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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58화 (58/199)

58화 최초의 카톡 대화 (1)

(58)

강시혁은 동부 간선도로를 달리며 영웅본색 노래를 계속 들었다.

머릿속에서는 자꾸 이영진 상무의 얼굴 모습이 떠올랐다.

이영진 상무는 이미 언론 재벌과 결혼한 사람이다.

또, 아주 높고 높은 곳에 있는 상전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생각하다니 강시혁도 내가 왜 이럴까 하였다.

강시혁은 눈을 깜박거리며 사특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영웅 본색 음악소리는 계속 흘러나왔다.

“가벼운 웃음소리

나에게 따스함을 주고

깊은 그리움이 나와 함께 하네.

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영웅은 한 몸 의지할 곳 없이

세상을 떠도네.“

강시혁은 차창 문을 열고 크게 소리쳤다.

“나는 아직 세상을 떠도는 영웅이다!”

다음날 강시혁은 문화재단에 보내는 업무일지를 쓰다가 곤란에 빠졌다.

그것은 카니발 주행키로를 써야 하는데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양주 백석읍을 다녀왔으니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

설운동 대리가 주행키로가 많은걸 보면 틀림없이 갈굴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카니발을 가지고 백석읍에 다녀왔다고 할 수도 없었다.

[주행키로를 조작할까?]

그러다가 나중이 뽀록나면 그것도 문제였다. 괜히 일을 더 크게 벌릴 수도 있었다.

이영진 상무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강시혁입니다. 문화재단에 카니발 주행키로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요? 백석읍에 다녀온 만큼 주행키로가 늘어나 문화재단 사무국에 복명을 해야 합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답신이 왔다.

[내 지시로 인천공항에 다녀왔다고 하세요.]

그래서 강시혁은 업무일지에 그대로 기재했다.

[그룹 전략기획실 이영진 상무이사 지시로 인천공항에 다녀옴.]

설운동 대리는 업무일지에 대하여 까탈을 부리지 않았다.

그 위의 사무국장이나 관장들 또한 다른 연락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오너 따님의 지시인데 머슴들이 뭐라고 토를 달겠어. 갤러리 관장은 큰 머슴이고 나는 새끼머슴 아닌가!]

오후에 설운동 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항에 가서 누구를 모시고 왔느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내일부터 좀 바빠질 것 같습니다. 지금 영빈관에 보관된 미술품 중 20점 정도를 반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시회가 있습니까?”

“예술의 전당에서 한중일 유명 갤러리 소장품 전시회가 있습니다. 내일부터 나하고 신종화가 영빈관에 가서 포장 작업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요? 그럼 포장 재료를 가져와야겠네요.”

“포장 재료는 김포에 있는 업체에서 가져오면 됩니다. 해외 보내는 것이 아니므로 그림 사이즈별로 된 케이스에 담기면 하면 됩니다.”

“그럼 제가 김포엘 다녀와야겠군요.”

“내일 아침 9시까지 내가 영빈관으로 가지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설운동 대리가 영빈관엘 왔다.

강시혁이 대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설 대리님.”

“나는 영빈관에 오는 건 처음이요. 와, 마당이 엄청 넓네. 그리고 이 소나무는 정말 멋이 있네!”

“저거 한 그루에 1억짜리랍니다.”

“그래요?”

소나무 한 그루에 1억이라고 한 것은 강시혁이 대충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설운동 대리는 믿는 것 같았다. 계속 감탄사만 연발했다.

강시혁이 지하에 있는 관리실을 구경시켜주었다.

“관리실도 좋네. 여기서 근무하면 만고 땡이겠는데? 나하고 자리 바꿉시다!“

“대리님이 여기로 오시면 문화재단은 누가 이끌어 가십니까?”

“문화재단에는 인재 많아요. 높으신 큐레이터님도 있고 공채 직원 출신인 사무국장도 있고 미술대학 학장님 출신인 관장도 있습니다. 나 같은 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에요.”

“정말 잡급직 반장 하실래요? 급여가 반으로 줄어들 텐데요?”

“지금 받는 급여 그대로 주고 여기 와서 있으라고 하면 좋겠네.”

“설 대리님 같은 인재가 여기 지하실에 짱 박혀 있으면 되나요? 앞으로 문화재단 관장님이 되실 분인데!”

이 말에는 기분이 좋은지 설운동 대리의 입이 벌어졌다.

“1층과 2층도 구경해 봅시다.”

1층과 2층을 구경한 설대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궁전 같네!”

강시혁이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창업 회장님이 사시던 저택이다. 대리 따위가 여기는 처음이지? 나도 처음이야. 그래서 나도 놀랬었지. 세상은 참 재미있어. 쪽방 촌에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야.]

강시혁이 설운동 대리를 태우고 김포로 갔다.

김포시 외곽에 있는 작은 공장을 방문했다.

넓은 골판지를 가지고 작업대 위에서 미술품 케이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부탁한 것 다 만들어 놓았죠?”

“창고에 있습니다. 가져가시면 됩니다.”

강시혁이 보니 그림이 쏙 들어가게 포장 케이스를 만들어 놓았다.

그림은 규격별로 호수가 있다. 그림 1호인 캔버스 1호는 크기가 가로 22.7센티며 세로가 15.8센티이다. 우편엽서 2장 크기보다 약간 작다.

호수가 클수록 그림은 커진다.

그래서 500호짜리 그림은 길이만 해도 3미터가 넘는다.

강시혁이 만들어 논 케이스의 골판지 안을 보았다.

그림이 다치지 않게 스펀지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포장 케이스를 싣고 오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설 대리의 제의로 김포 고촌 근방에서 밥을 먹었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기로 했다.

해장국을 먹으며 설 대리가 물었다.

“업무일지에 보니까 이영진 상무 지시로 공항엘 다녀왔다고 했는데 누가 온 겁니까?”

“누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외국인입니까?”

“한국인이었습니다.”

“누굴까?”

그러면서 설 대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높은 사람의 동향에 대하여는 언제나 아랫것들은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오후에 관장과 큐레이터 신종화가 영빈관으로 왔다.

설 대리는 신종화는 쳐다보지도 않고 관장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우고 말했다.

“관장님 지시대로 포장케이스는 다 갖다놓았습니다.”

“그래요?”

그러면서 관장은 금테 안경을 잠깐 올렸다 내리며 북한의 김여정처럼 턱을 치켜들었다.

관장이 2층으로 올라가 전시회에 보낼 그림들을 골랐다. 도록이 이미 만들어졌는지 도록을 보면서 골랐다.

그럴 때마다 강시혁이 미술품을 들어 한쪽으로 옮겨놓았다.

관장이 신종화에게 말했다.

“어때. 이 그림들이면 일본과 중국에서 보내온 그림보다 못하진 않겠지?”

“역시 관장님의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그러니 신종화씨도 잘 배워요. 큐레이터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는 안목도 높여야 되요.”

강시혁도 아부를 해주었다.

아부를 해줘야 돌아오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강시혁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 터득한 진리였다.

“저는 그림을 볼 줄 모르지만 골라 논 것 하고 저기에 있는 것들하고 확실히 다른 것 같네요.”

“호호. 강 반장도 뭐 좀 볼 줄 아네!”

그러면서 관장은 또 턱을 들고 콧대를 세웠다.

관장이 2층 각 방과 1층 접견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엔 우리 문화재단 직원 외에는 못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뭐, 올 사람도 없습니다.”

“마당에 있는 국화꽃 시든 건 바로바로 버리세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관장님이 지시한대로 하고 있습니다.”

관장이 신종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신종화씨! 우린 그럼 가지. 두 사람 포장 작업하는데 괜히 우리가 있으면 방해만 하잖아?”

“알겠습니다.”

신종화가 설 대리는 쳐다보지 않고 강시혁만 쳐다보며 생글거리며 말했다.

“우린 갈게요. 그럼 수고하세요.”

강시혁은 생글거리는 신종화의 얼굴을 보고 러시아 체조선수 알리나 카바예바의 모습이 떠올랐다.

관장이 가려고 신종화가 운전하는 기아k7에 올라탔다.

그 뒤를 향하여 설 대리와 강시혁이 허리 꺾어 인사를 하였다.

두 사람이 가고나자 설 대리가 투덜거렸다.

“씨팔! 여자 둘은 그냥 가버리고 불알 달린 남자 둘만 남아서 뺑이 치게 생겼네!”

“있으면 방해만 되겠죠. 우리 둘이 하면 되겠죠.”

“하긴. 그 한녀충 낯바닥 안보니 살겠네.”

“한녀충이라뇨?”

“누구긴 누구요? 신종화라는 살쾡이 같은 여자지.”

강시혁은 웃음이 났다.

신종화는 설 대리를 보고 한남충이라 욕하고 설 대리는 신종화를 보고 한녀충이라고 하니 말이다.

아마 이 두 사람은 늙어서도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하고 살아갈 사람들 같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는데 칭찬에는 아주 인색한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포장 작업을 했다. 작업은 금방 끝났다.

설 대리가 먼저 일어나면서 말했다.

“오늘 포장한 미술품은 내일 강 반장이 예술의 전당에 가져가세요. 나는 다른데 가야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술의 전당 측에 전시장 대관 계약금도 지불했고 미술품 설치나 철수에 대한 스태프 회의도 다 마쳤습니다.”

“가서 누굴 만나 전달해주면 될까요?”

“신종화와 인턴들이 나와 있을 겁니다. 전시에 관련된 것은 강 반장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설 대리님은 내일 안 나오십니까?”

“나는 내일 해외에서 들어온 미술품 통관수속 밟아야 돼요. 내일은 양이 많아 수송 전문업체에서 수송하니까 강 반장은 해외 미술품은 신경쓸 필요 없어요.”

“내일은 다들 바쁘네요. 사무국장님만 사무실 자리를 지키겠네요.”

“사무국장도 내일 바쁠 거예요. 언론사에 보내는 보도 자료는 사무국장이 다하니까요. 일하고 결혼했다는 여자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요.“

“아, 국장님은 언론 담당이군요.”

“오늘 강 반장과 맥주라도 한잔 했으면 좋겠는데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나는 아이 데리러 가야합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다니요?“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고 있습니다. 부모님도 아이 보느라 힘들었을 텐데 데려와야죠.”

“그럼 빨리 가보셔야겠네요.”

“아이 엄마가 오늘 늦는다고 문자가 왔으니 내가 데리러 가야죠.”

“사모님 회사도 바쁜 것 같네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늦게 들어올 때가 있어서 내가 미치겠습니다.”

“책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부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강시혁은 설 대리가 신종화 욕을 자주하는 것이 자기 와이프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에 설 대리에게 전화가 왔다.

“응 지금 아이 찾으러 갈 거야.”

설 대리에게 방금 전화한 사람은 그의 와이프 같았다.

강시혁은 결혼하면 정말 육아문제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벌 가문이야 가정부들이 있으니까 상관없겠지만 서민들은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곤란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헤어진 와이프 심은혜가 아이를 안가지려고 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이가 없어 쉽게 헤어지는 역할을 했지만 있더라도 강시혁을 더 힘들게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강시혁의 부모님은 지방에 계셔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입장도 못되었다.

장모도 화장을 하고 어딘가를 다니는 사람이라 아이를 봐줄 것 같지도 않았다.

설 대리가 가고 나서 강시혁은 작업했던 곳을 청소했다.

바닥에 부스러기 같은 것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강시혁은 비로 쓸고 나서 물걸레 청소까지 했다.

한쪽에 세워둔 미술품을 보았다.

포장한 미술품은 내일 카니발에 다 못 실을 것 같았다. 두 번에 나누어서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강시혁이 시계를 보았다.

아직 노량진의 전기기능사 학원은 갈 시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지하에 내려가 관리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커피 한잔에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눈을 반만 뜬 채 의자에 기대어 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이때 지하실 CCTV모니터에 누군가가 영빈관에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시혁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설 대리가 가고 나서 아직 대문을 잠근 상태가 아닌데 누가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누구지?]

모니터를 자세히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었다.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다니는 벤츠차 기사 같았다.

강시혁이 커피 잔을 내려놓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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