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언론재벌의 장남 (2)
(51)
방문한 신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아, 너무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A신문사 법무팀장입니다.”
그러면서 신사는 자기 명함을 강시혁에게 주었다.
강시혁은 명함을 받고 긴장했다.
[옳거니! 왔구나. 법무팀장이라면 법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니 틀림없이 합의 문제를 들고 나오겠구나! 이럴 때 갈비뼈 하나라도 부러졌어야 되는데 좀 아쉽네! 하퇴부 단순염좌와 서너바늘 봉합수술 정도라면 합의금이 별것 아니겠는데?]
“그런데 법무팀장님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몸은 좀 어떻습니까?”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은 사방 군데가 쑤시고 아픕니다. 아구구구.”
“그렇지 않아도 여기 오기 전에 의사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골절은 없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타박상은 다음날이 아프기는 하지만 또 내일이 되면 괜찮아 질 겁니다.”
강시혁은 ‘당신이 의사요?’ 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노려만 보았다.
“듣기로는 강시혁 씨가 홍 사장님의 멱살을 잡고 짐짝처럼 끌어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그런 사실 없습니다. 주차장까지 모시겠다고 하면서 팔을 내 어깨에 걸었을 뿐입니다.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홍 사장님께서 묻지마 폭행을 한 겁니다. 아이구구, 아직도 쑤시네.”
“우리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요?”
“강시혁 씨는 젊은 분이니까 타박상과 봉합수술은 금방 낫습니다. 월요일 출근도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강시혁 씨가 어쨌든 다쳤고 많이 놀라기도 하여서 우리가 조금 성의를 표시하고자 합니다.”
“저는 다른 것 원하지 않습니다. 홍 사장님의 사과를 원합니다.”
“홍 사장님께서는 강시혁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인이 직접 오셔야지요. 물론 삼방그룹의 이영진 상무님 배우자이시지만 저는 정말 너무 억울합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강시혁 씨는 삼방그룹의 정직원인데 상방그룹 대주주의 배우자를 이리오라 저리오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정직원이 아니라 잡급직입니다. 잡급직이 다른데 가서 일하면 그만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일 퇴원하시고 통근치료를 받으세요. 병원비는 우리가 모두 계산하고 위로금조로 3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개새끼들! 내가 네 대를 맞았는데 300이 뭐야? 네 대면 400은 줘야지! 이 자식들은 전에 물류회사 대표가 탱크로리 기사를 백만 원씩 주고 때린 걸 모르나.]
강시혁이 미소를 지으며 한번 튕겼다.
“됐습니다. 내가 잡급직이라 돈은 없는 사람이지만 300만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냥 돌아가세요.”
“돈을 더 요구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제가 모시고 계신 분들을 돈으로 흥정할 수 있습니까? 그냥 가세요.”
“그렇다면 고발장을 들고 경찰서로 가겠다는 말입니까?”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고발장을 제출하면 위로금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변호사를 선임할 것입니다.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도 일종의 폭력행위입니다. 우리는 맞고소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강시혁은 벌떡 일어나 이 법무팀장이란 인간을 발로 차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오랫동안 찌질이 생활을 해온 강시혁이 쉽게 흥분할 사람은 아니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고소도 하지 않고 위로금도 받지 않겠습니다. 팀장님 말씀대로 젊은 놈이니 금방 낫겠죠.”
“좋습니다. 위로금은 200을 더 얹어 500을 드리죠. 제 상사들이 반대하겠지만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강시혁은 아무 대답을 안했다.
500만원이면 합의를 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럽시다 라는 대답을 하기엔 모양세가 안 좋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법무팀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 답변을 안 하셔도 됩니다. 내일 오전에 다시 오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서로 좋은 방향으로 매듭을 지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법무팀장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건너편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또 깐죽대고 참견을 할 텐데 다행히 병상에 없었다.
아마 진료를 받으러 간 것 같았다.
강시혁은 링겔 주사를 손목에 낀 채 휴게실로 나왔다.
그리고 후배 변상철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상철이니? 공부 열심히 하지?”
“이제 나이가 들어 공부도 잘 안 돼. 포기하고 싶은 생각만 들어. 열심히 하긴 해야겠는데 말이야.”
“열심히 해라. 나 같은 지하실 기생충이 안 되려면 열심히 해라.“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뭐 하나 물어보자. 삼방 재단법인 직원이 누구하고 싸워서 진단 3주가 나왔다는데 합의금을 얼마 받으면 될까? 너는 경찰시험 공부하니까 이런 것 잘 알거 아냐?”
“글쎄. 그런데 진단 3주라도 병명이 여러 가지 일 텐데.”
“하퇴부 단순염좌에 세 바늘 봉합수술 받는다더라. 몇 군데 멍도 들고.“
“내 고등학교 동창이 지난번에 피시방 주인하고 싸워서 합의를 했는데 알아보고 전화 해줄게.”
“고마워. 역시 너는 사랑하는 내 아우야.“
잠시 후 변상철이 전화를 했다.
“형! 전화 받을 수 있지?”
“괜찮아. 말해봐.”
“내 친구는 2주 진단에 100만원 받았다고 하던데? 3주면 200만 원 이상은 받아야 되겠지.”
“그래? 고맙다.“
“내 친구는 그거 받아가지고 핸드폰 바꾸고 삼겹살도 실컷 사먹었다고 하던데? 200만원 안주면 고소장 제출하라고 그래.”
“알았다. 고맙다.“
“그리고 합의하면 가해자 처벌은 안 되는 것 알지? 반의사 불벌죄라는 것이 있어.“
“그래. 고맙다.”
강시혁은 500만원이면 그냥 합의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이영진 상무에게는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에게 알려는 줘야겠지. 지금 홍 사장에게 맞은 내가 입이라도 잘못 놀릴까봐 불안해하겠지. 내가 떠들어 세상에 이 일이 알려지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잖아?]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고 뭐고 이 기회에 한몫 챙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신문사에 폭로하고 악질 유튜버에게 알린다고 하면서 한 1억 정도를 뜯어 낼까하였다. 그렇지만 자기가 찌질이 소리는 들어왔어도 아직 거기까지는 타락하지 않았다.
조용히 500만원 받고 끝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영진 상무에게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상서원 강 반장입니다. A일보 법무팀장님이 오늘 왔다 가셨습니다. 제가 3주 상해진단이 나왔는데 합의를 원하십니다. 합의금은 500만원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상무님 지시를 받고 합의를 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영진 상무의 전화가 왔다.
이영진 상무는 문자로 답신을 보낸 것이 아니라 직접 전화를 한 것이다.
“이영진 상무입니다.”
‘아, 상무님!“
“문자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죠?”
“예, 괜찮습니다. 의사 말로는 하퇴부 염좌이고 정강이 3바늘 봉합수술을 한다는데 저는 내일 퇴원하고 통원치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되겠어요?”
“예, 당장 업무에 지장도 없고 운전도 지장 없습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다친 건 상무님 댁 정원을 손질하다가 다친 것으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합의는 그대로 할까요?”
“강 반장님께는 미안하지만..... 조용히 끝내길 원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합의하겠습니다.”
“위자료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하라고 신문사 법무팀에게 말은 해두겠습니다.”
“아닙니다. 500만원이면 충분합니다.”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고 강시혁이 피식 웃었다.
[고맙겠지. 내가 입을 지퍼로 꽉 잠가놓는다는데 고맙지 않겠어?]
다음날 신문사 법무팀장이 왔다.
이영진 상무의 전화라도 받았는지 생글거리며 왔다.
사실 이영진 상무는 회사 일을 비서실 아니면 경영기획실을 통하여 모두 처리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자기가 남에게 공개할 수 없는 사생활의 일이었다.
그래서 신문사의 법무팀장과 직접 전화를 하기도 하였고 하찮은 잡급직인 강시혁하고도 직접 통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된 결혼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것이었다.
법무팀장이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합의를 하시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역시 젊은 분이라 화끈한 데가 있습니다.”
“저도 좋은 게 좋다고 빨리 끝내고 싶습니다.”
법무팀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이영진 상무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피해자에게 조금 더 생각해 주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강시혁 씨는 삼방의 직원이기도 해서 우리가 200을 더 얹어주기로 했습니다. 합하여 7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700요?”
“전례가 없던 일입니다. 단순염좌의 3주 진단에 700이면 파격적 합의입니다. 다른데 가셔서 이 금액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전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야기할 사람도 없습니다. 잡급직이 어디 가서 말을 하고 다닙니까?”
“합의서를 가져왔습니다. 읽어보시고 맨 하단에 지장을 찍어주시면 됩니다. 인주도 가져왔습니다.”
강시혁이 합의서를 대충 읽어보았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합의금 700만원이라는 문구만 눈에 들어왔다.
강시혁은 지장을 찍어주고 700만원 수표가 든 봉투를 받았다.
[700만원이 생겼다!]
강시혁은 이번 일로 이영진 상무에 대한 신뢰도 쌓았고 공돈이나 다름없는 700만원이 생겨 입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표정관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마지못해 700만원을 받는 시늉을 냈다.
가난한 찌질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월요일 오전에 강시혁이 퇴원을 했다.
강시혁은 영빈관 자리를 비운지 벌써 3일이나 되어 영빈관이 궁금했다.
혹시 도둑이라도 들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CCTV도 있고 세콤시설이 다 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강시혁은 순천향 병원 주차장에 세워둔 카니발을 직접 운전하고 영빈관으로 왔다.
영빈관은 언제나 처럼 고요했다.
마당의 정원수와 화단의 꽃들이 어째 싱싱해 보이지 않았다.
[물을 주지 않아서 그런가?]
역시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지하실로 들어가 보았다.
이제 이 지하실이 고향처럼 느껴졌다.
지하실은 며칠간 닫아두어서 그런지 쿵쿵한 냄새가 풍겨왔다.
건물 안팎을 점검해 보았다. 1층과 2층도 돌아보고 건물 뒤편을 점검했다.
그동안 누가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또 문자를 보냈다.
[합의는 했습니다. 700만원에 했습니다. 통원치료가 가능할 것 같아 의사의 승인을 받고 퇴원했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답신이 왔다.
이번엔 전화로 오지 않고 문자로 왔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홍 사장께서도 많이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빨리 완치되기를 기원해 드리겠습니다.]
강시혁이 픽 웃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홍 사장이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 같아서였다.
홍 사장은 사과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잡급직 사원은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홍 사장은 금수저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강시혁은 700만원 수표를 은행에 입금시켰다.
통장엔 지난번 수유리 보증금과 그동안 있었던 잔금과 이번 700만원을 합쳐 1,500만 원 이상이 잔금으로 남아있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시혁은 이날 점심을 이태원 고급 식당에 가서 사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오는데 금산 아줌마가 전화를 했다. 김치 담근 것이 있으니 내일 낮에 와서 가져가라고 하였다.
강시혁은 아줌마를 만나면 몇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