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삼방그룹 문화재단 (1)
(33)
이영진 상무가 서류를 만지며 말했다.
“아빠, 이 서류 제가 좀 봐도 되죠? 금산 아줌마가 큰 일이 있을 때 부른다면 저도 참고를 해야죠.”
“전과 기록은 없는 사람이니 금산 댁이 불러 써도 괜찮겠지. 하지만 이제 그놈을 금산 댁이 부를만한 큰일이 있겠냐?”
“금산 아줌마는 그 사람이 고향 이웃사람이라고 특별히 정이 가는 것 같았어요. 여자 혼자 하기가 벅찬 일이 있으면 또 부를 수도 있겠죠.”
“금산과 대전이 이웃이기는 하지.”
이영진 상무가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회장이 이 모습을 보고 말했다.
“서서 보지 말고 앉아서 봐라.”
“네.”
이영진 상무가 회장실에 있는 회의용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서류를 봤다.
“K대학을 나온 사람이네요. 전과기록은 없는 것 같네요.”
“그렇다. 낮에 어르신 보호센터에서 수송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기사를 하는 놈이니 못돼먹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웬만해서는 부르지 마라. 남자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회사의 김 기사에게 부탁해서 하도록 해라.”
“네, 그렇게 할게요.”
회장은 서류를 보고 있는 이영진 상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귀여운 법이니까 이미 결혼한 딸자식이라도 귀여운 모양이었다.
딸이 서류를 보고 있는 데도 자기 말을 했다.
“동빙고동 할머님이 사시던 집은 문화재단에 기부형식으로 하려고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사회적 평판이 좋아질 수 있지 않겠니?”
이영진 상무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하찮은 대리기사의 신원조회라 더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 했다. 회장의 말에 더 관심을 갖는 듯 했다.
“문화 재단이라면 우리의 삼방 문화재단 말씀인가요?”
“그렇다. 그 집이 내 명의로 되어있는데 삼방 문화재단으로 명의를 바꾸려고 한다. 세금도 떠넘기고 사회적 이미지 제고도 되고 좋지 않겠냐?”
“그 집은 동생 영남이에게 주기로 하시지 않았나요?”
“그놈이 그런 저택은 무서워서 싫다고 한다. 이태원에서 가까운 고급아파트에 살겠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음악에만 미쳐서 돌아가는 놈에게 나도 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파트가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그리고 그 집은 명의만 삼방 문화재단으로 가는 것이지. 우리가 영빈관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면 그 집을 삼방 문화재단 소속인 삼방 갤러리의 미술품을 보관도 하고 영빈관으로 이용하는 장소로 하면 어때요?”
“미술품을?”
“지난번 인사동에 있는 삼방 갤러리의 큐레이터들이 미술품 보관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건 용인에 있지 않냐?”
“거기에 보관할 미술품이 있고 가까운 곳에 보관할 미술품이 있답니다.”
“흠, 그래?”
“아빠, 동빙고동은 지하에 방도 많아요. 지하에 제습기나 설치하고 보관하면 소품 종류는 많이 보관할 수 있을 거예요. 또 영빈관으로 쓴다면 벽에 유명화가들 그림이 있다면 더 고급스러워 보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기는 하겠지만.......”
“아빠, 영빈관은 날마다 손님을 접대하지는 않잖아요. 삼방 갤러리에서도 활용하게 해 주세요. 어차피 삼방 갤러리도 삼방 문화재단 소속이잖아요.”
“한번 생각해보자.”
이영진 상무가 다시 테이블 위에 있던 강시혁의 신원조회 보고서를 보며 말했다.
“아빠, 그럼 이 사람은 금산 아줌마가 필요할 때 불러도 괜찮겠지요?”
“전과도 없고 성실한 놈 같으니 불러도 되겠지. 하지만 네가 사는 이태원집의 집안에는 들이지 마라. 마당까지는 괜찮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겠어요. 아빠.”
다음날 강시혁이 어르신을 모시고 보호센터로 오자 복지사가 불렀다.
“강 기사님 이거 드세요.”
“웬 박카스는?”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어르신 자제분이 한 박스 가져왔어요.”
“고맙습니다.”
“강 기사님 재직자 내일배움 카드 안 만들었죠?“
“아, 그것 아직 안 만들었는데요?”
“만들어놓으세요. 자격증 딸 때 혜택 받으니까요.”
강시혁은 가급적 이 여자를 안 보려고 했는데 박카스까지 주며 자꾸 말을 걸어오니 귀찮았다.
[이 여자가 박카스를 주며 정말 말이 많네.]
“나중에 만들죠.”
“나중에, 나중에, 하면 늦는답니다. 저는 복지사 1급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 제 친구들은 아직도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 2급도 못 딴 애들이 있습니다.”
“뭐, 언젠가 저도 따겠죠. 박카스 잘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얼른 도망치듯이 나와 스타렉스 차에 올라갔다.
그래도 이 고물 스타렉스 차에 올라오면 마음이 편했다. 이 스타렉스 운전석은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수송까지는 텀이 있어 여기에 앉아서 인터넷을 보았다.
뉴스에 삼방관련 소식이 있어 클릭해 보았다.
사실 삼방그룹과 지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데 이상하게 삼방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갔다.
[삼방그룹은 고 창업회장 미망인의 별세에 따라 살던 주택을 삼방 문화재단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이날 삼방그룹의 이건용 회장은 별세한 모친의 유언에 따라 동빙고동 저택을 문화재단 소유로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용도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문화재단에 일임한다고 밝혔다.
동빙고동에 있는 저택은 대지 300평에 건평 120평으로 시가 300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뭐? 동빙고동에 있는 집을 문화재단에 넘겨? 삼방그룹에 문화재단이란 것이 있었나? 그럼 문화재단 소유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문화재단에서 팔아서 문화사업에 쓰는 건가?”
강시혁은 동빙고동의 집이 문화재단의 운영 경비를 위하여 기증 후 파는 것으로 알았다.
자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던 웅장한 집이었는데 판다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집을 누가 살까? 아마 다른 재벌 회장님이나 톱스타가 사겠지. 이태원에는 SK그룹 회장님과 배우 송중기가 산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나 사겠지. 아니면 외국 어느 나라의 대사관으로 활용하겠지.”
강시혁은 슬슬 졸음이 왔다. 언제나 수면부족에 시달려 그런 것 같았다.
비몽사몽간에 전화 벨이 울렸다.
금산 아줌마의 전화였다.
강시혁은 자기 스마트 폰에 금산 아줌마 전화번호를 금산 이모님으로 입력하여 저장을 해 놓았었다.
강시혁이 여보세요 라고 묻지도 않고 바로 이모님이라고 먼저 불렀다.
“아, 이모님!“
“삼촌? 지금 전화해도 돼?”
“괜찮습니다. 지금 운전 안합니다.”
“일요일은 쉰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일요일은 시간 널널합니다.”
“일요일 아침에 동빙고동으로 와줄 수 있겠나?”
“가죠. 돈 버는 일인데요! 이번엔 무슨 차를 빌려가지고 갈까요?”
“큰 차가 필요할 것 같은데...... 봉고차 같은 것 없나?”
“봉고차요? 트럭 봉고 말입니까?”
“트럭은 아니고 10사람 정도가 타는 차가 있잖아.”
“아, 스타렉스 가지고 가면 되겠네요.”
“그, 그렇지. 스타 뭐라는 것 가지고 오면 되겠네.”
강시혁은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스타렉스라면 어르신 보호센터 차를 몰래 이용하면 될 것도 같았다. 그럼 잘하면 자기가 렌트카 비용을 그대로 꿀꺽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 두었다.
[혹시라도 보호센터에서 알면 좋을 게 없겠지. 더군다나 스타렉스 빌리는 렌트카는 렌트 회사의 영수증을 줘야하는데 그걸 못하니 안 되겠지.]
강시혁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님! 그 차는 렌트비가 정확히는 몰라도 12만원에서 15만원은 줘야 할 겁니다.”
“그런 것 걱정하지 말고 와요.”
“그런데 벌써 그 집이 팔렸나요? 뉴스엔 문화재단에 기증했다고 들었는데.”
“미술품을 보관하고 영빈관으로 쓴다는 말이 있어.”
“영빈관요?”
“나도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나봐.”
“짐은 어디로 옮기는 건가요? 이사짐 센터 직원들의 손이 모자라니 저를 부르는 것 같은데.”
“혼자만 알고 있어. 이삿짐센터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재벌 집들은 집안에 사람 들이는 걸 꺼려해. 그래서 한번 여기에 왔었던 삼촌을 부르는 거야. 마당까지 물건 내는 일은 우리가 해야 돼.”
“아, 그렇군요. 몇 시까지 가면 되겠습니까?”
“면장갑이나 슈퍼에서 사가지고 오전 10시까지 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시급을 잘 쳐줄게. 그런데 이번에 시급은 문화재단에서 챙겨줄 거야.”
“문화재단요? 저야 돈만 받으면 되니까 어디서 주던 상관없습니다.”
“여기에 있던 아줌마가 벌써 화성공장 구내식당으로 가버려서 지금 나 혼자 있어. 그러니 늦지 않도록 와.”
“알겠습니다. 칼같이 가겠습니다. 충성!”
“호호, 나 전화 끊을게!”
전화를 끊고 나니 바로 또 전화가 왔다.
“시혁이냐? 나다.”
“예? 누구신지요?”
“이 자식이 내 목소리도 잊었나? 나 병학이야.”
“아, 병학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는 녀석인데 전화가 왔다. 무슨 식품회사에 다닌다는 녀석이었다.
“나, 이번 일요일 서울 올라가는데 너 얼굴 한번 보자.”
일요일은 동빙고동에 가는 날이다.
일요일에 만나자니 당황스러웠다.
“어? 일요일? 나 일요일 어디 가는데. 다른 날 안 되나?”
“너 와이프하고 일요일 어디 가니? 교회 가냐? 너 예수 믿는구나! 예수 믿으면 그게 지랄이야. 교회가 몇 시에 끝나지?”
이 녀석은 강시혁이 심은혜와 헤어진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특근이 있어.”
“뭐? 특근? 너 회사에 다시 들어갔구나? 건대 앞에서 가게 하다가 말아먹고 논다더니 어디 들어갔구나. 개새끼! 능력은 좋네!”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너 자꾸 나를 피하려고 하는 것 보니 많이 변한 것 같다. 알았다. 전화 끊는다. 그런데 내가 좀 섭하다.”
“아니, 그, 그게 아니라니까!”
친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강시혁은 동빙고동에 가려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의리만 깨어지는 게 아닌 가 했다.
“에고, 할 수 없지. 영양가 없는 친구들 만나는 것보다는 돈 벌러 가야지. 내가 돈 떨어지면 누가 먹여 살려 주는 것도 아니지.”
강시혁은 일요일 동빙고동으로 갔다.
렌트카 회사에서 빌린 스타렉스를 몰고 갔다.
동빙고동 저택은 벌써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금산 아줌마 혼자 와 있는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영진 상무가 와 있었다. 벤츠차 기사와 서류봉투를 든 웬 젊은 여자도 함께 있었다.
강시혁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상무님!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차는 가져오셨죠?”
“큰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스타렉스를 가져왔습니다. 밖에 세워두었습니다.”
벤츠차 기사가 배를 쑥 내밀고 말했다.
“상무님이 지정하는 물건을 당신과 내가 마당으로 내오면 되는 거요. 그리고 작은 물건은 문화재단에서 나온 이 분이 도와줄 거요.”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옆에 있는 젊은 여자가 문화재단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는 상당히 도도해 보였다. 옷을 세련되게 입은 여자였다. 문화재단에서 일한다니 예술가 냄새가 나기는 하였다.
그런데 금산 아줌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벤츠차 기사에게 물었다.
“저, 금산 아줌마는 안 오셨습니까?”
“저기 주방에서 그릇 같은 것 꺼내고 있소.”
안에 있는 물건을 마당으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벤츠차 기사가 가끔 강시혁을 갈구었다.
“이 사람아! 균형을 맞춰야지 혼자 위로 들면 어떻게 해!”
“그건 깨지는 물건이니까 조심해서 들어!”
강시혁은 회사 직원도 아니고 재벌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도 아니다. 알바에 불과했다.
그런데 벤츠차 기사가 반말을 찍찍하며 부하직원 다루듯이 하는데는 기분이 나빴다.
[이 자식을 받아버리고 그냥 가버릴까?]
그러다가 그러면 이 집과의 인연이 끊어질까봐 벤츠차 기사에게 예, 예, 하면서 고분고분한 척을 했다. 그러니 더 잔소리가 심했다.
“당신 할머님 장례식 날 호루라기를 불었지? 옆에 다른 집들과 대사관도 있는데 그렇게 호루라기를 불면되나? 내가 자네에게 한마디 하려고 했었네.”
반말을 계속 하는 것이 기분 나빴다. 나이가 강시혁보다 훨씬 많지만 그래도 기분 나빴다. 꼭 술 처먹고 대리 운전기사를 부른 망나니 진상 손님 같았다.
짱을 한번 박아줄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시혁도 한마디 했다.
“아저씨! 아까부터 나한테 자꾸 반말을 하는데 어디 아파요?”
“뭐, 뭐라고?”
“괜히 젊은 놈한테 망신당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합시다.”
벤츠차 기사는 얼굴이 빨개지고 한참 강시혁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입맛을 쩍 다시며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강시혁이 젊은 사람이라 힘으로 하면 밀릴 것 같아서 그런 것도 같았다.
역시 사람은 강하게 나가니까 꼬리를 내리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금산 아줌마가 이 벤츠차 기사에게 많이 당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