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재벌그룹 영빈관 (1)
(39)
저녁 6시가 넘어 강시혁은 저택의 모든 등을 소등했다.
그리고 모든 문도 다 잠갔다.
퇴근하기 위하여 6호선 녹사평 역으로 가고 있는데 원룸 주인아줌마의 전화를 받았다.
“이사를 간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나가게 된 거에요?”
“아, 예. 지방에 일자리가 생겨서요.”
“언제 이사를 할 예정이죠?”
강시혁은 이곳 일정과 맞추어보았다.
내일은 집기가 들어오고 모레는 렌트카 카니발을 인계받아야 하니 안 되고 일요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일요일은 삼방그룹은 물론 삼방 문화재단 직원들도 모두 쉴 거라고 생각했다.
“일요일 옮기겠습니다.”
“보증금 5백만 원은 다음 사람이 들어와야 내줍니다. 방은 부동산에 내 놓으세요. 아니면 내가 내놓을까?”
“제가 오늘 들어가면서 내놓죠.”
강시혁이 부동산에 들렸다가 집으로 왔다.
저녁에 버리고 갈 물건들을 골라내어 쓰레기봉투에 일일이 담았다. 그리고 집앞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에 내 놓았다.
출근 이틀째가 되었다.
강시혁은 아침을 대충 먹고 집을 나왔다.
어제 자기가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남루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강시혁이 버린 잡동사니 물건을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자기보다도 더 못사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동빙고동 영빈관에 도착했다.
강시혁은 모든 문을 열고 집안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 어제 보안업체 부장에게 배운 CCTV 모니터를 작동해 보고 전자 자동장치를 시험해 보았다. 분전함이나 배전함 뚜껑도 열어보고 두꺼비 집도 살펴보았다.
오전 10시가 넘어 큐레이터 신종화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집기 들어가니 자리 비우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저도 갈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리고 대문은 열어놓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확실히 큐레이터 신종화의 말투는 부하직원을 대하듯이 했다.
나이는 강시혁이 신종화보다도 조금 많은 것 같았지만 끽소리 못하고 예, 예 하였다.
10시가 넘어 신종화가 기아K7을 타고 왔다.
혼자 오지 않고 20대 여성과 같이 왔다. 이 여성은 인턴사원인 것 같았다.
신종화가 인턴사원에게 강시혁을 소개했다.
“이 분이 여기 영빈관을 관리하는 강 반장님이셔.”
[강 반장?]
신종화는 그동안 강시혁을 강 기사라고 부르더니 오늘은 강 반장으로 불렀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사원이나 공무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반장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많은데 어디서 그걸 들은 모양이었다.
[기사에서 반장이 되었네. 그럼 내가 조금 올라간 건가?]
그러면서 강시혁은 쓴 웃음을 지었다.
가구를 실은 트럭이 왔다.
신종화가 가구를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가구를 놓을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들어온 가구는 회의용 탁자와 의자, 그리고 소파 같은 것들이었다.
가구는 상당히 엔틱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역시 큐레이터는 이런 방면에 안목이 있었다.
강시혁이 아부하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큐레이터님 물건 고르는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이 집과 가구들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뇨. 내가 안 골랐어요. 관장님이 골랐어요.”
그러면서 새로 들여 논 고급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관장이라면 유명 미술대학 학장을 지냈다는 사람이었다.
강시혁도 인사를 드렸던 사람이다. 역시 미대 학장이나 되니까 이런 엔틱 가구를 고르는구나 하였다.
가구를 가져온 사람이 큐레이터 신종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장님! 이 스탠드 조명등은 어디다 놓을까요?”
“저쪽 구석에 설치하세요.”
가구를 가져온 사람들은 신종화를 아예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강시혁과 인턴은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책상은 어디에 놓을까요? 그런데 책상을 왜 이런 싸구려를 사셨어요? 여기에 있는 집기랑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네요.”
“아, 그건 지하로 가져가세요. 여기 반장님이 사용할 책상이에요.”
그러자 집기를 가져온 사람들이 강시혁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제기랄! 신종화는 사장이고 나는 반장이네!]
강시혁은 집기를 나르는 사람들과 함께 책상과 의자를 가지고 지하 관리실로 내려갔다.
집기를 나르는 사람들이 책상을 설치하고 의자의 비닐커버를 벗겨냈다.
강시혁이 의자에 앉아보았다. 그리고 한 바퀴 돌아보았다.
[좋군!]
의자는 아연테크 근무할 때보다도 더 좋은 것 같았다.
그래도 책상과 의자가 생기니 한결 기분이 좋았다. 자기의 작업공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씨팔, 여기 앉아서 몰래 공무원 공부를 해볼까? 지하실이라 소리도 들리지 않고 좋네. 행시에 한번 도전해 볼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뭔가 될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강시혁이 다시 거실로 왔다.
거실은 옆에 붙은 방을 터버려 굉장히 넓어졌다.
여기에 조명을 은은하게 하고 신종화가 가져온 각종 소품을 배치하니 정말 공간이 살아났다. 대통령이 와서 담화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신종화는 차를 끓이는 도구와 도자기 찻잔 같은 것도 가져와 비치했다.
신종화와 인턴이 찻잔을 장식장에 넣고 강시혁은 가져온 물건 포장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인턴이 말했다.
“강 반장님 전화가 울리는 것 같네요.”
강시혁이 전화를 받았다.
“렌트카 회사입니다. 지금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용산 녹사평역에서 몬드리안 호텔 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제가 나가 있겠습니다.”
렌트카 회사 직원이 끌고 온 카니발 승합차가 왔다.
강시혁이 차를 보니 중고차지만 거의 새 차나 다름없었다. 아직 주행키로 4만 5천키로 밖에 안 된 차였다.
차를 점검해보고 키를 받았다.
[히히. 이게 내 차란 말이지?]
강시혁은 자기 전용차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시동을 걸어보니 엔진소리도 부드러웠다. 그동안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에서 몰던 털털거리던 스타렉스와는 비교도 안 되었다.
그래서 강시혁은 입이 벌어졌다.
강시혁은 바로 직속 상관격인 설운동 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강시혁입니다. 렌트카 카니발이 도착했습니다. 키를 받고 차량 점검결과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요? 앞으로 자동차 주유비나 각종 소모품비는 영수증을 모았다가 일주일 단위로 나에게 보내주세요. 정산을 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의 임창영 과장님은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내가 일일 업무보고 양식을 이메일로 보내주겠습니다. 그것 작성해 매일아침 출근과 동시에 나에게 보내줘야 합니다.”
[뭐라고? 일일 업무보고 양식? 이 사람들이 나를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말이네. 거참 더럽게 되었네. 그런데 여긴 인터넷 회선이 어떻게 된 거야? 공유기를 내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강시혁은 컴퓨터가 없다. 난감했다.
“저, 대리님. 그런데 문화재단에 안 쓰는 컴퓨터 없습니까? 여기에 한 대 설치해야 되겠네요.”
“아, 컴퓨터하고 프린트기도 갈 겁니다. 내가 지금 바빠서 그러니까 시간 있을 때 한번 카니발 가지고 여기 왔다가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큐레이터 신종화가 간다고 하였다.
“저기 접견실 벽에는 그림을 걸 겁니다. 승합차도 들어왔으니 그림 가지러 한번 문화재단에 오세요.”
“예. 그렇지 않아도 컴퓨터 때문에 한번 들리겠습니다.”
“아, 참. 내가 강 반장님 명함을 가져왔는데 깜박했네요.”
그러면서 자기 차에 가서 강시혁의 명함을 가져왔다.
강시혁은 새 명함을 받아들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명함에 반장 강시혁이라고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불안했다.
다행이 명함에는 반장이란 것은 없었다. 명함은 이렇게 되어있었다.
[삼방 문화재단 사무국 강시혁]
직급은 없었고 단지 회사 주소가 인사동이 아닌 동빙고동 주소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주소 옆에 문화재단 별관이란 문구가 있었다.
명함은 영빈관이라고 하지 않고 문화재단 별관으로 표기한 것이다.
저녁때가 되었다.
이제 퇴근하여 수유리로 가야하는데 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아직 수유리 원룸의 짐을 이곳으로 못 옮겨 가야했다.
다음날 강시혁은 출근과 동시에 을지로에 있는 삼방그룹 본사로 갔다.
우뚝 솟은 거대한 빌딩은 사람을 압도하고 남았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대기업 사원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각층별 입주해 있는 회사의 명판이 붙어있었다.
삼방전자, 산방철강, 삼방건설, 삼방화학..... 줄잡아 10여개 회사의 명판이 붙어있었다.
사원들은 목에 건 신분증을 찍고 들어갔다.
강시혁이 신분증이 없어 우물쭈물하였다.
수위가 다가왔다.
“어디를 가십니까?”
“12층 비서실을 가는데요.”
“비서실 누굴 만나러 갑니까?”
“임창영 과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저쪽에 있습니다.”
강시혁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6층과 9층에 한번 섰다. 내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6층과 9층에서 문이 열릴 때 넓은 사무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근무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다.
강시혁이 12층에서 내렸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 사무실은 경영기획실이란 팻말이 붙어있었다. 오른쪽이 비서실이었다.
경영기획실 문이 열려있어 안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목에 명찰을 건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여자 사원은 몇 사람 안 되고 전부 남자 사원들뿐이었다.
[문화재단은 여자들이 많고 여기는 남자들이 많네.]
강시혁은 경영기획실 직원들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이 사람들이 바로 삼방그룹의 직원들이 모두 가고 싶어 한다는 경영기획실 직원들인가? 그러고 보니 다들 똑똑해 보이네. 나 같은 찌질이는 없는 것 같네.]
[이 사람들이 모두 평균 연봉 7천만 원을 받는 사람들인가? 내 연봉이 3,360만원이라니 내 연봉의 두 배가 넘네. 정말 엿 같네.]
사원증을 목에 걸지도 않은 사람이 사무실을 기웃거리니까 지나가던 어떤 직원이 물었다.
“누굴 찾습니까?”
“비서실 임창정, 아니 임창영 과장을 찾습니다.”
“비서실은 건너편으로 가시면 됩니다.
건너편 비서실로 갔다.
그런데 여기는 의외로 조용했다. 경영기획실과 분위기가 달랐다.
이 근처 어딘가에 회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가 하였다.
[이영진 상무도 12층에 있지 않을까?]
입구의 의자에 앉아있던 여비서가 벌떡 일어났다.
아주 예쁘게 생긴 여성이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임창영 과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문화재단에서 왔습니다.”
“왼쪽 룸으로 가시면 됩니다.”
왼쪽 룸엔 파티션을 한 책상들이 있었고 몇 사람의 직원들이 있었다.
좀 젊어 보이는 직원에게 말했다.
“임창영 과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 분인데요.”
임창영 과장은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손님 접대용 테이블에 앉아 전화가 끝날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임창영 과장은 국제전화라도 하는지 영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발음이 아주 좋네. 미국 물을 좀 먹은 것 같군.]
전화가 끝나자 강시혁이 임창영 과장 앞으로 갔다.
임 과장은 강시혁보다 서너 살 많은 것 같았다. 깔끔하게 생긴 미남형이었다.
강시혁이 정중히 인사를 하며 말했다.
“임 과장님이시죠?”
“그렇습니다만.”
“이번에 문화재단에 새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동빙고동 영빈관에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를 하려던 참인데. 저쪽 테이블에 가서 앉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