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운명의 호루라기 (1)
(28)
동트는 이른 아침이 되었다.
강시혁은 주방으로 갔다.
주방 아줌마들은 벌써 불을 환하게 밝혀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금산 아줌마가 강시혁을 불렀다.
“삼촌! 잠은 좀 잤어?”
“차에서 잠깐 눈 좀 붙였습니다.”
“이건 죽이야. 내가 여기 통에 떠주면 마당에 있는 천막으로 가지고 가. 직원들 아침밥은 먹여야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한 통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몇 통 담아놨어. 100명분이야. 그리고 방안에 있는 사장님들과 거실에 있는 임원들에게는 회사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할게.”
아줌마는 방안에 있는 사장들에게 죽을 가져다주는 일을 강시혁에게 시키지 않았다.
회사 뺏지를 단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았다.
아줌마는 거실에 비스듬히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50대 초반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
“저 불렀습니까? 아저씨 아니고 삼방산업 총무이사입니다.”
“아이고, 내가 이사인지 상무인지 어떻게 알겠수? 방에 계신 사장님들에게 죽이라도 나누어 드려야 하니 직원 세분만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요리사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밖에 있는 직원 세 명을 불렀다.
박 대리, 이 대리, 하고 부르는걸 보니까 대리급 사원을 부르는 것 같았다.
강시혁이 죽이 든 통을 들고 마당으로 나오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직원 세 명이 죽 그릇이 든 쟁반을 들고 2층 방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히히, 저놈들이 명문대학 나온 엘리트 사원들일 텐데 죽 그릇이나 들고 다니네! 그래도 아마 서로 이 일을 하려고 할 걸? 사장 앞에 고생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기회가 될 테니까!]
마당에 있는 플라스틱 테이블에 죽통을 올려놓았다.
강시혁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아침이라고 주방에서 죽을 끓여왔습니다.”
“와 -.”
“제가 일회용 죽 그릇을 가져오겠습니다.”
강시혁이 죽통을 두 번 더 날랐다.
죽을 퍼 주는 건 직원들이 달려들어 퍼주었다.
아줌마가 과일도 가져다주라고 하여 직원들에게 과일도 나누어주었다.
과일을 받아든 30대 후반의 남자가 강시혁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어디 회사 소속이요? 나는 삼방철강의 총무과장입니다.”
이 사람은 주방에서 아줌마가 강시혁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예? 저, 저는 회사직원이 아니고 회장님 댁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회장님 댁? 그럼 비서실에서 파견 나오신 분인가요?”
이 사람은 강시혁이 회장님 댁의 집사라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바싹 강시혁에게 접근했다.
이놈도 출세하고 싶어 안달이 난놈 같았다.
“비서실에서 파견 나온 사람은 아닙니다.”
이때 아줌마가 나왔다.
“삼촌! 죽 모자라지 않아요?”
“아니, 괜찮습니다. 모자라지 않습니다.”
아줌마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삼방철강 총무과장이 들었다.
삼방철강 총무과장의 눈이 반짝였다.
강시혁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강시혁을 회장님 댁의 먼 친척으로 본 것 같았다.
접근해야 될 사람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혹시 명함 있으면 한 장 주시겠습니까?”
“예? 명함요?”
총무과장이라는 사람이 자기의 명함을 주면서 말했다.
“저는 삼방철강의 총무과장입니다.”
총무과장이라는 사람은 조금 전에 자기가 삼방철강 총무과장이라고 말을 하고선 또 자기소개를 했다.
강시혁은 이 사람이 의도적으로 자기에게 접근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자식이 어르신 주간보호센터 기사 명함을 주면 실망하겠지?]
“저, 저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명함이 없습니다.”
“그럼 성함이라도.....“
“강시혁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러면서 총무과장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강시혁은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 저도 아직 식사를 안 해서 죽 한 그릇 먹겠습니다.”
“아, 아직 식사 안 하셨군요. 어서 드십시오.”
강시혁도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죽을 먹었다.
죽은 의외로 맛이 있었다. 닭죽인데 대추와 밤 같은 것도 들어있고 아주 고급스러웠다.
역시 재벌가에서 나온 음식다웠다.
[금산 아줌마가 이런 솜씨가 있는 것 같네. 음식솜씨 최고라고 또 칭찬해 줘야겠군.“
총무과장이 얼굴에 미소를 잔뜩 지으며 말했다.
“혹시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저기 있는 자판기에서 뽑아서 드시면 됩니다. 우리 철강에서 설치한 것입니다.”
강시혁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현관 옆 담 밑에 자판기가 한 대 설치되어 있었다.
삼방철강 회사의 총무과에서 설치한 것 같았다.
“오, 자판기까지 준비하셨네요.“
“우리 철강 총무과에서 자판기는 물론 마당에 천막 설치하고 전기시설 다는 것을 다 했습니다. 저기 앉아있는 건설, 화학, 산업, 증권에 있는 놈들은 별로 한 일도 없습니다.”
“철강 직원들이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룹의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마땅히 해야죠.”
강시혁은 죽 한 그릇을 비우고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까지 뽑아마셨다.
직원들도 죽을 먹고 여기저기 흩어져 아무데나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시혁은 직원들이 부러웠다.
자기 스펙 가지고는 삼방그룹 같은데 들어올 수 없겠지만 들어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커피 마시는 놈들은 평균 연봉 7천만 원이 넘는다. 그리고 좋은 빌딩의 좋은 환경에서 근무한다.]
또 이놈들은 자기처럼 투잡을 뛰는 것도 아니다.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사니 얼마나 좋을까 하였다.
자기도 그렇게만 된다면 결혼도 다시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자기는 이집 식모가 부른 일일 알바에 지나지 않았다.
[에고, 일하러 왔으니 일이나 하자.]
강시혁은 마당 테이블에 있던 빈 죽통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아줌마가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여러 장 주며 말했다.
“일회용 죽 그릇이나 사용한 나무젓가락은 여기에 담아요. 혼자 하지 말고 직원들이랑 같이 하면 돼.”
“알겠습니다. 이모님.”
강시혁은 직원들과 함께 마당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치웠다.
쓰레기를 치우고 강시혁이 주방으로 다시 왔다.
“이모님. 저, 그러면 용산역 이마트에 갔다 올까요?”
“아직 문 열지 않았을 걸? 10시쯤 가요. 그동안 우리 설거지나 도와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강시혁이 주방에서 설거지 일을 도와주었다.
양복 윗저고리를 벗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일을 했다.
아줌마들이 좋아했다.
“힘 좋은 삼촌이 와서 좋은데?”
아줌마가 대추차를 타 주었다.
손님이 오면 한과와 함께 내가던 대추차였다.
“삼방가의 명품 대추차야. 마셔봐.”
대추차는 계피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잣도 들어있는 것 같았다.
맛이 아주 훌륭했다.
정말 금산 아줌마는 음식 명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재벌가에서 일하는 것 같구나 하였다.
10시가 되었다.
강시혁은 아줌마에게 법인카드를 받았다. 그리고 아줌마가 적어준 물건 살 메모지를 받았다.
이런 건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면 되는데 아줌마는 옛날사람이라 그런지 메모지를 이용했다.
강시혁은 이마트에 와서 아줌마가 부탁한 식용유와 위생백 같은 것을 샀다.
그리고 화투도 몇 벌 샀다.
[계열사 사장 급 정도 되는 50대나 60대는 고스톱 세대니까 화투를 칠거야. 젊은 사원들처럼 스마트 폰 게임 같은 것은 안하겠지.]
강시혁은 커다란 골프용 우산도 두 개 샀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니 문상하러오는 VIP들에게는 우산이라도 받쳐주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오늘 저녁엔 문상객들이 많이 오면 주차 때문에 집 앞 골목이 복잡하겠지? 교통정리용 호루라기라도 하나 살까?]
그래서 흰 장갑과 호루라기를 샀다.
강시혁은 이때까지만 해도 이 호루라기가 자기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작용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시혁은 K3 렌트카 안에서 호루라기를 불어보았다.
“호르륵, 호르륵!”
[히히. 좋은데?]
강시혁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스톱을 치려면 잔돈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만 원짜리 지폐나 바꾸어 갈까? 사장님들이니까 점당 1만 원짜리 고스톱을 치지 않겠어?”
그래서 강시혁은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동안 자기가 저축해 놓은 돈이 약간 있어서 자기 돈 150만원을 인출했다.
모두 만 원짜리로 150장을 인출했다.
강시혁이 상가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