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잡급직 채용 (1)
(36)
강시혁이 자기의 은행계좌를 열어보았다.
가장 크게 빠져나가는 돈은 역시 부채상환이었다. 다음으로 나가는 것이 원룸 방값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삼겹살 사먹는 것 이외에는 다른 곳에 헛돈을 쓰지 않아도 항상 생활은 빠듯했다.
“에효, 밤잠 못자고 눈 비벼가며 투잡 뛰어도 월 100만원 모으기가 정말 힘드네. 수십억씩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모았을까? 정말 북한식 용어로 요해가 안 되네.”
전기밥솥이 오래되어 바꾸려고 했는데 당분간 이것도 미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영진 상무님 댁의 금산 아줌마가 불러주어 부수입을 올려주었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이제 아무 연락도 없었다.
[금산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잘 계시냐고 한번 해볼까?]
전화를 하는 것은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한번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계속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금산 아줌마가 주방에서 음식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군.]
강시혁은 그러면서 캔 커피를 벌컥대고 마셨다. 커피는 잠을 쫓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캔을 신경질적으로 구부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금산 아줌마가 아닌 대전에 계신 엄마의 전화였다.
“요즘 통 전화가 없어서 전화 해봤어.”
“잘 있어요.”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리하지는 마라. 몸 망가지면 아무것도 못한다.”
“부모님 덕으로 몸뚱이 하나는 건강해요.”
“힘들면 대전 내려와라. 여기도 일자리는 많아. 너희 아버지 이야기 들으면 너 같은 30대는 얼마든지 직장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
“대전 안가요.”
“여기 대덕산업단지에서 사원 모집을 많이 한다더라. 집에서 출퇴근 하면 방값도 안 나가니까 네가 금방 일어설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여기서 참한 여자 만나면 되지 않겠니?”
“안가요.”
"원, 고집도!“
“여기서 성공할거예요.”
“에효, 알았다. 운전 조심하고 아버지한테도 전화 한번 해드려라.”
“알겠어요.”
강시혁은 괜히 눈물이 났다.
하지만 자기가 무얼 해야 성공을 할지 아무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몸에 열도 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잠을 설쳐서 그런 것 같았다.
사실은 요즘 강시혁은 잠을 잘 못자서 그런 가 가끔 방어운전 능력이 떨어진 것 같은 감이 들었다.
어제도 신호대기 앞에서 핸들을 잘못 꺾어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도 하였다.
하지만 먹고 살려면 오늘도 콜을 잡아야 했다.
강시혁은 지하철역 의자에 앉아서 콜을 잡으려고 열심히 로지 프로그램을 보았다.
“오늘은 정말 몸이 왜 이러지?”
강시혁이 이마를 집어보니 열이 많이 났다.
할수 없이 오늘은 대리운전을 포기하고 일찍 집엘 들어왔다.
방엔 냉기가 돌았다.
강시혁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몸살 감기약 한 알을 먹었다.
오늘은 대리 운전으로 돈을 못 벌어 우울했다. 이불속에 들어 누워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스타렉스를 몰고 어르신 송영서비스를 나갔다.
어르신을 부축하여 차를 태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강 기사님이시죠?”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상당히 밝은 목소리였다.
“예, 그렇습니다. 어디시죠?”
“삼방 갤러리의 신종화 큐레이터입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신종화 큐레이터는 지난번 동빙고동에서 짐을 나를 때 한번 보았던 여자였다.
그날 일한 인건비와 렌트비를 보내준 사람이기도 하였다.
“내일 오전에 삼방 문화재단 사무실로 오실 수 있습니까?”
“예? 사무실로요?”
“저희 사무국장님이 강 기사님을 뵙자고 합니다.”
“사무국장님이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이 보자고 한다니 별일이었다.
“와 보시면 됩니다. 내일 오전 11시 괜찮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가죠. 그런데 삼방 문화재단 사무실이 어디에 있습니까?”
“인사동에 있습니다. 사무실 위치는 문자 보내드리겠습니다.”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렌트카를 빌려서 오라는 것도 아니고 왜 오라는 거지? 그것도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이? 아무튼 가보면 알겠지.]
다음날 강시혁은 아침 일찍이 어르신 보호센터로 갔다.
어르신 몇 분을 수송하고 나머지 두 분은 동료 기사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인사동엘 갔다.
문화재단은 1층과 2층은 전시관이 있고 3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건물은 크지 않으나 디자인이 독특했다. 자가 건물인 것 같았다.
전시관엔 무슨 전시를 하는지 현수막도 걸려있었고 화환도 있었다.
먼저 큐레이터 신종화를 만났다.
신종화는 전시장에서 관람 온 몇 사람에게 전시품 설명을 하고 있었다.
강시혁은 밖에서 좀 기다렸다.
신종화가 설명이 끝나자 강시혁에게 왔다.
“국장님 만나셨어요?”
“지금 막 왔습니다.”
“그럼 같이 가시죠.”
신종화가 3층으로 안내했다.
사무실 입구에 동판 간판이 있었다. 삼방 문화재단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었다. 삼방그룹 마크도 그려져 있었다.
사무실 직원은 많지 않고 서너 사람밖에 없었다.
먼저 신종화가 국장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국장님! 오늘 뵙기로 한 강시혁 씨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국장은 까칠하게 생긴 4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강시혁이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국장이 고개를 들고 천천히 말했다.
“강시혁 씨?”
“예, 그렇습니다.”
“거기 앉아요.”
강시혁이 의자에 앉고 큐레이터 신종화는 밖으로 나갔다.
“부이사장님에게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이사장님요? 부이사장님이 누구십니까?”
국장이 강시혁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부이사장님 몰라요? 삼방그룹 이영진 상무님 말입니다.”
“아, 그 분요? 뵌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이사장님이라고 말씀하셔서 누군가 했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동빙고동 영빈관 지킴이로 일해 볼 생각 없으십니까?”
“예엣? 지킴이요?”
강시혁은 이 말에 흥분이 되었다.
고정된 일자리 제의가 들어왔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몸에서 화끈거리는 열기가 올라왔다.
“작고하신 할머님이 살고 계셨던 동빙고동 저택은 삼방그룹에서 영빈관으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삼방 갤러리의 미술품을 보관하는 장소로도 활용할 것입니다.”
“아, 예.... 그럼 지킴이는 주로 무슨 일을 합니까?“
“건물 청소도 하고 건물 관리도 하셔야 합니다. 혹시 전기기사 자격증은 없지요?”
“예, 전기기사 자격증은 없습니다,”
“그리고 미술품 수송도 해야 하고 마당의 잔디도 깎고 보일러 관리도 하고 비품 구매나 쓰레기 처리 같은 일도 합니다. 말하자면 미술품 수송요원 플러스 건물관리인입니다.”
힘든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강시혁이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빈관 일이라 때로는 손님이 오면 차를 끓여 내가는 일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그런 일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 문화재단은 삼방그룹 소속이지만 삼방의 계열사처럼 대우를 해줄 수 없습니다. 만약에 강시혁씨가 여기에 오시게 되면 삼방 문화재단 공무담당 잡급직이 됩니다. 정규직은 아닙니다.”
삼방 문화재단 잡급직이면 그래도 좋았다. 정규직이 아니면 어떠랴 싶었다.
어르신 주간보호센터나 대리기사 뛰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덜 위험하고 고정직이 아닌가.
또, 누가 어느 직장에 다니냐고 한다면 이제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삼방그룹 소속의 삼방 문화재단에 다닌다고 하면 폼도 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급여가 문제였다.
아무리 문화재단이 좋다고 하더라도 급여가 맞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급여는 얼마나 되냐고 물어볼까? 그러면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국장이 먼저 급여 이야기를 했다.
“급여는 삼방그룹 대졸 공채직원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삼방 문화재단 잡급직 급여는 월 280만원을 드립니다. 연봉으로 따지면 3,360만원입니다.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하므로 실 수령액은 이보다 조금 적을 겁니다.”
280만원이면 지금 투잡으로 벌어들이는 돈 보다는 적었다.
그런데 280만원 받고 영빈관 지킴이로 있다면 저녁 있는 삶은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80만원이면 자기가 아연테크 라는 중소기업 다닐 때와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아아, 그런데 280만원을 받는다면 저축은 힘들 것 같네.]
국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결혼은 하셨나요?”
“혼자 있습니다.“
이혼했다 소리는 못하고 혼자 있습니다 라는 답변을 했다.
이 말에 국장이 비로써 옅은 미소를 지었다.
“혼자라면 영빈관 지하에 방이 많으니까 하나 써도 됩니다. 야간에도 상주해 준다면 우리도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이 말에 강시혁은 눈을 크게 떴다.
해 볼만 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집 지하에서 생활한다면 원룸 임대료가 나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 정말입니까? 제가 지금 수유리에서 원룸생활 하는데 거기로 옮겨도 됩니까?”
“전에는 그 집 지하에 운전기사나 가정부들이 살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생활하신다면 전기와 수도를 공짜로 이용하니까 그런 점은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한번 열심히 일해 보겠습니다.”
“지금 운전직 일을 하신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여기에 오셔도 운전 일을 가끔 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운전도 하겠습니다.”
“차는 우리가 새 차를 사드리지는 않습니다. 오시게 되면 카니발이나 스타렉스같은 승합차를 장기 렌트해 드립니다. 매월 나가는 렌트 비용은 우리가 경비처리하면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일하시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우리에게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서류라면?“
“내일 모레까지 이 서류를 제출해 주세요.”
그러면서 국장은 A4 용지에 적은 것을 주었다.
읽어보니 이력서 한통, 주민등록 등본 한통, 가족관계 증명서 한통, 반명함판 사진 두 장,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앞뒤로 복사한 것, 그리고 최종학력증명서 등 이었다.
“아, 그리고 자격증 같은 것이 있으면 첨부해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A4용지를 접어 안 포켓에 넣었다.
국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삼방 문화재단 직원들과 인사하는 것은 채용이 확정된 후에 인사하는 것으로 합시다. 채용은 부이사장님 선까지는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우리 잘해봅시다.”
그러면서 국장이 손을 내밀었다. 국장은 얼굴만 까칠한 게 아니라 손도 까칠했다.
강시혁이 문화재단 건물을 나왔다.
강시혁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야호 라고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었다.
비록 삼방그룹의 대졸 공채 정규직원은 아니더라도 고정으로 월급을 받는 자리를 얻었으니 기분이 좋았다.
월급이 적은 것이 흠이지만 처음부터 배부를 수는 없었다.
열심히 일하다보면 또 좋은 기회가 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동빙고동 영빈관에서 일하다보면 아름다운 이영진 상무의 얼굴도 가끔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히히. 수유리 곰팡이 냄새나는 낡은 원룸에서 궁전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아!]
강시혁은 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깨를 들썩였다.
“한잔 해, 한잔 해, 한잔 해.
갈 때까지 달려보자 한 잔해.“
인사동에 나온 관광객들이 이런 강시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문신을 한 덩치 두 명의 남자가 지나가다가 한마디 했다.
“이 동네는 쥐약을 먹은 놈들이 많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