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재벌 따님의 일본 출장 (1)
(65)
벤츠차 기사는 확실히 술을 잘 마셨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그는 평소에는 술을 잘 못 마셨을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같은 날이 되면 해방감에서 폭주를 하는 것 같았다.
또, 평상시는 입을 닫고 살다가 오늘 같은 날이면 말이 많아졌다.
그래도 이 사람은 회사의 계열사 직원들에게는 함부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오너 집안의 비밀스런 이야기는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강시혁에게는 달랐다.
강시혁을 계열사 직원이 아닌 자기 동료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속에 있는 말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시혁은 대리기사 출신이고 지금도 절반은 수송 업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회장님이 처음엔 홍 사장을 굉장히 좋아했지. 일등 사위 보았다고 좋아했지. 보수 언론의 장남이니 안 그러겠어?”
“그랬겠네요.”
“더구나 홍 사장은 학력도 화려하잖아? 하바드 대학교 MBA출신이고 실리콘벨리에 있는 다국적 투자은행의 근무경력까지 있으니 회장님이 혹 했지.”
“더구나 인물도 좋지 않습니까?”
“인물은 기생오라비처럼 생겨..... 아이고, 또 요놈의 입!”
그러면서 벤츠차 기사는 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마구 때렸다.
자기가 모시고 다니는 이영진 상무의 남편 험담을 하다니 이런 경솔할 데가 어디 있나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회사차 기사로 금기의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런 말을 회장차 기사인 이사급 기사 앞에서 했다면 주먹으로 한 대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인물이야 과장님이 좋지요.”
“헤헤, 그 말은 맞아. 내가 총각 때 나를 흠모하던 아가씨들이 많았으니까!”
“정말입니까?”
그러면서 강시혁은 벤츠차 기사 앞에 있는 막걸리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두 손으로 공손히 따라주었다.
계열사 직원들이야 벤츠차 기사를 과장이라고 불러주지도 않고 은근히 무시했겠지만 강시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배로서의 대우를 다해주었다.
막걸리를 단숨에 비운 벤츠차 기사가 입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회장님 차를 운전하는 이사 형님에게 들으니 주식까지 나누어 준다고 했나봐.”
“그래요? 회장님이 홍 사장에게 주식을요?”
“삼방전기가 무상증자를 한다는 계획이 있으니 전기 주식을 10만주 증여를 하기로 했는데....”
“했는데 안됐군요.”
“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소리는 쑥 들어갔지.”
“그런데 10만주면 금액으로 얼마나 되는 돈입니까?”
“현재 삼방전기 주식이 10만원 간다니까 10만주면 100억이겠지. 결혼 잘하면 100억이 한꺼번에 굴러 들어오네. 그러니 자네도 장가를 잘 가란 말이네.”
벤츠차 기사는 강시혁이 한번 이혼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햐, 100억이면 얼마야? 날고 긴다는 엘리트 사원들이 평생가도 만져보지 못하는 돈이네. 내가 아는 사람은 단돈 1억이 없어 신불자가 되어 투잡 뛰며 개고생 하던데!”
그 신불자는 바로 자기를 두고 한 말이었다.
강시혁이 1억의 빚을 지고 신불자의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살려고 투잡을 뛰었지만 빚은 갚아지지 않았다.
벤츠차 기사가 머리고기를 새우젓에 찍으며 말했다.
“또 이번만 주는 게 아니라 세월이 가면 조금씩 더 주겠지. 한꺼번에 주면 증여세가 많이 나오니까. 또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상속 받겠어?”
“그러네요.”
“그런데 영남이가 약물에 손을 대어 실망했었는데 새로 들어온 사위까지 그 짓을 하니 회장님이 울화통이 안 터지겠어?”
“그렇겠네요.”
“그래서 새끼들 미국에 유학을 함부로 보내는 게 아니야. 미국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처럼 시험지옥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며? 그래서 방과 후 활동이 다양하다며? 클럽이 활성화되었다니 그런데서 춤추고 놀다가 약물에 접하는 거겠지.”
“소수가 그러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와 각자의 분야에서 일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비서실 임창영 과장도 미국서 공부했고 이영진 상무님도 미국서 공부했지만 그런 거와는 거리가 멀잖습니까.”
“우리 딸년 이야기를 들으니까 미국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로커에 약을 넣어두었다가 문을 열고 냄새를 맡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네.”
“따님 미국에 보내지 말아야겠군요.”
“나는 돈 없어 못 보내. 미국 보내는 것은 부모의 능력 순이라고 하잖아.”
그 말은 맞는 것 같았다.
강시혁도 유학을 하고 싶었지만 지방의 낡은 아파트에 사는 부모님에게 경비를 대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강시혁이 머리고기를 먹으며 말했다.
“과장님은 내일부터 한 이틀간 출근 안하셔도 되겠네요.”
“그래도 회사에 가서 출근카드는 긁어줘야 돼. 안 그러면 삼방전자 총무과 대리란 녀석이 삐딱한 소리를 해.”
“삼방전자 대리가요?”
“상무님 차가 삼방전자 소속이거든. 내 월급도 삼방전자에서 나와.”
“그럼 상무님도 삼방전자에서 나오겠네요.”
“이 사람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네. 이영진 상무는 그룹 회장님의 따님이네. 나는 한군데서 월급이 나오지만 이영진 상무는 다르네. 적어도 10개 계열사에서는 다 급여가 나오네.”
“10개 회사요?”
“규모가 큰 계열사에는 다 이름을 얹어 놓았어. 그것도 당당한 등기이사야. 월급만 해도 수십억이지. 그러니 상무이사가 아니라 부회장 급이지.”
“정말 부회장 급이겠네요.”
“계열사 상무들은 이영진 상무가 같은 상무 급이라고 해도 10미터 앞에서 인사를 하고 지나가네.”
“하하, 그런가요?”
“그것도 50대의 상무들이 눈 내리 깔고 제대로 허리 꺾어 인사하며 지나가네.”
"이영진 상무가 미래의 실세라 그렇겠군요.“
“아무튼 난 내일 출근 카드나 찍고 삼방화학 화성공장엘 갔다 와야겠어. 거기 내 친구가 있거든.”
강시혁은 순간적으로 화성공장 구내식당 식당 아줌마가 생각났다.
아줌마를 만나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금산 아줌마가 말하길 벤츠차 기사가 화성공장으로 간 아줌마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못하게 막았더니 그 다음부터 자기와 틀어지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둘 다 결혼한 사람이라 못하게 막았었다고 했다.
강시혁이 앞에 있는 벤츠차 기사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좀 엉큼한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네, 왜 내 얼굴을 그렇게 뚫어져라 하고 보나!”
“아, 입가 옆에 뭐가 묻어서요.”
“그래?”
“참, 이 영빈관에 할머님이 살고 계셨을 때 일하던 아줌마 있지요? 그분도 화성공장 구내식당으로 갔다고 하던데요?”
“응, 그, 그렇다고 하더군.”
강시혁이 슬쩍 벤츠차 기사의 반응을 보기로 했다.
“그 아줌마는 가정부로 있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던데요? 처녀 때는 굉장히 예뻤을 것 같던데요?”
“응? 그, 그렇지? 자네처럼 젊은 사람도 그렇게 보는군. 지금도 인물 좋지.“
그러면서 벤츠차 기사는 굉장히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시혁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쯧쯧쯧. 분수를 알아야지. 중학교 다니는 딸까지 있는 사람이!]
강시혁은 한마디 더 아줌마를 예쁘다고 해주었다.
“지금도 그 아줌마는 시장 같은데 가면 아저씨들이 쳐다볼 것 같던데요?”
“그렇지? 그럴 거야. 이영진 상무의 인물보다야 못하지만 그 정도면 구내식당이 아니고 대폿집을 해도 잘 될거야.”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인물 소리가 나오자 속으로 뜨끔했다. 자기도 요즘 이영진 상무를 만나면 이상하게 가슴이 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영진 상무는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었고 자기도 역시 결혼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두 사내는 이미 결혼한 여자를 속으로 생각하는 엉큼한 사람들인 것이다.
강시혁은 벤츠차 기사와 자기가 피장파장인 것 같아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음날은 정말 비서실 임창영 과장이 왔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왔다.
깔끔한 옷차림에 세련된 헤어스타일을 하고 왔다. 몸에서는 은은한 남성 향수도 풍겨왔다.
“강남 쪽에 일을 보러갔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렸습니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었으니 식사나 하러 가시죠.”
“감사합니다. 차는 여기 문 앞에 세워두고 가시죠. 이태원은 주차가 좀 복잡합니다.”
강시혁은 오늘 자장면이 먹고 싶었는데 귀한 사람이 왔으니 어디로 모실까 했다.
일단 비서실 과장이면 문화재단의 설운동 대리나 큐레이터 신종화보다는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케르반으로 가자고 하였다.
케르반이란 이름을 들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도 음식점인지 아랍 쪽 식당인지 기억이 가물거렸다.
“터키음식 좋아하시면 케르반으로 가시죠.”
이제 생각났다. 이태원역 근방에 있는 식당이었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케르반을 아시는걸 보니 여기 자주 오시는 것 같습니다.”
“미국 가기 전엔 자주 왔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길 왔습니다.”
“그러세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태원을 왔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이 동부 이촌동 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아빠 손을 잡고 이태원엘 자주 왔습니다. 이곳에 유명한 피자집들이 있었거든요.”
강시혁은 임 과장이 초등학교 6학년이면 자기가 3학년 정도 되었을 때라고 생각했다.
그때 자기는 피자 구경도 못했었다.
동네 아이들과 냇가에 가서 송사리나 잡으러 다닐 때였다.
임 과장이 메뉴판을 주면서 음식 주문을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는 먹어보질 않아서 어느 것이 맛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메뉴판을 주며 말했다.
“과장님께서 주문하시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닭고기 좋아하십니까?”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그래서 임 과장이 카이막과 닭고기 쉬시 케밥이라는 요리를 시켰다.
주변을 돌아보니 외국인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다.
[돼지고기는 안 먹는 나라도 있지만 닭고기는 누구나 잘 먹으니까 다들 닭고기를 먹는 것 같군.]
임 과장은 맥주도 한 병 시켰다.
“근무시간이니까 한잔씩만 합시다. 고기가 들어오면 맥주 한잔 곁들이는 게 좋습니다.”
“점심값 많이 나오겠는데요?”
“이거면 됩니다.“
그러면서 임 과장은 법인카드를 꺼내어 흔들었다.
“과장님들은 모두 법인 카드를 가지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팀장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접대할 때 팀장이 가지고 있는 법인카드를 빌려가지고 옵니다. 오늘도 빌렸습니다.”
“접대하는 사람이 영빈관 잡급직 경비 반장이라면 회사에 돌아가 혼날 텐데요?”
“하하. 룸살롱 가는 것도 아니고 점심 먹는 것 가지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강시혁은 부러웠다.
자기도 저런 법인카드를 들고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문화재단은 설운동 대리나 큐레이터 신종화도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재단 법인카드는 관장이 혼자 들고 다니면서 직원들이 누굴 접대한다면 꼬치꼬치 물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접대도 안하고 법인카드도 안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엇다. 직원들이 돈을 쓰는 것은 너무 방치해도 못쓰지만 너무 통제해도 못 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화재단과 그룹 비서실을 단순 비교하기는 곤란했다.
문화재단은 말 그대로 문화사업을 하는 곳이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은 아니다.
미술품을 팔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자체 경비 충당용으로 한다.
그렇지만 비서실은 삼방전자의 막강한 계열사를 관리하는 곳이다.
계열사들 대부분이 글로벌 기업들이라 매출도 엄청나고 쓰는 돈도 엄청나다.
그래서 비서실 과장은 룸살롱 가는 것은 몰라도 점심 값 정도는 자기 재량 하에 팍팍 쓰는 것이었다.
절연 공구세트를 사기위해 중고 장터 사이트나 뒤지는 강시혁과는 차원이 달랐다.
음식을 반쯤 먹었을 때 임창영 과장이 물었다.
"회장님 사모님은 가끔 몸이 아프십니까?“
“아닙니다. 그날 처음으로 제가 밤에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밤이라도 우리 비서실에 알려주세요. 우리 비서실 직원들은 밤에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병원에서 회장님을 일반인들처럼 보호자 대기석에 앉힐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회장님이 번거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수행 기사님들도 들어가라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영진 상무님이 일본에 출장가신 것을 알고 계시죠?”
“이야기 들었습니다. 회사 일로 가셨겠지요.”
이 말에 임창영 과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