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언론재벌의 장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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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혁이 비실거리며 일어났다.
홍 사장이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다시 팔을 잡았다.
“사장님! 집에 가셔야 합니다.”
“놔! 안 놔!”
“불편하시면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그러면서 팔을 잡아끌었다.
팔 힘은 강시혁이 더 세었다. 강시혁은 그동안 날마다 핸들을 쥐고 대리를 뛰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손아귀의 힘은 홍 사장보다 세었다.
“놓으란 말이야!”
“안됩니다.”
“놔! 이 개새끼야!”
그러면서 이번엔 강시혁의 입술을 머리로 받았다.
“아이고!”
이와 동시에 홍 사장이 강시혁의 가슴을 밀었다. 그 바람에 강시혁이 또 넘어졌다.
이번에 홍 사장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퍽!”
“아욱!”
“퍽!”
“아욱”
강시혁은 오늘 홍 사장이 자기를 친 걸 세어보았다.
머리로 받은 것 까지 4번 폭행을 하였다.
흙수저에게 맞았다면 재수 옴 붙은 것이 되었지만 재벌에 맞는 건 달랐다. 잘 하면 돈이 생기는 일이었다.
언젠가 물류회사 대표가 시위하는 탱크로리 기사를 야구방망이로 팬 적이 있었다. 한 대에 백만 원이라고 소리치며 팼었다.
그래서 강시혁은 매 한 대에 백만 원은 받아 내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 아팠다.
강시혁은 벌떡 일어나 돈이고 뭐고 맞았으니 홍 사장을 반쯤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월급 280만 원짜리 영빈관 지킴이 일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흥분하지 말자. 맞았으니 죽는 소리나 내자.]
“아이고, 아이고, 나 죽는다!“
이영진 상무가 홍 사장의 팔에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이러지 말란 말이야!”
소란 소리에 경비원이 달려오고 다른 방에 기거하는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이렇게 되자 홍 사장의 발길질은 멈추었다. 누가 신고했는지 잠시 후엔 경찰도 왔다.
경찰이 오자 홍 사장이 묵었던 오피스텔의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경찰관이 오피스텔 안을 쳐다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안에는 주사기 같은 것이 있어 잘못하면 바로 체포될 위험이 있었다.
경찰관이 말했다.
“누가 맞았나요?”
빌딩 경비원이 홍 사장과 강시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에게 이 사람이 맞았습니다.”
경찰관이 홍 사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가해자요? 신분증 주세요.“
“저 사람이 내 팔을 잡고 무자비하게 끌어냈단 말이요.”
“그건 경찰서에 가서 말 하세요. 피해자도 신분증 주세요.”
경찰관이 강시혁에게 말했다.
“많이 다쳤어요?”
“모르겠네요. 사방이 지금 아파죽겠습니다.”
“병원에 가세요. 119부를까요?”
“아니, 내 발로 가겠습니다.”
“가해자 처벌을 원하나요?”
강시혁이 입술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이영진 상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영진 상무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얼굴 표정을 보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을 확대하면 세상이 시끄러워질 소지가 많은 사건이었다.
재벌의 신랑이 사람을 쳤으니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달려올 것인가!
“처벌은..... 원치 않습니다. 다들 아는 사람들이고 잠시 시비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영진 상무의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경찰관이 홍 사장의 신분증에 나와 있는 이름과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 강시혁의 이름과 주소도 적었다. 전화번호도 물어서 메모를 했다.
“알겠습니다. 피해자는 병원에 가보시고 가해자 형사 처벌을 원하신다면 아무 때고 경찰서에 오셔서 고소장을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경찰이 가버리자 홍 사장은 얼른 오피스텔로 들어가 버렸다.
다른 방에서 나와 구경하던 사람들도 흩어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영진 상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코트의 깃을 올리고 마스크를 썼기 때문이었다.
이영진 상무가 강시혁에게 말했다.
“병원부터 가시죠. 일단은 대리 운전자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강시혁은 자기가 운전하고 가고 싶었다.
홍 사장에게 맞았지만 운전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몸이 성성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 합의금을 받아내야 하는데 아픈 데가 없는 것처럼 보이면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허리를 집은 채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대리는 제가 부르겠습니다.”
강시혁과 이영진 상무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강시혁이 뒤에 오는 이영진 상무를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따라오는데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매 맞은 자기가 오히려 보호를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기사는 벌써 주차장에 와 있었다.
강시혁은 몸이 아픈 정황에도 상전을 위해 카니발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앞좌석에 탔다.
대리 기사는 두 사람이 부부인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함께 뒷좌석에 타지 않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이영진 상무가 대리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가까운 병원부터 갈까요?”
강시혁이 제지했다.
“아닙니다. 상무님부터 모셔드리죠. 그리고 저는 이태원에서 가장 가까운 한남동 순천향 대학 병원에 입원하겠습니다.”
“미안해요. 강 반장님.”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강시혁이 대리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이태원에 들렸다가 한분 내려드리고 순천향 병원으로 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강시혁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쇼가 아니라 진짜 아파서였다.
강시혁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를 보면 찌질이라고 하겠지? 홍 사장에게 그렇게 맞고 단 한 번도 항거를 안했으니 말이야. 그러나 누가 항거를 할 줄 몰라서 안하나? 이득이 안 되니까 그렇지.}
[내가 홍 사장을 발길질이라도 했다면 홍 사장 측에서는 쌍방 폭행으로 고소를 하겠지. 그리고 A일보의 막강한 인맥을 동원해 검찰이나 법원을 움직이지 않겠나. 홍 사장은 편하게 집에 앉아 변호인을 내세우고 나는 돈이 없어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매번 직접 재판에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되겠지. 그리고 어렵게 얻은 영빈관 지킴이 일도 못하겠지.]
[최대한 엄살을 떨어 합의금이나 받아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야. 찌질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처사야. 사람이 찌질이가 되는 건 언제나 돈 때문이지.]
대리 기사는 이영진 상무를 이태원에 내려주었다.
이영진 상무가 열려진 차창 문을 통해 말했다.
“병원에 입원하시면 바로 연락을 주세요.”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가 자기의 명함을 주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영진 상무의 명함이었다.
강시혁은 아픈 정황에도 황송해 두 손으로 이영진 상무의 명함을 받았다.
강시혁은 순천향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하면서 바로 강시혁의 옷을 벗기고 환자복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링겔주사 같은 것을 꽂았다.
강시혁은 누워서 스마트 폰만 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일주일간 푹 있다가 가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홍 사장에게 맞았으니 문화재단에서도 자기의 결근을 인정해 줄 것이다. 그러니 병원 밥이나 먹고 스마트 폰으로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면서 지내면 될 것 같았다.
아침이 되었다.
의사를 면담했다. 의사는 역시 엑스레이부터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엑스레이부터 시작하여 각종 검사를 다 받았다.
[웬 엑스레이를 이렇게 많이 찍어? 병원 이 자식들 호구 하나 들어왔다고 뽕 빼려고 그러는 것 같네.]
이영진 상무가 왔다. 과일 바구니 하나를 들고 왔다.
“괜찮아요?”
“끙, 끙. 아직 모르겠습니다. 엑스레이 결과가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치료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세요. 문화재단에는 내가 이야기 해놓겠습니다.”
“아직은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엑스레이 결과보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홍 사장님에게 맞았다는 이야기가 밖으로 새나가면 안되니까요.”
이영진 상무가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고마워요. 강 반장님.”
정말로 강시혁이 홍 사장에게 맞았다는 이야기가 그룹 내에 퍼진다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야기는 사람 하나를 건널 때마다 부풀리기 마련이어서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재수 나쁘면 악질 유튜버에 걸려 가짜 뉴스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강시혁이 문화재단에 말하는 것을 조금 있다가 이야기 하자는 말에 이영진 상무가 미소로 답을 해준 것이다.
“상무님은 바쁘신 분입니다. 더구나 그룹을 이끌어 가시는 분인데 여기에 오래 계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토요일이고 내일은 일요일입니다. 문화재단에서도 이틀 동안은 나를 찾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영진 상무가 머뭇거렸다.
강시혁이 다시 말했다.
“상무님이 여기 계시면 저도 불편합니다. 돌아가십시오.”
“그럼.... 엑스레이 결과 나오면 전화로 알려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무님.”
“병실은 여기가 불편하시면 상급 병실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죽을병도 아닌데요. 어서 가보세요.”
마침 이영진 상무의 핸드폰 벨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일어서며 강시혁에게 목례를 하였다.
“그럼.”
이영진 상무가 돌아가자 건너편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가 말했다.
여기는 4인실 병동이라 다른 환자들이 있었다.
“지금 오신분이 누구요? 굉장히 예쁜데? 애인이요?”
“아닙니다. 직장 상사입니다.”
“직장 상사? 나이는 당신이 더 먹은 것 같은데?”
“예? 그, 그건 제가 입사를 늦게 해서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입사가 늦지. 아무래도 군대 갔다 오고 재수라도 하면 그렇게 되겠지. 그래서 빌어먹을 여자들도 군대를 가야돼. 아까 보니까 나이도 어린 여자에게 예, 예. 하는 게 영 보기가 안 좋네.”
[이 사람들아. 방금 온 여자가 누구인줄 알아? 대한민국 대 재벌인 삼방그룹의 따님이네. 여기 4인실 병동에 방문한 것부터가 영광이네.]
엑스레이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뼈가 부러진 곳은 없다고 하였다. 하퇴부 단순염좌라고 했다. 하지만 정강이 언저리가 찢어져 세 바늘 이상 봉합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타박상에 대한 치료와 안정가료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저, 선생님. 그러면 저 내일 퇴원해도 될까요?”
의사가 화들짝 놀라며 말렸다.
“그래도 이삼일 상태를 봐야 합니다.”
강시혁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디 부러진 곳도 없는데 입원 더 하라고 하네. 완전히 내가 여기 인질로 잡혀있는 것 같네.]
“저, 진단서가 필요할지 몰라서 그러는데 진단서는 얼마나 나올 것 같습니까?”
“3주 정도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강시혁은 미소를 지었다.
3주 진단이면 합의금을 받아내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 마음이 변해 경찰서에 가더라도 형사문제화도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3주 진단이면 얼마를 받아낼 수 있을까? 내가 머리로 받힌 것 포함하여 4대를 맞았으니 400만원을 달라고 할까? 그런데 홍 사장 측에서 40만원만 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문제를 확대하면 이영진 상무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어쩌지? 문화재단에도 알리지 말라고 내가 말했는데. 내가 다시 마음이 바뀌어 떠들고 다닌다면 이영진 상무는 나의 배신감에 분노를 느끼겠지?]
강시혁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오후 늦게 웬 신사가 찾아왔다. 50세 전후의 안경을 낀 사람이었다.
“강시혁 씨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강시혁은 이 사람이 혹시 형사가 아닐까 해서 쳐다보았다.
아니면 냄새를 맡고 온 찌라시 신문사 기자나 악성 유튜버가 아닐까 하였다. 폭행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A일보 오너 아들이라면 충분한 먹잇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일단 긴장이 되어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