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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47화 (47/199)

47화 상무의 부탁 (1)

(47)

강시혁은 혹시 수유리 원룸 주인아줌마의 전화인가 했다.

하지만 수유리 아줌마보다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강시혁 씨 맞죠?”

“예, 맞습니다. 강시혁입니다.”

“현재 거주지가 동빙고동이죠? XX카드사입니다.”

“XX카드사요?”

강시혁은 가슴이 덜컥 했다.

신용불량 때문에 그동안 카드사의 독촉 전화를 받았는데 또 무슨 전화인가 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신고하지 못한 누락된 부채가 있었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XX카드사는 자기가 거래하지 않았던 카드사였다.

“혹시 내일배움카드 신청하지 않으셨나요?”

“예? 시, 신청했는데요?”

“카드가 나왔으니 전달해 드리려고요. 지금 동빙고동에 계시면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아, 제가 지금 지방에 있는데요.”

“아, 그러세요? 그럼 내일 다시 연락드리죠.”

강시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라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니 그 말이 꼭 맞았다.

“그런데 이 카드는 카드사를 통해서 직접 사람이 나와 전달해 주는 것 같네.”

내일배움카드는 정부에서 직업교육 훈련비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3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를 지원해준다. 다른 용도로 쓰면 안 되고 반드시 교육훈련비로 써야한다.

삼방전자 연구실 오 차장이란 사람이 말했다.

“이제 문화재단에서 오신 분은 가 보세요.”

“저....  그런데 그림 대금은 언제 결제가 가능한지....”

“전자 세금계산서는 받았어요. 이달에는 안 되고 다음 달 초에 집행하죠. 이 달엔 해외 기술료 지급 건이 있어 지급수수료가 많이 나가요.”

“더 빨리는 안 되나요?”

“그건 어렵습니다. 내가 경리부서 책임자도 아니라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럼 그림 인수증 서명 부탁합니다.”

강시혁은 여기까지만 하면 자기가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문화재단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림은 잘 전달했고요. 인수증은 받았습니다. 인수증은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결제 대금은요?”

“이달에 해외기술료 나가는 것이 있어 다음 달 초에 준답니다.”

“알겠어요. 수고했어요.”

“그럼 저 인사동 안 들리고 바로 영빈관으로 가도 되겠지요?”

“그렇게 하세요.“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이번엔 수유리 원룸 주인아줌마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 신호가 간 다음에 아줌마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102호 원룸에 살던 사람입니다. 방 나갔나요?”

“계약은 되었어요. 일요일 날 이사를 온다니 보증금은 그때 보내드리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방이 계약이 되었다니 다행이었다.

방이 장기간 안 나가면 어떻게 하나 했더니 천만다행이었다.

그 보증금 5백만 원은 강시혁의 생명 줄과 같은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노래를 부르며 카니발을 몰고 서울로 향했다.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노래를 부르며 갔다.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어제 이태원 클럽에서 만났던 변상철 친구가 생각났다.

이 친구가 드라이브 곡을 하나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소니 클라크의 피아노 연주인 쿨 스트러팅이란 곡이었다.

강시혁은 유튜브에서 이 곡을 찾아 계속 들으며 운전했다.

대리 뛸 때처럼 뒷좌석에서 술 냄새 푹푹 풍기며 갑질하는 인간이 없어 너무 좋았다.

다음날 강시혁은 카드사 직원을 만났다.

영빈관으로 오게 하지 않고 몬드리안 호텔 앞에서 만나 카드를 전달 받았다.

강시혁은 내일배움 카드를 받고 기분이 좋았다.

바로 노량진에 있는 전기 기능사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재직자 과정이라 야간반에 등록했다.

[야간 근무가 끝났다 하더라도 자리를 비워야 하니까 보고는 해야겠지? 괜히 야간에 급하게 나를 찾다가 없으면 문화재단에서 지랄하겠지. 특히 관장이란 여자는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하겠지?]

그래서 강시혁은 전기기능사 교육을 위하여 직업학교 교육을 받는다고 업무일지에 기재는 해주었다.

5개월간 교육을 받는다고 기재를 했다.

강시혁이 학원에서 돌아오자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다니는 벤츠차 기사의 전화가 왔다.

“아, 과장님!”

“자네하고 토요일 약수동에서 만나는 건 일주일 연기해야 되겠네.”

“토요일 특근이라도 있는 모양이죠?”

“인천공항에 가야 되네. 미국에서 손님이 오는데 맞이해야 될 것 같아.”

“회사의 중요한 손님이라도 오는 것 같군요.”

“아니야. 홍 사장 친구들이 미국에서 온다고 했어.”

“이영진 상무님 남편 되시는 분 말이죠?”

“맞아. 여러 명이 온다니까 차 한 대로 모자라 내 차를 동원하는 거야.”

“그럼 할 수 없죠. 다음 주 토요일 뵙죠.”

강시혁은 전기기능사 학원 등록 후에는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하고 정원수와 화단 손질하고 이삼일에 한 번씩 미술품 수송을 하다보면 금방 날짜가 갔다.

야간에 영어공부라도 하려고 했지만 전기기능사 학원에 다녀오면 밤 10시가 넘어 그러지도 못하였다.

일요일 수유리 원룸 아줌마로부터 보증금이 통장에 들어왔다.

그런데 500만원이 아니고 475만원만 들어왔다.

원룸 아줌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돈 보냈는데 확인해 봤어요?”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475만원만 들어왔네요.”

“총각이 계약기간 만료 2개월 전에 이사해서 복비 20만원 공제했어요. 그리고 유리창 하나가 금간 게 있어서 교체비용이 들어갈 것 같아 5만원 공제했어요.”

“유리창 금이 갔어요?”

“금이 갔으니 그렇게 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유리창 교체비가 5만원이나 들어갑니까?”

“그럼 총각이 여기 와서 하나 끼워주고 가요.”

주인아줌마는 강시혁을 총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총각이라고 불렀다.

강시혁은 이 475만원 받은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됐습니다. 그동안 방 잘 사용했습니다.”

“언제라도 수유리에 와서 방이 필요하면 이야기해요.”

강시혁은 돈 받은 김에 큰맘 먹고 낙원동 상가에 나가 통기타 하나를 샀다.

밤에 이거라도 없으면 무료할 것 같아서였다.

집에 와서 기타를 쳐보았다.

악보 보는 법은 알고 있었는데 유튜브를 보며 다시 배웠다. 그리고 쉬운 곳부터 쳐나갔다.

대학 다닐 때 많이 쳐보았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부터 쳐 나갔다.

다음 주 수요일이 되었다.

이 날은 인사동에서 미술품을 싣고 H대학을 갔다가 돌아왔다.

지하에 있는 관리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노량진 학원을 가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영진 상무 댁의 금산 아줌마였다.

“삼촌?”

“아, 이모님! 여기 한번 오신다고 했잖아요? 한번 안 오세요? 제가 한번 모시러 갈까요?“

“그게 아니라 내가 전화를 바꿔줄게.”

[전화를 바꿔?]

전화를 바꾼다는 말이 수상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뜻밖에도 차분한 음성의 젊은 여성 목소리였다.

“이영진 상무입니다.”

“예? 이, 이 상무님!”

강시혁은 갑자기 멘붕 상태가 되었다.

이영진 상무가 자기를 찾을 까닭이 없는데 찾았기 때문이었다.

“미안하지만 어디 좀 다녀오실 데가 있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지, 지금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상서원은 근무시간이 끝났을 테니 시간을 한번 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강시혁은 지금쯤은 노량진 학원으로 출발해야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삼방그룹 오너 가족의 부탁인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학원 수업을 빼먹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줘야 했다.

더구나 부탁하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는 이영진 상무가 아닌가!

“어, 어디를 다녀오면 되겠습니까?”

“회사차가 거기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술품을 수송하는 카니발 차량이 있습니다.”

“그럼 그 차를 가지고 포천 산정호수를 다녀오셨으면 합니다.”

“산정호수요?”

“지난번 강 기사님이 서초동 박 변호사님을 모시고 왔던 팬션입니다.”

“누굴 모시고 가는 겁니까?”

“아닙니다. 거기 가셔서 홍 사장이 계신가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신문사 홍 사장님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홍 사장님을 만나서 특별히 전달할 물건이나 말씀 같은 것은 없습니까?”

“아뇨. 조용히 거기 있는가 하는 것만 확인하고 오시면 됩니다.”

[있는가만 확인하라고? 거 이상한 부탁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일은 일체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삼방 문화재단에도 알려지면 안 됩니다.”

“문화재단에서도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와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금산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삼촌! 다녀와서 보고는 내 전화로 해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모님!”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자기의 전화번호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재벌가의 딸이 잡급직 경비원과 카톡을 주고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벤츠차 기사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왜 내게 시키지? 알려지면 안 될 일이라도 있나?]

하지만 자기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것은 자기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도 되었다.

[이영진 상무는 외부에 알려지기 싫은 일을 나에게 시켰다!]

이렇게 생각하니 강시혁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산정호수 팬션에 가서 홍승필 사장 얼굴이 보이면 조용히 사진이라도 찍어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강시혁은 노량진 전기기능사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몸이 아파 교육을 받으러 갈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강시혁은 포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퇴근시간과 겹쳐서 그런지 차가 엄청 많이 막혔다.

강변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연료 게이지를 보았다. 기름은 충분했다.

강시혁은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카니발 주유는 항상 만 탱크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이태원 클럽의 기타리스트가 추천한 소니 클라크의 피아노 연주곡을 계속 들으며 갔다.

밥 딜런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차가 심하게 막히면 짜증이 나서 시끄러운 록 음악도 듣곤 하였다.

강시혁이 포천 산정호수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그런데 팬션 부근은 조명도 없어 어두웠다.

팬션은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한참이나 헤맸다. 이상하게 이 팬션은 간판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팬션을 찾았다.

방에 불이 켜진 것으로 보아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차를 멀리 세우고 걸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팬션이라면 놀러온 사람들의 말소리라도 들려올법한데 조용하였다.

팬션 건물 창문으로 조용히 접근했다.

음악소리가 조용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음악소리는 김연아 출연광고에 나오는 음악 같기도 하였다.

가운데 테이블에 양주병이 있었고 칠팔 명의 남자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이들은 앉은 채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 사람들이 뽕 맞은 사람처럼 왜 이래?]

홍 사장을 찾기 위해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강시혁이 있는 곳은 어두웠지만 방안은 환해 잘 보였다.

강시혁은 홍 사장 얼굴을 알고 있었다. 처음 여기서 보았던 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껌을 짝짝 씹고 있던 사람이었다.

술에 취했는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람이 홍 사장처럼 보였다.

[있다! 홍 사장이다. 그런데 왜 저러고 있을까?]

강시혁이 창 밖에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불빛이 반사되어 안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 제대로 나왔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에 설치한 등이 켜지며 덩치 큰 두 사람이 달려왔다.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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