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재벌그룹 영빈관 (3)
(41)
일요일이 되었다.
이 날은 강시혁이 이사를 하는 날이다.
원룸에 살던 사람이라 짐도 많지 않았다. 이삿짐 차를 부른 것이 아니라 용달차를 불렀다.
주인아줌마가 나왔다.
“방이 비었으니 금방 나갈 거예요. 계약되면 보증금은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저도 돈이 필요해서 그런데 오늘은 안 되겠습니까? 다만 얼마라도 말입니다.”
“나도 이사 가는 사람한테 돈을 내주고 싶죠. 하지만 나도 방이 다시 나가야 돈이 들어와요.”
원래는 세입자가 이사를 갈 때는 주인이 보증금을 내줘야 한다.
그러나 가끔 돈이 없는 주인들은 내줄 돈이 없어 방이 빠져야 돈을 줄 수가 있다.
강시혁은 속으로 다소 불안했다.
[이 아줌마가 돈을 안 돌려주면 어쩌지? 에이, 설마 보증금이야 떼먹겠어? 우는 소리나 하고 가자.]
재벌 집 영빈관에 가게 되었다는 소리는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저도 지방에 가서 또 원룸을 얻었습니다. 친구한테 빌리고 카드 현금서비스도 받고 해서 그쪽 보증금을 지불했으니 방 나가면 꼭 주셔야 합니다.”
“걱정 말아요. 방 나가면 제일 먼저 보내주죠. 나도 평생을 경우 없는 짓을 하고 살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용달차를 타고 동빙고동으로 왔다.
이삿짐을 싯고 온 용달차 기사가 동빙고동의 대 저택을 보고 크게 놀랐다.
“여, 여기서 산다는 말씀입니까?”
“기사님이나 나나 금생에서는 이런 집에서 살기 힘들어요. 저는 여기 경비로 일하게 되었어요. 지하에 기거하니 짐이나 지하에 옮겨주세요.”
그래서 둘이 짐을 지하로 날랐다.
용달차 기사가 계속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히야. 저 정원수 소나무는 완전 적송이네. 나무 하나만 해도 수천만 원은 될 것 같네.”
“집이 크니 청소하기도 힘들어요.”
“여기는 지하도 훌륭하군. 수유리 원룸에 비하면 여기는 지하도 궁궐이네.”
“하하. 지하 궁궐인가요?”
“이 집 1층과 2층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네. 여기까지 왔으니 눈 호강 좀 하게.”
“다 잠겼어요. 외부인사 들이면 내 목이 달아나요. CCTV에 다 찍혀요.”
“여기서 경비 일을 하려면 기술자격증도 있고 유도나 태권도 유단자는 되어야 하겠는데?”
“컴퓨터도 할 줄 알아야 돼요. 저기 컴퓨터 안 보여요?”
“에효, 우리 같은 사람은 근무하라고 해도 컴퓨터 못해 못하겠네. 그런데 여기서 근무하면 혼자 무섭겠는데?”
“하하, 젊은 놈이 뭐가 무섭겠어요?”
강시혁은 이삿짐 정리를 다 마쳤다.
짐도 많이 버리고 와서 단출하기 때문에 금방 정리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밥을 해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강시혁은 반찬거리를 사기위해 집을 나섰다.
“저기 아파트 단지가 있으니까 거기 가면 슈퍼가 있겠지.”
아파트는 청화 아파트였다.
아파트를 지나니 좀 큰 도로가 나왔다. 여기는 가게들이 많았다.
“햄버거, 피자집, 약국, 커피숍, 다 여기에 있네. 물건 사기도 좋겠는데?”
조금 더 걸어보았다.
이태원역이 나오고 헤밀턴 호텔 건물도 보였다.
“아, 여기가 이태원 역이구나. 녹사평역을 이용해도 되고 이쪽 역을 이용해도 되겠구나.”
강시혁은 길을 건너 헤밀턴 옆 골목을 보았다.
바로 이태원 참사가 났던 골목이었다.
“와, 도로가 좁네. 여기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니!”
강시혁은 또 걸었다. 요상한 간판의 술집들도 많았다.
강시혁은 다음 주에 후배 변상철을 이리로 불러 술을 한잔하고 싶었다.
변상철은 자기 친구가 이곳의 어느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 가끔 여기에 온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강시혁은 대리운전 일을 할 때 이곳에 와서 콜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
야간에 다시 여기서 투잡으로 대리기사 일을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그러면 280만원 월급에 대리기사 수입이 들어오니 짭짤할 것 같았다.
그런데 혹시라도 야간에 영빈관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그곳 지하에 상주를 한다는 놈이 대리운전을 뛰고 있다면 삼방그룹에 나쁜 이미지를 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 잡은 영빈관 지킴이 인데? 그럴 수는 없지.]
그래서 강시혁은 야간에 대리 뛰는 일은 생각을 좀 더 해보기로 했다.
강시혁은 마트에서 음식재료와 채소, 그리고 야채 같은 것을 샀다. 김치도 샀다. 그리고 영빈관으로 들어왔다.
쌀을 씻어 안치고 국을 끓였다.
갓 지은 밥에 김치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정말 곰팡이 냄새나는 수유리 원룸보다는 천국이네. 앞에 여자 친구나 있다면 더욱 훌륭할 뻔 했네.”
강시혁은 밥을 먹고 마당을 걸었다.
밖을 나가지 않더라도 마당을 걸으니 좋았다.
밤이 되었다. 한참 인터넷을 하고 있다가 소변이 마려웠다. 화장실을 가는데 섬뜩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낮에 이삿짐을 나르는 용달차 기사가 무섭지 않으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파트 야간 경비는 아파트에 주민들도 많아 무섭다는 생각은 없겠지만 여기서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줌을 누면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를 불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을 나는 돛단배!“
화장실에서 나와 모니터가 있는 관리실로 왔다.
여기에 자기 책상이 있고 컴퓨터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기도 무서웠다.
더구나 이 지역은 옆집과 거리도 멀었다. 개인집 보다는 대사관 같은 건물이 많은 곳이다.
낮에 마트에 갈 때 보니까 이란과 이라크, 튀니지, 나이지리아, 레바논, 뉴질랜드, 카자흐스탄 등 대사관들만 즐비했었다.
컴퓨터를 하는데 누가 슬며시 다가와 뒷덜미를 잡아 다니는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거, 여기 지하실에 좀비라도 사는 것 아닌가? 왜 이렇게 사악한 기운이 돌지?]
전에는 여기 할머니랑 가정부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들은 몸 약한 나이든 여자들이 아닌가?
강시혁은 나이 많은 할머니 같은 분들은 어려서 농촌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아 무서움을 덜 탄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때 보니까 왈왈거리는 강아지도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났다.
[강아지라도 한 마리 사서 가져올까?]
그런데 강아지 기르는 것은 문화재단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강아지가 아무데나 똥이나 싸고 다닌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니겠는가!
강시혁은 이번엔 아예 김광석의 노래를 밥 딜런의 원곡으로 불렀다.
학교 다닐 때 영어 배우려고 수십 번도 더 외우고 다녔던 가사들이었다.
“Well, it ain't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y.”
(앉아서 이유를 궁금해봐야 소용없어. 자기야.)
“If you don't know by now.”
(지금도 모르고 있다면 말이야.)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나니 기타가 있었으면 했다.
강시혁은 기타를 잘 칠 줄 모른다. 그냥 팝송을 배우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좀 배웠지만 어디 가서 망신당하기 딱 알맞았다.
그렇지만 이 넓은 지하실에서 공포를 쫓기 위해서라면 기타라도 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라도 없으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아침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이곳은 나무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침부터 새소리가 들렸다. 정말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수유리 원룸 살 때는 위층의 부부의 싸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여기는 새소리까지 나네!]
강시혁은 현관문을 열고 1층과 2층의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공기를 순환시켜 주었다.
아침밥을 먹고 와서 응접실과 각방 걸레질을 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곳이지만 걸레질을 했다.
문화재단에서는 무슨 업무지시라도 있을법한데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거 나를 여기에 가두어 놓고 아무 지시도 없으면 어떻게 하는 건가? 이렇게 지내도 월급 주는 건 맞나?]
그래서 이번엔 물을 떠다가 정원수 나무와 화초에 물을 주었다.
보기 흉한 가지들은 전정가위로 잘라주기도 했다.
관리실 책상이 있는 곳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뉴스를 보았다.
전화가 왔다. 문화재단의 설운동 대리였다.
“아, 대리님!”
“할만 해요?”
“예, 이제 정리가 다되어 영빈관에 오시는 손님만 맞이하면 됩니다.”
“청소 같은 건 잘해 놓으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각 방에 환기부터 시킵니다. 그리고 물걸레 청소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각방 청소도 다 했고 정원수와 화단에 물도 다주었습니다. 보기 싫은 가지들이 있어 잘라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하시는 걸 업무일지에 적어 보내주면 됩니다. 오늘 일하신건 내가 내일 아침에 볼수 있도록 보내줘야 합니다. 컴퓨터는 잘 되지요?”
“예. 잘 됩니다.”
“그리고 회장님이 거기에 온다는 연락을 비서실 임창영 과장에게 받으면 나한테도 즉시 알려줘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업무일지에 빠트리지 않고 기록해 보내겠습니다.”
“아니, 회장님 오시는 건 전화로 즉시 알려 줘야 합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우리도 대응을 할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사람들도 회장이 뜨는 건 바로 알고 싶어 하는군.]
“그리고 강시혁 씨는 거기 경비업무도 담당하니까 시간이 있을 때 관할 파출소도 한번 들려 보세요.”
“파출소요?”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 강도라도 들면 협조도 받아야 하니까요. 거기는 비싼 그림이 많이 있게 되잖아요.”
“알겠습니다. 방문해 보겠습니다.“
“갈 때 그냥 가지 말고 음료수라도 한통 들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대리님.”
“나도 영빈관을 가보지 못했지만 언제 시간 날 때 한번 들려보겠습니다.”
[이 사람도 이런 대저택은 구경해보고 싶겠지. 할머니 장례식 때 왔었어도 집 안에는 못 들어 가봤을 것 아닌가!]
오후가 되어 강시혁은 음료수 한통을 사들고 파출소로 갔다.
파출소에는 경찰관 한사람이 책상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소장님 계십니까?”
“소장님요?
“삼방 문화재단에서 왔습니다.”
이때 옆방에서 나이 많은 경찰관이 나왔다.
무궁화 계급장을 단 사람이었다.
“무슨 일로 온 거요?”
“소장님이십니까? 저는 삼방 문화재단 소유의 동빙고동 XX번지 건물 관리인입니다.”
“아, XX번지! 거기는 삼방그룹 창업 회장님 부인이 사셨던 집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왔습니까?”
그러면서 소장은 강시혁의 얼굴과 강시혁이 들고 온 음료수 박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음료수 박스를 내려놓고 소장에게 명함을 주며 말했다.
“제가 건물관리도 하지만 경비도 합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길에 동네 치안에 힘쓰시는 분들에게 인사라도 하려고 왔습니다.”
“아, 그쪽 지역은 우리가 순찰을 자주 합니다. 대사관이 워낙 많은 동네라 수시로 합니다. 그래서 그곳은 강력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그런데 웬 음료수를! 이런 것 들고 오지 마세요. 누가 보면 좀 거시기 하잖아요.”
“하하, 죄송합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그러면서 파출소 소장은 자기 명함을 주었다.
강시혁이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소장이 물었다.
“지난번 장례식 때 굉장하던데요? 그런데 그 집은 이제 누가 사는 겁니까?”
“삼방그룹에서 영빈관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삼방 문화재단 소속으로 되었습니다.”
“흠. 재벌들이라 그런 게 필요하겠지. 삼성그룹도 승지원이 있으니까! 아무튼 그 큰 건물 관리하랴, 경비하랴 바쁘시겠습니다. 치안 문제는 걱정하지 마시고 가 보세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강시혁은 크게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고 파출소를 나왔다.
[소장 명함 받았으니 되었네. 업무일지에 쓰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