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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34화 (34/199)

34화 삼방그룹 문화재단 (2)

(34)

강시혁과 벤츠차 기사가 할머니가 쓰던 가구를 마당에 내놓았다.

한번 서로 불꽃 튀기는 대화를 하여서 그런지 말없이 일을 했다.

구식 장롱과 침대를 내놓고 나니 무거운 물건들은 없었다.

하지만 물건의 가지 수는 엄청 많았다. 주로 골동품 계통의 잡동사니 같은 것들이었다.

품목을 적어가던 문화재단 직원이 이영진 상무에게 말했다.

“상무님. 분재와 난초 화분은 좋은 것은 상무님 댁이나 회장님 댁으로 가져가시고 나머지는 여기에 그대로 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난 화분이 영빈관에 몇 개 정도는 있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알겠어요. 몇 개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 여기에 놓고 갈게요. 우리 집에 피아노가 있으니까 여기 2층에 있는 피아노도 그대로 놓고 갈게요.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면 이곳 데코레이션은 신종화 씨가 알아서 하세요.”

[신종화?]

강시혁은 문화재단에서 나왔다는 저 여자가 신종화라는 것을 알았다.

데코레이션을 알아서 하라는 것을 보니 아트 부분의 전문가인 모양이었다.

잠시 땀을 닦고 쉬고 있는데 주방에 있던 금산 아줌마가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왔다.

이영진 상무가 먼저 음료수를 집었고 다음에 문화재단의 신종화가 집었다.

금산 아줌마가 쟁반에 든 음료수를 들고 벤츠차 기사 앞으로 갔다.

“과장님도 한잔 하슈.”

“고맙소. 금산 댁.”

마지막으로 제일 쫄따구인 강시혁이 음료수의 잔을 들었다.

음료수는 시중에서 파는 음료수가 아니라 아줌마가 직접 제조를 한 것 같았다. 과일 향이 짙고 맛이 있었다.

일을 하고 갈증이 나던 차에 마셔서 그런지 더욱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그런데 벤츠차 기사는 강시혁과 저만치 떨어진데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조금 전에 강시혁이 어디 아프냐고 한 말에 상처를 받아서 꿍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강시혁은 저 인간의 자기에 대한 적개심을 풀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벤츠차 기사는 출퇴근때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다니는 사람이다. 괜히 차 안에서 이영진 상무에게 자기에 대한 악담이나 한다면 자기가 여기에 못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인간이 이영진 상무를 모시고 운전하고 가다가 나에 대해 험담이나 한다면 안 되겠지. 틀림없이 내가 한 말에 앙심을 품고 고추 가루를 뿌릴 거야.]

[그럼 안 되지. 조금 있다가 접근해서 살살 달래줘야겠군. 내가 이영진 상무 주변에 있는 인간들에게 척 잡히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금산 아줌마가 빈 음료수 잔을 걷어 가지고 주방으로 갔다.

이영진 상무도 문화재단 직원과 함께 대화를 하며 거실 쪽으로 갔다.

마당의 정원석 위에 앉아있던 벤츠차 기사에게 강시혁이 다가갔다.

“저..... 회사의 과장님이세요?”

“그렇소.”

이 사람은 이영진 상무를 모시는 과장급 대우를 받는 기사인 것 같았다.

하긴 회장 차 기사는 이사급 대우를 받는다고 산정호수에서 모였던 기사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강시혁이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예엣? 저, 정말로 과장님이십니까?”

벤츠차 기사는 흥! 하는 표정을 짓고 무게만 잡았다.

“저는 용역회사에서 오신 분인 줄 알았습니다. 회사의 과장님인줄도 모르고 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흥!”

사실 벤츠 차 기사는 과장급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지 진짜 과장은 아니었다. 부하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기사님이라고 누가 부르는 것보다 과장님 하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가서도 자기 자식들한테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빠가 회사에서 젊은 여자 상무를 모시고 다니는 운전기사가 아니라 과장이라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삼방그룹은 대졸사원들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과장님이시라니 제가 몰랐습니다. 삼방그룹에서 과장 달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던데”

“뭐, 오래 근무하다가 보니 그런 것이지....”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요? 마흔 아홉이요.”

“예엣? 정말입니까? 젊어 뵈는데.“

이번에도 강시혁이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이요. 마흔아홉이요.”

“아이고, 아이고. 제 삼촌뻘인데 제가 정말 실수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뭐,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면서 벤츠차 기사는 자기 목을 쓱쓱 문지르며 무게를 잡았다. 슬슬 싫지 않은 표정이 나왔다.

벤츠차 기사가 일어서며 말했다.

“자, 이제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하러 갑시다. 지하실에 있는 물건 끄집어내지 못한 것이 몇 개 있어요.”

“아, 과장님은 여기 계세요. 제가 다 할게요.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아, 뭐. 같이 해야지. 아직은 나도 힘이 있어.”

둘이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쓰지 않는 양탄자나 병풍, 그리고 돗자리 같은 것들이 있었다.

벤츠차 기사가 물었다.

“이봐, 이름이 뭐라고 했지?”

“강시혁입니다. 헤헤.”

“대리 운전을 한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제가 과장님을 전에 산정호수에서 한번 뵈었죠.”

“흠. 나도 기억이 나는 것 같아. 난 당신이 그때 서초동 법무법인의 기사인줄 알았어. 변호사들을 태우고 왔잖아?“

“헤헤. 가지고 왔던 제너시스가 ’허‘자 번호판이 붙은 렌트카인데요 뭘.“

“요즘 법인에서도 차를 안 사고 렌트카를 장기 임대하는 곳도 많지. 그런데 대리 뛰어 한 달에 얼마를 버나?”

강시혁은 이제 벤츠차 기사가 화를 풀고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기랄, 이 인간 비위 맞추기도 힘드네. 하지만 어쩔 건가. 나도 비위 맞춰가며 살아야 하지 않겠어? 잘해서 이 인간 추천으로 계열사 사장 운전기사가 될지 또 모르는 일이 아닌가?]

“대리 수입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잘 버는 사람은 많이 벌지만 저는 한 달에 250내지 300 정도를 가져갑니다.”

“많지는 않군.”

“그래서 낮에 파트타임 일도 합니다.”

“그런가?”

“사실 운전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야간에 진상 손님도 많고 또 길도 잘 모르고 차종도 다 달라 항상 위험을 안고 사는 게 우리입니다.”

“말 들어보니 그런 것 같군.”

“그래도 어쩝니까? 먹고 살려면 해야죠.”

“지난번 장례식 때 보니까 주차실력은 있는 것 같더군. 스타렉스 가져온걸 보니까 1종 면허는 가지고 있겠군.”

“이래 뵈도 경차에서 외제차는 물론 트럭까지 다 운전해 보았습니다. 스틱 운전도 잘 합니다. 군에 있을 때 수송부에 있었거든요.”

“수송부? 어디에서 근무했나?”

“저는 가평 현리에서 있었습니다. 수동식 트럭 몰고 포천, 가평, 철원, 안 다닌 데가 없습니다.”

“가평 현리라면?”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에 있었습니다. 수송부에 있었습니다.”

벤츠차 기사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으래? 나도 맹호부대 출신이네!”

월남전 참전으로 유명한 맹호부대가 바로 수도 기계화 보병사단이다.

강시혁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쇼로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진짜 놀랐다.

“예엣? 과장님도요?”

“반갑네! 이 사람아!”

그러면서 악수를 청했다.

강시혁이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올리며 크게 외쳐다.

“까마득한 선배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충성! 조국이 부르면 맹호는 간다!”

“이, 이 사람아! 왜 이러나!”

벤츠차 기사가 잡은 손을 흔들며 비로써 웃었다.

강시혁도 미소를 지었다.

[됐다. 이 인간은 이제 내 사람이 되었다!]

두 사람이 양탄자를 맞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이제 두 사람의 표정은 아주 밝아졌다. 금산 아줌마가 가져온 음료수를 마시기전에는 서로 뚱하고 말도 안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친해졌다.

지하실의 물건을 치우다보니 어느 방에서 부서진 드럼세트가 나왔다.

전자 드럼세트인 것 같았다.

이걸 보고 강시혁은 궁금했다.

[이 드럼을 누가 쳤을까? 설마 90세가 넘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친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혹시 이영진 상무가? 참하게 생긴 이영진 상무가 드럼을 칠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화성공장 구내식당으로 간 가정부 아줌마가 쳤을까?]

강시혁이 벤츠차 기사에게 물었다.

“선배님! 아니, 과장님! 이 드럼은 누가 친 겁니까?”

“회장님 아드님인 영남이가 친 거야. 개가 미국에 가기 전에 날마다 여기에 와서 드럼을 쳤어.”

“아드님이 계셨군요.”

“할머니가 시끄럽다고 야단치다가 회장님에게 이야기 했나봐. 하루는 회장님이 여기에 오셔서 저 드럼을 다 부셔버렸지.”

“에고, 아깝네요.”

“그리고 회장님이 영남이를 바로 유학 보냈지. 그게 잘 못된 거야.”

“왜 잘못 되요? 남들은 유학 못가서 안달인데.”

“음? 그, 그 이야기는 나중에 이야기 하세.”

그러면서 벤츠차 기사는 회장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피했다.

강시혁은 삼방그룹 오너 가문에 대한 정보는 금산 아줌마보다 이 벤츠차 기사가 더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언제 한번 이 벤츠차 기사와 소주라도 한 병 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러주지 않는다면 그런 기회도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자기를 자주 불러주도록 아부나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끄집어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강시혁은 오늘 이 집에 모인 5명이 이집 식탁에서 같이 식사하는 줄 알았다.

음식 잘하는 금산 아줌마가 기름기 잘잘 흐르는 흰 쌀밥을 준비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운하게도 이영진 상무는 가보겠다고 하였다.

문화재단에서 나온 신종화라는 사람에게 몇 마디 지시를 하였다.

“내가 체크한 것 그대로 짐을 옮겨주세요.”

“알겠습니다. 붉은 스티커가 붙은 짐은 상무님 댁으로 옮기고 푸른 스티커가 붙은 짐은 회장님 댁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차고에 있던 벤츠차가 대문 앞으로 나왔다.

강시혁의 군 선배라는 벤츠차 기사가 뒷문을 열었다. 이영진 상무가 금산 아줌마에게 말했다.

“아줌마! 나 먼저 갑니다.”

“예, 안녕히 가세요. 아가씨.”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잘 가시라고 정중히 허리 꺾어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벤츠차 기사에게도 인사를 하며 한마디 했다.

“과장님! 안녕히 가십시오. 언제 한번 만나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벤츠차 기사는 이 말에 기분이 좋은지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왼손을 올려 답례를 하였다.

강시혁은 천천히 움직이는 벤츠차 꽁무니를 향하여 또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였다.

아줌마가 문화재단 직원과 강시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끼리 밥 먹읍시다. 식탁으로 가요. 문화재단에서 오신분도 가요.”

“그럴까요?”

셋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

아줌마가 갓 지은 밥과 된장찌개를 내왔다. 이영진 상무 집에서 가지고 왔다는 반찬도 몇 가지 내놓았다.

문화재단 직원 신종화가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모님이 지어준 밥은 정말 맛있네요.”

강시혁이 이모라는 호칭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음마? 이 여자도 금산 아줌마에게 이모라고 부르네? 이 여자도 출세욕에 불타는 여자 같네!]

강시혁이 여자를 쳐다보았다.

옆얼굴이지만 코가 상당히 크고 인조 눈썹도 엄청 길었다.

얼굴은 성형수술을 한 것 같았다.

입술 립스틱도 정열적으로 붉게 칠했다. 미인 형이긴 하였다.

그런데 예술적 감각이 있는지 귀걸이나 목걸이 같은 것이 비싼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특이해 보였다.

강시혁은 이렇게 생긴 요란한 여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동양적 자연 미인형인 이영진 상무 같은 형이 좋았다.

하지만 이영진 상무는 신분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먼 곳의 사람이었다.

금산 아줌마도 이 여자를 잘 아는지 굴비 구운 것을 밀어주며 말했다.

“신종화 씨도 많이 들어요. 요즘 점점 예뻐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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