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신원 조회 (1)
(30)
외국인 대사가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고인의 영정이 있는 제단 앞에서 국화꽃을 올리고 고개 숙여 묵념을 하였다. 그리고 상주들과 인사를 하였다.
상주는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과 아들과 딸이었다.
딸은 이영진 상무였고 아들은 몸이 약한지 정상이 아닌듯했다.
이건용 회장이 외국 대사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우중에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옆방으로 가시죠. 카나다 대사와 암참(Amcham: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도 와 계십니다. 입구에 차량이 많아 들어오실 때 힘들었죠?”
“아닙니다. 직원이 대리 주차도 해주고 우산도 받쳐주어 고마웠습니다. 더구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배치해 역시 삼방그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마땅히 해야죠.”
밤 1시가 되어 문상객이 끊어졌는지 밖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외국 대사들도 귀가하고 방에는 계열사 사장들과 임원, 그리고 이건용 회장 친구들이 남아있었다. 친구들 중에서는 국회의원 몇 사람과 은행장과 다른 재벌사 총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밤을 새울 모양이었다.
국회의원 한사람이 말했다.
“이봐 이건용 회장! 혹시 화투 없나? 우리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모였으니 화투 한번 쳐야지.”
이들은 50대 후반의 나이라 스마트 폰 게임을 즐겨보는 세대들이 아니었다.
이른바 고스톱 세대들이었다. 그래서 화투가 생각난 것이다.
하긴 킬링타임 하는 데는 화투만한 것이 없었다. 또 혹시 돈이라도 딴다면 기분이 째지는 것이다.
계열사 사장 한 사람이 거실로 내려왔다.
"이봐, 총무이사! 화투 있나?“
“예, 있습니다.”
“한 벌 뿐인가? 몇 벌 없나?”
“이 근처 편의점이 화투가 없는 것 같네요.”
마침 주방에 들어와 대추를 믹서에 갈고 있던 강시혁이 말했다.
“제가 화투 몇 벌을 사온 것이 있습니다.”
“오, 그래요? 우리가 쓰도록 하죠. 얼마 드리면 되겠습니까?“
“모두 4벌입니다. 한 벌 당 5천 원씩 샀습니다.”
총무이사가 5만 원짜리 한 장을 강시혁에게 주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하하, 그냥 쓰세요.”
“그냥요? 고맙습니다.”
사장과 총무이사가 동시에 고맙다고 말했다.
강시혁이 삼방그룹 직원이면 반말을 찍찍 할 텐데 외부인이라 사장과 총무이사는 존댓말을 썼다.
각 방에서 고스톱을 쳤다.
큰 소리로 고도리, 설사, 피박 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다.
고스톱이 절정에 이른 것 같았다. 계열사 사장 한사람이 거실로 내려왔다.
“어이, 김 이사. 그리고 오 상무! 혹시 만 원짜리 지폐 없나? 사장님과 국회의원들이 점당 만 원짜리 고스톱을 치기 때문에 만원짜리 돈이 좀 필요할 것 같네. 전부 카드를 가지고 다니거나 5만 원짜리를 가지고 다녀 만 원짜리는 별로 없는 모양이네.”
“제, 제 지갑에 만 원짜리 10장이 있습니다.”
“그거 가지고 안돼. 밖에 나가 마당에 있는 직원들에게 만 원짜리가 있으면 걷어와 봐. 이 시각에 은행을 갈수도 없으니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강시혁은 낮에 만 원짜리를 은행에서 뽑아 온 것이 있었다.
자그마치 빳빳한 만 원짜리가 150장이나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돈을 꺼낼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입 다물고 대추만 갈았다.
계열사 사장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가고 총무이사는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제기럴,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총무이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강시혁은 빙긋 웃었다.
한참 후 총무이사가 들어오고 계열사 사장 한 사람도 1층 거실로 내려왔다.
“어떻게 됐어? 만 원짜리 좀 구했나?”
“40장 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만 원짜리 40장을 내밀었다.
“더 있어야 할 텐데..... 각방에 30장 정도는 드려야 할 텐데.”
정말 각 방에서 고스톱을 친다면 만 원짜리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서민들은 점당 백 원이나 천 원짜리를 치지만 사장님들은 만 원짜리를 쳤다.
점당 만 원짜리도 밤새도록 치면 많은 돈을 잃을 수도 있다.
만 원짜리가 없다고 점당 5만 원짜리 고스톱을 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킬링타임이 아니라 진짜 판이 커지고 엄청 큰 놀음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화투는 돈이 왔다 갔다 해야 재미가 있다. 그게 없으면 재미가 없다.
만 원짜리가 부족해 모두 입맛만 다셨다.
이때 강시혁이 슬며시 일어났다.
“마침 제가 시장 보려고 만 원짜리를 바꾸어 온 것이 있습니다.”
“오, 그래요? 몇 장이나 있습니까?”
“150장 있습니다.”
“오, 150장요?”
총무이사가 사장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 분이 만 원짜리 150장을 가지고 있답니다. 150장이면 각 방에 30장씩 나누어줘도 되겠네요.”
사장이 강시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그것 우리에게 주쇼.”
“내일 장 볼 때 잔돈이 없으면 불편할 텐데.......”
“고스톱 끝나면 일부 회수해 반납해 드리죠.”
“알겠습니다. 그럼 5만 원짜리 주세요. 바꾸어드리죠.”
총무이사가 봉투에 든 5만 원짜리 30장을 강시혁에게 주었다.
강시혁이 돈을 확인하고 봉투에 든 만 원짜리를 주었다.
사장과 총무이사가 강시혁을 쳐다보며 동시에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장이 만 원짜리 150장이 든 봉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사장이 봉투에 든 빳빳한 만 원짜리를 내밀자 이건용 회장의 친구들이 좋아했다.
“와, 이제 되었네. 삼방그룹 직원들이 역시 준비성 하나는 최고야. 엘리트 사원들은 달라도 뭔가 달라.”
이건용 회장도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김 사장! 총무담당 임원들 교육은 잘 시켜 놓았소. 그런 것도 준비해 놓았으니 말이요. 눈치가 빠른 그런 임원들은 틀림없이 능력이 우수한 임원들일 것이요.”
“실은 저희 임원들도 황망 중에 미처 준비를 못했습니다. 마침 가정부 아줌마가 데려왔다는 그 젊은이가 만 원짜리 150장이 있다고 해서 바꾸어 온 겁니다.”
“아까 밖에서 호루라기를 불던 젊은이 말이요?”
“그렇습니다.”
회장이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그리고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구석에 있던 비서실장을 불렀다. 비서실장도 50대 초반이지만 사장 급 인사다.
“이봐, 비서실장!”
“예! 회장님!”
“가정부 아줌마가 데려왔다는 그놈! 아주 수상한데가 많아. 영어도 할 줄 알고 만 원짜리도 미리 준비해 왔다면 의도적으로 삼방가에 접근하려는 놈이 틀림없어!”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내일 출상 끝나고 그놈에 대하여 신원조회를 해봐! 이상한 놈이 우리 집이나 이영진 상무 집에 드나든다면 위험하지 않겠는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빨리 해봐.”
“우선 그 사람이 타고 온 렌트카 차적을 조회해 렌트카 회사를 알아내겠습니다. 그리고 그놈이 렌트카 회사에 제출한 주소 성명 등을 알아내면 됩니다.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사흘 이내로 알아봐.”
“마침 삼방산업의 안전관리실장은 수사관 생활을 20년이나 한 사람입니다. 그런 것은 그 사람이 수사기관에 의뢰해 금방 알아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폭력전과나 성범죄 사실이 있는가 알아보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서 이영진 상무 좀 오라고 하게. 아니, 내가 영진이가 있는 방으로 직접 가지.“
그러면서 회장은 다른 방으로 갔다.
회장이 이영진 상무 부부가 있는 방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남편인 홍 사장은 없고 이영진 상무 혼자 있었다.
“네 남편은 어디 갔냐?”
“다른 방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트럼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이상한 약을 탄 칵테일을 마시러 간 건 아니겠지?”
“상중인데 그러기야 하겠어요?”
“네 남편도 그렇고, 네 남동생도 그렇고,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온 놈들은 모두 그 짓들을 하니 내가 열불이 난다.”
“요즘 병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까 밖에서 호루라기를 불던 놈을 너도 알지?”
“아, 금산 아줌마가 불러온 사람 말이죠?”
“그놈이 너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
“한 번 왔었는데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외부인들을 함부로 집에 들이지 마라. 신원을 모르는 놈들은 잘못하면 위험할 수가 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이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수상한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주차 실력도 좋고 영어도 할 줄 알고 상갓집 저녁에 화투가 필요한 것을 알고 화투와 잔돈까지 준비해온 놈이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려는 놈일 수가 있다.”
“그럴 리가.......”
“너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 그래서 장명건설도 덥석 인수하지 않았느냐.”
“그, 그건.”
“안다. 네 남편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겠지. 아무튼 금산 아줌마가 데려온 그놈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비서실장에게 그놈의 신원을 파악하라고 했다.”
“그랬나요?”
“만에 하나 전과기록이 있는 놈이라면 절대로 그놈을 부르지 마라. 내가 금산 댁을 불러 그놈과 상종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겠다.”
“아빠, 비서실장의 신원파악 결과가 끝나면 그렇게 하세요. 인상은 그렇게 안 보이던데....”
“사기꾼들이야 얼굴이 다 좋지. 살살 웃어가며 달콤한 말을 하는 놈들이 아니냐? 피곤할 텐데 눈이나 좀 붙여라.”
“알겠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