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이태원 클럽 (1)
(45)
다음날 강시혁은 용산에 있는 튜닝업체를 찾아 갔다.
여기에서 카니발 3열 의자를 탈거하는 작업을 했다. 의자를 들어내야 미술품을 수송하는데 이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스펀지 같은 것을 차 내부에 설치하기도 했다.
튜닝업체에서 전문가들이 작업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후배 변상철의 전화를 받았다.
“형, 나야.”
“상철이구나。반갑다.”
“이제 나를 잊었나봐.”
“잊다니! 내가 사랑하는 아우를 잊을 리가 있겠나?”
“그럼 왜 소식도 없어?”
“환경이 바꾸니 적응하느라 정신도 없었어. 이제 쬐끔 숨 좀 돌릴 것 같다.”
“저녁에 내가 이태원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한번 들릴게. 거기가 어디라고 그랬지?”
“녹사평 역에서 한강 쪽으로 내려오다가 보면 몬드리안 호텔이 있는 곳이야. 호텔 앞에서 전화하면 돼.”
“형, 오늘 가면 그 영빈관이란 곳 구경할 수 있을까?”
“저녁 6시 이후에 와. 낮에는 누가 방문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요즘은 해가 길어 저녁 6시도 좋지. 구경은 충분히 하겠네. 그럼 저녁에 봐.”
저녁이 되었다.
변상철이 동빙고동 영빈관으로 왔다.
변상철도 집을 보고 상당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살림집이야?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네.”
변상철이 1층 접견실을 구경했다.
“야, 이거 의자가 엔틱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네가 앉았던 자리가 바로 어제 삼방그룹 회장이 앉았던 자리다.”
“그래?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이 여기 왔었나?”
“이래 뵈도 이 손이 어제 이건용 회장과 악수한 손이다.”
그러면서 강시혁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이영진 상무도 왔었나? 미인이라며?”
“실물은 아이돌 급이야. 어제 이영진 상무도 만났지.”
“형은 이제 재벌들만 상대하네.”
“현재는 회장 가방모치만큼도 못한 위치지만 차차 노력해서 올라가도록 해야지.”
강시혁은 그러면서 회장 가방모치로 따라온 비서실 임창영 과장을 생각했다,
변상철이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형이 이러다가 삼방그룹 계열사 사장까지 올라가는 것 아니야?“
이 말에 강시혁은 조금 우울했다.
자기는 계열사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쪽 업무에 대하여는 아는 바도 없기 때문이었다.
설사 계열사 사원을 시켜준다고 해도 감당도 못할 것이 뻔했다.
변상철은 2층도 구경했다.
“저 방에는 피아노도 있네?”
“전에 이영진 상무가 쓰던 거겠지. 그런데 이 피아노를 들어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손님들 오면 활용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
“여기는 홀도 넓으니 소규모 음악회라도 할 수 있겠네.”
“문화재단이 있으니 행사 있을 때 피아니스트라도 초빙해서 분위기 띄우는 일은 하겠지.”
“형, 그런데 요즘 기타 안 쳐?”
“안 쳐. 대학 다닐 때 MT갔을 때 내가 기타 치니까 다 도망갔었잖아. 하긴 나도 엉터리였지.”
“킥킥. 나도 형 기타 치는 거 알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이 바로 형을 두고 하는 말이었지.”
강시혁은 이번엔 지하 관리실을 구경시켜주었다.
“여기가 내 근무 장소야.”
“혼자 조용하고 좋겠는데? 여기서 컴퓨터 켜놓고 야동이나 보면 딱 좋겠는데?”
“그래서 전기기능사 시험공부를 하려고해.”
“킥킥. 이제 별것 다 하네.”
"기술 분야야 배워두면 나쁠 건 없겠지. 형광등 갈아 끼는 것도 못하는 인간들이 있잖아.“
“내가 이런 자리 들어왔으면 좋을 뻔 했네.”
“너도 건물관리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잖아?”
“그거야 배워가면서 하고 여기서 경찰 7급 공부하면 딱 좋겠네. 우리 엄마 잔소리도 듣지 않고 얼마나 좋아? 거기다가 월급도 받을 것 아니야? 재벌회사 계열이니 월급도 많겠지.”
“월급은 많이 안줘. 난 계열사 소속이 아니고 문화재단 소속이라 그래. 계열사는 돈을 벌어들이는 조직이지만 문화재단은 돈을 쓰는 조직이 아니냐.”
“그러면 무슨 장래를 보고 여기 들어온 거야?”
“당장은..... 일단 직업이 안정적이고 덜 위험하잖아.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의 송영업무나 야간 대리운전은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직업이지. 나도 야간에 길 모르는데 들어갔다가 사고 날 뻔한 적이 한두 번 아니야.”
“원룸에 있던 짐을 다 옮겼다며?”
“여기 옆방이 내 방이야. 구경할래?”
강시혁은 변상철에게 자기 방을 구경시켜주었다.
전에 수유리 원룸 살 때는 집이 창피해서 변상철을 한 번도 데려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자기 방문을 열어주었다.
“방은 그럴듯한데..... 역시 홀아비 냄새가 나네.”
“내가 너 온다고 여기 향수까지 뿌렸는데?”
“그런데 밤에 무섭지 않아? 이 큰집에서.”
“내가 맹호부대 출신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냐?”
“킥킥. 이제 생각나는데 형은 기생충 같아.”
“기생충이라니!”
“기생충 영화 못 봤어? 부잣집 저택의 지하에 숨어살던 기생충 말이야.”
“내가 영화 볼 시간이 어디 있니? 대리 뛰어야지.”
“그 영화 보면 가정부 문광의 남편이 그 집 지하에서 4년 동안 좀비처럼 산 것으로 나오잖아. 킥킥. 형도 여기서 4년만 있어봐. 좀비처럼 될 테니까.”
“야야, 그러지 마라. 어제 이건용회장이 악수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계열사 정직원으로 심어주겠데?”
“열심히 일하면 급여도 올려주고 더 좋은 자리로 갈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거라고 하더라.”
“정말 회장이 그랬어?”
“너, 언제 내가 거짓말 하는 것 봤냐?”
“그거야 회장 입장에서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그렇게 말했겠지.“
“그리고 옆에 있던 삼방전자 사장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삼방전자 사장은 CEO로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인데? 삼방 회장의 오른팔이라고 소문이 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무슨 소리를 했는데?”
“떠날 때 차 문을 열고 나에게 ‘자네는 지금처럼 일을 하면 되네.’ 그렇게 말했어. 지금처럼 일하다보면 좋은 기회가 생기겠지.”
“지금처럼 일하면 된다고? 정말이야?”
“이 자식은 만날 속고만 살았나. 왜 이렇게 내 말을 못 믿어!”
“삼방전자 사장의 그 말은 좀 의미심장한데?”
“의미심장하다니!“
“지금처럼 일 하라는 건 능력치를 올리지 말라는 뜻인데! 버프가 필요 없다는 말이지.”
“그래?”
“그런 사람들의 사람을 보는 눈과 우리가 보는 눈은 다르겠지. 그렇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해봐.”
“너 왔으니 나가자. 요 위에 있는 청화 아파트 지나면 바로 이태원역이 나온다. 이태원에 가서 맥주나 한잔 하자.”
“그럼 내 친구가 있는 클럽으로 가지.”
강시혁과 변상철이 영빈관을 나섰다.
멀리서 경찰관이 순찰을 도는 모습이 보였다.
변상철이 말했다.
“형, 여기는 지킴이도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네. 대사관이 많은 동네라 CCTV도 많고 저렇게 경찰들이 순찰을 돌아주잖아.”
“내가 며칠 전 여기 관할파출소 소장을 만나 압력을 넣었어. 순찰을 강화해달라고 말이야.”
“푸하하. 웃기네. 형이 뭔데 파출소 소장에게 압력을 넣어? 이제 보니 여기 와서 구라만 늘은 것 같네.”
“정말이야. 파출소 소장에게 순찰 강화를 하라고 강력히 말했어.”
그러면서 강시혁이 포켓에서 파출소 소장의 명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어? 정말인 것 같네?”
둘이 청화 아파트를 지나 이태원역으로 왔다.
바로 눈앞에 헤밀턴 호텔이 보였다.
“와, 형이 있는 영빈관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금방이네. 내가 여기 놀러오면 형이 바로 나올 수도 있겠네.”
“너 만나는 건 좋은데 자주 오지는 마라. 이태원 바닥에서 술을 마시기에는 월급이 아직은 적다.”
“씨팔, 여기 와서 알바나 할까? 친구가 자꾸 오라는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태원 밤거리의 네온이 빛나기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태원은 환락의 도시로 변해갔다.
“형! 저기가 문 라이트가 있던 곳이야.”
“문 라이트?”
“우리나라 춤꾼들은 저기 출신이 많았지. 현진영, 강원래, 구준엽이 다 저기 출신이야.”
“그런가? 너는 가봤겠구나.”
“몇 번 가봤지. 우리나라에서 놀 줄 아는 애들은 한 번씩 다 가봤을 거야.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지만.”
“에고, 코로나 때문에 여러 사람 망하는구나. 하긴 나도 건대 앞에 분식집 차렸다가 코로나로 망했으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흘러왔잖아. 그런데 네 친구가 있다는 곳은 어디야?”
“내 친구가 있는 데는 작은 클럽이야. 문 라이트가 좋았는데! 흑인음악의 격렬한 비트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황홀경 그 자체였는데!”
친구가 있다는 곳은 지하실에 있는 작은 클럽이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손님은 두 팀 밖에 없었다. 무대 위에서는 4인조 밴드가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었다.
변상철이 맥주와 안주를 시키고 말했다.
“저기 밴드의 기타 치는 놈이 내 친구야.”
“그래?”
“내가 사인을 보냈으니 조금 있다가 연주가 끝나면 이 자리로 올 거야.”
연주 음악은 아직 초저녁이라 그런지 잔잔한 재즈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변상철이 앉은 채로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었다.
강시혁은 연주하는 곡이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변상철은 이 곡을 아는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나고 휴식타임이 되었다.
기타를 치던 사람은 화장실에 들렀다가 변상철과 강시혁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왔다.
변상철이 앉은 옆 의자에 앉으며 기타리스트가 말했다.
“너, 오래간만에 왔다.”
“인사해. 내가 늘 말하던 대리 뛰던 형이야.”
대리라는 말에 기타리스트가 미소를 잠깐 지었다.
기타리스트가 강시혁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윤진형이라고 합니다.”
"강시혁입니다.“
강시혁이 윤진형이라는 사람을 보니 머리는 장발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사람이었다.
강시혁은 대전에 계신 아버지가 이 사람 모습을 보면 기절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조금 전 윤진형이란 사람이 연주한 곡명도 모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방금 연주음악이 잔잔한 게 듣기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윤진형이라는 사람이 강시혁 앞에 놓인 빈 잔에 맥주를 따라 주었다.
“대리 일을 하시면 드라이브 음악으로 좋은 게 있습니다. 소니 클라크의 피아노 연주인 쿨 스트러팅을 들어보세요.”
옆에서 변상철이 핀잔을 주었다.
“야,야. 대리가 자기차 운전이냐? 남의차 운전하면서 음악 잘못 틀면 손님이 가만있겠어? 잘못하면 뺨 맞는다!”
“그, 그렇겠네.”
“그리고 이 형님은 요즘 대리 일 안 해. 여기 이태원, 아니 요 밑에 있는 동빙고동에서 일하셔.”
윤진형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럼 선배님도 여기 클럽에서 일하십니까?”
이번에는 강시혁이 픽하고 웃었다.
“삼방그룹의 영빈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영빈관요?”
“삼방그룹 창업회장님 미망인이 살던 집이죠. 삼방그룹에서는 창업 회장님 부부가 별세 후 살던 집을 매각하지 않았습니다. 삼방 문화재단으로 소속을 시켜 영빈관으로 꾸몄습니다.”
“오, 그런가요? 맞아. 지난달에 내가 삼방그룹 창업 회장님 부인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본 것 같아. 그럼 선배님이 그 건물을 관리하시는 겁니까?”
“옛날 학교 소사 같은 일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강시혁이 명함을 꺼내 주었다.
명함에는 삼방그룹 마크가 찍혀있었고 삼방 문화재단 강시혁이라는 이름이 뚜렷했다.
이번엔 변상철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형! 나도 명함 하나 줘!”
강시혁이 명함을 변상철에게도 주었다.
변상철이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와, 출세했네! 대리 뛰다가 삼방 문화재단에 기어들어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