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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54화 (54/199)

54화 급여 조정 (1)

(54)

회장님이 오는 날이었다.

영빈관 구석구석 청소도 말끔히 하고 대문을 반쯤 열어놓았다.

그리고 눈부시게 흰 와이셔츠에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한 벌뿐인 양복을 꺼내 입었다.

차 소리가 났다.

그런데 차 소리가 털털거리는 것을 보니 회장님은 아닌 것 같았다.

강시혁이 나가 보았다.

허술한 옷을 입은 남자가 대문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누구요?”

“여기 가전제품 버리는 것 없습니까?”

“없습니다.”

남자는 자기가 몰고 온 1톤 트럭으로 올라갔다.

트럭에는 다른 곳에서 얻은 냉장고나 TV, 그리고 컴퓨터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트럭에서 마이크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못 쓰는 냉장고나 TV, 컴퓨터, 세탁기 삽니다.”

회장님이 올 시간에 대문 앞에 트럭을 세워놓고 마이크로 떠드니 짜증이 났다.

더구나 세워둔 데가 차고 입구였다.

“이봐요. 기사님! 여기 조금 후에 손님이 옵니다. 다른 데로 이동하실 수 없습니까?“

“나도 먹고 삽시다.”

트럭의 마이크는 녹음을 했는지 계속 흘러나왔다.

“못 쓰는 냉장고나 TV, 컴퓨터, 세탁기 삽니다.”

강시혁이 언성을 높였다.

“다른데 가서 하란 말이요! 정말 손님이 온다니까요!”

“이 도로가 당신네 개인 땅이요?”

그러면서 트럭 기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차가 한 대 들어왔다. 랜드로버였다.

강시혁은 회장은 아니더라도 오늘 오실 손님 중 한분인줄 알고 뛰어갔다.

문을 열어주려고 하는데 문이 먼저 열리며 두 사람이 내렸다. 비서실 임창영 과장과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내렸다.

강시혁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과장님.“

“우리가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이 트럭을 빼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트럭을 빼라고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싸우지 마시고 조용히 빼달라고 하세요.”

강시혁이 팔을 걷어 부치고 트럭기사에게 갔다.

그러자 트럭 기사는 뒷머플러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핑 하고 가버렸다.

[저런 개자식! 자동차 정비나 하고 다니지!]

임 과장과 여자는 뒷트렁크에서 큰 보따리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절 주십쇼.”

“한과와 와인입니다. 혹시 몰라서 과일도 가져왔습니다.”

강시혁은 임 과장과 함께 짐을 주방으로 날랐다.

임 과장이 여자에게 강시혁을 소개했다.

“여기 상서원 관리인으로 있는 강 반장님이셔.”

여자가 생글거리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임 과장이 이번엔 강시혁에게 여자를 소개했다.

“우리 비서실 직원입니다. 다과 서빙도 하고 회장님 대화하는 것을 기록하기위해 같이 왔습니다.”

[외국인이 오시면 영어로 대화를 할 텐데. 그러면 그걸 다 알아듣고 기록할 것인가? 실력들이 대단한 것 같네,]

강시혁이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금산 아줌마에게서 가져온 한방 차를 보여주었다.

“분말로 된 이 가루를 뜨거운 물에 넣고 대추와 잣을 띄우면 됩니다.”

“그럼 차는 반장님이 끓이시고 서빙은 나하고 우리 여직원이 하죠.”

“서빙도 필요하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더욱 고맙고요.”

역시 비서실 직원들은 공채 직원들이라 그런지 매너가 문화재단 직원들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강시혁은 커피포트에서 물 끓는 것을 보고 옅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삼방 비서실 같은데서 대리 정도 하고 있어야 딱 맞는 건데..... 그래야 지금쯤 연봉 6천쯤 받고 폼 잡고 다닐 텐데..... 그러면 헤어진 와이프와 결혼생활이 깨지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비서실 여직원을 보니 참 세련되고 예쁘게 생겼다.

솔직히 말해 중소기업에 다니며 평범했던 헤어진 와이프와는 많은 비교가 되었다. 그래도 강시혁은 평범한 그 여자에게 차였다는 생각을 하니 우울했다.

임 과장과 여직원은 테이블에 한과와 와인 세팅까지 했다.

금산 아줌마가 준 차만 내가면 되었다.

임 과장이 시계를 보았다.

“회장님 오실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다 같이 대문 앞으로 나갑시다.”

그래서 세 명은 함께 대문 앞으로 갔다.

번쩍이는 고급 외제 차 두 대가 왔다.

임 과장이 회장차를 알아보고 재빨리 뛰어가 뒷문을 열어주었다.

강시혁은 두 번째 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두 번째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전에 한번 본적이 있는 삼방전자의 사장이었다. 언젠가 한번 영빈관에 있을 때 ‘자네는 지금처럼 하면 되네.’ 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갔던 사람이었다.

전자 사장이 차에서 내리면서 강시혁에게 한마디 했다.

“얼굴이 좋아졌네. 재백궁(財帛宮)의 빛이 밝아지고 있군.”

“예?”

“얼굴색이 좋아졌다는 말이네.”

“고맙습니다.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강시혁은 회장과 사장을 모시고 온 기사들에게도 인사를 해주었다.

특히 회장차 기사는 이사급이라 허리를 제대로 꺾어 인사를 해주었다.

회장은 같이 온 외국인들을 2층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2층에 보관된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림은 벽에 걸린 것도 있지만 그냥 벽에 세워둔 것들도 있었다.

큐레이터 신종화는 이름 있는 대작들은 벽에 걸었고 그 밖의 소품들은 그냥 벽에 기댄 채 진열을 해놓았었다.

한 외국인이 2층에 있는 피아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피아노도 있군요. 이건 누가 치는 겁니까?”

임 과장이 밀착하여 통역을 해주었다.

회장은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딸이 와서 가끔 칩니다.”

강시혁이 보기엔 이영진 상무가 여기 와서 피아노를 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준비한 차를 내갔다. 비서실 여직원 혼자 들고 갈 수 없어서 강시혁이 서빙을 도와주었다.

비서실 여직원은 외국인들 앞에 찻잔을 놓고 강시혁은 회장과 사장 앞에 찻잔을 놓았다.

회장이 강시혁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강시혁의 인상을 다시 한 번 보려는 것 같았다.

회장이 강시혁을 보고 말했다.

“강군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이 차는 이영진 상무 집에 있는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만든 것이 맞지?”

“그렇습니다. 어제 새로 갈아서 가져왔습니다.”

“흠. 냄새가 좋군.”

그러면서 회장은 다시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강시혁은 오늘따라 회장이 자꾸 쳐다보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래서 고개를 약간 숙였다.

회장은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홍 서방한테 맞았다더니 멀쩡하네? 얼굴 다친 데는 없어 다행이군.]

강시혁은 임 과장 자리 앞까지 찻잔을 다 놓았다.

그리고 두 손을 모은 채 가벼운 목례를 하고 뒷걸음쳐 물러났다.

회담이 진행되었다.

먼저 외국인들이 방금 마신 차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회장이 차에 대하여 설명했다.

회장은 한방차에 몸에 좋은 건 다 들어갔다며 정력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록을 위하여 테이블 끝에 앉았던 여비서가 무안한지 고개를 숙였다.

임 과장이 유창한 발음으로 통역을 하자 외국인 세 명이 하하 하고 웃었다.

회장이 웃으며 또 한마디 했다.

“외국 놈이나 한국 놈이나 사내놈들은 그저 정력에 좋다면 다들 좋아하지. 임 과장! 지금 내가 한말은 통역하지 말게.”

옆에 있는 사장들이 웃었다. 사장들이 웃자 외국인들은 방금 회장이 말한 것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중 한명이 방금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데 옆에 사장들이 웃느냐고 말했다.

임 과장이 즉석에서 둘러댔다.

“이 차를 마시고 집에 가시면 사모님한테 대우를 받을 거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외국인들은 하하 웃으며 한방차를 벌컥대며 마셨다.

강시혁은 임 과장이 참 센스가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순발력도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렇게 삼방그룹 회장의 통역을 하는구나 하였다.

자기도 오늘부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개발에 등한시 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본격적인 비즈니스 회담이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회담에서는 회장보다는 사장들이 주로 발언했다. 역시 사장들은 실무에 밝았고 각종 통계숫자에도 밝았다.

강시혁은 사장도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제품 설명에서는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자 임 과장도 더듬거릴 때가 있었다.

강시혁의 실력으로는 전혀 해석이 안 되는 용어들도 많았다.

그런데 여비서는 외국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기록을 하는 것을 보니 여비서의 실력도 상당한 것 같았다.

강시혁은 뒤로 물러나와 과일을 깎았다. 그리고 하얀 접시에 담았다.

모양을 내서 깎고 찍어먹기 좋게 디저트 과일 포크를 옆에 놓았다.

강시혁은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갈 때 호텔 보이처럼 왼손에 흰 수건을 걸치고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갔다.

호텔 보이들의 이런 모습은 영화에서 몇 번 보았기 때문이었다.

왼쪽에 앉은 머리 벗겨진 외국인이 강시혁을 불렀다.

작은 소리로 차가운 생수가 있으면 달라고 하였다.

강시혁이 즉석에서 영어로 답하였다.

일부러 영어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혓바닥을 굴리며 말했다.

“Yes sir, I'll bring cold water. (알겠습니다. 찬물을 가져오겠습니다.).”

강시혁이 영어로 말하자 회장과 사장들이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임 과장과 여비서도 쳐다보았다.

여기 영빈관 경비원은 영어도 곧잘 하는구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강시혁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용어가 들어가는 비즈니스 통역은 임 과장처럼 하기가 어려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영문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영어는 잘한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도 많아 회화도 아주 잘한다. 그렇지만 강시혁은 대학 4년간 내내 알바를 한 인생이라 실전 영어는 좀 서툴렀다.

회담을 하는 동안 강시혁은 현관 신발 정리를 했다.

구두코가 앞으로 나오게 하고 일렬로 정리했다. 여비서 신발까지도 정리 해주었다.

[영빈관 소사로서의 임무는 다 해야지.]

회담을 한지 한 시간이 지났다.

회장이 잠시 쉬었다 하자고 하였다.

회장은 외국인들에게 한과를 먹어보라고 권하였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한과를 맛만 보고 많이 먹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화장실에 갔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외국인들은 정원수와 화단에 활짝 핀 꽃들을 보고 원더플을 연발하였다.

회장이 아는 척하며 꽃 이름을 외국인에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집은 원래 창업회장님이 사시던 집이라는 소리도 했다.

외국인들은 사람이 많은 호텔보다도 여기가 아늑하고 좋다는 말을 해주었다.

전통 차와 한과와 집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회장은 좋아하였다.

다시 회의가 속개되었다.

회담을 한지 이제 두 시간이 지났다.

회장이 와인을 따라고 하였다.

“오늘 회의는 많이 진일보 했네. 이 사람들이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으니 그런 의미에서 와인 한잔씩을 하세.”

임 과장과 강시혁이 와인을 땄다.

그리고 앞에 있는 투명한 유리잔에 일일이 부어주었다. 이번에도 강시혁은 흰 수건을 왼손에 걸치고 절도 있게 따라주었다.

외국인들은 강시혁에게 눈을 마주쳐주며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강시혁은 이번에도 혓바닥을 굴리며 말했다.

“you're welcome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 미팅이 끝났다.

모두 자리에 일어나 악수를 하였다.

강시혁은 또 현관에 나가 구두를 정리해 주었다.

외국인들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신발 정리를 잘해 놓았네!“

마당으로 나오면서 외국인 한사람이 흐드러지게 핀 국화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강시혁에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국화가 언제 핍니까?“

강시혁이 영어로 말했다.

“가을에 핍니다. 동양에서는 옛 부터 관상용으로 국화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동양화 그림에도 국화가 많이 나옵니다.”

강시혁의 말을 듣고 외국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이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강시혁은 오늘 회장에게 단단히 점수를 따고 있는 중이었다.

회장이 강시혁을 불렀다.

“이보게 강군.”

“예, 회장님.”

“화단 정리를 잘해 놓았군. 여기 온지 얼마나 되었지?”

“3개월 되었습니다.”

“급여는 얼마를 받나.”

“280만원을 받습니다.”

“흠. 급여가 약하군. 이봐, 임 과장.”

임 과장이 쪼르르 다가왔다.

“예, 회장님.“

“회사에 들어가면 비서실장이 문화재단 관장과 의논해서 이 사람 급여 조정을 좀 해주라고 하게.”

"예, 알겠습니다. 실장님께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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