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신원 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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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은 A4용지 두 장을 회장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허리를 굽힌 채 말했다.
“전과 기록은 없습니다. 단, 현재 신용불량자입니다.”
“신용불량자? 노름이나 마약을 하는 놈인 것 같군. 아니면 돈을 흥청망청 써서 채무 불이행에 빠진 놈이겠군.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그놈이 영어는 어디서 배운 거야?”
“고려대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 깊은 서울의 K대학 영문과를 나왔습니다.”
“뭐라고? K대학?”
“그렇습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닌 사람입니다.”
“그런 놈이 취업은 안하고 대리 운전을 해? 대학은 나왔지만 놀음이나 마약을 하며 신용불량자가 된 건달 같은 놈이 아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졸업 후 아연테크라는 작은 중소기업에 근무한 기록은 있습니다,”
“그으래?”
“아연테크는 이후 경영난으로 부도 처리되고 문을 닫은 회사입니다. 임금이 밀려 거기 사장이 형사입건 된 것을 보면 강시혁이라는 젊은이도 몇 달치 임금은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흠, 그래? 그래서 회사를 나와 건달이 되었나?”
“건달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그놈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지만 그놈이 이영진 상무에게 접근할까봐 그러네. 더군다나 지금은 가정부와 접촉하고 있지 않은가!”
“조사에 협조한 수사기관 관계자나 삼방산업 안전관리실장도 사기꾼이나 건달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흠, 그으래?”
“이 친구는 회사를 나와 그 후 은행권의 융자를 받아 건국대학교 앞에서 분식집을 했습니다."
"분식집?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은 했나?“
“성동 세무서에 조회한 결과 사업자 등록은 했습니다. 10평짜리 작은 가게인데 8개월 영업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아? 코로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것 같습니다. 또 자금도 넉넉하지 못하고 경험도 없는 사람이 자영업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행권에서 빌린 돈이 모두 빚이 되어버렸나?“
“그렇습니다. 아연테크에서도 임금이 밀리고 자영업도 망하자 빚만 늘었습니다. 폐업신고를 할 무렵 부인과 이혼을 한 사실도 있습니다.”
“결혼은 한 놈이었군.”
“아이는 없는 상태에서 이혼을 했고 빚은 신용회복위원회 조정으로 매월 갚아나가는 것으로 한 것 같습니다.”
“빚이 얼마나 되는데 그런가?”
“보고서에도 나와 있지만 최초 1억 정도였습니다.”
“많은 돈은 아니군.”
“그리고 많이 갚아나갔는지 현재는 8천 5백 정도가 남은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대리운전 수입으로 그렇게 갚은 건가?”
“투잡을 뛰는 것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투잡?”
“오전에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합니다. 그리고 밤에 대리 운전을 하는 사람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어르신 주간보호센터? 그건 뭘 하는 곳인가?”
“등급판정을 받은 장애 있는 어르신은 자녀들이 모시기가 힘듭니다. 자기들도 경제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주간에 보호를 하는 곳입니다.”
“흠, 그런 기관이 있었군.”
“강시혁은 여기에서 어르신 수송 일을 하고 월 100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100만원? 그것 밖에 안 되나?”
“파트타임으로 하는 일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야간에 대리를 뛰어 250만원에서 300만원을 버는 것 같습니다.”
“흠. 그으래? 나쁜 놈은 아닌 것 같군.”
“주간 보호센터에서 4대 보험을 넣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용보험 납부사실은 고용보험센터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부채도 매월 성실히 갚아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외로 성실한 놈인 것 같군. 전과기록은 없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폭력이나 마약이나 성범죄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회장이 비로써 미소를 지었다.
“살려고 애를 쓰는 놈인 것 같기는 하군. 장애가 있는 어르신 수송을 한다니 기특한 면도 있네. 잘 알았어. 수고했네.“
“서류는 가져갈까요?”
“아니, 여기 두고 나가보게.“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 회장실을 나갔다.
회장이 의자를 뒤로 눕히고 발을 꼬았다.
출상 전날 비를 흠뻑 맞으며 호루라기를 불던 강시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사는 놈이군. 금산 댁과 접촉한다면 눈감아 줘야겠어. 하지만 이제 집안에 큰일은 없으니 금산 댁도 다시 그놈을 부르지는 않겠지.]
그러면서 회장은 책상위에 놓인 신원조회 기록을 보았다.
대전에 살고 계신 강시혁의 부모님까지 조사한 기록도 있었다.
역시 삼방그룹 비서실의 조사능력은 경찰보다 나은 것 같았다.
막강한 인맥을 동원하여 단시일에 조사한 것을 보니 정말로 대단했다.
[부모가 다 살아있군. 재산이 2억 정도라니 평범한 소시민이군. 집이 없나?]
회장이 서류를 보니 부모는 대전시 둔산동 샘머리 1단지아파트 전세로 살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25평형 아파트다.
아버지는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사료공장에 다니다가 은퇴한 것으로 나와 있다. 현재는 시에서 주관하고 있는 하천 정비 공공 취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강시혁의 출입국 관리사무소 기록까지 있었다.
해외여행 사실은 없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런 것 까지 조사한 것을 보니 삼방그룹 비서실의 조사팀은 역시 대단했다.
[흠. 가정형편 때문에 해외 연수를 가지 못한 것 같군.]
강시혁에게 해외연수는 사치였다.
솔직히 말해 강시혁도 가고는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알바로 등록금 내기도 헉헉거리는 형편에 해외연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후배 변상철은 해외연수를 6개월 다녀왔지만 특별히 강시혁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회장이 반쯤 남은 구기자 차를 마시고 있는데 이영진 상무가 회장실로 왔다.
“아빠. 장명건설은 아무래도 삼방건설과 합병을 보류해야 할 것 같아요. 삼방건설 노조의 합병 반대가 심해서 그래요.”
“그건 나하고 상의하지 말고 장명건설 사장과 의논해라.”
“알겠어요....... 하지만 장명건설 인수대금을 삼방건설에서 나가니까 이번엔 관리직들이 동요를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그럴 테지. 네가 손해를 끼쳤으니 동요를 하겠지. 배임이라고 떠들지 않는 게 다행이다.”
“죄송해요. 아빠.”
“죄송할 것 없다. 이게 다 공부다. 삼방건설 사장에게는 내가 관리직 직원들을 설득하라고 했다. 장명건설 인수는 네가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고 정부의 압력으로 그렇게 했다고 말을 흘리라고 했다.”
“고마워요.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사셨던 동빙고동 주택은 팔지 않고 외빈 접대 장소로 활용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의 승지원(承志園)처럼 말이다.“
“승지원요? 이태원에 있는 한옥집 승지원 말입니까?”
“그렇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살던 곳인데 영빈관으로 쓰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활용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청소만 해두고 인테리어를 다시 하는 문제는 할머니 49제가 지나면 하겠다.”
“저도 어렸을 때 추억이 어려 있는 할머님 집은 매각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승지원처럼 활용한다니 저도 대환영이에요.”
“나는 너에게 기대가 많다. 네 동생이 저렇게 되어 믿을 사람이 너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놈이 미국 유학을 가서 약물에 젖어 올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
“요즘은 열심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어요.”
“홍 서방은 잘 하고 있지? 몇 달 전 비서실 보고에 의하면 키티(Kitty: 동물용 마취제 게타민)를 소지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일 없겠지?“
“그, 그런 일 없어요.“
“미국은 정부가 문제야. 청소년들이 졸업파티나 생일파티에 공공연히 마리화나나 전자담배를 접한다니 문제가 아닌가! 그것 무서워서 부모들이 어디 유학을 보내겠나?”
“일부만 그래요. 유학생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에요.”
“나도 젊었을 때 미국 유학을 했지만 그런 문화가 없었다. 일부 부랑아들이나 그랬는데 요즘은 버젓한 명문가의 자녀들도 그런 유혹에 빠져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건전한 유학생들도 많아요.”
“에효, 알았다. 가 보거라. 네가 미국서 명문 아이비리그 MBA를 나왔어도 실무에선 다른 게 많다. 계열사 사장들에게 잘 배우도록 해라. 특히 자금의 흐름을 주시해서 잘 보거라.”
“그렇게 하겠어요.“
이영진 상무가 나가려고 하다가 회장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보았다.
상단에 신원조회 결과보고서 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보이는 서류였다.
“혹시, 이것...... 금산 아줌마가 불렀던 대리기사의 신원조회예요?”
“그렇다.”
이영진 상무가 눈을 크게 떴다.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