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63화 (63/199)

63화 운동 시작 (2)

(63)

강시혁은 그림보다는 뒤에 있는 이영진 상무에게 촉각을 세웠다.

이영진 상무와 관장의 대화가 들렸다.

조금 전에 강시혁이 올 때는 관장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호호 웃으며 이영진 상무를 안내하고 있었다.

이영진 상무는 삼방그룹 미래의 실력자다. 현재도 문화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어 관장도 아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관장은 조카뻘 나이밖에 안 되는 이영진 상무에게 열심히 그림을 설명해 주었다.

이영진 상무는 그림을 아는지는 몰라도 고개를 가끔 끄덕여주었다.

큐레이터 신종화는 자기가 설명할 기회를 빼앗겨서 그런지 뒤에서 샐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영진 상무가 관장에게 질문하는 소리가 들렸다.

“삼방그룹 임직원들이 많이 와서 관람하던가요?”

“불과 몇 사람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삼방그룹 임직원들이 많이 관람을 해주었으면 전시회가 더 빛났을 텐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강시혁은 속으로 계열사 직원들은 아마 지금쯤 골프장이나 낚시터에 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아이들 데리고 용인 에버랜드라도 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제가 회사에 돌아가면 관람 독촉을 하겠습니다.”

“아휴, 상무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면 저는 더욱 좋지요. 호호.”

“그래도 이번에 전시회가 열린다고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주었던 것 같은데요?”

“그나마 언론 덕에 이렇게 관람객이 있고 그림도 몇 점 구매 예약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상무님 배우자인 홍 사장님이 계시는 신문사에서 기사를 특별히 다루어주어 고마웠습니다.”

“그랬나요?”

강시혁은 이 소리를 듣고 재벌의 배우자는 역시 짱짱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재벌들은 그래서 끼리끼리 결혼하는 것 같군. 우리 아버지처럼 중소기업 퇴직 후 시청에서 하는 공공근로사업이나 따라다닌다면 중산층 가정에서도 결혼 반대를 했겠지.]

이영진 상무와 강시혁의 거리가 좁혀졌다.

강시혁이 일부러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앗! 상무님이 오셨군요. 그림 관람하느라 미처 뵙지를 못했습니다.”

“아, 강 반장님이시군요. 나는 누가 그렇게 그림을 열심히 감상하나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림을 좋아하시는 것 같군요.”

“예, 조금......”

이렇게 말해놓고 강시혁도 쑥스러운지 미소를 지었다.

관장이 말했다.

“강 반장이 왔으니 저 구석에 있는 화분을 이쪽으로 옮겨놔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강시혁이 화분 쪽으로 가려는데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그림 관람 마치고 하세요.”

이 말을 얼른 받아서 관장도 말했다.

“그래, 강 반장. 상무님 말씀 잘 들었죠? 그림 관람하고 옮기세요.”

역시 관장도 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예술가 이전에 사람이었다.

힘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해바라기형 인물이었다. 이것을 캐치한 강시혁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영진 상무가 전시장을 대충 둘러보았다. 그리고 간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나오며 배웅을 했다.

관장은 물론 큐레이터 신종화, 사무국의 설운동 대리,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술의 전당 인사인듯한 사람 두 명이 따라 나왔다.

강시혁도 따라 나왔다.

이영진 상무 뒤를 벤츠차 기사가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벤츠차 기사 김 과장은 똥배가 나온 중년 아저씨다. 뒤뚱거리며 따라가는 모습이 좀 보기가 흉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 뒤를 따라가는 운전기사는 적어도 깍두기 머리는 아니더라고 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양복에 양쪽 어깨가 벌어지고 선 그라스라도 낀 대통령 경호원 같은 사람이었으면 더욱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진 상무가 가고 나서 관장이 강시혁을 불렀다.

“강 반장이 요즘 벤츠차 운전을 한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가끔 상무님 심부름을 할 때도 있습니다.”

“흠, 흠. 벤츠차 가져왔으면 나 좀 우리 집까지 태워줘요. 손님이 와서 기다린다는 연락이 왔네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벤츠차가 아닌 카니발을 가져왔습니다. 벤츠차는 회장님이나 이영진 상무님, 그리고 관장님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강시혁은 회장님과 이영진 상무까지만 말 하려다가 관장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 관장님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주었다.

“호호, 그건 잘했어요. 그럼 카니발 타고 갈까?”

“여기 계시면 차를 가지고 나오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온 벤츠차는 바로 미술관 입구에 있었지만 강시혁이 몰고 온 카니발은 지하주차장에 있었던 것이다.

관장이 카니발을 탔다.

그래도 강시혁이 VIP대접을 해주느라 뒷문을 열어주었다.

“관장님! 미술품을 싣고 다니는 승합차라 관장님을 모시기가 죄송합니다.”

“뭐, 아무려면 어때요. 갑시다. 우리 집으로.”

“자택이 어디신지요?”

“요 앞에 있는 방배 래미안 아트힐 아파트예요.”

아파트는 바로 예술의 전당 코앞에 있는 아파트였다.

걸어가도 될 거리이지만 관장은 카니발을 탔다. 강시혁은 집 앞에 도착 후 또 뒷문을 열어주었다.

관장은 흠, 흠, 거리며 당연하다는 듯이 목에 힘을 주고 내렸다.

강시혁이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지나가던 아파트 주민이 쳐다보았다.

관장은 또 북한의 김여정처럼 턱을 높이 들었다.

강시혁이 영빈관 지하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TV를 보았다.

그러다가 밤 10시쯤 플래시를 들고 영빈관 주위를 점검했다. 그리고 다시 지하로 내려오는데 전화가 왔다.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였다.

“여보세요?”

“영빈관 강 반장님이시죠?”

웬 아줌마 목소리였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강시혁입니다.”

“저는 회장님 댁 가정부입니다. 금산 아줌마가 반장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회장님 댁에 빨리 오셔야겠는데요?”

“예?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모님이 갑자기 배가 아프시다고 난리입니다. 회장님도 아직 안 오시고 사모님 차 기사도 오늘 일요일이라 가족들과 설악산에 갔답니다.”

“알았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강시혁이 얼른 주차장에 가서 벤츠차를 끄집어냈다.

회장댁에 가면서 왜 병원차나 119를 부르지 않았을까 했다. 119를 부르면 119요원이 집안에 들어오고 119구급차도 고급스럽지가 않아 강시혁을 부른 것 아닌가 하였다.

금산 아줌마한테도 전화가 왔다.

“삼촌? 회장님 댁에 빨리 가봐야겠는데?”

“예, 방금 연락 받았습니다. 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따라 이영진 상무 연락도 안 되네. 그래서 내가 회장님 댁 가정부에게 삼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지.”

“잘 하셨습니다.”

“에고,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강시혁이 회장댁에 도착하였다.

사모님은 배를 부둥켜안고 거실 소파에 누워있었다.

“영빈관 강 반장입니다. 제 등에 업히시죠.”

“아이고, 아이고. 나죽는다. 젊은이는 전에 왔던 사람이군.”

강시혁이 얼른 사모님을 등에 업고 벤츠차에 태웠다.

가정부가 따라 나오면서 한마디 했다.

“집안에 남자가 있어야 해.”

강시혁이 출발 직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모님! 어느 병원으로 모실까요?”

“삼성의료원이 좋은데 거긴 너무 멀고...... 순천향 갑시다.”

강시혁이 순천향 병원 응급실로 갔다.

간호사가 강시혁에게 환자 보호자냐고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동안 금산 아줌마와 연락이 되었을지 몰라 문자로 보냈다.

[사모님 순천향 병원 응급실로 모셨습니다. 현재 검사를 받고 계십니다.]

바로 답신이 왔다.

[소식 들었습니다. 곧 도착 예정입니다.]

“흠. 금산 아줌마와 통화한 모양이네.”

이제 강시혁이 할 일은 없었다.

환자에 대한 것은 병원이 알아서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의사가 와서 간호사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VIP사모님이시니까 빨리 검사해.”

벌써 모처에서 병원으로 연락이 간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도착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링겔 주사 맞고 계십니다. 통증은 오실 때보다 좀 가라앉으신 것 같습니다.”

벤츠차 김 기사도 응급실로 들어왔다.

강시혁은 벤츠차 기사도 이영진 상무의 스케줄에 따라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것을 보았다.

회사 기사도 쉬운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벤츠차 기사가 강시혁에게 물었다.

“강 반장! 사모님이 왜 그러신 거야? 넘어지셨나?“

“넘어진 건 아니고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신 것 같습니다.”

“급성 대장염인가? 우리 집사람도 대장염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간적이 있었는데!”

“검사 들어갔으니 결과 곧 나오겠지요.”

잠시 후 회장도 왔다.

회장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어디 요정에서 술을 마시다가 연락받고 온 것 같았다.

그 뒤를 회사의 이사급 대우를 받는다는 운전기사도 따라오고 있었다.

이영진 상무와 강시혁이 동시에 인사를 하였다.

회장이 이영진 상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되었어?”

“검사 중이에요. 당직 의사는 급성 대장염일 것 같다는 말을 하네요.”

“죽을병은 아니군.”

그러면서 회장은 강시혁을 쳐다보며 또 말했다.

“강 반장이 환자를 모시고 왔나?”

회장이 강 반장이라고 부르는걸 보니 이제 확실히 강시혁을 아는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밤늦게 수고했군.”

회장이 시계를 보았다.

“벌써 12시가 넘었네.”

회장이 자기 차 기사와 이영진 상무 차 기사를 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이제 들어가지. 나는 이 상무와 함께 강 반장 차를 타고 들어갈 테니까. 모두 다 여기서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자네들도 오늘 늦게까지 피곤할거야. 내일 아침 또 출근하려면 들어가야지. 들어들 가게.”

강시혁도 한마디 했다.

“회장님과 상무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는 가까이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두 사람은 들어가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회장이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어허, 이 사람들! 어서 들어가래도!”

그제야 두 기사는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회장과 이영진 상무 그리고 강시혁만 남았다.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강 반장님과 제가 여기에 있을 테니까 아빠도 들어가시죠.”

“조금만 있다가 가지.”

세 사람이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이럴 때는 재벌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회장도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딱딱한 의자에 앉아있으니 말이다.

한시간 정도 지나서 간호사가 환자 보호자를 찾았다. 당직 의사가 찾는다고 하였다.

이영진 상무가 간호사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이영진 상무가 나오면서 회장에게 말했다.

“당직 의사를 만났어요. 엄마는 내일 아침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 다행이네.”

“저는 여기에 있다가 갈 테니 아빠 먼저 들어가세요. 강 반장님! 아빠 좀 모셔주세요.“

강시혁이 처음으로 회장을 모셨다.

회장이 집으로 가는 도중 뒷자리에서 말했다.

“자네도 피곤하겠네.”

“아니, 괜찮습니다.”

“이 차를 영빈관에 둔 것은 잘한 일이군.”

회장은 눈을 감고 시트에 기댔다.

강시혁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모시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 이외에 함부로 말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 회장이 물었다.

“자네는 부모님이 다 계신가?”

“예, 두 분 다 계십니다.”

“잘해 드리도록 하게.”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회장은 강시혁의 나이를 묻기도 하였다.

아마 삼방그룹 계열사 직원들은 회장이 직접 부모님의 생존 유무와 나이를 물어본 사람은 없으리라고 보았다.

강시혁은 이번에 자기의 존재를 확실히 회장에게 알렸다고 생각했다. 회장이 두 번이나 수고했다고 말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다시 순천향 병원으로 갔다.

이영진 상무는 자기 엄마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아서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돈이 많은 재벌 집안이라 간병인을 불러야 되는데 이영진 상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기간 입원이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내일 퇴원이라니 자기가 대기한 것이다.

아침이 되었다.

강시혁은 사모님과 이영진 상무를 집에 모셔다 드렸다.

사모님도 강시혁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이영진 상무도 미소로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다.

“강 반장님이 가까운데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네요.”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습니다.”

“제가 내일 일본 출장을 갑니다. 제가 여기에 없더라도 어머님이 무슨 일이 있으면 잘 보살펴 주세요.”

“염려마시고 일본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영빈관으로 향했다.

무언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강시혁은 서서히 삼방그룹 오너 집안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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