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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29화 (29/199)

29화 운명의 호루라기 (2)

(29)

강시혁은 마트에서 사온 물건을 금산 아줌마에게 전달해 주었다.

아줌마가 사온 물건을 확인해 보았다.

“수고했어요. 이제 내가 시킬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저는 돌아가면 되겠습니까?”

“가긴 어딜 가. 대기해야지. 혹시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대기해도 시급은 쳐줄 테니까 밖에서 놀아요. 어디 멀리 가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차에 있겠습니다. 혹시 일이 생기면 차로 오시면 됩니다.”

“오늘 점심은 회사 총무과에서 햄버거를 나누어 준다고 했으니 챙겨먹어요.”

“알겠습니다. 이모님.”

강시혁은 밖으로 나왔다.

직원들은 천막 안에서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직원들은 같은 직장 내에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김 대리, 박 대리, 이 과장, 하면서 대화를 하였다. 그렇지만 강시혁은 이들에게 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에 들어와 스마트 폰이나 봤다.

그러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자동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보니 어제 인사했던 삼방철강의 총무과장이라는 사람이었다.

“햄버거가 왔어요. 나와서 드세요.”

강시혁이 밖으로 나왔다.

회사 총무과 직원들이 햄버거와 콜라를 나누어 주었다. 우유도 주었다.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직원들이 강시혁에게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보는 분 같은데 어디회사 소속이요?”

강시혁이 우물쭈물하였다.

옆에서 삼방철강 총무과장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이분은 회장님 댁 친척 분이셔.”

“아, 그래요?”

그러면서 직원들은 눈웃음을 치면서 금방 꼬리를 내렸다.

자기들은 대리나 과장들이지만 상대방은 골품이 틀린 진골 가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총무과장이 말했다.

“저녁에는 식권을 나누어줄 겁니다. 몬드리언 호텔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쪽으로 가다보면 한정식 식당이 있습니다. 거기서 식사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시혁은 햄버거와 우유까지 다 먹고 다시 렌트카로 갔다.

아직 비는 오지 않았다.

일기예보에는 분명히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날만 찌뿌듯한 상태였다.

강시혁은 음악이나 들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상가 집에서 음악을 듣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후4시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많이 내리진 않고 가랑비였다.

강시혁이 주방으로 갔다.

“이모님! 뭐 시키실 일 없어요?”

“점심은 먹었어?”

“회사 직원들이 햄버거를 나누어주네요.”

“그것 가지고 되겠어? 이리와. 내가 파전 남은 것 줄게.”

“아닙니다. 됐습니다. 그리고 저녁은 회사에서 식권을 나누어준다고 하네요.”

“내가 바빠서 그렇게 하라고 그랬어. 주방이 5시 넘어서부터는 무척 바쁠 거야. 온 김에 생수 포장 비닐이나 벗겨주고 가.”

“알겠습니다.”

“그리고 밤에 문상객이 많이 오니까 현관 신발 정리나 해줘. 시급은 다 쳐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강시혁이 나오면서 현관의 흐트러진 신발을 정리하려고 하였다.

삼방그룹 뺏지를 단 직원이 다가왔다. 금테 안경을 낀 엘리트형의 남자였다.

“현관 신발은 제가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아, 그래요?”

강시혁은 픽 웃었다.

삼방그룹 직원이면 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엘리트다. 현관 신발이나 담당하고 있으니 웃긴다고 생각했다.

금테 안경 직원은 검정 넥타이에 흰 장갑을 끼고 현관에서 호텔 벨 보이처럼 행동을 했다.

저녁이 되었다.

강시혁이 식권을 들고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근방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식당엔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직원들은 서로 대화를 하며 식사를 했지만 강시혁은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조용히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오자 해가 꼴딱 넘어가 어두워졌다.

엄청나게 많은 문상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정계, 재계 인사들은 다 오는 것 같았다.

직원들이 총 동원되어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VIP문상객들이 올 때마다 수군거렸다.

“저 분은 집권여당의 국회 상임위원장이야.”

“방금 들어가신 분이 XX장관이지?”

“저기 차에서 내린 분은 S그룹의 총수 아닌가?”

“원로배우 K씨도 왔네.”

“와, 국무총리도 오셨는데?“

강시혁이 보니까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다 오는 것으로 보였다.

[씨팔! 방구깨나 꾸는 놈들은 다 모이는 것 같네.]

어느 조문객은 직원들에게 부의금 봉투를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강시혁은 자기가 할 일도 특별히 없는 것 같았다.

자기가 안내를 거들려고 하면 직원들이 쏜살같이 나와 자기들이 안내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저녁 8시가 되자 집 앞 골목이 차량들로 뒤엉켰다.

주차하려는 차와 문상을 마치고 나가려는 차들이 엉켜버려 대 혼잡을 이루었다.

비는 계속 왔다. 빗속에서 직원들이 우왕좌왕 하였다.

강시혁이 혀를 끌끌 찼다.

[이 자식들이 안내는 잘하는데 차량 유도는 개판으로 하네. 문상객들에게 자동차 키를 꽂아놓고 가라고 하고 차를 자기들이 주차해주면 되는데 그걸 안 하네!]

방문 차량들은 운전기사가 몰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오너드라이버들도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은 차가 워낙 고급차라 자기들이 운전해 빼주거나 주차를 해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잘못하여 어디 부딪쳐 긁히기라도 하면 바가지를 쓰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참다못하여 문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흰 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차를 유도했다.

일부 문상객에게는 자기가 차를 대주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안내 직원입니다. 이 앞이 혼잡하니 키 꽂아두시고 바로 들어가십시오. 제가 주차는 해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역시 삼방그룹 직원들이요.”

강시혁은 대리 운전기사다. 경차에서부터 고급 외제 차까지 다 운전을 해본 사람이다.

직원들이 출퇴근에만 자기차를 운전하는 것과는 달랐다.

강시혁이 각이 반듯하게 주차를 시켜주고 호루라기를 불며 나가는 차들을 바로 빠져나가게 유도했다. 비를 맞으며 차량을 유도했다.

직원들은 강시혁의 주차실력을 보고 감탄했다.

“와, 저 공간에 저렇게 주차를 시키네! 저 사람 어느 회사에서 나온 사람이야?”

이층에서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이 호루라기 소리를 들었다.

“상가 집에서 웬 호루라기 소리인고?”

“차들이 엉켜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건용 회장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옆에서 계열사 사장인 듯한 사람이 말했다.

“이제 차가 좀 빠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난장판이었습니다.”

“직원들이 비 오는데 고생을 많이 하는군. 저기 호루라기를 부는 친구는 비를 다 맞았네.”

"저희 삼방그룹 직원들은 주인 의식들이 강합니다. 이런 일엔 아주 솔선수범합니다. 창업 회장님 때부터 내려온 전통 있는 기업문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호루라기 소리는 밤 8시부터 밤 11시까지 쉬지 않고 들렸다.

창밖을 내다보던 삼방그룹 회장이 계열사 사장에게 말했다.

“저기 호루라기를 부는 직원은 아까부터 혼자 계속 고생하네. 교대를 안 하나? 어느 회사 소속인지는 몰라도 가서 격려를 해줘요.”

“알겠습니다. 운전 실력도 좋아 문상객 차량에 올라 직접 주차도 아주 칼같이 잘 하네요.”

“큰 우산을 들고 문상객 안내도 잘하는군, 자기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제가 총무담당 임원에게 수고한다고 격려의 말을 해주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어느 회사 소속인지도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강시혁이 호루라기를 불며 한참 차를 유도하고 있는데 임원인 듯한 사람이 다가왔다.

“고생 많이 하시네! 나는 삼방산업 총무담당 이사요. 당신은 어디 회사 소속이요?”

“예? 회사 직원은 아닙니다. 주방에 계신 아줌마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입니다.“

“오, 그래요? 교대해서 하세요.”

“교대할 사람 있으면 보내주세요.”

그런데 교대할 직원이 마땅치 않았다.

남이 운전하는 고급 외제차 운전은 꺼리기 때문이었다.

삼방산업 사장이 회장에게 보고했다.

“저기 밖에서 호루라기 불던 친구는 그룹사 직원이 아니랍니다. 주방 아줌마 일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방 아줌마를 도와줘?”

“주방에서 시장을 보기 때문에 경차를 가지고와서 도와주러 온 것 같습니다.”

“어, 그래요?”

삼방그룹 회장이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다. 라이트를 켜고 들어오는 외제차가 있었다.

외제차가 서자 강시혁이 바로 문을 열었다.

내리는 사람은 거구의 외국인이었다.

강시혁이 영어로 말했다. 강시혁은 영문과를 다녔기 때문에 간단한 회화는 할 줄 안다.

그렇지만 해외 연수를 갔다 오거나 학부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 길게 하는 회화는 하지 못했다.

“Thank you for coming. I will guide you. (어서 오십시오.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Thank you (고맙소).”

“Insert the car key and I will park the car. (차 키를 꽂아두시면 제가 주차를 해드리겠습니다.)”

2층에서 삼방그룹 회장이 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같이 있는 삼방산업 사장을 불렀다.

“김 사장! 저걸 보시오. 저 친구가 영어를 하는 것 같소. 지금 들어오는 외국인은 영국 대사 같은데 둘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 같소.”

“그렇군요. 영어도 좀 할 줄 아는 것 같군요.”

“좀.... 수상한 녀석 같은데?”

그러면서 회장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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