어요?”
“가려고 했는데 미국 투자은행 사람이온다고 해서 못 갔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여의도에서 있었던 경제협력 활성화 포럼에서 회장님과 XX장관께서 만나셨습니다.”
“어머, 그러세요?”
강시혁은 XX장관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신종화와 가깝다는 장관이었다.
강시혁도 흥미가 있어 귀를 기울였다.
“그날 XX장관께서 회장님께 문화재단에 계신 신종화씨가 일을 잘 하시냐고 물었습니다.”
옆에서 강시혁이 일부러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장관께서 회장님에게 신종화씨 안부를 묻다니! 이제 보니 신종화씨 다시 봐야 되겠네요?”
이 말에 신종화는 턱을 높이 치켜들고 폼을 잡았다.
강시혁이 계속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어휴, 미술관 큐레이터도 되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렇게 어마어마한 인맥까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러면 설운동 대리가 신종화씨한테 잘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 관심도 없어요.”
그러면서 신종화는 또 폼을 잡았다.
임창영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날 제가 옆에서 회장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회장님이 뭐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뭐라고 하셨는데요?”
“큐레이터 신종화씨는 아주 똑똑하고 인물도 좋아 문화재단의 보물이라고 하셨습니다.”
“호호, 그래요?“
“XX장관님께서도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회장님도 칭찬이 너무 과하셨네요.”
“XX장관께서는 신종화씨가 앞으로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며 학계에서도 탐을 내는 인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강시혁은 러시아의 푸친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체조 선수가 생각났다.
그런데 문득 임창영 과장이라는 사람이 혹시 XX장관과 신종화씨의 관계를 알고 저러는 가 했다.
알고도 능청스럽게 띄워주기 작전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임창영은 조심해야 될 사람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도 출세를 위해 주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인물도 좋고 학력도 화려하고 언변 또한 아나운서처럼 좋았다.
강시혁은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임창영 과장은 아니었다. 이미 글로벌화 된 인물로 세련되어 있기도 하였다.
강시혁은 저 사람이 저런 식으로 나간다면 비서실 임원을 거쳐 나중에 계열사 사장 자리 하나는 꿰찰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자기는 영빈관 잡급직 반장으로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종화가 몸을 약간 비틀며 말했다.
“제 친구 하은이에게 과장님 이야기는 많이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은이는 이번에 서울 명문대학인 H대학에 전임으로 가게 되었으니 축하 인사나 해주세요.”
“역시 윤하은 씨가 전임이 되었군요.”
“아무래도 요즘 대학은 인물보고 교수채용을 하는 것 같아요. 윤하은이 인물값 하는 것 같아요.”
“설마요. 실력이겠지요.”
“아니에요. 인물이에요.”
“하하, 그렇습니까? 요즘 교수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데 제가 축하한다고 꼭 전해주십시오. 저도 직접 인사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친구에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강시혁은 이것들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어서 그랬구나 하였다.
[역시 거래야. 신종화는 대학 전임강사가 된 자기 친구를 임창영 과장에게 소개해 주고 임창영 과장은 신종화의 출세에 조연 역할을 담당하는 게 틀림없어.]
그런데 강시혁은 아직 임창영 과장과 거래를 할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임창영도 아직은 강시혁에게 큰 거래를 바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서서히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려는 의도만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임창영 과장과 신종화가 간다고 동시에 일어섰다.
강시혁이 대문 밖까지 전송하러 나왔다.
임창영 과장이 운전석 창문을 열고 말했다.
“강 반장! 우리 앞으로 종종 연락하며 지냅시다.”
“고맙습니다.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은 임창영 과장이 타고 온 랜드로버 뒤꽁무니에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신종화도 자기가 타고 온 차의 운전석에 앉아 강시혁에게 말했다.
“저도 갈게요.”
“안녕히 가십시오. 큐레이터님!”
역시 강시혁은 신종화가 타고 온 기아K7 차의 뒤꽁무니에도 허리 굽혀 인사했다.
차 두 대가 떠나버리자 강시혁이 혼자 중얼거렸다.
“씨팔! 다들 좋은 차 타고 다니네. 그런데 나는 이게 뭐야? 내 소유의 차도 없이 남의 차 뒤꽁무니에 인사나 하는 처지니!”
강시혁이 대문을 닫고 지하에 있는 관리실로 왔다.
조금 전 신종화가 말한 그의 친구 윤하은 이라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정말 H대학 교수 임명자 명단의 말석에 들어 있었다. 미술대학 전임강사였다.
겸임교수나 석좌교수, 외래교수, 명예교수 같은 사람들은 비전임 교수다.
그러나 전임강사는 전임교수의 반열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회사로 말하면 이른바 정규직이라 잘릴 염려도 없는 사람이었다.
인터넷 스크롤을 더 내려 보았다.
3년 전 일본서 개인전시회를 가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자기가 그린 그림 앞에서 빵떡모자를 쓰고 촬영한 인물사진이 있었다.
윤하은은 역시 인물이 괜찮아 보였다.
강시혁은 신종화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요즘 대학은 인물보고 채용하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정말일까?]
강시혁은 이 여자와 임창영 과장을 대치시켜 보았다.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술대 전임강사가 되었으니 그렇게 되기까지의 재력 있는 부모의 뒷받침도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임창영 과장도 피자 먹으러 초등학교 때부터 이태원을 드나들었던 사람이었다.
중산층 출신인 것이 분명했다.
만약에 이 둘이 결혼을 한다면 수입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둘이 합하여 1억 5천만 원 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들은 나처럼 결혼생활이 박살나지는 않겠군.]
이 둘은 자기들처럼 투룸 월세에서 시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강시혁은 중소기업이라 급여도 작았지만 그놈의 투룸 임대료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늘 쫓기듯이 살았다.
정말 이럴 때는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었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뒤졌으나 담배를 안 피운지 오래되어 담배가 있을 리가 없었다.
생수 한 컵을 마시고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누웠다.
그러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인터넷을 더 보았다.
눈에 띄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배우 겸 가수인 K양 일본 체류 중 경찰에 입건. 오오사카 닛폰바시 병원에서 약물투입 혐의]
사진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인물이었다.
그렇다! 지난번 강남 상섬동의 오피스텔에서 홍 사장과 함께 있었던 여자였다. 강시혁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기사를 더 클릭해 보았다.
[일본 오오사카 경찰은 한국 연예인인 K양이 닛폰바시 병원에서 약물투입 혐의가 있다고 조사 중이다. K양은 경찰에서 약물투입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고 피로와 불면증이 심하여 소량의 약물 투입을 했다고 자백을 하였다.]
댓글도 많이 달렸다.
그렇게 이름 있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이런 사건이 터지니 너도나도 댓글을 단 것 같았다.
[얼굴에 다크서클이 심하다. 소량이 아니고 다량일 것이다. 더 조사해라.]
[그런데 일본은 누구랑 같이 간 거야?]
[얘는 한동안 안보이더니 거기 가서 노는 모양이네.]
[다량인지 소량인지 머리털 잘라 검사해봐라.]
[머리털로 약물투입 여부를 가려내기 힘들면 00도 조사해라.]
그런데 사진을 보니 상당히 젊어 보였다. 젊다 못해 앳되어 보였다.
지난번 오피스텔에서 보았을 때는 이 사진보다는 5년은 더 나이 들어 보였었다. 아무래도 이 사진은 뽀샵을 한 사진 같았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본 젊은이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댓글을 단 것 같았다.
강시혁은 갑자기 이영진 상무가 걱정이 되었다.
[지금 이영진 상무는 일본에 가 있는데 어떻게 되는 거야? 혹시 홍 사장이 또 이 여자랑 같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여자를 조사하다가 홍 사장도 걸려 들어가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또 세상이 시끄러워질 텐데.]
강시혁은 걱정이 되어 이영진 상무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의 가정 일에 잡급직 반장 따위가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제발 아무 관련이 없고 무사하기만을 빌었다.
[혼자 간 것이 마음에 걸리네. 일본어 잘 하는 회사 비서실 직원이나 삼방그룹 일본 지사장과 함께 동행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기의 이런 행동도 지나친 관심이 아닐까 하였다.
주제넘게 영빈관 반장이면 건물 관리라 잘하지 오너 따님의 일에 웬 간섭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