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신원 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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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출상일이 되어 영구차가 도착했다.
직원들이 동원되어 관을 영구차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망자의 혼령이 오랫동안 살던 집을 못 잊어 하기 때문에 지내는 제사였다.
상주인 이건용 회장이 술잔을 따를 때 금산 아줌마가 강시혁을 툭 쳤다.
“삼촌! 우리는 장지(葬地)까지 안 따라 가도 돼. 장지에서 하는 행사는 모두 회사 사람들 하고 장례회사에서 하기로 했어.”
“오, 그래요?”
“사람들이 모두 가고나면 우린 여기를 정리해야 돼.”
“그래야겠군요. 쓰레기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삼촌이 좀 도와주고 가. 시급은 다 쳐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강시혁도 털털거리는 K3를 가지고 용인까지 따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영구차와 함께 모든 회사 차들이 빠져 나갔다.
계열사 사장들과 임원들은 모두 장지까지 따라가는 것 같았다.
회장 가족이 가니까 따라가지 않을 수도 없으리라. 마치 주군이 가는데 가신들이 따라가는 것과 같았다.
아줌마 세 명과 함께 강시혁이 넓은 집에 남았다.
아줌마들 중에 제일 언니격인 금산 아줌마가 말했다.
“우리 이제 마음 놓고 아침 먹자!”
강시혁을 포함한 네 명이 식탁에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밥에 구수한 찌개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좀 젊은 아줌마 한사람이 강시혁에게 말했다.
“우리 왕 언니 음식 솜씨가 어때요?”
“최곱니다. 죽여줍니다.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그러자 금산 아줌마는 기분이 좋은지 계란을 금방 부쳐 강시혁에게 주었다.
금산 아줌마가 젊은 아줌마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너도 이제 이 집에서 나가야되겠구나. 회장님 사모님이 자리 하나 마련해 주셨지?”
“삼방화학 화성공장 구내식당에서 일하게 됐어.”
“그래? 잘 되었네. 그런데 집이 멀어서 어떡해?”
“우린 애들 아빠랑 다 함께 화성으로 이사 가기로 했어. 구내식당 종업원이 아니고 식당을 아예 도급 맡았어.”
“그래? 그럼 사장이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배려를 해주었지. 이 집에서 일하면서 10년 동안 할머니 팔다리 주물러드렸으니 그 보상을 해준 거지.”
“이야. 너 사장되고 축하한다.”
밥을 먹으면서 강시혁이 혼자 생각했다.
[흠, 저 아줌마는 돌아가신 할머님 댁 가정부로 일하면서 구내식당 하나 먹었구나. 역시 식모를 하더라도 부잣집에서 해야 돼.]
[할머님 혼자 계셨으면 일도 많이 없었겠지. 그래서 남은 시간 할머니 팔다리 주물러드리고 말 상대 해주었더니 이런 횡재를 한 것 같네. 남편이랑 둘이 구내식당 운영하면 돈 좀 벌겠는데?
중소기업도 아니고 삼방그룹 계열사면 공장 인원만 해도 천명은 넘을 것이 아닌가? 제기랄, 나한테도 그런 기회가 찾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강시혁이 부러운 투로 말했다.
“할머님 댁 이모님은 이제 돈 많이 버시겠는데요? 거기 종업원만 해도 1천명은 넘을 것 아닙니까?”
“아녜요. 삼방화학은 울산 공장이 크고 화성공장은 그렇지 못한가 봐요. 듣기로는 600명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600명? 600명이면 한 사람당 식대를 5천 원씩만 잡아도 300만원이네. 일일 300만원 매출이면 얼마야? 내가 건대 앞에서 분식집 할 때는 코로나 때문에 30만원 벌기도 힘들었는데!
거기다가 직원들이 점심만 먹겠어? 야근 하는 놈들은 저녁도 먹을 것이 아닌가!]
강시혁은 정말 부러웠다.
일 매출 300만원이면 그까짓 자기 빚은 반년 만에 다 갚을 것 같기도 하였다.
금산 아줌마가 할머님 댁 가정부에게 말했다.
“이 집은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 못 들었지? 설마 팔지는 않겠지?”
“팔지는 않겠지. 재벌가에서 뭐가 아쉬워 팔겠어. 말 들으니 이런 집은 매물이 나오지도 않아서 사기도 힘들데.”
“하긴 이런 집은 누가 내놓지 않아서 사기도 힘들겠지.”
“언니! 내가 화성에 정착하면 전화할게. 한번 놀러와!”
“그래, 한번 놀러갈게. 그런데 나는 이제 늙어서 그런 구내식당 하나 거저 준다고 해도 못할 거야. 요즘 허리가 많이 아파.”
밥을 먹고 강시혁은 커피까지 잘 얻어먹었다.
역시 커피는 마당에 있는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것 보다는 아줌마가 타주는 커피가 더 맛이 있었다.
강시혁은 커피까지 마시고 트림까지 하고서는 아줌마들과 함께 이층으로 올라갔다.
우선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면서 방을 치웠다.
강시혁은 재벌 집을 처음 구경했다.
호기심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히야, 역시 방이 무척 크네. 내가 이런 집에서 가정부가 끓여주는 차나 마시며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가고도 남았겠다!“
방도 여러 개였다.
방에는 비싸게 보이는 그림과 고려청자 같은 골동품도 있었다.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고급 난초 화분도 있고 분재 화분도 있었다. 모두 탐나는 물건들이었다.
강시혁은 다음 생에는 자기도 이런 집을 사서 대전 둔산동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였다.
하지만 자기는 워낙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 시방 삼세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시혁은 지하에 있는 소규모 영화감상실도 보았고 벽장에 있는 많은 양주병도 보았다.
한 병 슬쩍하여 자기가 타고 온 기아K3 차에 싣고 갈 충동도 느꼈다. 하지만 손 하나 까닥 대지 않고 열심히 청소를 하였다.
마당 정리는 남아있던 회사 직원들이 했다.
직원들은 조화를 치우는 업체를 불러 조화를 치우게 했다. 또 자기들이 설치했던 천막도 걷어 차고에 갖다 놓았다. 커피 자판기도 떼어내 차고에 갖다놓았다.
이 집은 차고도 넓었다. 자동차 4대는 충분히 들어갈 공간이 있었다.
저녁때가 되었다.
금산 아줌마가 말했다.
“삼촌 수고 많이 했어.”
“아휴, 뭘요.”
“여기 계좌번호 좀 적어 줄래? 그룹 비서실에서 장례식 지원 나온 분들은 모두 시급 계산해 정산해 주기로 했어.“
강시혁은 속으로 오늘 현금으로 주었으면 더 좋을 텐데 하였다.
하지만 재벌 회사니까 꼭 시급만 계산해서 주지는 않겠지 하였다.
“렌트카 빌린 영수증은 이모님 드리고 갈게요.”
“알겠어. 내가 비서실 담당 직원이 오면 전달해 주지.”
이날 저녁 강시혁은 렌트카를 반납했다.
수유리 원룸으로 오니 이상하게 방이 좁아보였다. 아마 넓은 재벌 집에 있다가 오니 그런 것 같았다.
잔디를 심은 넓은 마당의 저택과 자기가 있는 낡은 연립 방 하나를 비교해 보았다.
지금 헬조선에서는 왜 이렇게 빈부차이가 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강시혁은 주간 보호센터 센터장에게 잔소리 좀 들었다.
코로나도 아닌 것 같은데 이틀간이나 결근한 거에 대한 잔소리였다.
“저, 제가 결근해도 동료인 김 기사님이 다 일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또 김 기사님이 무슨 일이 있어 안 나오시면 제가 또 다 해드립니다.”
“그건 알겠는데 어르신들이 당신만 찾아서 그런 거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강시혁이 어르신 두 분을 모시고 센터로 오는데 알람이 울렸다.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는 알람이었다.
통장을 확인해보니 삼방그룹 비서실에서 120만원이나 들어왔다.
강시혁은 렌트카 빌린 비용까지 합하여 한 100만 원 정도가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120만원이나 들어와 기분이 째졌다.
돈이 들어 온지 2시간 정도 지나서 삼방그룹에서 전화가 왔다.
“강시혁 씨입니까? 여기는 삼방그룹 비서실입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좀 전에 이틀 일하신 수고비는 보냈는데 잘 받으셨는지요?”
“예, 잘 받았습니다. 너무 과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120만원을 지출하면 세무신고를 위해 원천징수를 해야 합니다. 미안하지만 주민등록 번호와 주소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래서 강시혁이 자기 주민등록 번호와 주소를 불러주었다.
직원이 주민 등록번호와 주소가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주소는 주민등록상 주소와 같은 거죠?”
“예, 같습니다.”
“세금은 우리가 대납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시혁은 직원의 전화가 세금보다는 강시혁의 신원을 조회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몰랐다.
비서실에서 렌트카 회사를 통하여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지만 맞나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례식을 치룬지 사흘이 지났다.
돌아가신 할머니 삼우제도 지나고 삼방그룹 비서실장이 서류 하나를 들고 회장 방으로 갔다.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은 구기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회장님. 장례식 때 호루라기를 불던 강시혁이란 젊은이의 신원조회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 그래? 어떻게 나왔나? 전과 기록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