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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56화 (56/199)

56화 재벌 아들과의 만남 (1)

(56)

강시혁과 설운동 대리는 인천공항 화물터미널로 갔다.

설운동 대리는 먼저 관세사 사무실에 들렀다.

여기서 수입신고필증이나 수입운송장을 작성했다.

강시혁은 관세사들의 급여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창고료 수납을 하러 가는 도중 슬쩍 설 대리에게 물어보았다.

“관세사들은 돈 잘 벌죠?”

“글쎄요. 다른 전문직종에 비해서는 좀 약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방그룹 평균연봉은 안될까요?”

“수습관세사 연봉은 4천이 안 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수습 딱지 떼면 많이 받겠죠.”

“전문직이니 정년 없이 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 같네요.”

“왜? 강 반장도 관세사 공부하려고요?”

“아, 아니. 그냥 물어본 겁니다. 그런 어려운 시험은 내 머리론 안 됩니다.”

이 말에 설 대리는 약간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어르신 주간 보호센터에서 운전이나 하던 놈이 감히 웬 관세사는 하는 표정이었다.

설 대리는 운송업체 기사를 만나 같이 항공사 화물창고로 갔다.

여기서 서류를 제출하고 우든 박스에 단단히 포장된 미술품을 인도받았다.

강시혁이 보기에 통관 업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이 보였다.

서류 같은 것은 관세사 사무실에서 다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해본 사람은 쉽지만 안 해본 사람은 한없이 어려운 법이다.

올 때는 설 대리와 같이 미술품 수송 트럭을 타고 왔다.

트럭 안에서 강시혁이 말했다.

“설 대리님. 뒤에 실은 미술품은 독일인이 그린 것입니까?”

“아니요. 독일에 공부하러간 관장님 후배의 그림이랍니다.”

강시혁은 이 기회에 문화재단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물어보기로 했다.

어쨌든 자기는 삼방그룹의 계열사 소속이 아니고 이름도 고상한 문화재단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관장님은 대학 교수이셨던 분 같은데 회장님이 모셔온 분입니까?”

“아니요. 문화재단 이사장님이신 사모님 대학 후배 되시는 분이랍니다.”

“아, 그러니까 회장님 사모님이 추천하셨군요.”

“그런 셈이죠.”

“그럼 사무국장님도 사모님이 추천하셨겠네요.”

“사무국장은 삼방그룹 공채직원 출신입니다.”

“예? 그래요? 그런데 계열사에 근무하지 않고 왜 문화재단에서 일하죠?”

“공채로 들어왔다가 홍보실에서 사보편집을 담당했습니다. 홍보실 과장까지 하다가 문화재단으로 왔습니다. 전임자가 대학으로 갔기 때문에 왔습니다.”

“그랬군요.”

“계열사 내에서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본인이 자원하여 문화재단으로 왔답니다. 처음엔 문화재단에서도 잡지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건 지금 안합니다. 온라인 시대라 종이 잡지는 인기가 별로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미술품 전시기획 같은 일을 많이 하겠군요.”

“그런 셈이죠. 그런데 사무국장은 미혼입니다.”

“예엣? 연세가 많으신 분 같은데.”

“40대 후반이죠. 본인은 일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즘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많은데 강 반장 한번 프러포즈 해보죠. 킥킥.”

“아, 아. 저도 결혼 안합니다. 저도 일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대리님은 결혼하셨죠?”

“결혼 3년차입니다. 아이도 있습니다.”

“역시 유능하신 분들은 결혼이 빠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 반장도 유능한 것 같은데 왜 결혼 안했죠?”

[했었죠. 보기 좋게 깨졌지만 말입니다.]

“아직은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 인물 반반하고 약아빠진 여자들은 돈 잘 버는 퐁퐁남을 찾는다면서요?”

“하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강시혁은 설 대리도 어떤 인연으로 문화재단에 들어왔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공채로 들어온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인사동 갤러리에 도착했다.

설 대리와 강시혁, 그리고 운송 전문 업체 기사가 함께 미술품을 내렸다.

포장 해체작업을 하려는데 인턴 두 명이 왔다.

설 대리가 말했다.

“높으신 큐레이터님은 어디 가셨나?”

“일이 있으셔서 먼저 퇴근 했습니다.”

“미술품 들어오는 거 알면서도 먼저 퇴근하면 어떡해?”

“저희들이 도와드릴까요?”

“아아, 저리 가. 실리콘 장갑이나 가져와.”

설 대리가 해체작업을 했다.

강시혁이 보기엔 별건 아니었다. 미술품이 손상되지 않게 조심해서 해체작업을 하면 되었다. 인턴들이 없는 틈에 강시혁이 아부성 발언을 했다.

“정말 이럴 때 신종화 씨가 먼저 퇴근한건 잘못된 것 같네요.”

“그 가시내가 지금 어디 간줄 아세요?”

“예? 모르겠는데요?”

“틀림없이 XX장관을 만나러 갔을 거요.”

강시혁은 순간적으로 사진에서 본 러시아 체조선수 알리나 카바예바와 푸친 대통령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아니겠지 하였다.

강시혁이 퇴근을 하였다.

영빈관에 돌아오자 건물 안팎 점검을 하였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주변 인물에 대한 정보를 입력했다.

오늘 설 대리에게 들은 문화재단 관장과 사무국장, 그리고 큐레이터에 대한 정보를 입력했다. 이렇게 해야 인간관계에 대한 관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의 컴퓨터엔 벌써 삼방그룹 회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입력되어 있었다.

이영진 상무의 남편이 현재 별거중이란 정보도 입력되어 있었고 자기가 홍 사장에게 맞은 날짜도 입력되어 있었다.

강시혁은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노량진 학원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전기기능사 시험의 난이도가 높다는 전기기기에 대한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낮에 일하고 야간 강의를 들으니 눈이 침침하기는 하였다.

그래도 다음 달에 있을 필기시험을 위해서 열심히 하기로 하였다.

쉬는 시간에 뒷자리에 앉아있는 학원생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혹시 이태원 쪽에 사세요?”

“예? 예.....”

“그쪽에서 한번 본 것 같습니다.”

“이태원에 사세요?”

“아니요. 신림동 삽니다. 이태원은 원룸 방값이 얼마나 해요? 비싸죠?”

“천차만별이에요. 보광동 쪽으로 가면 싼 데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학원생 카톡방을 만들었는데 들어오세요.”

“예? 아, 예.....”

강시혁은 전기기능사 직업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단지 영빈관 지킴이를 하는데 필요할지 몰라서 따두려고 한 것뿐이었다.

여기에 있는 학원생들과 어울리면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

요즘은 인맥 다이어트 시대인데 불필요한 연락이 자주 온다면 그것도 성가신 일이었다.

그렇다고 카톡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전화번호만 알려주고 활동은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요일이 되었다.

강시혁은 점심을 해먹기도 귀찮았다.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어슬렁거리며 이태원역 쪽으로 갔다.

이슬람 거리 쪽으로 가니 이슬람이 아닌 인도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월급도 올랐고 지난번 홍 사장 합의금 700만원 들어온 것도 있으니 인도 요리나 맛을 볼까? 인도 요리는 한 번도 못 먹어 봤는데.....]

메뉴판을 보니 런치세트가 있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는 않은 것 같아서 이걸 시켰다.

전에는 헤어진 와이프 심은혜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없었는데 이제 혼자 이렇게 점심 사먹으니 편하고 좋았다.

강시혁은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별로 할 일도 없어서 전기기능사 필기시험 문제 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문 비디오폰이 울렸다.

모니터를 보니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써서 얼굴 식별이 잘 안 되었다.

강시혁이 나가보았다.

[계량기 검침하러 온 사람인가? 그런데 일요일에 올 이유는 없잖아?]

강시혁이 문을 열고 나갔다.

“누구십니까?”

‘강시혁 씨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방문한 사람이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벗자 젊은 얼굴이 드러났다.

강시혁은 이 사람이 이영남이란 것을 바로 직감했다.

피부색이 좋지 않았지만 귀엽게 생긴 귀족형의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재와 붕어의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시혁은 이영남 씨냐고 묻지 않았다.

모르는척하고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삼방그룹 이영진 상무의 동생입니다.”

“아, 그러세요? 혹시 이영남씨?”

그러면서 강시혁은 이영남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쳐다보았다.

20대로 보였다. 남자치고는 속눈썹이 길어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후배 변상철과는 이미지가 아주 달랐다.

“예. 맞습니다. 이영남입니다.”

“아, 그러세요? 금산 아줌마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들어오세요.“

이영남은 들어오다가 잘 다듬어진 정원수와 화단을 보았다.

그리고 마당 가운데 서서 감개가 무량한 듯 집 건물을 쳐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오셨으니 1층과 2층은 조금 있다가 보시고 관리실에 가서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관리실은 지하에 있습니다.”

강시혁을 따라오면서 이영남이 말했다.

“아저씨는 할머니 장례식 날 호루라기 불던 분 아니에요?”

“예, 맞습니다. 그날 저는 이영남 씨를 보지 못했는데..... 그날 삼방그룹 직원들이 많이 나와서 삼방그룹 직원인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출상날도 아저씨를 봤습니다. 주차를 아주 잘하더군요.”

“하하,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라니 너무 내가 나이가 많아 보입니다. 회사에서는 저를 강 반장이라고 부릅니다.”

“반장요?”

“예, 그렇습니다.”

강시혁이 관리실을 구경시켜주었다.

CCTV모니터 장비를 보고 이영남이 말했다.

“전에는 없던 장비들이 있네요. 고가의 미술품이 있어서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물론 보안 전문회사에서 설치한 쎄콤 설비도 있지만 매일 밤에는 이렇게 관리를 합니다.”

“그럼 아저씨, 아니 반장님은 여기서 혼자 근무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낮에는 미술품 수송도 하고 화단 손질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럽니다.”

“혼자 근무하니 심심하겠네요.”

그러면서 이영남이 책상위에 있는 강시혁의 책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공부하던 전기기능사 문제집이었다.

책을 보곤 별 말이 없던 이영남이 책상 옆에 세워둔 통기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기타를 치십니까?”

“밤에 적적할 때 가끔 칩니다. 그런데 잘 치지는 못합니다. 배우는 수준입니다.”

이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혁이 커피를 가져오겠다고 하였다.

“잠깐 앉아계세요.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겠습니다.”

“커피 안 마셔도 됩니다.”

“그럼 캔 커피라도 드릴까요?”

“예, 그러세요.”

강시혁이 냉장고에 있는 캔 커피를 가지러간 사이에 이영남이 책상위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았다.

강시혁이 대학 때 배웠던 영미희곡론, 미국문학사, 영문강독 같은 책들이었다.

강시혁이 커피를 가져왔다.

“참, 여기 건물 인테리어를 할 때 지하에 있던 드럼을 버렸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얼룩이 많이 져있고 고장도 난 것 같아 버렸습니다. 듣자니 이영남 씨 것이라고 하던데.....”

“잘 했습니다. 드럼이 있던 방은 지금 무엇으로 쓰고 있습니까?”

“비어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강시혁은 지하에 있는 방들을 보여주었다. 자기가 쓰는 방도 보여주었다.

이영남은 드럼이 있던 방에서 잠시 서 있었다. 추억이 새로워진 모양이었다.

강시혁은 1층 접견실을 구경시켜주었다.

호화롭게 그리고 넓게 리모델링한 접견실을 보고 이영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2층의 미술품이 보관된 방들도 구경을 시켜주었다.

이영남은 그림은 자세히 보지 않았다. 그냥 대충 보았다.

이영남은 마지막 방에 있던 피아노를 보았다.

“영진이 누나의 피아노는 아직 치우지 않았군요.”

“아직 새것이라 치우진 않았습니다. 또 접견실에서 파티라도 있을 때 피아니스트를 초빙해 음악이라도 들려드리면 좋겠다는 여론이 있어서 안 치웠습니다.”

“그래요?“

“저는 여기서 단순 경비업무와 수송업무만 하는 사람입니다. 피아노를 치우는 결정은 문화재단이나 비서실에서 합니다.”

“뭐 있으면 좋겠지.”

그러면서 이영남은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쳐보기 시작했다.

손가락 움직임을 보니 드럼만 친 것이 아니라 피아노도 잘 치는 것 같았다.

이영남이 치는 곡은 미국 전설의 재즈 피아니스트인 칙 코리아의 스페인이었다.

강시혁이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약간 어깨를 흔들었다.

이영남은 피아노를 조금만 쳐보고 일어섰다.

그리고 강시혁에게 물었다.

“이 곡을 아세요?”

“잘은 모르지만 혹시 칙 코리아의.....”

이영남이 웃으며 말했다.

“멋쟁이 반장님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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