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급여 조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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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 임 과장과 여비서는 강시혁의 월급이 적은데 놀랐다.
현재 임 과장은 과장급이라 월급이 6백만 원이 넘고 여비서는 5백만 원이 넘는다.
물론 꿈의 직장인 현대차 생산직보다는 적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올라갈 가능성은 이곳이 많다.
임원이라도 된다면 연봉 2억은 문제없는 직장이 삼방그룹이기도 하였다.
강시혁은 자기들과 격이 다른 경비원이라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강시혁은 얼굴 인상도 그렇고 지적 수준이 결코 낮아보이지는 않았다.
임 과장은 강시혁의 급여가 조정되더라도 월 300만원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았다.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 눈도 있어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회장의 특별 지시가 있어 조정은 되겠지만 호봉조정 수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임 과장이 보기에 강시혁이 자기 밑에 있는 직원들보다 업무능력이 못하지는 않은 것 같이 보였다. 항상 예의 바르고 매너도 좋았다.
[태도도 좋고 인상도 좋고 영어도 곧잘 하는 것 같군. 그런데 이 친구 페이퍼 워크는 잘 할까?]
강시혁은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회장이 비서실장을 움직여 관장과 협의해 월급을 조정하라고 했으니 열이 날만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관장이라는 여자에게 더 밀착할 걸 잘못했네. 다음서 부터는 이 여자가 오면 아부 좀 해야겠어. 높은 사람들이 중요임무는 자기한테 아부하는 사람에게 준다고 하지 않던가.]
임 과장과 여비서와 강시혁이 나란히 서서 떠나는 회장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회장이 오른손을 올리며 말했다.
“수고들 했어.”
삼방전자 사장은 강시혁에게 지난번에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다.
“자네는 지금처럼 하면 되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외국인들은 임 과장과 여비서와 강시혁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다.
임 과장이 강시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도 갈게요. 강 반장, 오늘 수고 많았어요.”
“저는 한 일도 없습니다. 과장님이 수고 많았지요.”
“그런데 강 반장은 전공이 뭐요? 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부터 대졸자란 이야기는 들었는데.“
강시혁은 영문학 전공을 했다고 하기가 쑥스러웠다.
영어는 임 과장이 훨씬 더 잘하기 때문이었다.
괜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영문학이지만 학교 다닐 때 알바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어쩐지..... 잘 하더군.”
“과장님도 영문학 전공이신가요?”
“아니요. 난 경영학과 출신이요. 대학을 미국서 MBA를 졸업했죠.”
강시혁은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임 과장이 부러웠다.
더구나 그는 경영학에 대한 백그라운드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기는 경영의 ‘경’ 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강시혁은 아직 고개 숙인 남자에 불과했다.
임 과장이 간다고 자기 차에 올라갔다.
여비서도 같이 탔다.
강시혁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저.... 회의실에 있었던 한과와 과일 남은 것 안 가지고 가실 겁니까?”
“아, 그거? 강 반장 그냥 먹어요.”
“아까운데..... 좀 싸가지고 가시죠.”
“됐어요. 야간 경비할 때 심심하면 하나씩 꺼내 먹어요.”
강시혁은 회의장을 정리했다.
과일 남은 건 자기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나씩 꺼내먹기로 했다. 한과는 많이 남은 것 같아 오래 먹을 것 같았다.
[한과는 내일 금산 아줌마한테 좀 나눠 줘야겠네.]
다음날 강시혁은 한과와 전지가위를 들고 금산아줌마를 만나러 갔다.
아줌마가 반겼다.
“어제 회장님 오신 일을 잘 되었어?”
“예, 잘 끝났어요. 회의 끝나고 한과가 남아서 이모 드리려고 싸왔어요.”
“웬 나까지?”
“우리가 남입니까? 이모님!”
“하긴, 그래. 호호호. 우리는 이웃 고향사람 아닌가!”
“오늘 제가 전지가위 가지고 왔으니 정원에 있는 나무나 다듬어주고 가죠.”
“정원사 부르면 되는데.”
“앞에 보이는 흉한 가지나 쳐주고 갈게요.”
“미안한데?”
“미안하긴요. 제가 늘 미안하죠.”
“참, 영남이는 이번 주말에 여기 오기로 했어. 오면 영빈관 단장도 새로 했으니 구경 가라고 할게.”
강시혁이 정원수 가지치기와 시든 국화꽃들을 정리해 주었다.
금산 아줌마는 미안한지 점심을 먹고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금산 아줌마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재벌집이라 그런지 반찬이 아주 풍성했다.
구수한 바지락 된장찌개에 굴비 구운 것도 나오고 양념 불고기도 나왔다. 더덕과 배추 겉절이 무친 것도 아주 맛이 있었다.
그래서 강시혁은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강시혁이 영빈관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는데 문화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갤러리 관장이었다.
“강 반장이요?”
“옙, 관장님. 강시혁입니다.”
“어제 회장님은 잘 모셨다며?”
“예, 그렇습니다. 비서실 직원들이 나와서 준비를 잘했습니다.”
“회장님께서 강 반장을 잘 본 모양이군. 월급을 조정해 주라고 하니 말이요.”
[이 여자를 좀 띄워줘야 좋아하겠지? 이 여자도 높은 사람만 쳐다보는 해바라기 형 인물인 것 같은데 보조를 맞춰 줘야지.]
“잘한 것도 없습니다. 단지 관장님께서 지시한대로 떨어진 낙엽을 모두 치우고 접견실을 깨끗이 했을 뿐입니다.”
“호호, 거봐. 내 지시대로 하면 윗분들한테 책잡힐 일이 없지. 안 그래요? 강 반장?”
“그렇습니다. 관장님 지시대로 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회장님 지시도 있어 다음 달부터 급여 조정을 하기로 했어요. 40만원 올려서 320만원으로 맞추기로 했어요.”
“아이고, 관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강 반장이 열심히 일을 잘 하는 것 같아 회장님께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회장님께 말씀을 드려? 이 여자는 가끔 나를 미소 짓게 만드네!]
“관장님은 문화재단에서 제일 높으신 어른입니다. 저희들이 잘 모시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거예요.”
“그리고 관장님께서 월급을 올려주신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강 반장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군. 그런데 문화재단 사무국이나 큐레이터들은 그런 마음가짐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걱정이야. 그럼 일봐요.”
“넵. 감사합니다. 관장님!”
전화를 끊고 강시혁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여자는 자기가 내 월급을 올려준 사람이라 나를 자기 사람이라고 인식하겠지? 앞으로 비위나 맞추어주면 나를 덜 갈구겠군.]
오늘따라 커피 맛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
그러나 저러나 월급이 올라간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이제 대리 뛸 때의 수입과 근접해가고 있어 기뻤다. 원룸 임대료가 안 나가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일이 편하고 덜 위험하고 자기개발에 힘을 쏟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국장도 전화를 했다.
“강 반장? 관장님 전화 받았죠? 축하해요.”
“국장님 덕분입니다.”
“열심히 일한 결과니까 당연한 거예요.”
“책임이 더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설운동 대리도 전화했다.
“급여가 대폭 올랐네요. 입사 3개월 만에 승급한 사례는 없었는데 축하합니다.”
“대리님 덕분입니다.”
“술 한 잔 사야겠네요.”
“제가 대리님에게 술살 기회를 주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하하, 그래요? 방금 한말 내 다이어리에 적어놓겠습니다.”
큐레이터 신종화는 축하전화를 하지 않았다.
경비원 월급 조금 올라간 건 그들 잡급직끼리의 리그고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기의 월급은 적어도 삼방그룹 계열사의 공채직원 수준에 맞춰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강시혁이 그림을 가지러 인사동 갤러리에 갔을 때도 신종화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림을 차에 다 실었을 때 그제야 말을 했다.
하지만 강시혁의 급여 인상에 대한 축하는 아니었다.
“어제 비서실 여직원이 왔었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임 과장님하고 여비서가 왔었습니다.”
“여비서 하고 나는 모두 입사 3년차인데 나하고 급여차이가 많이 나요.”
“그렇습니까?”
“나는 학예사 자격에다 석사학위까지 있는데 연봉 4,800이에요. 여비서는 얼마인줄 아세요? 5,400이에요!
[이것들아! 나는 이번에 대폭 올라갔다고 해도 급여 320이다. 연봉으로 치면 3,840이다. 나이도 나보다 훨씬 어린것들이 복에 겨워 그러네!]
강시혁은 자기도 큐레이터나 여비서만큼 급여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빚 갚는 시기가 대폭 앞당겨지리라고 보았다.
마침 관장이 어딜 갔다고 오는 모양이었다.
강시혁이 달려가 허리를 크게 굽혀 인사를 했다.
“오, 왔어요?”
관장은 확실히 전보다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강시혁을 자기가 월급을 올려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까칠한 표정은 사라지고 가식적이나마 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은 너무 고마웠습니다.”
“뭘, 그런 일을 가지고!”
관장이 신종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독일에서 미술품이 들어오는 날이지?”
“그렇습니다. 사무국 설운동 대리가 인천공항 화물 터미널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럼 강 반장도 같이 가라고 해. 강 반장도 이런 일 배워두면 좋지.”
[인천공항으로 미술품이 들어온다고? 외국인 화가가 그린 그림인가?]
잠시 후 설운동 대리가 내려왔다.
“오늘은 강 반장도 인천공항엘 같이 가라고 하네.”
“배우라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게 배울게 뭐 있나? 갑시다.“
“그런데 카니발로 운송이 가능합니까?”
“미술품 운송 전문업체가 있어요. 인천공항에 가면 나와 있을 거예요.”
둘이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카니발을 끌고 가도 되지만 기름 값 들고 통행료 들어간다고 해서 지하철로 갔다.
가는 도중 열차 안에서 설운동대리가 말했다.
“신종화가 내 이야기 안합니까?”
“오늘은 말 없었는데요?”
“아까 2층에서 보니까 무슨 말을 진지하게 하는 것 같던데.”
‘아, 월급이 비서실 직원들보다 못하다는 말은 했습니다.“
“자기나 나나 인적성 검사나 면접시험을 보고 들어온 공채직원이 아니라면 조금 차이는 감안해야지.”
“학예사 자격에다 석사자격도 있다고 하던데요?”
“큐레이터 하는 여자가 그런 것도 없으면 어떻게 해? 고것이 요즘 직급 올려달라고 XX장관에게 청탁을 넣고 있는데 내가 모른 척 하고 있는 중이요.”
“그래요? 그런데 삼방의 일을 왜 XX장관에게 청탁을 해요?”
“회사에 압력을 좀 넣어달라는 말이겠지.”
“XX장관하고 친척인 모양이지요?”
“흥! 친척 같은 소리하네! 신종화가 XX장관 애인이요!”
“예엣?”
강시혁은 농담인줄 알았다.
그것은 신종화와 XX장관의 나이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하, 농담도 잘 하시네요.”
“하, 이 사람 믿지 못하는 모양이네.”
“설마요. 나이가 20년 이상 차이 질 텐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요? 푸틴 대통령 애인인 알리나 카바예바는 서른한 살 차이라는데!”
“하, 그래도 그렇지.”
“신종화가 문화재단에 들어온 것도 XX장관 추천으로 들어온 것 몰라요?”
“예? 저는 처음 듣는 소리인데요?”
“그러니 그 여자가 날 우습게보고 내 말도 잘 안 듣는 거요. 난 엄연히 대리인데 말이요.”
“쇼킹할 뉴스인데요?”
“이따가 미술품 통관하고 미술품 인사동 우리 갤러리에 가지고 가 봐요. 미술품 포장 해체작업도 다 내가 해야 되요. 인턴들은 일이 서툴고 신종화는 여자라고 팔짱만 끼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그러니 그게 어디 내 밑이요? 내 상전이지. 내가 무슨 일을 시키면 뒷소리나 하고 그러죠.”
강시혁은 지난번 언젠가 신종화가 설운동 대리를 가리켜 ‘높으신 분’, ‘한남충.’ 같은 표현을 써가며 비아냥거린 걸 기억했다.
강시혁은 설운동 대리에게 신종화 씨가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더라 하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강시혁은 분명히 찌질이고 설운동 대리나 신종화는 유능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설운동 대리나 신종화는 타인을 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강시혁은 달랐다. 강시혁은 찌질이 짓을 하면서 타인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강시혁은 금산 아줌마를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회장과 이영진 상무도 자기에게 점점 호감을 갖게 하고 있었다.
또 최근에는 까칠하다는 관장마저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