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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26화 (26/199)

26화 재벌가 장례식장 (1)

(26)

가정부 아줌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강 기사님이죠?”

“아, 이모님!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 집에 오실 수 있겠어요?”

이제 저녁때가 다 되어가는 데 갑자기 오라고하니 황당했다.

“지금 저녁때가 다 되어 가는데요?”

“회장님 댁에 상을 당하셨어요. 창업 회장님의 사모님인 할머님이 살아계셨는데 오늘 돌아가셨어요.”

“아, 그래요?”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대리 기사를 부르는 게 이상했다.

혹시 영구차를 렌트해 가지고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 가 했다.

렌트카 회사에서는 영구차는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장의 회사에 연락해야 한다.

“할머님이 동빙고동에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그 집에 가서 일을 도와줘야 해요. 노제(路祭)를 지내기 때문에 제사상도 준비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아요.”

“그렇겠네요. 초상이 났으니.”

재벌이라 찾아오는 문상객이 많아 장례를 자택에서 하는 것 같았다.

일반인들은 보통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삼방그룹 전체의 회사장으로 치루지 않나 하였다.

그런데 회사 차도 많은데 대리 기사를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갔다.

“제가 또 제너시스를 빌려가지고 가야 합니까?”

혹시 손님을 모시기 때문에 차가 필요한 것은 아닌 가 하였다.

그런데 공식적 장례를 치루는 거라면 회사차를 동원시킬 텐데 자기를 부르는 것이 이상했다.

이런 일이라면 회사의 비서실이나 총무부 같은데서 장례위원회를 설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텐데 이상하였다.

하지만 자기를 부른다니 그것은 환영이었다.

어차피 자기는 지금 대리 일을 나가야 되는데 아무래도 재벌집 일을 해주면 수입이 더 좋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재수 좋으면 이영진 상무의 얼굴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아줌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니, 제너시스를 빌릴 필요가 없고요. 내가 쓸 차를 빌려오면 됩니다.“

“이모님이요?”

“내가 수시로 시장을 봐야 해요. 술도 박스로 실어와야 하고 과일이나 채소도 날라야 해요. 렌트카 회사에서 경차나 한 대 빌려오면 됩니다.”

강시혁은 이해가 되었다.

초상집에서 시장을 보는데 번쩍거리는 벤츠차를 끌고 다니기가 불편할 것이다. 가정부가 시장을 보는 데는 경차가 제격일 것이다.

[재벌가는 식모도 자기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장을 본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군. 그런데 이 금산 아줌마는 운전을 못하는 모양이네. 경차를 가지고 오라는 것을 보니!]

아마 이것은 이영진 상무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정부 아줌마의 재량으로 자기를 부른 것 같다고 판단되었다.

회사차 기사는 회사 직원이라고 은근히 가정부를 무시하기 때문에 부려먹기 좋은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더구나 자기는 가정부 아줌마를 이모님이라 불렀고 고향 이웃의 사람이라 더 친근감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돈을 버는 것이라 강시혁이 크게 환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경차를 빌려가지고 가겠습니다. 경차 빌리는 값은 하루 10만원 미만입니다. 그리고 제 일당은 최저임금 시급 계산해 주시면 됩니다.”

“그런 건 걱정 말아요. 지금 빨리 오기나 해요.”

“동빙고동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태원 청화 아파트 밑에 몬드리안 호텔이라고 있어요. 거기에서 대사관들 많은 골목으로 쭉 들어오면 상갓집 근조등이 걸린 큰 저택이 있을 거예요. 회사 사람들 많이 나와 있으니 금방 찾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삼방그룹의 창업회장 부인의 초상이라면 언론에 보도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여러 신문에 보도가 된 것이 인터넷에 나왔다.

한복을 입고 있는 고인의 사진까지 크게 나왔다.

[삼방(三邦) 그룹 창업자이신 이흥식 회장의 부인인 신금희 여사가 오늘 별세하였다. 향년 92세인 신 여사는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방그룹 회장인 이건용 회장의 어머니인 신 여사는 남편을 도와 그룹을 일으키는데 많은 내조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는 삼방그룹 창업회장이 잠들어있는 용인으로 알려졌다.]

사진을 보니 참 곱게 늙은 할머니였다.

이영진 상무가 이 할머니의 눈매를 어딘가 모르게 닮은 것 같기도 하였다.

“용인이면 지난번에 내가 갔던 곳 아닌가? 잘 하면 내가 식모의 기사가 되어 용인 장지까지 또 가게 될지 모르겠네!“

렌트카 회사의 직원들이 퇴근할지 몰라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강시혁은 30분 이내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또 전화가 왔다.

가정부 아줌마였다.

“올 때 양복을 입고와요. 여기는 회사 직원들이 모두 검정색 넥타이를 매고 있어요. 양복만 입고 오면 돼요. 검정색 넥타이는 회사 직원들이 여기에 많이 가져다 놨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모님!”

강시혁이 렌트카 회사로 갔다.

소형차는 지금 남아있는 것이 기아 K3 밖에 없다고 하였다, 차도 낡았고 범퍼에 여기저기 긁힌 자국도 있었다.

강시혁은 할 수없이 이 차를 빌렸다. 그리고 이 차를 끌고 집으로 갔다.

집에서 전에 회사 다닐 때 입었던 양복을 꺼냈다.

다행히 검정색 양복이었다. 하도 오랫동안 양복을 안 입어 양복에 먼지까지 있었다.

강시혁이 흰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었다.

대리기사가 아니고 회사원 모습의 강시혁이 거울에 비추어졌다.

“히히. 나도 영락없는 월급쟁이 회사원 같네!”

강시혁은 털털거리는 K3를 몰고 동빙고동 몬드리안 호텔로 갔다.

정말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이 나오고 큼직큼직한 집들이 나왔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네!”

강시혁이 처음 와보는 동네였다.

그런데 대사관처럼 생긴 어떤 큰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조화가 담 밑에 쭉 늘어섰는데 수백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조화 행렬은 골목 입구까지 뻗어있었다.

“와, 이 조화 좀 봐! 대단하네! 역시 재벌가 상가네!”

빠릿빠릿한 양복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 차량을 통제했다.

양복에 근조(謹弔)라는 검정 리본을 단 것을 보니 삼방그룹 회사에서 나온 직원들 같았다.

담 밑에 세워둔 차들은 모두 고급차들인데 털털거리는 K3가 나타났으니 잘못 들어온 차인 줄 알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상가 댁 음식재료 수송하는 차량입니다. 지금 이영진 상무님 댁에서 온 가사도우미 아줌마를 만나야 합니다.”

“아, 그래요?”

직원들이 안내를 해주었다.

강시혁이 차를 세워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삼방그룹 뺏지를 단 직원들이 많이 서 있었다.

[이놈들이 전부 스카이대를 나온 공채 출신들인가? 상가 집에 와서 따까리 하는 것은 제 놈들이나 나나 똑같군!]

직원들은 강시혁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은 대리급 정도 되는 것 같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과장이나 부장급 정도 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현관입구 탁자위에 검정색 넥타이와 근조 리본들이 있었다.

역시 재벌가 총무과 직원들은 이런 것은 칼같이 준비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도 검정 넥타이를 찼다.

그리고 근조 리본도 가슴에 달았다. 자기도 영락없는 삼방그룹 직원처럼 보였다.

강시혁이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서는 여자 세 명이 일하고 있었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여자는 분명히 이영진 상무 집에 있는 금산 아줌마였다.

“이모님! 저 왔어요!”

금산 아줌마가 일어나면서 활짝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삼촌 왔어?”

강시혁은 눈을 크게 떴다,

[삼촌이라니?]

금산 아줌마는 강시혁을 기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삼촌이라고 불렀다.

남들 앞에 그것이 더 친근감 있게 들리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 같았다.

일하는 아줌마와 옆에 있던 직원들이 다시 한 번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삼촌! 차 가져왔지? 나랑 같이 시장에 가요!”

그러면서 금산 아줌마가 손을 행주로 닦고 밖으로 나왔다.

“이모님! 차가 이것밖에 없어서 이 차를 빌렸어요. 차가 좀 연식이 있는 차예요.”

“아무려면 어때? 시장 갈 건데.”

그러면서 아줌마는 냉큼 차에 탔다.

강시혁이 출발 기어를 넣자 검은 양복을 입은 회사 직원들이 차를 유도해 주었다.

회사 직원들은 웬 젊은이가 주방 아줌마에게 이모님이라고 부르고 주방 아줌마는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두 사람이 삼방그룹 오너 가의  먼 친척이 아닐까 하는 것 같았다.

자기들이 제 아무리 스카이대학 출신이고 회사의 과장, 부장이라도 오너 가의 친척이라면 잘 보여야 한다.

그래서 솔선하여 다른 차를 막으며 유도를 해주는 것 이었다.

강시혁이 슬쩍 아줌마를 보았다.

아줌마는 확실히 목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이 자식들아! 내가 비록 식모지만 기사 부리고 다닌다.’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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