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운동 시작 (3)
(64)
강시혁은 어제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병원 응급실에 갔던 사모님을 모시고 아침에 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입맛도 없었다. 그래서 밥 대신에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나니 잠이 솔솔 왔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 토끼잠을 잤다. 그러다가 전화 벨 소리에 잠이 깼다.
“비서실 임창영 과장입니다.”
“아, 과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제 일요일이라 저는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 갔었는데요?”
“그게 아니고 밤에 말입니다. 회장님 사모님이 병원 응급실에 가셨다면서요?”
“아, 그건 밤에 사모님이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순천향병원에 모시고 갔었습니다. 급성 대장염이라고 했는데 주사 맞으시고 괜찮아져서 오늘 아침에 퇴원하셨습니다.”
“흠, 그랬구나. 그래서 회장님이 전략 경영실 임원들 소집해서 대학병원 인수를 추진하라고 하셨구나.”
“예? 대학병원을 인수해요?“
“어제 병원장이 직접 나와 회장님 접대를 하지 않았습니까?”
“밤이라 젊은 당직 의사밖에 없었습니다. 낮이면 아마 병원장이 직접 나왔을지도 모르죠.”
“내가 가끔 이태원에 놀러갈 때가 있습니다. 언제 한번 만나 식사나 같이 합시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임창영 과장은 강시혁 하고 어울릴 군번이 아니었다.
임창영 과장은 강시혁보다 나이도 몇 살 많고 직급도 과장이었다. 그렇지만 강시혁이 오너 가족의 심부름 같은 것을 하고 있어 친절하게 하는 것이었다. 혹시 정보라도 있을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강시혁은 문화재단의 설운동 대리에게 전화를 하였다.
어제 특근 사실도 알려주고 자기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설 대리님? 강시혁입니다.”
“어제 관장님은 댁까지 잘 모셔다 드렸죠?”
“예, 집 앞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 하셨소?“
“한 가지 물어볼게 있습니다. 혹시 야간 특별 근무를 하게 되면 수당 같은 것 달아줍니까?”
“회사 지시에 의한 특별 근무라면 달아드릴 수도 있지요. 왜요? 관장님이 야간에 일할 무언가 특별지시가 있었습니까?”
“그게 아니고 어제 회장님과 회장님 사모님을 야간에 모셨습니다.”
“예? 회장님과 사모님을 모셔요?”
“사모님이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야간에 급히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있다가 아침에 퇴원시켜 드렸습니다.”
“오,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럼 달아드려야죠. 일단은 관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특근수당을 달아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제 야간 근무를 했다면 잠도 많이 못 잤을 텐데.”
“그래도 화단에 물은 줘야지요. 또 미술품 보관 장소에 습도와 온도도 조절해야 되고 청소도 해야죠.”
“수고가 많네요.”
10분도 되지 않아 관장의 전화가 왔다.
“강 반장? 나요.”
“옙! 관장님. 강시혁입니다.”
“어제 밤에 사모님이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복통을 갑자기 일으켜 병원 응급실에 모셨었습니다. 다행히 주사를 맞으시고 복통이 진정되어 아침에 퇴원하셨습니다.”
“병명이 뭐라고 해요?”
“급성 대장염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앞으로 회장님이나 회장 사모님에게 일이 생기면 나에게 즉각 보고를 해주세요. 다른 것은 설운동 대리에게 보고해도 되지만 회장님과 관계되는 일은 나에게 먼저 보고해 줘요.”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야간 특근 수당은 달아주라고 내가 설 대리에게 지시했어요.”
“아휴, 고맙습니다.”
“내가 강 반장을 잘보고 있는 것 알지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기회가 있으면 이영진 상무나 회장님에게 강 반장이 일을 잘하고 예의바른 젊은이라고 말을 하려든 참이었어요.”
“헉, 고맙습니다. 저도 관장님이 언제나 저를 잘 보살펴주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호호. 나는 언제나 강 반장이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특근수당은 아마 이번 달 급여에 반영이 될 거예요.”
“고맙습니다. 항상 관장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사모님은 내 대학 선배이시니 전화나 한번 드려봐야겠네. 강 반장 그럼 수고해요.“
“감사합니다.”
강시혁은 이제 관장도 자기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너 가족과 가깝게 지내는 것 같은 자기를 함부로 대한다면 자기에게도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50대의 학장 출신인 관장이 그걸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강시혁은 달력을 보았다.
전기 기능사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가 일주일 남았다.
이제 실기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데 하기가 싫었다. 필기시험에 떨어진다면 실기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실기교육은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를 보고 하자.]
그런데 실기시험이 아니더라도 절연 공구세트는 하나 사고 싶었다. 건물관리 하면서 이거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망치와 드라이버 같은 것은 있지만 세트로 공구를 구입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격이 좀 비쌌다.
물론 설운동 대리에게 절연 공구세트 하나를 구입하겠다고 하면 영수증 처리는 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혹시 중고품이 있는가 해서 인터넷 중고나라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공구를 판다는 사람은 없고 헬스 바벨세트를 양도한다는 글이 게시판에 떠 있었다. 그래서 강시혁이 얼른 광클릭을 했다.
[제가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되어 헬스 바벨세트를 양도합니다. 2만원에 가져가실 분은 연락 바랍니다.]
바벨세트 사진까지 올라와 있었다.
강시혁은 그렇지 않아도 몸 단련을 위해 헬스바벨 세트를 사려든 참이었다.
마당에 놓지 않고 지하실에 있는 관리실 복도 옆에 놔도 될 것 같았다.
바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중고나라에 글 올리신 분이죠?”
“예, 맞습니다. 헬스 바벨세트 양도한다고 글 올렸습니다.”
전화 목소리는 앳돼 보였다.
학생인 것 같기도 하였다.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택배로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혹시 차가 있으면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여기는 동작구 상도동입니다.”
상도동이면 전기기능사 학원이 있는 노량진 옆 동네였다.
“지금 가겠습니다.”
“그럼 빨리 오세요. 상도동 건영 아파트로 오세요.”
강시혁이 카니발을 끌고 갔다.
글을 올린 사람을 만났다. 역시 대학생인듯한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과잠을 입고 나왔는데 강시혁이 나온 학교였다.
강시혁은 자기도 그 학교를 나온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헬스 바벨세트는 사용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얼른 2만원을 주고 인수했다. 꼭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이것만 가지고 연습을 해도 굳이 헬스장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였다.
강시혁이 바벨세트를 관리실 옆 복도에 들여 놓았다.
그리고 웃통을 벗고 연습을 해보았다.
[땀을 흘리도록 연습을 해야겠지, 한 3개월 연습하면 근육이 좀 나오지 않겠어?]
강시혁은 벌어진 앞가슴과 굵은 팔뚝을 가진 미래의 자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선 그라스를 끼고 이영진 상무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강시혁은 저녁엔 기타 연습을 했다.
아무도 없는 영빈관 지하에서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럽다고 이웃에서 야구 방망이 들고 몰려올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독학으로 하니까 줄 누르기와 음 조율 같은 것이 잘 안되었다.
교본이라도 있어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에 들어가 예스24에서 왕초보 통기타 연습 이라는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넷플렉스에 들어가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 영어 회화 연습을 더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이 되었다.
이 날은 화요일이었다. 이영진 상무가 일본을 가는 날이었다.
오전에 큐레이터 신종화가 왔다.
“그림 두 점만 전시회에 가져가야되겠어요. 그림은 내가 직접 골라야 돼요.”
강시혁이 2층에 있는 미술품이 보관된 방문을 열어주었다.
방문을 열자 물감 냄새 같은 것이 희미하게 풍겼다.
신종화는 그림 두 점을 골라냈다. 작은 사이즈의 소품이었다.
“제가 수송해야 되죠? 예술의 전당으로 가면 됩니까?”
“아뇨. 소품이니까 내 차에 그냥 싣고 갈게요. 지난번에 사온 케이스 남은 것 있죠? 거기에 담고 포장이나 해주세요.”
“그러지요.”
강시혁이 그림을 케이스에 담고 있는데 신종화가 옆에서 말했다.
“관장님이 그러시는데 강 반장님이 일을 참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하하, 그래요? 열심히 한 것도 없는데!“
그렇지만 강시혁은 기분이 좋았다.
관장이 이제 슬슬 자기 칭찬을 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관장의 고도의 수법이었다.
강시혁이 가끔 회장과 이영진 상무를 접촉하니까 자기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해 달라는 신호였다.
그러면 자기도 강시혁을 씹지 않고 가끔 띄워주겠다는 제스처였다.
“관장님도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라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대단하신 것 같았습니다.”
“대단하긴!”
그러면서 신종화는 입을 쑥 내밀었다.
사람이 출세를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욕망이었다.
강시혁은 주변을 우군으로 만들며 천천히 출세하는 형이지만 신종화는 아니었다.
신종화는 바로 정상에 있는 사람을 공략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신종화는 삼촌뻘인 XX장관을 움직여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 여자였다.
강시혁이 신종화를 보면 러시아 체조선수 출신인 알리나 카바예바가 생각나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아마도 신종화는 자기 또래의 젊은 남자들은 상대도 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엔 이영진 상무의 벤츠차 기사가 왔다.
물건이 든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과장님! 이영진 상무님은 출국하셨습니까?”
“했어. 내가 이제 한 3일간 해방이야.”
“하하, 즐거우시겠습니다.”
“우리가 지난번 사모님 병원에 간 날처럼 늦게까지 근무할 때도 있지만 차 임자 출장가면 이런 날도 있지. 그래서 이 맛에 회사차 기사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비닐봉지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하, 자네하고 한잔하려고 돼지 머리고기하고 막걸리 좀 사왔어.”
역시 중년의 김 과장은 아재 스타일이었다.
그렇다고 인상 찌푸릴 필요는 없었다. 웃으며 말했다.
“제가 머리고기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이 사람아! 나도 눈칫밥 20년 먹은 사람이네. 그걸 모를 줄 아나? 컵이나 가져와.”
둘이 영빈관 지하에 있는 관리실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저녁 6시가 다 되었기에 근무 중 음주는 아닌 것이 되었다.
“이영진 상무님은 일본에서 홍 사장님을 만나 잘 화해하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울 것 같은데? 이영진 상무는 원리원칙주의자야. 그런데 홍 사장은 그게 아닌 것 같아. 아무리 봐도 이영진 상무는 밑지는 결혼을 한 것 같아. 아까워.”
“그런데 혼자 가셨습니까?”
“원래 비서실에서 한사람이 동행하기로 했는데 이 상무가 원하지 않았어. 사생활 노출이 싫었던 게지.”
“좀 걱정되네요.”
“그래서 회장님도 삼방그룹 일본 지사장을 동행시켜주겠다고 했는데 이영진 상무는 그것도 싫다고 했어.”
“가정 일에 회사 사람이 끼어드는 걸 정말 싫어하시는 분이군요.”
“이영진 상무는 겉으로는 얌전한 것 같아도 속에는 칼이 들어있는 사람이야. 사리가 아주 단호한 사람이야.”
“그런데 과장님. 홍 사장님이 정말 뽕을 하는 게 맞습니까?”
벤츠차 기사가 고개를 낮추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도 눈치를 챈 것 같아 말하는데 이번에 이영진 상무가 가는 것도 일본 재활시설 입소를 권유하러 가는 것 같았어. 내가 운전하고 가면서 이영진 상무가 무슨 박사라는 사람하고 통화하는 걸 들었어.”
“우리나라엔 그런 시설이 없나요?”
“있어도 시설이 미비하고 또 소문 날까봐 그러겠지. 그러니 일본서 약물 중독 치료를 계획하는 거지. 일본은 다르크(DARC)라는 민간 재활기구가 있어서 재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다르크요?”
“뽕에 중독되었었던 일본인이 직접 만든 민간 재활기구란 말을 들었어.”
“그런데 한국인이 입소가 가능한가요?”
“이영진 상무가 가서 재정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그러면 입소시켜주지 않겠어? 원래 민간단체란 항상 재정이 열악하거든.”
그러면서 벤츠차 기사는 막걸리 한 병을 더 따려고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막걸리를 섞기 위해 막걸리 병의 주둥이를 잡고 빙빙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